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러드 워시번
1. 개요
전 메이저리그 투수. 2000년대 초반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좌완 에이스로 손꼽혔으나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 후 먹튀로 전락하여 빌 버베이시의 유산 중 하나로 전락하였다.
2. 커리어
2.1. 에인절스 시절
2라운드 첫 번째 순위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지명되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하며 97시즌 이전에는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66위, 98시즌에는 73위에 오르며 기대를 높였다. 98시즌 팀명을 변경한 애너하임 에인절스 소속으로 데뷔하여 6승 3패 평균자책점 4.62로 신인으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한다. 당시는 약물의 시대였기 때문에 4.62로도 ERA+는 100이상을 기록했던 것.
그러나 99시즌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으며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갔다. 2000년에는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7승 2패 평균자책점 3.74로 가능성을 보이더니 2001년부터는 풀타임 선발로 전향하였고 2002년에는 18승 6패, 평균자책점 3.15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 상 4위를 기록하는 좋은 활약을 보였다. 2002년 월드시리즈에서는 팀의 에이스로 1차전 선발로 나왔다. 배리 본즈와 정면승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2회에 들어선 4번타자 본즈에게 초구에 홈런 맞고 정면 패배 당했다.(...) 결론적으로 팀은 우승했지만 워시번에게는 월드시리즈에서 2패만 안고 상처뿐인 영광이 되었다.
이후 저조한 성적을 보이다가 FA를 앞둔 2005년에 승운은 따르지 않았지만 전성기로 돌아온 듯한 활약을 보이며 FA로이드 기운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의 에이전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였다.
2.2. 시애틀 시절
빌 버베이시는 05시즌 재러드 워시번의 활약과 좌완 선발이 노장인 제이미 모이어 밖에 없다는 점[2] 을 부정적으로 보고 워시번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게 된다. 결국 당시 거금이었던 4년 38M에 워시번을 영입하게 된다. 영입 당시에는 나쁘지 않은 딜이라는 평이었다. 그러나 워시번은 투수 구장인 세이프코 필드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 했고, 기대했던 에이스의 모습은 커녕 3~4선발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에이스가 된 것은 외부 영입 선수가 아닌 킹 펠릭스였다. 유일한 장점은 이닝을 먹어준다는 것 정도인 수준. 08년에 빌 버베이시가 해고되자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 워시번은 2009년 계약 마지막 해가 되자 다시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FA로이드를 보였다. 그러자 팀은 기다리지 않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고 만다.
2.3. 디트로이트 시절
디트로이트도 FA로이드 모습을 보고 에이스가 되길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 저스틴 벌랜더-에드윈 잭슨-릭 포셀로의 영건 3인방의 뒤를 받쳐줄 좌완 베테랑의 역할을 기대했던 것. 이전에는 그 역할을 4선발갑 네이트 로버트슨이 하고 있었으나, 전년도 평균자책점 6.35의 최악의 활약을 보이며 결국 불펜으로 강등당했던 것. 전년도에 폭망한 좌완은 돈트렐 윌리스도 있었고, 탈선한지 오래였던 그는 7경기 만에 불안장애 증상을 보이며 시즌 아웃됐다.
그리고 디트로이트에 온 워시번은 로버트슨, 윌리스 이상으로 대폭망했다. 디트로이트에서 8경기 동안 7점대 평균자책점을 찍고 장렬히 커리어 아웃하면서 디트로이트 먹튀사에 짧게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후 불러주는 팀이 없어 은퇴.
커리어 성적은 107승 109패, 평균자책점 4.10, 1103 탈삼진
3. 피칭 스타일
전형적인 좌완 피네스 플라이볼 피처. 140km 전후의 속구, 슬라이더, 체인지업의 레파토리에 간간이 커터와 커브를 섞어서 던졌다. 삼진이 적고 맞춰 잡는 유형으로 구위가 약하다 보니 장타로 연결되는 비율이 높았다. 최전성기 시절에는 땅뜬비가 거의 1.5배에 가까웠을 정도. 그래서 애너하임 시절 피홈런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투수 친화 구장인 시애틀의 세이프코 필드에서는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깃털 속구로는 어림도 없었다. 커리어 후반에는 체인지업의 비중을 줄이고 커터의 비중을 높이는 등 변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4. 여담
- 한국에서는 주로 오십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 미성년자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적 있었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1] 워시번이 뛰는 동안 팀 이름을 2번이나 바꿨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최종적으로는 LA 에인절스로. 가장 마지막에 활약한 연도의 팀명을 기준으로 서술한다.[2] 나이가 많다는 점을 부정적으로 봤기에 시즌 중에 모이어를 팔아버린다. 그 당시 모이어의 대체 선발이 백차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