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식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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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mm 유탄포 사양의 초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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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식 기동 47mm 속사포 사양의 개량형[1]
1. 제원
2. 개요
일본군이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에 운용한 중형전차. 보통 치하, 47mm 포 장착형은 치하 카이(改, 개)라고 불린다. 2,000여대가 생산되었으며. 미쓰비시, 히다치 등 방위산업체 전반에서 생산되었다.
37년에 등장한 전차가 1931년 전차인 89식과 동일한 무장을 탑재했다. 일본군은 독일군과 비슷하게 경전차가 대전차포를 장착하고, 중형전차가 보병지원용 곡사포를 장착했다. 때문에 대전차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37년 당시 소련군이 보유한 T-26이나 BT 전차, 독일군이 보유한 2호 전차에 비해서는 우수한 전차였으나 이들은 30년대 초중반에 등장한 전차였고, 곧이어 30년대 말 등장한 독일의 3호 전차와 4호 전차나 40년대 초 등장한 T-34에 비하면 매우 뒤쳐진 전차였다. 하지만 일본군 역시 앞으로는 보병지원전차라 하더라도 대전차 능력이 중요해질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연구 끝에 47mm 대전차포를 장착한 치하 신포탑(Shinhoto)/ 개(Kai)로 생산 라인이 전환된 것이 42년 초이다. 사실 비슷하게 3호전차를 5cm 60구경장 전차포를 달아서 대전차용으로 사용하고 4호전차를 7.5cm 24구경장 단포신 주포를 달아서 보병지원용으로 사용하려던 독일군의 경우에도 42년 초 생산분부터 4호전차의 주포를 7.5cm 48구경장 장포신 주포로 교체했으니 시기상으로 크게 늦은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의 생산력 부족으로 워낙 숫적으로도 부족했고, 25톤[2]4호 전차도 전쟁 후기에는 연합군의 30톤급 신형 중형전차에게 밀린 판인데 15톤[3] 에 불과한 치하의 기본적인 성능이 못미쳐서 한계가 명확했던데다, 당시 독일군은 빠르게 3호, 4호의 후속전차이자 이 둘보다 훨씬 더 강력한 5호 전차 판터와 6호 전차 티거를 투입했으나 일본군의 후속 전차는 성능도 부족한데다 종전을 눈앞에 두고서야 완성되었기에 문제가 더 커졌다.
이 전차의 이름인 '치하'는 계획 당시에 쓰이던 코드네임으로, 중(チュウ)전차 중 세 번째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チハ가 된 것이다. 이로하 노래 순으로는 ハ가 イロハ로 세 번째이기 때문.
3. 치하의 탄생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89식 중전차는 그야말로 중원에서 대활약을 펼쳤다. 국부군이 워낙 막장인데다가, 제대로 된 대전차화기나 전차도 없었고 덤으로 제대로 된 전차전도 딱히 벌어지지 않았으니 일본은 보병지원용 전차선에서 만족하고 축배를 들고 자화자찬을 벌인 것이다.
물론 자화자찬 속에서도 일본의 일부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은 미래 전장에서 전차의 상대가 적 보병 및 벙커 등의 강화진지와 더불어 적 전차를 직접 상대해야 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예측하기는 했으며 그렇게 만든 것이 95식 경전차인 하고다. 이는 3호 전차에 대전차 전투능력을 부여하고 4호 전차는 지원용도로 설계한 당대 독일과 비슷하다. 다만 4호 전차는 전차의 지원과 보병지원을 모두 염두에 두었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영국의 보병전차들도 보병지원을 중시했고 미국도 보병 지원을 중시했다. 영미와 일본의 차이는 영미가 생각한 보병지원에는 보병을 위협하는 전차를 우선적으로 제거한다는 개념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그게 너무 지나쳐서(?) 좀 다른 방향으로 삽질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일본은 할힌골 전까지 기갑대 기갑으로 맞붙을 것을 상정하지 않았던 일본군의 필요를 반영해 치하를 만들었고 딱 그 정도에서 좋았다.
중국 전선에서는 '''평가가 좋았는데''', 이것은 2차 대전후 다량의 치하를 노획하고 그것을 국공내전이나 한국전쟁때 운용해본 중국군의 평가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시 중국[4] 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감안하면 괜찮은 순간가속력을 가졌고, 가벼운 무게로 산지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며, 경전차라 정비도 쉬운 편이며 엔진도 불이 잘 붙지 않는 디젤 엔진이라 평이 좋았다. 아무리 악평을 받는다고 해도 전차는 전차기에, 대전차 장비가 없는 보병에게는 마땅히 격파시킬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훗날 만나게 될 미군은 전혀 만나기 좋은 상대가 아니었고, 밑에도 나오지만 그 이전부터 치하의 컨셉은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3.1. 시제 중전차 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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試製中戦車 チニ.
일본군은 89식 중전차의 후계자를 선정하기 위해 치하 외에도 또 하나의 전차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시제 중전차 치니.
- 포는 57mm 유탄포로, 97식 전차의 것과 같다.
- 승무원은 전차장, 조종수, 기관총수의 3명으로, 1인용 포탑을 채용했다. 혼자서 주변 관측과 포격과 재장전을 모두 해보면 이게 왜 문제인지 알 수 있다. 대전 초 프랑스 기갑군도 사실 이랬다. 전차장이 관측, 포격을 혼자 다 하는게 일반적이었다. 당시의 경전차나 중형전차는 아예 조종수와 전차장 2명만 탑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고화력과 중장갑으로 단점을 메꾼 프랑스군과 달리 일본은 그럴 역량도 없었다.
- 중량은 9.8톤이며, 전면 장갑은 20mm이다. 일본군의 주장에 따르면 94식 37mm 속사포의 37mm 포탄을 중거리에서 막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 속도는 30km/h이다.
- 가격이 97식 전차보다 저렴하며, 95식 경전차와 부품을 상당부분 공유한다.
자세한 것은 일본 위키피디아의 일본군 시제중전차 치니와 영문 위키피디아의 타입 97 치니를 참조하자.
3.2. 치하의 특징
치하는 89식 전차의 후계자답게 보병지원용 전차로서 태어났기에 89식 전차와 똑같은 57mm 단포신 곡사포를 탑재했고, 속도를 늘리고 서스펜션을 강화하고 장갑은 89식보다 약간 두꺼워졌다. 그래서 89식 중전차보다는 개량되었으며, 처음 개발 당시만 해도 구경만으로는 세계 표준에 '근접'한 57mm 포를 탑재했고, 당시 전차들의 엔진이 모두 가솔린인 상황에서 전차로서는 최초로 전체 모델에 디젤 엔진을 채용한 선진적인 면도 있기는 했다. 디젤 엔진 자체는 전세대의 89식 중전차부터 탑재되기 시작했지만 89식 중전차는 디젤과 가솔린 엔진이 함께 탑재된 반면 97식 전차에는 디젤 엔진만 탑재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디젤 엔진을 T-34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나름대로 놀라운 성과이기는 하다.
당시 일본은 전차개발을 등한시하는 면도 있었고, 전차라고는 거의 없는 중일전쟁에 그리 성능이 뛰어난 전차는 필요없었을지 모른다[5] . 또한 일본의 주 전장은 항공 전력과 해상 전력이 중시되는 태평양 전선이었기에 대전차전을 신경쓸 상황도 아니었기도 했다[6] . 하지만 분명한 것은 후속전차인 1식 중전차를 포함해 전차를 비롯한 당시 일본의 군사 장비 전체에 드러나는 일본의 후진적인 야금, 제련, 공업기술을 변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3.3. 불길한 조짐?
애초에 일본군은 대전차전 양상에 대해서 할힌골 전투 이전부터 이미 그 중요성을 예견해서 "야 이거 얹어보자"라고 말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47mm 장착 등을 의논했다. 할힌골 전투 이후에 뭔가 달리기 시작하니까 시간상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했을 뿐. 그런데, 전간기에 일본군 일각에서는 전차 뿐 아니라 화력전 전반에 있어서 서구의 추세를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개발해 시제품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주변의 목소리에 그쳤고, 현실은 지나치게 넓어진 중국 전선과 병력규모를 지탱하기 위한 예산이 부족해서, 차량화와 화력전, 보다 강력한 육상무기의 배치와 병참은 후순위였다. 이런 기조는 이후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며 결정적인 패착의 바탕이 되었다.
할힌골 전투의 피해의 경우 수치상으로 본다면 소련측 전차의 피해가 더 크기는 하지만 소련측 전차의 상당수는 전차전에서 파괴된 것이 아니므로 이 수치를 가지고 일본의 전차 성능을 논하기는 부적절하다. 일본에서도 할힌골 전투는 실패한 전투로 보고 있다.[7]
화력 다음으로 전차의 심장인 엔진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치하에 탑재된 디젤엔진은 아래 단락에도 서술되어 있듯 정나미가 뚝 떨어질 정도로 나쁜 성능을 가졌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기술로는 디젤 엔진으로 인한 진동때문에 포의 명중률이 크게 저하되기 때문에 명중률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으며, 기술적 한계로 인해 기동중 사격시 명중률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아[8] 기동중 사격보다는 정지후 사격이 더 많이 애용되었는데 이럴 경우 역시 급정지 및 급가속시 반응이 빠른 가솔린 엔진이 유리했다. 즉 별다른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디젤 엔진을 채택한 것은 선진적인 것이 아니라 소가 뒷걸음 치다가 쥐를 잡은 것에 가깝다. 그 당시에도 디젤 엔진을 사용한 장갑차량이 없는 것은 아닌데 발렌타인 전차라든가 울버린처럼 그리 좋은 소리는 못들은 전차들이 많다.[9] 물론 T-34나 M4 셔먼(M4A2계열 한정)처럼 디젤 엔진을 탑재하고도 잘 나간 전차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도 기술이 받쳐줘야 하는 이야기다.
개량해서 '''태평양 초반까지만 썼으면 좋을 전차'''가 태평양 전쟁 개전 초반인 싱가포르 전투부터 2차대전 말기까지 주력 전차로 돌아다녔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미국, 영국의 제대로 된 전차와 맞닥뜨린 후에는 스튜어트 전차도 어느 정도 위협적이었지만... M3 리, M4 셔먼 상대로는...[10][11]
4. 실전
치하는 실전을 힘들게 치렀다. 태평양의 정글 속에서는 미군의 중(中)전차인 M4A2 셔먼이 밀림을 헤집고 다니면서 일본군의 치하와 하고, 대전차포, 진지 등을 탈탈 털어먹고 다녔고, 전쟁 극후기 만주 작전에서 치하는 소련군의 중형전차인 T-34와 싸워야 했다.
이 전차들 모두 소속 국가에서는 '''중형전차'''로 분류되어 있으나 치하는 T-34-85와 M4 셔먼에 비해 15톤 가량이 더 가벼웠다. 그런데 체급이 더욱 더 작아질수록 장갑이 얇아지고[12] 화력과 기동성 역시 제약을 받기 때문에 성능의 저하가 심해진다. 다른 두 전차들은 실제로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 치하보다도 전비 중량이 약 30톤 정도가 더 무거운 중형전차 판터를 상대했었다.
4.1. 태평양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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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프리 Duel 43권 M4 Sherman vs Type 97 Chi-Ha THE PACIFIC 1945에 나온 일러스트로 1945년 1월 루손 섬 산 마누엘에서 제716전차대대 소속 M4 셔먼과 일본 제7전차연대 소속 97식 改와의 전투를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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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화염방사전차 M4A3R "Zi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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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에서 농성하는 일본군 수비대에 대항하기 위한 불도저 전차.
대전차 전투보다는 밀림 속을 밀고 들어가기 위해서 미 해병대가 투입한 M4 셔먼을 만난 일본군은 '악마를 보았다'면서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그들이 보유한 그 어떤 대전차포도 셔먼은 가볍게 튕겨냈으며,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47mm포 탑재 97식 改 치하가 쏘는 포탄도 가볍게 튕겨냈다. 여기에 우수한 속사능력에 일본 전차쯤은 간단히 뚫어버릴 관통력을 지닌 75mm 전차포로 '뭐라도 움직이는 것만 보이면 일단 쏴대고 보는' 미군 특유의 전투 방식 때문에 사방에서 피해가 속출, 1944년의 필리핀 탈환전에서는 셔먼에게 그야말로 녹아내리는 피해를 입었다. 가까이 숨어있다가 지근거리 기습으로 셔먼을 잡은 몇몇 97식 改도 있었지만, 그 직후에는 역습을 받아서 괴멸당했다. 화염병도 소용 없었던 이유가 태평양 전선의 셔먼은 '''디젤 엔진을 쓰는 M4A2형이기 때문이었다.'''
셔먼의 대항마로 일본군은 자군 내에서 가장 강력했던 전차인 노획한 M3 스튜어트를 끌고 나왔지만 M3로 셔먼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있었을까... 그러다보니 대전차총검술 같은 전법까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셔먼을 가장 애먹인 것은 사방에서 "같이 죽자"고 달려드는 일본군 보병이었는데, 소련군에게 탱크 데산트가 있다면 미군에게는 '''장갑 증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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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뾰족하게 만든 철판과 쇠못을 차체에 용접해서 전차를 고슴도치처럼 만들고 다녔다고 한다.
물론 일본군도 머리가 있는 이상 부랴부랴 셔먼에 대항할 전차를 개발했지만 너무 시기가 늦었다. 이 중 포탑이 달린 것들은 치헤, 치누, 치토로, 치헤는 화력이 치하와 그리 차이가 나지 않고, 치누는 그 치헤 차체에 그나마 근거리에서 셔먼을 뚫을 포를 얹는 바람에 느려터졌고, 치토는 2대만이 쓸 수 있어서 너무 적었는데다 시기도 늦어서 모두 본토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전차 자주포로는 치하 차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호니는 치누에 달린 그것과 비슷한 것으로 셔먼을 전면 격파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필리핀에 가서 결전을 준비했지만 대부분의 차량이 바다의 어초가 되어버리고, 무사히 상륙한 소수의 전차들로 맞서 싸웠지만 노획당했다. 설령 최고의 포탑 장착 전차인 치리나 덩치 큰 고철덩이인 오이가 나왔다고 해도 그 뒤에 버티고 있는 것은 미군이 작정하고 셔먼 후속작으로 개발한 1,000여 대의 M26 퍼싱 중(重)전차와 대 지크프리트 선 돌격전차로 개발한 T28, 티거 대항마로 개발한 T29, T30, T34, 벙커 및 거점 파괴용 전차 T3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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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선에서 미군의 일본군 전차 노획 사용 사례는 별로 없는데 사이판 전투에서 노획한 신호토 치하를 일본군을 상대로 실전에서 구른 사례만 알려져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테스트 용도로 써먹은 정도다. [13]
4.2. 한심한 상황
스튜어트 전차에게도 압도적으로 밀리는 성능으로, 개전후 필리핀 전장에서 노획한 미군의 M3 스튜어트 '''경전차'''[14] 의 장갑 성능을 시험할 때 일본군의 전차포가 장갑을 관통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 당시 일본군 지휘부를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전차 자체가 대 보병지원이나 벙커 파괴를 목표로 만들어졌는데, 일부러 개량도 안해놓은 주제에 패닉 상태에 빠진 정신나간 행태였다. 물론 스튜어트가 전면 장갑이 50mm나 되는 등 경전차치고는 뛰어난 장갑을 지닌 전차이기는 했지만, 유럽에서는 경전차인 것이 태평양 전선에서는 주력전차들의 주포로 전면장갑을 뚫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할힌골 전투 이후 2년만에 일본 전차가 시대에 완전히 뒤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줬다.
스튜어트의 전면장갑은 57mm 단포신 곡사포로는 관통불가였다. 95식 경전차의 37mm 포도 이를 상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대전차 용도가 아닌 치하는 스튜어트에 대응하기 힘들었다. 1942년 4월 미얀마의 랑군에서 노획한 M3 경전차에 대한 사격에서 매우 충격적인 결과를 보였는데, 스튜어트는 포방패까지 포함하면 51mm수준이지만 대부분 전면 장갑은 38mm였다. 치하로 300m 밖에서 이 부위를 죽어라 때렸지만 관통은 실패했다. 그렇다고 측면으로 돌아가서 사격하는 고난이도 기술을 적용하려고 해도 격파가 불가능했다. 스튜어트의 25mm 측면장갑에 300m 밖에서 쏘았지만 관통이 불가능했다. 다시 측면에서 거리 200m, 거리 100m의 실험이 모조리 관통불가 판정이 난 후,[15] 영거리 사격에 가까운 거리에서 치하 3~5량이 집중사격한 결과, 간신히 장갑에 균열을 낸 실험기록이 남을 정도니 말 다했다. 더불어 이때 노획한 M3는 태평양 전쟁의 일본군 전차중 종합전투력이 가장 높은 전차로 남았다.
이런 쓴맛을 보고서야 앞서 언급된 1식 기동 47mm 속사포를 장착한 치하改는 조금 사정이 나아서, 1942년 4월 3일 12시 정각에 노획한 M3 스튜어트에 대해 실시된 사격 시험에서는 1,000m 거리에서 명중한 47mm 전차포탄 6발 중 3발이 전면장갑을 관통, 800m 거리에서는 9발 중 6발이 전면장갑을 관통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더하여 그 당시 싸웠던 미군은 포위된 상태인데다가 코레히도르에 쳐박아둔 오래된 물건도, 보급물자도 맥아더가 뻘짓한다고 바탄 반도에서 날려먹는 등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튜어트는 제식 전차도 아니었다. 경전차에게도 털리는 일본군 전차들은 곧 M4 셔먼과 마틸다 전차를 만나게 된다.
사실 스튜어트 전차는 경전차 중에서는 꽤 훌륭한 축에 속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의 비슷한 체급의 경전차로 비교해보자. 당장 소련의 T-70 은 치하보다 적은 무게임에도 포방패 포함 50mm급 전면장갑과 45mm 포를 가지고 있었다. 옛날로 돌아가야, BT 전차 같은 맞상대가 나오는데, 치하는 BT 전차처럼 고속 기동력을 갖추지도 않았고, 후기형에는 경사장갑까지 장착되어 47mm 개량형 치하를 가지고 와야 비슷한 수준이다. 반대로 살짝 체급을 키우면 3호 전차나 M24 채피같은 전차가 있었다.
4.3. 보병 상대로는?
중국의 국민당군이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무장과 훈련이 딸리는 태평양 전쟁 초기의 영국 식민지군이나 미군을 상대로는 전차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였다. 이래 봬도 전차는 전차라서 보병의 소총탄 정도는 막을 수 있어서 활약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싱가포르 전투. 하지만 미군이 보병에게 바주카 등을 보급하기 시작하자 보병을 상대로도 슬슬 처지기 시작했다. 스티븐 잘로가가 펴낸 M4 Sherman vs. Type 97 Chi-Ha에 따르면 M9A1 대전차 총류탄으로 75야드 거리에서 0.5인치짜리 구멍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후술한 50야드 거리에서 포방패를 제외한 전부분을 관통하는 총류탄이 이 대전차 총류탄임을 암시하는 부분. 레퍼런스
전쟁중 Military Intelligence Service에서 출간한 Intelligence Bulletin 1945년 7월판에서 47mm 주포를 장착한 치하 개(改)를 상대로 미군이 실행한 관통 실험을 실어놓았는데 그 결과가... 출처
-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12.7mm FMJ (철갑탄이 아닌 일반탄. 12.7mm 철갑탄은 따로 존재함##)
35야드 (32m)기준.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볼마운트만 관통 가능. 그 이외의 관측장치, 포탑, 경사진 부분은 관통불가.
50야드 (45.72m)기준. 측면 서스펜션 뒤의 차체 부분과 후방 하단부, 후면 볼마운트 관통가능.
50야드 (45.72m)기준. 측면 서스펜션 뒤의 차체 부분과 후방 하단부, 후면 볼마운트 관통가능.
50야드 기준. 포방패를 제외한 전부분 관통가능. 다만 이는 M9A1 대전차 총류탄을 사용했을 때의 이야기임을 감안해야 한다. [16] 애초에 일반적인 수류탄과 다를 바가 없는 총류탄이 20mm가 넘는 장갑을 박살낸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질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부분적으로 관통이 가능하기에 치하를 중기관총으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도 치하의 57mm 주포는 이동하는 목표물을 맞추는 게 아니라 벙커나 '''중기관총'''처럼 고정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목표물을 쏘라고 만들어진 '''고폭탄을 사용하는''' 주포다. 바주카가 널리 보급되기 이전에는 보병지원 전차라는 입장대로 보병을 상대로는 어느 정도 활약할 여지는 있었다. 아예 육군에서 보병지원 하는 데만 쓰라고 만든 탓에 철갑탄이 단 한 발도 실리지 않은 치하도 매우 흔했다고 한다.[17]다만 포수가 기관총으로 전차 앞의 보병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일본은 치하의 후기형인 치헤까지 포탑 후면에 기관총을 달아서 동축기관총이 없기 때문이다. 포수가 기관총을 통한 거리 측정, 전면 보병 살상 및 제압은 불가능하다. 일본의 이런 설계는 결국 종전 때까지 이어졌는데 본격적으로 75mm 포를 장착한 치누와 치토 전차에는 '''포탑 내부에 기관총 자체가 없고''', 시제기 치리의 경우 포탑 좌측에 장착한 기형적 구조였다.
4.4. 소총탄 떡밥
치하와 관련된 떡밥중 하나는 미군의 주력 '''소총'''인 M1 개런드로 치하를 뚫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제조건으로 철갑탄을 장전한 M1 개런드여야 한다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M1 개런드에 쓰이는 스프링필드 탄에는 철갑탄이 있었다. 30 Caliber M2라는 탄종으로 탄심에 강철이 들어간 전형적인 철갑탄이며, 실제로 소총수나 기관총병에게 보급이 많이 이루어진 탄이다. 이 탄을 가지고 어떤 총덕이 관통력 실험을 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위 실험 결과 50야드 밖에서 쏜 철갑탄은 1인치 이상의 연철은 충분히 뚫고 이후 방탄복용 장갑판에 실험을 했는데 여기서 3/8인치(9.525mm)는 관통하고 0.5인치(12.7mm)는 관통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해당 장갑판의 경도는 500BHN로 당시 일본군이 쓰던 전차의 경도 (약 320BHN)13쪽 참조보다 더 단단한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표면경화장갑을 상대하더라도 관통력이 감소하지 않는다. 그리고 치하의 장갑은 후면 하단부의 경우 8mm, 측면 하단부(현가장치 뒤)의 경우 9mm 정도로 이론적으로는 치하의 장갑을 충분히 관통할 수 있다.
결론은 약 50m 정도에서 후방 하단부를 잘 쏘면 관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30구경은 기관총탄으로도 사용되는 탄이라 M1919 브라우닝같은 경기관총이 철갑탄을 사용하고 치하의 후방을 노리면 뚫을 수 있기는 하다.
그래도 실제 미군들이 이렇게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은데, 해당 철갑탄은 실제로 보급되기는 했지만 굳이 위험하게 전차에 근접하는 것보다는 전쟁 후반기에는 승리의 바주카가 쭉 널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50야드(약 46m)까지 접근한 다음, 전차의 차체 하단을 노리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조준하는 동안 다른 치하들과 보병들은 눈 뜨고 지켜보겠는가. 아무리 일본군이 역사에 길이 남을 바보라도 그런 짓은 잘 안한다. 그리고 당시 교전거리가 시가지나 정글이 아닌 이상 보통 200m 정도였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소총탄 때문에 전차가 멈춰서는 불상사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 좋다.
사실 이 떡밥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진다. 결론을 요약하면 이론상 뚫리기는 하나 실전상 문제없다는 정도인데, 사실 정면에서 소총탄을 막을 수 있고 부분적으로는 뚫리는데 실전에서는 문제없다는 정도는 르노 FT-17이나 Mk 시리즈 같은 세계 1차대전 전차도 마찬가지다.[18] 반면 어떻게든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철갑탄을 쏘면 2차 세계 대전의 다른 전차들도 뚫리는 경우가 있다. 크롬웰 순항전차의 후방 차체 뚜껑은 6mm를 조금 넘는 수준이고 M4 셔먼의 경우도 크롬웰과 비슷한 수준이라서 그 부분을 어떻게 맞추기만 하면 뚫을 수 있기는 하다. 이것은 물론 실전에서 전차 위에 올라타야 겨우 가능성이 있는 정도이지만, 보병이 전차 측후방으로 접근하는 경우는 많지는 않으나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치하의 문제가 좀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전차'''가 소총을 막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등장하여 진지하게 토론되는 것 자체가 이미 해당 전차의 신뢰성에 의심이 간다고 볼 수밖에 없다.
5. 성능
5.1. 화력
우선 치하의 57mm 유탄포는 경전차나 탱켓 정도나 상대할 수 있다.
치하 개량형의 47mm 속사포는 카탈로그 스펙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철갑유탄 사용시 250야드에서 76mm, 750야드에서 62mm, 1000야드에서 51mm, 1500야드에서 41mm를 관통한다. 악명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좋은 수준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입사각 0도의 정면 관통의 이야기였다. 입사각을 30도로 가정할 시 250야드에서 57mm, 750야드에서 43mm, 1500야드에서는 30mm밖에 관통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당시로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능이므로 일본 군부는 일단 이 스펙에 만족했다. 위 스펙대로라면 어찌되었든 셔먼까지는 상대할 만하다.
실 성능은 100m에서 55~60mm를 뚫는데 그쳤다. 이것도 입사각 0도의 매우 좋은 조건에서의 이야기이다. 2차대전기 일본군의 모든 무기는 열악한 공업능력 때문에 제대로 된 카탈로그 스펙을 발휘하지 못했다. 100m에서 55mm라면 일반적인 전차의 교전 거리인 500~750야드 정도에서는 어땠을까? 자료는 없지만 카탈로그 스펙과 동일한 비율을 적용한다면 45mm. 셔먼의 정면은 고사하고 측면도 입사각을 주면 아슬아슬하다.
치하는 경전차인 M3 스튜어트보다 성능이 뒤쳐지는 전차였다. 일본에서 M3 스튜어트는 중전차로 분류되었다.
5.1.1. 열악한 조준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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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 그래도 부족한 화력을 더 약화시킨 것이 조준장비 관련 문제였다. 화력도 약한 것이 명중률까지 떨어지니 실제 전장에서 나타나는 전투능력이 엄청나게 하락한 것이다.
일단 조준경의 경우, 97식 중전차 원본인 57mm 곡사포 버전은 아예 조준기 자체가 대전차용이 아니라 벙커같은 고정 표적을 대상으로 한 간단한 물건이었다. 따라서 이런 물건으로 이동하는 적 전차를 사격해서 맞추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그나마 이 문제는 47mm 대전차포를 단 97식 개(改)에서 수정되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거나 우수한 조준경을 단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수준의 조준경을 달았으므로 일본군 내부에서만 성능이 향상되었지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면 딱 2차대전 초반 소련군이나 이탈리아군 수준의 물건이었다.
- 당연한 일이지만 포탑 선회에 전기모터나 유압을 사용하고 포신 상하조정 및 미세조정에만 핸들을 이용하는 타국의 전차에 비해서 조준속도가 느려진다. 안 그래도 선제사격 당하면 죽는 입장에서 조준속도까지 느려지면 손발도 못 쓰고 당한다.
- 포수가 목표에 대한 조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거운 대포를 직접 지탱해야 하므로 매복이나 정밀조준 같이 조준 시간이 길어질 때 버티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포수가 힘들어서 몸에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조준이 크게 흔들리므로 명중률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가끔씩 "저렇게 어깨견착 하다가 어깨에 포 맞고 기절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추가적으로 쓰자면 '''주퇴기에 어깨를 대고 있지 않는 이상 그런 거 없다.''' 어깨견착대는 엄연히 주퇴기가 아닌 주퇴기 고정대에 달려있다. 즉 발포하더라도 약간의 진동은 느껴질 수 있으나 발포로 인한 반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것을 맞고 산다는 건 초인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또한 이런 방식은 영국의 마틸다 2나 발렌타인 또한 채용하고 있던 것이기 때문에 비단 치하만 그런 것은 아니며 이러한 조준 방식은 저구경 저압포에 대해 핸들보다 효율적이다.
5.2. 방어력
카탈로그 스펙만 봐도 장갑이 너무 얇아서 대전기에 쓸 물건은 아니지만, 자세히 서술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장갑 접합을 전부 리벳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피격당할시 리벳이 모두 튀어나가서 전차 내부에서 튀어다니는 바람에, 내부 승무원이 벌집이 되어서 몰살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탈리아군의 M13/40 전차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미국의 M3 리 전차도 리벳 접합방식인데, 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군 포탄에 관통당하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받은 리벳이 헐거워져 장갑판이 분리 직전까지 가는 상황은 일어났어도, 리벳이 내부로 튀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M3의 전면장갑은 대형 파이프를 이어붙이듯이 외부 돌출부를 양쪽에서 조이는 방식이기 때문. M4로 넘어가면서 통짜 용접방식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일본은 용접기술과 숙련공의 부족 등으로 말미암아 리벳 접합 방식으로 계속 전차를 생산해야 했으며, 중기관총 등에 계속 얻어맞을 경우 리벳이 튕길 정도로 접합 강도에 문제가 많았다.
원래 전선의 전차병들은 생존을 위해서 전차의 방호력을 늘릴 목적으로, 연합국과 추축국을 막론하고 철판, 목재, 모래주머니 등 여러가지 재료를 사용해서 증가장갑을 붙이려고 시도한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티거와 판터 때문에 고생하던 미군은 셔먼에 증가장갑을 두르는 경우도 많았고, 독일이나 소련도 모래주머니나, 예비용 무한궤도, 매트리스[19] 를 잘 사용했다. 나중에 4호 전차 H형은 쉬르첸이라는 증가장갑을 갖춘 형태로 생산하기도 했다.
이런 타국의 주력전차들처럼 현지개수형이 없을까? 할 수도 있겠으나, 치하의 경우는 상부에서 그것을 막았다. 사실 현장에서 임의로 증가장갑을 붙인 전차 승무원은 징계를 받는 경우가 많다. 현지에서의 증가장갑 개조는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1-2톤의 중량 증대를 불러와서 기동성의 저하를 가져오며, 현가장치나 엔진에 무리를 주고, 정비도 어렵게 하는 데다가, 효과도 눈에 띄게 뛰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 패튼 같이 전차에게는 기동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 경우라던가 해서, 많은 군대가 제한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패튼조차도, 증가장갑을 장착한 점보 셔먼의 성능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리고 보급을 요청했지만 수량이 적었기 때문에 보급받지 못하자, 점보 셔먼처럼 증가장갑을 부착하는 것을 일부 허용해줬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타국의 경우에는 합리적인 이유로 임의 현지개조를 제한하되,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허용하는 등, 합리성과 필요성을 따져서 유연하게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본군에서 치하의 장갑 개조를 금지한 이유는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천황 폐하의 하사품에 손을 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이 이야기는 국내 번역 출간된 태평양 전쟁과 일본군 상권 - 지휘관의 역할(저 하세가와 케이타로)에서 직접 바보같은 지휘 예시로 나온 것으로, 신빙성이 높다.[다만]#
그리고 이 안습에 쐐기를 박는 일화로는, 일본군 전차병이 목숨걸고 현지에서 증가장갑을 달았더니 치하의 늘어난 중량에 엔진 출력이 못 버텼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치하는 15톤의 중량을 가진 가벼운 전차였고, 부품도 그 중량에 맞게 설계된 물건인데다가, 엔진 출력도 낮고, 표면경화장갑을 사용하므로 추가적인 용접도 힘든 문제점이 있어서, 치하 개(改)를 만들 때도 신형 포탑의 장갑은 구형 포탑의 장갑과 동일하게 얇은 장갑을 적용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설비를 가진 본국의 설계진과 생산시설에서도 방어력 개선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 물건을 험악한 전장터에서 임의로 개조하면, 실패 확률이 엄청나게 높은 것은 물론이며, 성공하더라도 15톤의 전차에게는 과잉한 최소 1-2톤의 중량 증대와, 중량의 한 쪽 쏠림, 속력과 항속거리 등의 감소 같은 악영향이 발생하면서, 정작 방어력도 별로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치하 전차 모두가 이 정도로 종이장갑은 아니었지만, '''공장제인데도''' 각 차량마다 수준이 들쭉날쭉하였다. 이는 대전 후반기의 극심한 자원 부족과, 숙련공의 부족, 그리고 공작기계 마모 등이 원인이었다. 당시 일본 대본영은 숙련 노동자를 일반병으로 징집하여 허무하게 죽음으로 내몰았다. 대신 비숙련 노동자가 대량으로 동원되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여고생들과 조선인 등이 있다.
장갑판도 후기에 가면 열처리가 제대로 안 되고 질이 떨어지고 있었다는 설이 있다. 어차피 25mm 장갑판으로는 그 어떠한 대전차 병기도 막을 수 없었다. M3 스튜어트의 37mm 포도 못 막는다는 것은 태평양 전쟁 초기부터 이미 증명되었다.
물론 이런 종이장갑 전차가 2차대전 전체에서 치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4호 전차 D형이나 T-26 등등 얇은 장갑을 가진 전차를 다른 국가에서도 운용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종이장갑 전차들은 치하와 마찬가지로 전쟁기간 동안 쉽게 격파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전쟁 중 퇴역하고 다른 전차로 대체되거나, 개량을 통해 장갑을 보강했다. 치하가 문제인 것은 '''이런 전차인데도 개량이 없었다는 것이다.'''
5.3. 허약한 엔진
세계 최초로 채용했다던 전차용 디젤 170HP 엔진을 탑재하고 있었는데, 각 방위산업체별로 엔진이 달라 전선보급에 난항을 겪었다. 최초의 전차용 디젤 엔진이라는 면에서 선진적이었으나, 시베리아를 바라보고 만든 엔진은 냉각능력 부족으로 인해 폭염의 정글에서 쉽게 문제를 일으켰고, 톤당 마력비는 4배 이상 무거운 티거 2와 비교해야 할 정도였다.[20] 이러다보니 중량대비 험지 돌파능력과 기동력이 상당히 안 좋았다. 치하의 장점이 기동성과 험치돌파력이 아니였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동급의 경전차가 아니라 체급이 더 큰 미국의 중형전차와 비교했을때다. 애초에 남방 작전때 영국군이 정글에서 전차가 기동할 수 없다고 지레짐작을 하는 바람에 대전차전에 대한 준비를 덜해서 치하의 기동성이 빛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제대로 대전차전을 준비한 영연방군이 마틸다 전차나 밸런타인 전차를 작지만 무겁다는 점을 제대로 이용해서 정글에서 잘 운용한 것을 보면 치하의 험지돌파력은 결코 독보적이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서 엔진을 가동하면 '''사이렌'''과 비슷한 수준의 냉각팬 소음이 나서 적에게 위치를 드러내기 좋았고 매연 또한 연막탄을 터뜨리는 수준으로 심각했다. 여기에 더해서 사실 전차대에서는 디젤 엔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솔린을 항공대에 모조리 빼앗기다시피 하는 바람에 경유를 쓰는 디젤 엔진 채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설상가상으로 '''열악한 디젤 엔진 기술로 인하여 디젤 엔진의 떨림으로 초탄 명중률 저하 및 서스펜션 부담이 심했다.''' 게다가 서스펜션 역시 인계철선으로 잘 알려진 '''피아노 선'''이 치하 전용 특효약일 정도로 내구성이 막장이었다. 원래 피아노 선을 철조망처럼 깔아놓으면 선과 엉킨 서스펜션이 고장을 일으킨다. 다만 일반적인 전차에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고 설치하지는 않고 나중에 다른 이유로 서스펜션이 망가지면 정비를 방해하는 등의 효과를 내라고 설치하지만, 치하는 아예 다른 수단을 동원할 것도 없이 피아노 선만으로도 서스펜션을 망가뜨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5.4. 열악한 공업능력이 끼친 부가적인 여파
무한궤도 역시 튼튼하지도 않은 주제에 포장도로 같은 곳을 달리면 엄청난 소음을 내는 기괴한 놈인지라 일본군이 전차를 대동하고 성공적인 야습을 한 경우는 폭우가 내리는 등 주변 소음이 시끄러운 경우에 한하며, 이런 경우에도 야지에서 좀 무리한다 싶으면 바로바로 퍼져주는 유리같은 내구성을 자랑했다.
또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 미츠비시와 히다치를 포함한 여러 업체가 치하의 생산을 분담했는데 이게 또 문제를 일으켰다. 미츠비시에서 만든 엔진과 히다치에서 만든 엔진은 부품의 호환이 되지 않았다. 엔진뿐만 아니라 전차간의 부품호환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생산라인이 여러 개인데 일본이 그렇듯이 공업표준이 제대로 도입이 안 되어서 공장마다 들쭉날쭉했던 게 가장 큰 이유.
5.5. 치하 전차의 개량
이렇게 문제가 많다면 마땅히 치하는 개량되어야 했다. 당장 독일군의 4호 전차만 보더라도 열심히 개량했기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선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일본군도 그걸 모를 정도로까지 머저리는 아니었던지라 개량형인 치하改를 내놓았다. 사실 일본군도 언제 어떤 병기든 필요하다면 개량하고는 싶어했을 것이다. 개량하고 싶어도 그럴 기술과 산업력이 없었을 뿐...
치하 전차의 개량 작업이 지지부진해서, 본토 결전을 위해 준비한 치누에 1식 개량형을 줘버리니 야전의 치하 상당수가 57mm 포를 그냥 장착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포는 장포신인 1식 47mm로 어찌저찌 교체한다고 해도 장갑을 덧대서 방어력을 높이거나, 엔진과 서스펜션을 교체해서 기동력을 향상시키는 등의 개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나마 1식 47mm 포는 미군 입장에서도 약간이나마 위협적인 포이기는 했다. 1945년 8월에 미군에서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500야드(약 450m) 거리에서 수직장갑 3.25인치(82mm)를 관통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1] 셔먼 초기형의 전면 장갑은 50.8mm에 전면 투영 기준 56도 경사로 경사장갑임을 감안하면 약 90mm 정도인데, 이 정도면 지근거리에서는 약간이나마 관통당할 위험이 있었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이 47mm 포가 대전차총검술을 감행하는 자살부대의 매복 무기로 쓰이고 있으니 방심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셔먼 1대가 초근거리인 50m에서 전면 장갑을 관통당해 격파당하고 연이어서 자살보병에 의해 곁에 있던 전차 2대도 같이 격파당한 예를 들며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22]
이외에도 치하에 120mm 곡사포를 탑재한 12리 자주포라는 개량형도 나왔지만 여러 결함이 있고[23] 본토 수비를 위해 해안에 배치된게 끝.
6. 치하의 대안
결국 치하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 일본 군부는 대안을 마련했다.
6.1. 차세대 신형 전차
중일전쟁까지는 전차 성능에 만족하고 있던 일본 군부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후에야 대전차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차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1식 치헤, 3식 치누, 4식 치토, 5식 치리 등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부족한 기술과 산업력으로 인해 각종 악재가 일어난데다가 수량조차 크게 모자랐고, 이미 제해권을 거의 상실한 상태로는 일본 밖 전선으로 배치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그 차량을 탈 승무원들에게는 불행중 다행으로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6.2. 대전차 자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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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치하의 차체에 75mm포를 얹은 포전차인 호니 시리즈를 개발해서 실전에 투입했다. 독일군의 마르더와 유사한 방식이고 나름대로 효과적이기는 했으나 생산량이 너무 적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호니에 장착한 75mm 주포는 치누에 달린 주포와 동일한 90식 75mm 야포 계열이며, 본질적으로는 M1897 75mm 야포의 개량형이라서 셔먼 초기형의 75mm 주포와 비슷한 성능이었다. 물론 이런 물건으로 독일군의 대전차 자주포처럼 장거리 저격을 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여기에 일본군의 저질 포탄까지 겹쳐져 실제 관통력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물론 꿈도 희망도 없는 57mm포에 비하면 훨신 유용해서 운용했던 부대들은 잘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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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cm 곡사포를 장착하여 셔먼에 대항하려고도 했다. 12리 자주포 문서 참조.
7. 어쩌다 이런 꼴이?
여기까지 읽으며 "아니, 대체 뭘 했길래 저런 물건이 나오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좀 복잡하다. 일본 역시 외국의 개발사정 보면서 볼거 다 봤고 알거 다 알았기 때문.
일단 치하는 전쟁 한참 전에 개발된 전차였는데, 이 정도 성능으로도 일본이 당시 싸워야 하는 적들과 전투는 문제 없었다. 물론 57mm 포가 대전차전에서는 병맛인 물건이다보니 BT 전차에 비하면 대전차 화력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했지만, 상술한 불길한 조짐? 단락에서 나왔듯이 압도적 열세는 나지 않았다.[24] 그리고 중국군 상대로는 몇년을 울궈먹어도 문제가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미군과 싸우면서 슬슬 문제점이 드러났다. 스튜어트는 몰라도 그 윗체급인 셔먼부터는 각종 상황이 잘 따라주지 않으면 최소한의 싸움도 성립되지 않고 셔먼이 실제로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것을 봤는데 왜 신형 전차를 아직도 안 뽑았지? 한다면 여기에 또 이유가 있다.
- 애초에 일본군 계획은 독일군이 전쟁 판도를 바꿀 때까지 섬을 요새화하고 버티는 것이었는데, 유럽이나 태평양이나 전황이 악화되면서 망했어요.
- 전황이 악화되면서 전차를 개발할 만한 역량을 죄다 항공기 쪽으로 돌렸다. 애초에 다른 판에서 이기고 봐야 하는데 전차가 문제가 아니었으니. 일종의 선택과 집중으로 보면 되겠다. 그리고 제해권이 박살나서 보내는 족족 바닷속으로 수장되는데 신형 전차를 아무리 보내봤자 미군의 격침톤수만 올려주는 꼴이었다. 사실 육군과 해군의 예산차이부터가 현저했으며 이는 중일전쟁이 내륙전으로 격화되었음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 일본 육군은 해군보다 떨어지는 예산안으로 전쟁 수행은 물론 항공기 등의 생산과 개발까지 해야 했으므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져 보이는 분야엔 투자를 하기 어려웠다.
- 근본적인 이유는 기술력과 공업력 수준 차이였다.
- 역량을 죄다 항공기 쪽으로 돌렸다고 했지만, 제로센만 해도 출력이 낮은 엔진 때문에 속도와 기동성을 올리느라 과도하게 경량화를 해야 했고, 미국에서 출력이 대폭 증강한 신형 엔진을 탑재한 신형 기체를 차례로 투입할 때 일본은 고작 조금 개량한 엔진으로 제로센을 주구장창 우려먹어야 했다. 육군은 3식전이나 4식전을 내놓기는 했는데 영미의 신형기와 비등하게 싸우려면 4식전을 들이밀어야 하는데 생산 대수는 3500여대. 게다가 품질관리 문제등으로 가동률은 참담한 수준이다. 도쿄핫 실사판이 찍히는 와중에 똥줄이 타들어가며 막 찍어낸게 제대로 품질관리가 되기도 어렵겠지만.
- 일본 입장에서 신형 전차를 내놓으려면 경전차에서 중형전차급으로 체급이 넘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그에 따른 중량 증가를 받쳐줄 신형 플랫폼, 신형 엔진, 신형 변속기, 신형 서스펜션이 필요하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영거리 매복에 의한 '자살' 기습공격보다는 정상적인 전차전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럼 장거리 교전을 위한 조준기 성능 개선이나 반동 제어 개선, 전차 운용 효율 개선도 신경써야 한다. 한마디로 손을 봐야 하는게 엄청나게 많다. 게다가 늘어난 중량 및 엔진 출력만큼 연료 소모량도 증가할테고, 1대 생산하는데 필요한 금속 자원량이나 인시(人時) 등도 증가하게 된다. 독일처럼 판터, 야크트판터, 4호 돌격포, 헤처 등 용도에 맞게 다양한 것들을 생산 및 운용[25] 하면서 '하이테크' 티거를 소량 뽑는게 아니라, 일본은 겨우 셔먼급 전차를 구비하기 위해서 생산량과 유지 가능한 전력이 몇분의 1로 줄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게 무리해서 셔먼급 전차를 뽑아봤자 미국은 고작 셔먼급 전차를 박살낼 방법은 얼마든지 가지고 있었다. 중량의 증가로 인한 수송 또한 부담이다. 원양 장거리 수송을 위해 당시엔 크레인으로 화물을 선적해야 했는데 미국 조차도 셔먼 전차 이상의 체급은 수송하기가 힘들었고 당시 미국의 각종 전차 개발사를 봐도 전차에 대한 수송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련 인프라가 미국보다 못했던 일본은 30톤급 이상의 체급의 중형 전차를 기껏 만들어도 수송하는것 자체가 힘들었다.
- 체급을 늘리지 않으려면 언급한 독일의 헤쳐처럼 방어전에 특화된 15톤급 구축전차를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제한된 공업생산력으로 방어전에 특화된 구축전차에만 올인한다는 결정 역시 "밀고 들어오는 미군 전차를 근거리 매복으로라도 잡아낼 수 있으면 다행이지 반대로 공세를 가정한 일반적인 대전차전, 전선 돌파, 보병 지원 능력을 따지는게 무슨 허황된 소리인가!"라고 전황을 냉정하게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다, 그런 용기가 있었다고 해도 독일이나 되니까 경전차 플랫폼 가지고도 쓸만한 주포, 경사장갑으로 쓸만한 방어력, 방어전에서 매복 공격에 유리한 낮은 자체, 높은 생산성을 가지는 물건을 만들어냈던 것이지 독일이 설계도와 샘플까지 공수해줘도 원판보다 허접한 물건 밖에 못 만들어냈던 일본의 안습한 기술력과 공업력으로는 치하 자체에다 무리하게 큰 주포와 큰 포탑을 얹는 식의 땜빵 처분 이상은 힘들었을 것이다.
치하 전차를 계속 쓰게 된 것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일단 위에 서술하듯이 중국군에게는 효과적이었다. 그 다음 동네북 신세가 된 것이 상대가 현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미국이었던 게 문제.
8. 평가
일본은 국력, 특히 과학 기술력이 뒤떨어져 일류전차를 만들 수 없었다. 노몬한 사건[26]
때는 2개 전차연대를 근간으로 한 부대가 참전했지만 한 차례의 전투로 전력을 상실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가한 전차는 (중략) 다른 나라의 경전차나 장갑차 수준이었다. 일본 육군은 삼류에 불과했다고 봐야 한다.-'세계의 기갑사단'. 요미우리 신문.
같은 중형전차라도 일본군 포병의 화력을 어렵지 않게 막아내며 전진할 수 있는 소련군의 T-34와 달리 치하는 미군 보병의 소화기에도 격파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쓰인 전차 중 나쁜 쪽으로 유명한 전차 중 하나다. 공격력, 방어력, 기동력, 신뢰성, 생산량 모두 연합군 전차에 크게 뒤떨어지는 최악의 전차."우리 포병들이 적 전차 근처에 지근탄을 날렸다. 그러나 적 전차들이 멈추기는 했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으며 장갑도 뚫리지 않았다. 적 정비병들은 여유롭게 우리 앞에서 멈춘 전차를 손보고 있었다. 놈들 얼굴은 우리의 무력함을 비웃는 것처럼 오만하고 건방졌다.
-만주 작전 당시의 보고서의 일부.
게다가 A6M처럼 성능이 승무원의 기량으로 극복 가능한 수준도 아니라서 치하 에이스 그런 것 없다. 아니 애초에 적 전차를 측면에서도 힘겹게 관통하는 전차를 몰고서 수적열세 상황에서 적 전차를 1대라도 격파하는 것은 오토 카리우스가 와도 불가능하며, 승무원도 생존을 해서 경험을 쌓지못하니 숙련도가 늘어날 수도 없다.
9. 중국군에서의 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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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군 소속의 치하 카이. 일명 '''"공신호(功臣号,功臣號)"'''[27] 라는 제식명으로 사용했다.
중국의 평가는 의외로 놀랍다. 소련군이 만주를 점령하면서 노획한 97식 전차들을 양도받아 기갑전력으로 사용한 공산당군은 국공내전에서 아주 잘 써먹으며 스튜어트와 셔먼으로 기갑전력을 구축한 국민당군을 농락했다.
그야말로 전차계의 등용문 그 자체. 최약체 전차라고 불리우는데다 주인마저 잘못 만나 태평양, 만주에서 고생하던 치하들은 중국군이라는 새 주인을 만나 이것저것 버프를 받게 되었다."벙커와 토치카 정도는 충분히 부수고, 보병용 총탄도 막아내는 방어력도 있고, 무엇보다도 셔먼은 물론 스튜어트 경전차조차 통과할 수 없다는 지형에서도 기동하는데 별다른 장애가 없어서 기습적인 기동전을 치르는데 도움이 되었다."
- 중국 전차병들의 평가.
또한, 이런 결과는 스펙상 성능이 좋다기보다는 국민당군이 지레짐작으로 그 지형은 전차가 가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치하는 형편없는 장갑에 비하면 딱히 가벼운 편도 아니어서 장갑이 훨씬 우수한 스튜어트 전차와 거의 비슷한 중량이었다. 스튜어트 전차는 치하와 거의 비슷한 중량인데도 불구하고 강력한 엔진을 달아 톤당 마력비가 훨씬 좋을 뿐만 아니라 변속기나 현가장치, 궤도 같은 구동장치의 성능도 훨씬 우수했기 때문에 치하가 갈 수 있는 곳을 스튜어트가 가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실제로 일본군이 노획한 스튜어트와 치하를 같이 운용했을 때 치하가 구릉을 올라가지 못하자 스튜어트가 견인해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중국군이 운용했던 신포탑 치하는 상술했듯 만주 전선에서 노획된 물건이었기에 대다수의 차량들이 혹사당한 상태로 구동계가 마모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주 퍼지고, 엔진이 과열되는 현상이 잦았는데 이에 분노한(...) 중국군은 T-34가 사용했던 500마력짜리 V형 12기통 V-2 엔진을 스왑했다. 기록에 따르면 무려 최속 '''100km/h'''를 달성했다고. 이에 매우 만족한 중국군은 치하를 쌩쌩 굴려먹으면서 1959년까지 헌역 장비로 사용했다.
따라서 중국군이 좋은 평가를 내린 건 새 엔진과 변속기를 장착한 공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상의 능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지형의 장점과 기습의 효과를 충분히 발휘한다면 치하도 위협적인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앞서 말한 험한 지형에서의 기동성을 생각해 보면 험한 지형이 있는 중국에서의 치하는 공산당군에게는 아주 귀중한 기갑 전력이었을 것이다. 물론 위의 사례는 팔로군의 상대인 국민당군의 능력이 별로 대단치 않다는 사실, 그리고 얼마 안 가 국민당군의 무기를 몽땅 노획해서 사용했다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실제로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에도 장비가 저열한 영국군과 미군 상대로는 저 장점들을 이용해 의외로 상당히 활약한 적도 있다.
참고로 중국에서 사용된 치하들은 6.25 전쟁에도 참가했다는 사진과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9.1. 자주포 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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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내전당시 대보병용도로 사용하기위해 치하의 포탑을 들어내고 고정식 전투실과 94식 75mm포를 탑재했다. 동축기관총은 중국에서 생산된 체코제 기관총으로 교체되었다.
10. 창작물에서의 치하
현실의 치하를 구현해놨다간 말그대로 밸런스 붕괴(...)[28] 가 발생하는게 불보듯 뻔하니 밸런스 조절을 위해서 현실보다 왕창 버프받은 상태로 등장한다.
구매 전차중에 디자인을 아주 약간 손보고 고블린 시리즈로 등장한다. 치하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의 탱킹과 화력 투사가 가능하여 초~중반용으로 적당하다.
- 블리츠크리크 2
"M3 Stuart Light tank"가 "Type 97 Chi-ha Medium tank"를 바르고 다닌다. 매우 훌륭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2차대전 게임인 Men of War에서도 같은 장면을 볼 수 있다.
2019년 10월 31일 태평양 전선이 추가되면서 일본군 진영의 전차로 등장한다. 물론 밸런스를 위해 셔먼과 거의 동급의 성능으로 조정되었다. 셔먼처럼 특성화가 다양해서 입맛대로 마음껏 개조할 수 있는게 특징.
치하 중전차가 미국 해병대의 상륙장갑차 LVP7의 대전차포 탑재형과 교전해서 진다. 그러나 치하가 전면으로 M4 전차를 격파하는 괴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29] 게다가 바주카포를 2발이나 맞아야 터지는 괴상한 상황이 나온다. LVP7>치하>M4셔먼인가(...). 묘하게 고증이 안 맞는다. 현실을 생각하고 BAR나 화염방사기로 지져도 치하는 절대 터지지 않으니 빨리 바주카포를 주워서 제거하는 게 좋다. 어쨌든 "ㅉㅉ 저게 전차 맞나요?"라는 인식과 달리 게임에서 치하를 잡는 것은 소련군 미션에서 티거 잡는 것과 난이도가 같다.
마킨 섬 급습에서 처음 등장한다. 추락한 정찰기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 (먼저 일본군 송신 탑을 박살내고) 이동하던 중 나오는데 대전차무기가 없어 직접 폭탄을 설치해서 날려버려야 한다. 과달카날 전투에서는 대전차 소총이 나오므로 그냥 격파할 수 있다. 마지막 레벨인 타라와 전투 때도 등장하는데...이 때도 대전차 무기가 없어 직접 폭탄을 설치해야 한다. 대전차 무기가 없는 보병에게는 장갑차 같은 전차도 충분히 위협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 중 하나이다.
여기서는 플레이어의 컨트롤에 따라 셔먼을 학살하고 다니는 것이 가능하다.오히려 등장하는 모든 전차중 가장 작아서 맞추기도 뭣하다! 위에 있는 기관총으로는 미군 항공기를 날려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게임 중 같은 등급의 전차들은 성능이 같다. 즉 T-34-85=4호 전차=M4 셔먼=치하 라는 괴공식이 성립한다.
일본의 플래쉬 애니메이션인 やわらか戦車(말랑말랑 전차)의 모티브라는 이야기도 있다. 정작 플래쉬 애니메이션에서는 귀여운 전차지만... 실상 치하를 모티브로 했다는 이야기는 전차축에도 못 낀다는 역설적인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역시나 주인공은 엄청난 두부살이며 심심하면 먹을 것 취급 받는다.
여자 몬스터로 등장한다. 종이 상자에 포탑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있으며, 그 모자에서 대포를 쏴서 공격하는데 뒤로 넘어진다. 그런데 이 때 자세히 살펴보면 팬티를 안 입었다. 여자아이 몬스터 방에서 보면 종이 상자 말고는 옷을 안 입은 것 같다.(...)
전용 퀘스트로 치하 전차대대가 있다. 랜덤 인카운터는 없이 별로 들어가면 치하나 양키와 싸우게 되는데(위치는 고정) 한번이라도 치하를 공격하면 퀘스트 종료 후 치하와 양키의 대결에서 치하가 진다. 양키만 골라서 공격하면 종료후 치하가 양키를 이긴다. 그 후 치하들이 란스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면서 입고 있는 상자를 하나 준다. 방어력을 조금 올려준다.
전용 퀘스트로 치하 전차대대가 있다. 랜덤 인카운터는 없이 별로 들어가면 치하나 양키와 싸우게 되는데(위치는 고정) 한번이라도 치하를 공격하면 퀘스트 종료 후 치하와 양키의 대결에서 치하가 진다. 양키만 골라서 공격하면 종료후 치하가 양키를 이긴다. 그 후 치하들이 란스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면서 입고 있는 상자를 하나 준다. 방어력을 조금 올려준다.
치하탄 학원소속으로 기본형과 카이가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독일군의 탈을 쓴 쿠로모리미네 여학원이라서 그냥 티거 하나에 대량학살당하고 광탈. 극장판에서도 니시 키누요를 비롯해 나름대로 열심히 분투하지만 익시비전 매치의 T-34, IS-2, KV-2, 처칠 전차, 마틸다 전차, 크루세이더 전차가 주력인 세이그로/프라우다 연합과 대학 선발전의 M26 퍼싱과 M24 채피가 주력인 대학 선발팀 상대로는 중과부적. 사실 치하를 가진 치하탄의 전력은 P40을 빼면 탱켓만 있는 안치오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다. 그러나 치하탄의 작전이라는 게 냅다 달려들고 보는 닥돌인지라 쿠로모리미네와의 1회전에서는 광탈당해서 승점자판기, 시범경기에서도 훌륭한 구멍을 뚫어주었다. 게다가 전차도 경기에서는 그 유용성이 의심스러운 57mm 유탄포 차량까지 보인다.
대학 선발팀과의 시합에서도 숫적으로는 연합팀의 절반을 차지했으나 역시나(?) 순삭당해서 방어선에 큼지막한 구멍을 뚫어주었다. 하고 전차장 후쿠다의 지적에 니시가 나머지 팀원들을 중재하면서 집오리팀과 함께 행동, 은엄폐를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성능이 압도적으로 높은 퍼싱을 잡아내는 수훈을 올린다. 집오리팀의 89식과 하고 1대로 퍼싱의 장포신을 사이에 끼우고 밀어붙여 무력화 시킨 다음 치하가 포탑링에 영거리 사격을 날려서 격파했다. 치하가 퍼싱을 뚫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 치하 개량형의 47mm라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하다. 퍼싱의 포탑 측면부 장갑은 76mm인데 포탑링은 그보다 얇을 수밖에 없고, 47mm 속사포는 '카탈로그 스펙 대로라면' 230m에서 76mm의 관통력을 가지기 때문.[30] 현대기술을 적용하여 이상적인 카탈로그 스펙(어쩌면 그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걸판 세계관이기 때문에 간신히 가능한 일. 처칠과 마틸다가 4호 전차, 3호 돌격포, 해처 등과 추격전을 벌이고(!) 15톤짜리 해처가 200톤 가까이 되는 마우스 전차를 들어올리는 만화다. 아무튼 그 기세를 살려서 시마다 아리스의 센추리온Mk.1에 완벽한 기습[31] 을 걸었으나 아주 간단하게 역관광당하고 만다.
6화에서 대학 선발팀과의 시합에서도 숫적으로는 연합팀의 절반을 차지했으나 역시나(?) 순삭당해서 방어선에 큼지막한 구멍을 뚫어주었다. 하고 전차장 후쿠다의 지적에 니시가 나머지 팀원들을 중재하면서 집오리팀과 함께 행동, 은엄폐를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성능이 압도적으로 높은 퍼싱을 잡아내는 수훈을 올린다. 집오리팀의 89식과 하고 1대로 퍼싱의 장포신을 사이에 끼우고 밀어붙여 무력화 시킨 다음 치하가 포탑링에 영거리 사격을 날려서 격파했다. 치하가 퍼싱을 뚫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 치하 개량형의 47mm라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하다. 퍼싱의 포탑 측면부 장갑은 76mm인데 포탑링은 그보다 얇을 수밖에 없고, 47mm 속사포는 '카탈로그 스펙 대로라면' 230m에서 76mm의 관통력을 가지기 때문.[30] 현대기술을 적용하여 이상적인 카탈로그 스펙(어쩌면 그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걸판 세계관이기 때문에 간신히 가능한 일. 처칠과 마틸다가 4호 전차, 3호 돌격포, 해처 등과 추격전을 벌이고(!) 15톤짜리 해처가 200톤 가까이 되는 마우스 전차를 들어올리는 만화다. 아무튼 그 기세를 살려서 시마다 아리스의 센추리온Mk.1에 완벽한 기습[31] 을 걸었으나 아주 간단하게 역관광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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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 버전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중국 테크 트리에서 노획된 전차로 등장했다. 단계는 BT-7, 스튜어트와 같은 3단계. 그나마 모든 것이 이상적으로 돌아가는 월드 오브 탱크의 세계인지라[32] 최종포인 1식 47mm 대전차포는 탄이 깨지지 않고 제대로 박혀서 81mm라는 3단계 포 중 최강의 관통력을 지니게 되었다. 즉, 이론상으로는 티거의 측면장갑(80mm)도 관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속도는 그나마 쓸만은 한 수준인데 덩치도 크고 장갑도 고폭에 막 뚫릴 정도로 약해가지고 한번만 고폭에 잘못 걸리면 그냥 끔살이다. 할힌골 전투에서 치하와 맞붙었던 같은 단계의 BT 시리즈는 유저의 손싸움. 어차피 양측 다 물장갑이므로 최종포 기준으로 발당 공격력이 70인 치하쪽이 좀 더 유리하다.
참고로 이 게임에서 셔먼은 2단계나 높은 5단계에 승리의 105밀이 있다. 그러니까 장갑 약한데 맞으면 원킬!! 치하를 위해 다소간의 변명을 해보자면, 사실 105mm 고폭탄은 3, 4단계 대부분의 전차를 한큐에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명색이 동시대 전차인데다 자국에서는 똑같이 중형전차로 인식했는데 2단계씩 차이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거기다 1.9 패치 이후 그 105mm 주포를 빨리 쓰는 T6 중형전차까지 나오니... 게다가 T6은 4단계다.
0.8.3 버전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중국 테크 트리에서 노획된 전차로 등장했다. 단계는 BT-7, 스튜어트와 같은 3단계. 그나마 모든 것이 이상적으로 돌아가는 월드 오브 탱크의 세계인지라[32] 최종포인 1식 47mm 대전차포는 탄이 깨지지 않고 제대로 박혀서 81mm라는 3단계 포 중 최강의 관통력을 지니게 되었다. 즉, 이론상으로는 티거의 측면장갑(80mm)도 관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속도는 그나마 쓸만은 한 수준인데 덩치도 크고 장갑도 고폭에 막 뚫릴 정도로 약해가지고 한번만 고폭에 잘못 걸리면 그냥 끔살이다. 할힌골 전투에서 치하와 맞붙었던 같은 단계의 BT 시리즈는 유저의 손싸움. 어차피 양측 다 물장갑이므로 최종포 기준으로 발당 공격력이 70인 치하쪽이 좀 더 유리하다.
참고로 이 게임에서 셔먼은 2단계나 높은 5단계에 승리의 105밀이 있다. 그러니까 장갑 약한데 맞으면 원킬!! 치하를 위해 다소간의 변명을 해보자면, 사실 105mm 고폭탄은 3, 4단계 대부분의 전차를 한큐에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명색이 동시대 전차인데다 자국에서는 똑같이 중형전차로 인식했는데 2단계씩 차이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거기다 1.9 패치 이후 그 105mm 주포를 빨리 쓰는 T6 중형전차까지 나오니... 게다가 T6은 4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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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개발된 일본 테크에서도 등장했으며 3단계 중형전차로 나온다. 역시 프로토타입 격인 치니는 2단계 중형전차로 나왔다. 중국군에서는 경전차로 인지했지만 일본군에서는 어찌되었건 치하를 중(中)전차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일본 치하는 기본적으로 중국과 비슷하지만 스톡이 쪼오금 더 편하고 여러 스펙들이 조금씩 다르다. 워게이밍에서도 경전차 스펙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일본제국육군이 중전차로 운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1.9 패치로 중국처럼 경전차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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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개발된 일본 테크에서도 등장했으며 3단계 중형전차로 나온다. 역시 프로토타입 격인 치니는 2단계 중형전차로 나왔다. 중국군에서는 경전차로 인지했지만 일본군에서는 어찌되었건 치하를 중(中)전차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일본 치하는 기본적으로 중국과 비슷하지만 스톡이 쪼오금 더 편하고 여러 스펙들이 조금씩 다르다. 워게이밍에서도 경전차 스펙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일본제국육군이 중전차로 운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1.9 패치로 중국처럼 경전차로 간주된다.
아주 열심히 까 주셨다. 존재 자체가 2차대전 일본군 병크의 결정체니까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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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 서버 전용전차였던 TYPE 97(신형포탑탑재형) 아카네야에 치하.
글로벌 서버에서 처음으로 등장인줄 알았는데 일본섭에서 특전차중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그리고 최초의 일본군 전차이다. 추가로 일본섭 전용전차다. 이후 2018년 5월 28일 업데이트때 국내서버[33] 에도 등장한다.
과거 일본 서버 전용전차였던 TYPE 97(신형포탑탑재형) 아카네야에 치하.
글로벌 서버에서 처음으로 등장인줄 알았는데 일본섭에서 특전차중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그리고 최초의 일본군 전차이다. 추가로 일본섭 전용전차다. 이후 2018년 5월 28일 업데이트때 국내서버[33] 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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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형전차 트리와 중국 중형전차 트리에 등장한다. 기본형은 정말 쓰레기지만 47mm 속사포를 장착한 카이 버전은 뛰어난 부각과 빠른 장전속도 등으로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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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형전차 트리와 중국 중형전차 트리에 등장한다. 기본형은 정말 쓰레기지만 47mm 속사포를 장착한 카이 버전은 뛰어난 부각과 빠른 장전속도 등으로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성 중형전차(Medium Tanks)로 등장한다.Type 97 Chi-Ha로 표기되며, 작중 이름은 세츠코(Setsuko). 중형전차인 건 구 일본군이 치하를 중형전차로 운용한 것을 반영한 듯 하다.
2화(애니메이션 1화)에서 폐물이 되어 눈에 덮인 상태로 등장한다.
차량 No.6 으로 등장하는데 최종개조단계의 이름들이 옥쇄치하, 특공치하, 반자이치하...- 새소년 게임북의 원전이 되는 일본의 세이토우샤(西東社)에서 나온 게임북인 시뮬레이션 북스(シミュレーション・ブックス )시리즈 중 특공대작전 3(원제 ウォー・ゲーム,156,柴田竜男/玉神輝美,新書,85/06,シミュレーション・ブックス2) 에서 일본군 비스무리(...)진영에서 등장하는데, 기관총에도 뚫리는 전차로 설명하고 있다.
-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일본군 2티어 전차로 등장한다.
미스 크리스 프로젝트 편에서 주인공인 크리스의 성향에 대해 와랏타 국장이 고민하는 장면에서 크리스가 잠복임무가 귀찮다는 이유로(...) 어디선가 탈취해서 적진을 괴멸시켰던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한컷 등장한다. 초창기 57mm 유탄포 사양.
11. 전후/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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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후 일본 본토에 남은 400여 량의 치하 전차들은 대부분은 폐기처분되었지만, 일부는 무장을 철거한 후 "갱정전차(更正戰車)"로서 불도저용 삽날을 달고 불도저로 재생되었다.[34] 또한 이렇게 재생된 불도저 "치하"중 일부는 경찰이 사용해서 노동자들의 파업 및 시위 진압에 동원되기도 하였고, 도쿄에 내린 폭설을 치우는 제설차량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홋카이도에서는 1959~1960년까지 불도저 치하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소수의 치하는 크레인을 장착한 후, 요코하마 등의 항구에서 1960년대까지 하역 작업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인도 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군이 5량을 노획해서 사용했다.
레진코믹스의 본격 탱크로 만화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 진짜로 공산권이 썼다고 한다. 그리고 최종 보스로 등장한다
제주도에서 결7호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58군 또한 소유하고 있었지만 대한민국에 넘기는 일 없이 미군이 모두 소각, 스크랩 처리했다.#
누군가 '''제법 그럴싸한 골판지 치하'''를 만들었다. 서스펜션 구동에 전후 이동, 피봇턴까지 된다.
프라모델로는 타미야, 드래곤, 파인몰드에서 1:35로, 에어픽스에서 1:72로 나왔다. 타미야 치하는 구포탑 사양은 현재 절판되었으며 신포탑 하나만 판매 중이다. 구포탑 치하는 드래곤 키트가 꽤 남아도는 편이다. 파인몰드는 구포탑의 경우 일반 버전은 구하기가 매우 어렵고 치하탄 학원 사양 재포장 킷은 그나마 구하기 쉽다. 신포탑은 일반 버전과 치하탄 버전 모두 그럭저럭 남아도는 편.
12.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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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외에서는 Type 97 ShinHoTo(신포탑) 전차라고 부르기도 한다.[2] 4호전차 H형기준. 초기에는 18톤짜리 전차였는데 전면장갑을 더 두껍게하고 쉬르첸을 장착하면서 무게가 많이 늘어났다.[3] 3호전차가 대략 15톤 내외이다.[4] 연해지역 성들은 평원이 많다.[5] 중국 전선의 경우는 애초에 국가 인프라가 부족했던 것도 있어서, 그야말로 티거 같은 중전차가 있더라도 사용할만한 지반이 없었을 정도다. 도리어 야포 같은 경우도 양 군(중국군/일본군) 전쟁 끝까지 가지고 다니기 쉬운 소구경포를 사용할 정도였다.[6] 물론, 이러다 중국 전선을 등한시해서 중국군 유격대의 게릴라 전술에 고전한다(...)[7]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노나카 이쿠지로 외. 이 책에서 할힌골 전투, 미드웨이 작전, 과달카날 작전, 임팔 작전, 레이테 해전, 오키나와 전투를 실패사례로 꼽아 연구했다.[8] 그나마 수직안정장치를 장착한 셔먼은 그럭저럭 효과를 봤다지만 당시 기술 수준이 수준이라 없는것 보다는 나은 수준.[9] 단, 울버린이 악평을 듣는 것은 부실한 장갑과 시원찮은 주포의 위력 때문이다. 울버린의 차체 자체는 M36의 포탑을 올려서 써먹기도 했는데 670여대가 세계대전이 종전한 이후에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10] 그런데 전차 무장이 약하다 장갑이 약하다 탓하는 것은 사치에 가까운 것이, 아시아 대륙이 아닌 동남아의 섬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군은 하루 몇 톤 겨우 보급하는 병참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으니 설령 신형 전차를 개발했다고 해도 1대에 10톤이 넘는 전차와 그 전차가 꾸준하게 소비할 보급품을 정기적으로 양륙시킬 능력은 없었다. 이후 기껏 개발했다는 신형 전차들을 본토결전이랍시고 본토에만 배치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제대로된 대전차포도 배치되지 않은 것은 변명할 수도 없지만.[11] 그나마 역전승의 가능성이라도 보였던 과달카날 전역에서 제공권을 잃은 후 일본군이 할 수 있었던 건 도쿄 익스프레스 정도였다. 발빠른 구축함에 깡통을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처럼 달아서 보급하는 것... 이런 상황에 전차같은 건 기대도 할 수 없는 보급품이었다. 물론 이 드럼통들도 태반이 물속으로 사라진 건 덤(...)[12] 강철의 밀도는 1입방미터당 7860kg이므로 치하의 한쪽 면 장갑을 10mm 늘릴 때마다 중량이 최소한 0.5톤씩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장갑판을 리벳으로 접합시키면 필요 중량은 더 늘어난다.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해도 스튜어트의 M3 37mm 대전차포를 500m에서 막을 수 있는 전면 장갑 60mm를 확보하려면 포탑까지 합쳐서 거의 2톤이 넘는 장갑을 증설해야 한다. 당시 일본의 허약한 철도/항만 체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13] 적들의 무기를 노획해서 사용한다는것이 보유한 탄약과 연료가 있는, 일시적인 것이지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미군은 필요한 항만시설이나 비행장을 갖출 수 있는 섬들만 점령하는 개구리 뜀뛰기 전략으로 인력은 아낄지언정 물자는 아끼지 않고 마구 퍼부었다.[14]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일본군은 스튜어트를 ''"강력한 중(中)전차"'''로 인식했다.(...)[15] 사실 100m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16] 레퍼런스 이 레퍼런스는 상술한 잘로가의 M4 Sherman vs. Type 97 Chi-ha다.[17] 사실 기갑병기 숫자가 부족하여 기갑병기를 기갑병기 막는데 투입하기 급급했던 중기 이후의 나치나 좀 다른 의미의 보병지원을 중시한 기행을 한 기행의 나라의 일부 전차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전차는 전차전보다 대인전이 훨씬 더 자주 있기에 철갑탄보다 고폭탄을 더 많이 싣고 다녔으며(대전차전을 크게 고려한 나치가 5:5 정도의 비율이었다.) 철갑탄보다 고폭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행의 나라도 고폭탄 화력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고폭탄 화력이 M1897 야포를 기반으로 한 전차포로 갈아탔다. 물론 한발도 실리지 않은 것은 문제가 맞다.[18] 엄밀히 말하자면 철갑탄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은 방탄 플레이트를 추가한 Mk. IV부터다.[19] 소련군이 잘 사용했다. 시가전에서 판처파우스트를 슬랫아머처럼 막아서 큰 효과를 보았다.[다만] 임팔 작전 당시, 참다못한 상층부 명령으로 전차 14연대는 격파하거나, 격파당한 아군 M3 경전차 등의 장갑을 치하에 추가장갑으로써 증설하여 싸운 적이 있다. 본래 6파운드 대전차포를 버텨보기 위해 증설한 것으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20] 티거 2의 무게와 엔진 출력은 69.7톤에 700 마력이고 치하는 15톤에 170마력이다.[21] Japanese Tank and Antitank Warfare, Aug. 1, 1945, Military Intelligence Division Special Series No.34, p.82[22] Ibid., p.176[23] 120mm를 쑤셔넣었음에도 포탑 후방에 추가 공간을 만든 것이 끝이였으며 엔진조차 안고쳤고, 차체도 그대로라 포탑 후방 개조를 하지 않으면 휴행탄수가 고작 8발이였다. [24] 물론 저것은 단순 손실량 비교이기에, 소련 전차대와 일본 전차대가 만주 벌판에서 만나 서로 포 쐈다는 얘기로 보면 안 된다. 치하가 아주 딸리지는 않았다는 증거로 보면 될 듯.[25] 일본보다 나이보이는 이 방식도 나치 공업의 큰 삽질이라고 2차대전 떡밥에서 말만 나오면 까이는 판이며 당시 나치 독일 자신들도 이게 확실히 엄청난 삽질인 것을 알고 있어서 그나마 덜 삽질인 E 시리즈로 어떻게든 통합해보려고 했다. 여기서 그 통합하겠다는 E 시리즈가 6개 플렛폼인데 이 방식에서 선진 공학으로 찬양받는 소련의 경우 기갑 플렛폼은 단 3개였다.[26] 할인골 전투의 일본 명칭[27] 이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Hero Tank"'''라고 번역하기도 한다.[28] 셔먼이 무적이 되어버리니까.[29] 치하 개의 주포는 근접한 상태에서, 셔먼의 차종에 따라서는 전면을 쏴서 격파할 수도 있다. 실전에서는 그 거리까지 다가간 치하가 거의 없어 무의미했지만...[30] 물론 실제로는 100m에서 60mm를 뚫는 정도였다.[31] 말그대로 기습돌격의 최적의 조건이였다. 고립된 상태에서 아직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한 적 전차에 머릿수로만 따지면 자기들이 더 많았으니...[32] 월드 오브 탱크에서 작중 적용되는 모든 기술은 공업력의 한계라든가 실제 발생할 수 있는 운용상의 문제는 배제하고 설계상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스펙을 기준으로 한다.[33] 새로 추가되는 한일 통합 서버 포함.[34] 사실 꼭 치하가 아니라도 크레인으로 개조한 판터 전차나 트랙터로 개조한 마틸다 전차, T-34, M4 셔먼 등 종전 직후 남아돌던 전차를 중장비로 개조해 사용하는 경우는 많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