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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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장호강(張虎崗)
생몰
1916년 4월 30일 ~ 2009년 10월 17일
출생지
평안북도 철산군 고성면 동부동
(현 평안북도 철산군 철산읍)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장호강은 1916년 4월 30일 평안북도 철산군 고성면 동부동(현 철산군 철산읍)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이주했고 1936년 봉천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군관학교 간부훈련반에 입학해 1937년에 졸업했다. 이후 중국군 제24집단군 사령부 및 제29군 사령부의 정보장교로 활동하다가 한국 광복군에 입대해 제3지대 본부 부관실에서 주임으로 활동하면서 대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제3지대가를 작사 및 작곡하여 보급했다.
8.15 광복 후 귀국한 그는 1949년 국군에 입대하여 육군사관학교에서 8기 특과로 군사교육을 이수했고, 그해 '또 한번 다름박질할꺼나'라는 제목의 시를 <국방(國防)> 일간지에 기고하면서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개시했다. 6.25 전쟁 땐 제38사단 대대장과 제25사단 연대장을 역임하면서 북한군 및 중공군과 맞서 싸웠으며, 1956년엔 경북병사구 사령관에 임명되어 1960년까지 맡았고 1961년 제1군단 참모장, 1962년에는 육군본부 특점감, 1964년에 사단장에 임명되어 장군으로서 활동하다가 1969년에 준장으로 예편했다.
1971년 독립운동사 편집위원을 맡았으며, 한중일보 이사 및 주필을 맡아 1974년까지 역임했다. 1976년엔 독립군군가 보존회 회장을 역임했고, 1977년에 광복회 사무국 국장이 되었으며, 1978년 원호장학화 이사장, 1979년 한국참전시인협회 회장 및 명예회장을 잇달아 맡아 1991년까지 역임했다. 또한 1988년에 전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 및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를 맡았고, 1989년 독립유공자 협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1992년 한국광복군동지회 자문위원을 맡았고, 1996년 대륙동노(大陸同老). 독립유공자협회 지도위원을 맡았다.
한편, 장호강은 시인으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는 1952년에 시집 <총검부(銃劍賦)>를 출간했고, 1954년에 <쌍룡고지(雙龍高地)>를 출간했으며, 1955년 <항전의 조국>, 1964년 <화랑영가(花郞靈歌)>, 1969년 <호강전진시선(虎崗戰陣詩選)>, 1988년 <강물처럼 흐르는 열망>을 출간했다. 그의 시는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도 전쟁의 비극과 삶의 고통 역시 진지하게 다뤘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고, 2009년 10월 17일에 사망한 뒤 10월 19일에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