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국

 


1. 개요
2. 위치


1. 개요


子他國

삼국사기삼국유사을 포함한 한국 측 기록에는 없지만, 일본서기에서 가야멸망 기사에서 가야 구성국들을 나열할 때 언급되고 있는 나라다.
531년 백제군이 가야에 침투할 때 다다른 걸탁성을 이 자타국으로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타국은 함안군 안라국의 강한 영향아래 놓여있다가, 백제의 반 식민지 상태로 전락한 셈이 된다.
이밖에 임나 부흥을 위한 백제 주도의 국제회의인 사비회의에서는 자타국의 왕이라 할 수 있는 한기가 직접 참가하였다. 다른 나라는 아들이나 고위관료를 보내는 편이었는데 직접 정상외교를 시도한 것을 가야 구성국 중에서도 자타국이 비교적 약소국이라 그렇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그냥 자타국의 한기(왕) 본인이 직접 발로 뛰는 적극적인 성향이었을 수도 있지만.
소국이었지만 상당히 오래동안 세력을 유지하였고 최후에 이르러 대가야와 비슷한 시기에 신라 진흥왕의 정복전쟁 끝에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멸망연도는 대가야의 멸망시기와 비슷한 560년대 전후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가야 구성국 중에서 일찍이 망한 나라들은 위 기록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즉, 좀 더 이전 530~540년대에 멸망한 비자발, 탁순국, 금관가야는 긴메이 23년조의 가야 멸망 기사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일본서기 긴메이 23년 1월의 기사는 정말로 562년을 전후하여 멸망한 가야 소국만을 나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자타국도 이 때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

2. 위치


고대에 거타, 거열 등으로 불려 음운상 유사성이 있는 경상남도 거창군, 그 중에서도 펀치볼 지형의 분지로 떨어져 있는 가조면에 비정하거나, 역시 거타로 불린 경상남도 진주시로 비정하기도 한다. 대다수의 학설은 자타국을 진주시로 비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