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클린 뒤 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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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자클린 메리 뒤 프레 (Jacqueline Mary du Pré)
'''국적'''
영국 [image]
'''출생'''
1945년 1월 26일
영국 옥스퍼드
'''사망'''
1987년 10월 19일 (향년 42세)
영국 런던
'''가족'''
부모님
배우자 다니엘 바렌보임
1. 약력
2. 생애
3.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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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력


자클린 뒤 프레는 영국의 첼리스트로, 1945년 옥스퍼드 새리 주에서 태어났다. 5살 때부터 첼로를 잡아 15살 부터 왕성한 활동을 진행했으나, 다발성 경화증으로 연주자로서의 활동 절정기인 20대 후반에 은퇴하였다.
남편은 명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대영제국 4등훈장 수여자(OBE)다.

2. 생애


뒤 프레(Du Pré)는 대대로 내려오는 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인데, 아버지는 물론 모두 순수 영국인이다. 그래서 간혹가다 자클린이 프랑스인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살 수 있다. 5살 때 런던 첼로 학교에 입학해 첼로를 수학하고, 1960년에 들어서는 첼로의 성인이라 일컫는 파블로 카잘스나, 냉전시기인 1966년에는 직접 소련으로 들어가 로스트로포비치를 사사하기도 했다. 당시 내로라하는 첼리스트에게 모두 가르침을 받은 자클린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1962년 영국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자클린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고, 이것이 평론가와 대중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뒤프레 자신을 대표하는 불멸의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후 1965년 이 곡을 EMI와 작업하면서, 그는 음반시장계 대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미국 데뷔 무대에서 그는 또 한번 청중을 휘어잡는다. 이 때 66년 새해전에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나 1년 만에 결혼하게 된다. 지휘자와 첼리스트의 결합으로 둘은 협연 공연을 위해 전 세계를 다녔으며, 둘이 연주한 곡은 어떤 곡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1971년, 갑자기 전신의 통증과 이상을 호소하던 자클린은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결국 영국에서 1973년 2월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끝으로 모든 활동을 정리했고, 며칠 뒤에 뉴욕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과 브람스의 2중 협주곡을 연주하며 세계 투어의 모든 활동을 끝마쳤다. 1975년에는 전신이 마비되었고, 결국 1987년 숨을 거두었다.
이 사이 남편인 바렌보임은 투병중이던 그녀를 버리고 엘레나 바쉬키로바(Elena Bashkirova)라는 피아니스트와 외도했고, 그녀가 죽자마자 재혼했다는 좋지 못한 추문에 얽히기도 했다. 바렌보임은 엄청난 기억력으로 대부분의 공연을 암보로 소화할 정도의 수재였지만, 가혹한 완벽주의와 인성 문제로 마냥 좋게 보진 못하는 연주가였기 때문. 건강이 악화되던 자클린이 실수가 잦자 바렌보임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를 닦달했다고 한다. 그녀는 몸이 아파도 바렌보임에게 사실대로 고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묘비에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사랑했던 아내'(Beloved Wife of Daniel Barenboim)라는 묘비명이 적혀 있다.

3. 연주



자클린이 연주한 엘가의 첼로 협주곡. 지휘자는 바렌보임이며, 당시에는 아직 두 사람이 결혼 전이었다.

신혼인 바렌보임과 함께 1968년 런던 로열 알버트 홀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이 곡은 드보르작 작곡사 후의 명작으로 손꼽히면서도, 자클린에 의해 재조명된 곡이다.
동영상은 당시 BBC 실황 중계인데, 3악장 초반(본 영상의 29분 38초)에 그녀의 첼로 스트링이 이기지 못하고 박살 나는 아주 보기 드문 장면이 그대로 녹화되었다. 곧바로 "현을 바꾸게 2분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부탁하고, 청중들도 박수로 화답하는 모습이 나온다.
바이올린 협주곡의 경우 협연자의 줄이 끊어질 경우 협연자 옆의 악장이 자신의 악기를 건네기는 하지만, 첼로 현이 아예 끊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영상에서는 1번 스트링(A현)이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연주를 다 보면 알겠지만, 그녀의 연주는 마치 첼로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 같은 힘으로 연주를 소화하고 있다.

1969년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 연주 실황을 담은 영상. 뒤 푸레가 첼로, 남편인 바렌보임이 피아노, 바이올린은 이작 펄만, 비올라에 핀카스 주커만, 그리고 더블베이스는 이후 지휘자로 명성을 날린 주빈 메타가 맡았다. 모두 현재까지 클래식 음악계의 대표적인 거장들로 인정받는 인물들이며, 이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있는 영상. 아울러 너무도 빨리 음악계를 떠난 뒤 푸레의 재능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크게 느켜지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