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작업기

 



1. 제원
2. 개요
3. 개발 및 개량과정
4. 운용


1. 제원


[image]
装甲作業機そうこうさぎょうき(장갑작업기) SS機(SS기)[1]
승무원
5명
길이
4.865m
너비
2.55m
높이
2.088m
무게
13t(완비중량 16t)
장갑
6~25mm
주무장
화염방사기 2~3문
부무장
6.5mm 91식 중기관총 1정
엔진
미쓰비시 6기통 디젤엔진
출력
145마력/1800rpm
현가장치
장궤식(装軌式)
최대속력
37km/h
항속거리
400km

2. 개요


89식 중전차를 원형으로 한 일본육군의 전투공병전차, 장비를 교체하는 것으로 토치카 공격용 전차, 지뢰제거 전차, 가교 전차, 화염방사 전차 등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갑(甲)형부터 무(戊)형까지 5종이 생산되었다.

3. 개발 및 개량과정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 소련과의 만주에서의 전투를 상정하고 있던 일본군은 소련의 국경 돌파 및 밀림, 늪지대를 돌파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여겨 1929년 연구방침을 제정하여 1930년에 장해물 제거 및 토치카 파괴를 주 목적으로 하는 전투공병전차의 개발에 착수했고, 1931년 6월에 89식 중전차 차체에 좌우 궤도 공간장갑과 포탑, 리턴 롤러 2개를 제거한 개량품 시제차량이 미쓰비시에서 완성된다. 완성된 시제차량은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참호파기, 화학무기 살포 및 제거, 화염방사, 지뢰 제거 등의 장비들을 장착 할 수 있도록 개발하였다.
개발이 완료된 시제차량은 공병학교로 보내져 시험운행에 들어갔고, 접이식 가교등의 추가 장비를 설치하는 개량을 거쳐 1936년에 96식 장갑작업기라는 이름으로 임시 제식화 되었다.
1937년에는 원형인 89식 중전차와 마찬가지로 디젤 엔진으로 엔진이 변경되고 을(乙)형이 개발되었다. 그후 1944년까지 병(丙)형과 정(丁)형, 무(戊)형이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다양한 기능을 지니고 있었으나, 개량과정을 거치며 최종형인 무형은 그 기능이 4가지로 좁혀졌고, 그 대신에 단일 기능을 갖춘 다양한 공병전차의 개발이 진행되었다고 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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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이식 가교를 장착한 모습.

4. 운용


1934년에 독립 혼성 제 1여단 독립 공병 1개 중대에 처음 배치가 이루어졌고, 1937년에 중국 전선에 실전 참가하고 화염 방사 보병 지원을 실시했지만 1000km 가까이 되는 장거리 행군으로 고장이 속출했다고 한다.
1939년에는 전문 운용 부대로 독립 공병 제 5연대가 창설되었다.
태평양 전쟁 발발 후 1942년에 전차 사단 의 창설에 따라 장갑 작업기는 3개 전차 사단과 교도 전차 여단의 공병대에 분배되었다. 각 전차 사단의 공병대는 정수에 맞추어 24대가 배치되었다고 하는데, 중국 전선과는 달리 장거리 행군이 없었기 때문에 고장이 적어 대단히 효과적인 공병 차량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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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에게 노획된 장갑작업기와 전차들, 맨 앞에 있는것이 장갑작업기이다.
루손 섬 전투에서 전차 2사단 공병대가 2기 이상의 장갑 작업기를 사용하였다고 하며, 8기가 미군에게 노획되었다고 한다.

[1] '''S'''ōkō '''S'''agyō '''Ki'''의 약칭으로, 시-키(SS-KI)로도 읽는다.[2] 이 "단일 기능을 갖춘 공병 전차"의 예시중 하나가 97식 전차의 벌목 개수 버전인 호-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