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식

 

성명
장성식(張成栻)
이명
장성식(張聖拭, 張晟拭, 張晟栻)
본관
안동 장씨
생몰
1897년 6월 5일 ~ 1979년 9월 5일
출생지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면 용산동[1]
사망지
인천광역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성식은 1897년 6월 5일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면 용산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3년 신흥무관학교를 수료했고 1919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부터 평북 의주군 북구 교통국 신의주교통소 소장으로 임명되어 임시정부의 재정자금 모집, 국내의 정부수집 보고, 임시정부의 지령과 서류의 국내 전달, 독립운동을 위한 인물 소개와 연락 활동에 종사했다. 또한 1920년 6월에는 임시정부에서 조직, 파견한 의주선전대 대원으로 국내외의 정보와 통신을 수집하여 임시정부에 제공했다.
그러나 1920년 7월 24일 의주군 통신원 양승업(梁承業)이 일경에 피체되어 조직을 자백함에 따라 피신하였으나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후 1920년 9월 178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의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1931년 《신의주대관(新義州大觀)》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으며, 1934년부터 1935년까지는 의주군 고성면장을 지냈는데#, 1935년 11월에 문맹타파 5개년 계획을 세우고 고성면내 25개소에 야학을 설치하기도 했다.# 1938년 1월 17일에는 동아일보사 의주지국 고문에 임명되기도 했다.#
8.15 해방 후 인천으로 이주했고, 1979년 9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장성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0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안동 장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장덕로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