다니가키 사다카즈

 

'''다니가키 사다카즈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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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중의원 (교토 5구)'''
''선거제도 개편''

'''제41~47대
다니가키 사다카즈'''

'''제48대'''
혼다 다로
-
'''일본 법무대신'''
'''제91대'''
다키 마코토

'''제92대
다니가키 사다카즈'''

'''제93대'''
마쓰시마 미도리
-

-
'''일본 국토교통대신'''
'''제8대'''
후유시바 데쓰조

'''제9대
다니가키 사다카즈'''

'''제10대'''
나카야마 나리아키
-
'''일본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제67대'''
무라이 진

'''제68대
다니가키 사다카즈'''

'''제69~70대'''
오노 기요코
-


'''일본 제3~5대 재무대신'''
'''일본 제92대 법무대신'''
'''일본 제9대 국토교통대신'''
'''자유민주당 제24대 총재
谷垣 禎一(たにがき さだかず
다니가키 사다카즈
'''
'''이름'''
<colcolor=#333>다니가키 사다카즈 (谷垣 禎一(たにがき さだかず)
'''출생'''
1945년 3월 7일 (79세)
[image] 교토부 후쿠치야마시
'''학력'''
아자부 중학교
아자부 고등학교[1]
도쿄대학 법학부
'''직업'''
변호사, 세무사, 정치인
'''가족'''
할어버지 가게사 사다아키[2] (1893~1948)
아버지 다니카키 센이치
어머니 다니가키 아키
동생 다니가키 노부유키[3]
아내 다니가키 요시코[4]
딸 두 명
'''소속 정당'''

'''현직'''
2020 도쿄 패럴림픽 명예 고문
'''경력'''
변호사
일본국 과학기술청 장관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산업재생기구 담당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식품안전담당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자유민주당 24대 총재
일본국 재무대신
법무대신
중의원
'''홈페이지'''
[5] [6]
1. 개요
2. 생애
2.1. 초기
2.2. 정계 입문
2.3. 은퇴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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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변호사, 세무사, 정치인. 56대 과학기술청 장관, 69대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산업재생기구 담당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식품안전담당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자유민주당 24대 총재, 3대, 4대 5대 재무대신, 93대 법무대신, 교토부 제5구 중의원 등을 역임했다. 2019년 욱일대훈장을 수상했다.

2. 생애



2.1. 초기


1945년 3월 7일, 교토부 후쿠치야마시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도쿄도 미나토구에 있는 아자부 중학교, 아자부 고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때엔 검도부, 고등학교 때는 산악부를 했다. 동아리 선배 중에 하시모토 류타로가 있었다고. 도쿄대학 법학부[7]를 졸업한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79년 변호사로 활동했다.

2.2. 정계 입문


그러던 중 문부과학대신을 역임한 아버지 다니가키 센이치 의원이 사망한 뒤 1983년 아버지의 지역구 교토부 제5구를 물려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제2차 하시모토 류타로 개조 내각에서 과학기술청 장관에 취임하면서 처음으로 입각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산업 재생 기구 담당 대신, 식품 안전 담당 대신 등을 거쳐 재무대신을 역임했다. 이후 2006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으나 아베 신조에 밀려 낙선했다.
[image]
'''△ 선거 유세를 하는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
2008년 후쿠다 야스오 개조 내각에서 국토교통대신으로 입각했으며 후쿠다의 총리직 사퇴 이후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재출마하려고 했으나 포기했다. 2009년에 자민당이 기록적인 참패를 기록하며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시점에서도 지역구인 교토부 제5구에서 당선되었다. 그 후 동년 9월 치뤄진 자유민주당 후임 총재 선거에서 고노 다로, 니시무라 야스토시를 제치고 당선되어 자민당 총재에 취임했다. 취임 이후 그림자 내각을 구성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다. 정권 상실로 14명의 현직 의원이 탈당한데다가 사실상 거의 모든 계파의 의미가 없어진 상황에서 난파된 자민당을 이끌어야하는 곤란한 처지가 됐다.
2010년 7월 11일 열린 제 22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13석을 추가하며 연립여당인 민주당국민신당의 참의원 과반의석을 무너트리며 선전했다. 이 선거로 2007년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이후 민주당에게 당한 선거전 연패에서 탈출했으며 민주당 간 나오토 총리를 정치적 위기로 몰아넣었다. 선거 직전 간 총리가 뜬금없이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소비세를 인상해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남긴 탓에 민주당 정권에 대한 역풍이 불어 이 틈을 타 선거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득표율에서는 7.49%p 뒤져 자민당의 세가 완전히 부활했다 보기는 어려웠다.#
2012년 9월, 총재 선거에 재출마하려고 했으나 당시 간사장이던 이시하라 노부테루[8]가 출마를 표명하면서 재출마를 포기했다. 그렇게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지 못한 2번째 자민당 총재가 되었다.[9] 이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다시 정권을 되찾아오면서 아베 신조 2차 내각에서 법무대신을 역임했으며, 2014년에는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했다.

2.3. 은퇴


허나 2016년 7월, 취미인 사이클링을 하던 도중 자전거 사고로 인해 경추 손상으로 입원하게 되면서 요양을 위해 간사장 직에서 물러나고, 간사장 후임은 니카이 도시히로가 맡게 된다. 다음 해인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도 교토부 제5구에서 불출마하면서 정계 은퇴를 표명했다.
[image]
△ '''휠체어를 타고 온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
하지만 완전히 정계를 은퇴한 건 아닌 모양인지, 2019년 2월 도쿄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자민당 대회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 연설을 했다. 다만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급격히 노화가 진행되었다. 간사장 재임 중이던 2016년 7월에 일어난 자전거 사고에 대해 "갑자기 사고를 당해서 매우 폐를 끼친 것을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는 큰 변화를 겪고있다. 일본은 새로운 길을 열어 나가야 한다."라며 참의원 선거에 승리하고 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에도 재활을 계속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연설에서 "야당 시절 3년 3개월 동안, 당시 다니가키 총재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단결했고 힘든 시간을 극복, 정권 탈환을 준비할 수 있었다"고 칭찬했다.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출마설까지 돌았으나 출마하지는 않았다. 같은 해 5월에는 2020년 도쿄 패럴림픽의 명예 고문이 되었다.
2020년 2월 14일 한 인터뷰에서 퇴원했을 때 새롭게 느낀 것을 물어보자 "휠체어로 이동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나는 정치도 은퇴하고 있지만 좀 더 젊으면 하고 싶다. 그렇지만, 도쿄 지하철 타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휠체어 탄 사람의 이동을 도우려고 하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휠체어 이용자에게 길을 양보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인지 반드시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다니가키 전 자민당 총재가 26일, 도쿄도내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차기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대한 위기감을 나타냈다. 향후 경제 회복과 신종 코로나 종식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평했다.#

3. 기타




[1] 하시모토 류타로, 요사노 가오루, 스즈키 슌이치, 히라누마 다케오, 후쿠다 야스오, 야마다 다로, 쓰무라 게이스케 등이 여기 고등학교 출신이다.[2] 일본 육군의 중장이었다.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에서 태어났다. 1945년 패전 이후 중국 측에 의해 전범으로 지정됐으나 폐결핵으로 재판에 나오지 못하고 옥사했다.[3] 형 다니가키 총재의 비서로 있었다.[4] 2011년 입원 중이던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66세.[5] 현재는 은퇴를 했기에, 들어가면 '여러분에게 수년 간 지원을 받아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니가키 사다카즈.'라는 말만 있다.[6] 2012년 7월 6일 이후로는 갱신이 되지 않는다.[7] 당시 대학 동기로 센고쿠 요시토가 있었다.[8] 망언제조기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의 아들이다. 동생인 이시하라 히로타카도 같은 당에서 중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9] 첫번째는 고노 담화로 유명한 고노 요헤이 前 관방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