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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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드의 유서 깊은 건물들
아랍어 زَبِيد
영어 Zabid
1. 개요
예멘 서남부에 위치한 인구 5만의 도시. 수도 사나에서 서남쪽으로 150km, 내륙의 다른 도시 타이즈에선 서북쪽으로 70km 거리이다. 해안의 도시들 중에서는 북쪽의 호데이다와 남쪽의 모카 사이에 각각 50km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다. 해안 평야의 와디 자비드를 끼고 형성된 도시로, 예멘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들 중 하나이다. 1993년 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7년 후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시타델에 위치한 알 아샤이르 사원은 628년 사하바 아부 무사 아쉬아리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이슬람 역사상 5번째로 세워진 모스크로 전해진다.
중세 예멘의 역사에서 자비드는 저지대 (티하마)의 대표 도시로, 고지대의 중심인 사나와 대칭을 이루었다. 819년 중세 에멘의 첫 독립국인 지야드 왕조의 수도가 된 이래로 나자흐 왕조, 마흐디 왕조 등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그때까지 저지대, 고지대, 남해안 등으로 분열되어 있던 예멘에서 전자를 대표하는 중심이었다면 1174년 아이유브 왕조의 정복 이후 자비드는 라술 왕조, 타히르 왕조로 이어지는 13-16세기 예멘의 통일 왕조들의 수도로써 번영하였다. 그후 오스만 제국의 1차 예멘 지배기에도 자비드는 그 총독부가 위치하였다. 종합해보면, 9세기부터 예멘 서부의 수도였고 12세기 말 ~ 17세기 초까지 약 460년간 전 예멘의 수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후 주변의 모카, 타이즈, 사나 등의 도시들이 성장한 결과 현재 자비드는 예멘의 경제나 학문의 측면에 있어 소외된 상태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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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성지인 알 야샤이르 모스크
9-11세기 지야드 왕조의 수도로 번영하던 자비드는 11세기 후반나자흐 조와 내륙의 술라이히 왕조 간의 전쟁에서 후자에게 자주 공격을 받았다. 1157년에 나자흐 조와 마흐디 조의 전쟁을 틈타 내륙의 자이디 이맘국이 자비드를 점령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마흐디 조에게 축출되었다. 한편 그후 마흐디 조가 내륙의 함단 왕조 및 아덴의 주라이 왕조와 싸우던 1174년, 이집트에서 당도한 아이유브 왕조의 왕공 투란 샤 (살라흐 앗 딘의 동생)이 도시를 정복하였다. 아이유브 조는 고지대의 사나 대신 이집트와 항상 연락할 수 있는 저지대의 자비드에 총독부를 두었다. 그 후신으로 1235년 세워진 라술 왕조 역시 자비드를 수도로 두었고, 1454년 그를 대체한 현지 국가인 타히르 왕조 역시 전통을 이었다.
1517년 타히르 조를 전복시킨 맘루크 군대 역시 우선 자비드에서 통치하였는데, 이들은 본국 (맘루크 왕조)가 멸망하자 오스만 제국에 복속하였다. 이에 1539년 하딤 술레이만 파샤의 오스만 군이 자비드에 진주하였고, 도시는 에멘 에얄레의 주도가 되었다. 1568년 자이디 반란으로 오스만 조의 지배력은 자비드 일대에 국한되기도 했으나 대대적인 반격으로 15년 후에는 역으로 자이디 이맘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게 된다. 그러나 17세기 초엽 카심 왕조를 중심으로 뭉친 자이디 세력의 반격에 오스만 군은 고전하였다. 1629년 사나와 타이즈가 함락되었고, 모카와 자비드에 국한된 오스만 군은 1635년 최후의 반격 시도마저 실패하자 북예멘에서 철수하였다.
이로써 자비드는 자이디 이맘국 (카심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4세기 넘게 이맘국에 반대하는 세력의 거점이던 도시는 의도적으로 소외되었다. 인도의 이스마일파 공동체인 다우디 보흐라의 다이 세이드나 모함메드 에즈웃딘이 핫즈 여정 도중 자이디 세력에 의해 독살당하여 자비드에 묻힌 바 있다. 그의 영묘는 성지 중 하나이다. 그외에 1840년대 이맘국과 티하마 (아시르)의 샤리프 후세인이 싸울 때를 제외하곤 역사의 장이 되지 못한 채 과거의 모습 그대로 현재에 이른다.
3. 시타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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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타델의 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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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백년에 걸쳐 예멘 지도층의 거점이었다. 다만 내부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녀온 적이 있는 분들의 추가 요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