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 모이어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좌완 투수로, 꾸준한 관리와 관록으로 늦은 나이에도 커리어를 이어나갔으며, 이미 은퇴하고도 늦지 않았을 50세에 나이에 역대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경신하면서 진정한 근성이 무엇인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투수다.
2. 커리어
2.1. 시카고 컵스
1984년 드래프트에서 6라운드에 시카고 컵스에게 지명되었다.[1] 1986년에 메이저에 입성해 2년간은 5점대 ERA를 기록했지만 3번째 해였던 1988년에는 34경기 202이닝 9승 15패 ERA 3.48을 기록하면서 지난 시즌보다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컵스가 나름대로 우승에 도전하고 싶었는지 텍사스 레인저스와 3:5 트레이드를 단행해서 이 때 팀을 옮기게 되는데, 이 트레이드는 컵스 최악의 실패작 중 하나다.[2]
2.2. 텍사스 레인저스
하지만 텍사스에서는 기대만큼의 성적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선발 경쟁에서도 밀려났고, 결국 1990년에 방출되었다.
2.3.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이후 1991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했지만 여기서도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1년만에 다시 방출되었고, 1992년에는 시카고 컵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마이너를 전전했지만 아예 메이저에 콜업되지 못했다.
2.4. 볼티모어 오리올스
기회를 다시 잡은 것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였는데, 1993년에 25경기 152이닝 12승 9패 ERA 3.43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다시금 기회를 잡았고, 이후에는 이만한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3년 동안 25승을 거두면서 선발진의 한자리를 맡을 정도의 활약상을 보여줬다.
2.5. 보스턴 레드삭스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의 1년 계약을 맺어 23경기 90이닝 7승 1패 1홀드 ERA 4.50이라는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던 중 시애틀 매리너스로 트레이드됐고, 이미 저니맨 신세에 33세라는 나이에 더이상의 활약은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2.6. 시애틀 매리너스
'''시애틀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리그를 평정하는 투수가 된건 아니였지만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완벽하게 장착하고, 제구력과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투구가 완성되면서 시애틀에서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시애틀에서만 145승을 기록하면서 시애틀의 간판 투수이자 든든한 선발진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40세였던 2003년에는 33경기 215이닝 21승 7패 ERA 3.27이라는 커리어 하이급 성적을 기록하며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2.7.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6년 시즌 중에 와일드 카드를 노리던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도 꾸준히 10승 이상을 기록했고, 특히 2008년에는 33경기 196.1이닝 16승 7패 ERA 3.71이라는 나이를 잊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월드 시리즈 진출에 공헌했고, 이후 월드 시리즈에서도 우승하며 '''나이 45세에 처음으로 밟아본 월드 시리즈에서 첫 우승 반지를 차지해''' 진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되었다.[3]
2009년 후반 부상으로 인한 구위 저하로 월드 시리즈에서는 공을 던지지 못했고, 선발 자리 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으나 2010년 20살 넘게 어린 카일 켄드릭과 5선발 경쟁을 펼친 끝에 당당히 5선발 자리를 꿰찼으며 5월 7일 메이저 최고령 완봉승 기록을 47세 170일로 경신했다.[4] 또한 이로 인해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에 모두 완봉승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남게 되었다. 기록을 경신한 후에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9승째에서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었고, 나이가 나이인만큼 사실상 은퇴인듯 보였지만 선수 본인은 은퇴를 선언하지 않고 나이 50이 다 되어서 토미 존 서저리를 받게 되었는데, 더 대단한 건 수술 후 1년간의 재활을 거친 뒤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정말 메이저 마운드 복귀에서 성공한다면 무려 49세 선발 투수의 탄생이다. 물론 스프링 캠프에서부터 혹독한 경쟁을 거쳐야 하겠지만 진정 투지만은 대단한 선수다.
2.8. 콜로라도 로키스
2011년이 지났음에도 마이너 계약 오퍼조차 나오지 않는것을 보면 결국 복귀는 요원한 일처럼 보였고, 40세 마이너 계약 & 스프링 캠프 초청선수도 퇴물로 취급받는 메이저에서 50세에 가까운 나이에 투지만으로 살아남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지만 '''2012년 콜로라도 로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3월 23일까지 시범경기에 3경기 9이닝 '''4피안타 ERA 1.00'''을 기록했고, 심지어 세번째 등판에서 4이닝 퍼펙트 투구를 기록하기도 하며 산신령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마침내 짐 트레이시 감독이 시즌 초반 모이어를 제 2선발로 쓸 것임을 발표하면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첫 두경기에서는 각각 5이닝 4실점 (3자책)과 5이닝 4실점 (2자책)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4월 17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7이닝 2실점 (무자책)을 기록하며 시즌 첫승과 함께 '''역대 최고령 승리투수'''에 등극했고, 5월 16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는 회심의 내야안타를 기록하면서 '''2타점'''을 기록해 49세 180일로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경신함과 동시에 메이저 역대 최고령 '''타점''' 기록 또한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매디슨 범가너처럼 '''자기가 데뷔했을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투수와 맞대결하는 아스트랄한 기록[5] 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5월 들어서 점차 투구 내용이 나빠지면서 부진에 빠졌고, 결국 콜로라도로부터 지명할당 통보를 받았지만 그래도 콜로라도 팬들은 그가 등판했을 때 투구 성적에 관계없이 훈훈한 박수갈채를 보내줬다.
6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으나 6월 23일 볼티모어에서 메이저 기회를 받지 못하자 스스로 구단에 방출을 요구했고, 이후 FA 자격으로 이번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지만 결국 토론토에서도 방출당했다.
결국 2013년 시즌이 끝나가도록 불러주는 곳이 없어 사실상 은퇴가 아닌가 사람들이 생각할 무렵, '''너클볼러로 재기를 시도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찰리 허프와 팀 웨이크필드에게 여름 내내 개인적인 상담과 교정을 받았다고 하는데, 아무리 너클볼러라 해도 50을 넘긴 투수가 메이저에 다시 발을 들이는 게 쉽겠냐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응원한다는 사람들이 많긴 하다. 또 이와는 별개로 피칭 아카데미를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6]
3. 은퇴
2014년부터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중계진에 참여한다고 하며, 2015년 1월 13일 시애틀 매리너스 명예의 전당 입회 기사가 났고, 8월 9일 세이프코 필드에서 입회식이 열렸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은 예상은 했지만 아쉽게도 후보 첫해인 2018년에 2.4% (10표)의 득표에 그치며 탈락했다.
4. 플레이 스타일
50세가 되도록 던진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전형적인 기교파 투수다.[7] 2007부터 2010년까지 4년 동안 속구 평균 구속은 130km를 간신히 찍지만 비슷한 구속대의 투심 패스트볼과 커터, 그리고 이것보다 8km 정도 느린 체인지업을 섞어가며 제구력과 커맨드만으로 메이저 강타자들을 요리했다. 의외로 속구 배합비율이 31.5%, 투심까지 합치면 속구계 볼이 46.2%에 달할 정도로 속구를 자주 구사하며, 그 외에 결정구인 체인지업 구사비율이 27.8%에 이를 정도로 130km의 평균 구속으로도 피칭은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는 원리를 철저히 수행하는 투수로, 나이가 들면서 구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투수들이 따라야 할 모범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연도별 성적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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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인인 캐런 모이어가 미인으로 유명하다. 제이미 모이어보다 3살 연하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모이어가 도둑놈으로 취급될 정도의 동안이다.[8]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모이어가 시카고 컵스에서 데뷔했을 때 당시 컵스의 캐스터인 전설적인 명 아나운서 해리 캐리가 당시 방송사 인턴으로 갓 들어온 캐런을 소개시켜줘서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9] 또 캐런은 자선 활동으로 유명해서 2011년 펄 벅 재단이 수여하는 올해의 여성상을 수여하기도 했다.[10][11]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한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티 지진 참사 때는 부부의 이름으로 10만 달러의 기부도 했다. 부부 모두 자선 활동과 입양에 관심이 많고, 부부의 이름을 딴 자선 재단도 있었으나 2017년에 이혼을 했다고 한다.
- 자식이 8명인데 이 중에서 막내 둘은 과테말라에서 입양했다고 하며, 큰아들인 딜런 모이어는 유격수로 활약해 2010년 드래프트에서 22라운드 전체 675번으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지명받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 진학했고, 이후 2013년 드래프트에서 38라운드 전체 1144번으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지명받아 마이너에서 활약했으나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2016년 이후 출장한 경기가 없고, 형과 같이 유격수인 동생 허튼 모이어는 2015년 드래프트 7라운드 전체 225번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게 지명받아 활약했으나 2018년 이후로 출장한 경기가 없다.
- 통산 522피홈런으로 메이저 통산 최다 피홈런 보유자다. 물론 이 기록도 모이어가 25년이라는 시간동안 꾸준히 활약했기에 나온 기록이며, 수많은 투수들이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도전하고 대다수가 1피홈런은 커녕 단 1명의 타자도 상대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은퇴하는 것이 현실인 만큼 절대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아니다.
- 50세가 되도록 현역이었던 만큼 철저한 자기관리를 보여줬다고 하는데, 팀에서 파티가 열려도 음료는 오렌지 주스나 물밖에 안 마셨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 통산 9이닝당 삼진 개수 5개 정도의 기교파 투수였으나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는 랜디 존슨이나 스티브 칼튼 수준의 삼진머신으며, 실제로 저들과 함께 1티어급 선발 투수로 상당히 높은 가격대를 형성 중이다. 이러한 취급은 속도와 꺾이는 각 모두 흉악한 JM 커터 덕분인데, 게다가 JM 커터는 직구계열 취급이라 세트덱의 직구 보너스를 받아 웬만한 모이어 레어는 JM 커터 최상 정도는 그냥 찍는 편이다.
7. 관련 문서
[1] 이 때 2라운드에서 컵스에 지명된 선수가 '''그렉 매덕스'''이며, 심지어 1986년으로 메이저 데뷔년도도 같다. [2] 이 때 텍사스로 건너간 선수 중 한명이 라파엘 팔메이로다. [3] 이때 대학생이 된 아들 앞에서 월드 시리즈 선발 등판을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4] 이전까지의 최고령 기록은 46세 188일에 기록한 '''필 니크로'''였다. [5] 선발 투수간 나이차이 많이 나기로 역대 3위인데, 1, 2위가 '''사첼 페이지'''였다. 20년 이상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이런 기록을 쓰는 건 전무후무하다. [6] 당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경기를 중계하던 SPOTV 해설진도 이에 대한 언급을 했는데, 맷 하비나 호세 페르난데스가 피칭 아카데미를 열어도 그 선수들의 피칭 메커니즘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애들이 많지 않은지라 그런 면에서 모이어의 아카데미는 정말 배울 게 많을 것이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7] 가장 빠른 구종이 최고구속 85.3마일의 싱커다.(...) [8] 최근 사진을 보면 둘 다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긴 한다.[9]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 결혼식은 혼인성사로 했다고 한다. [10] 혹시 이 상이 허접한 것으로 생각할지 몰라서 역대 수상자 중 유명인을 쓰자면 오드리 햅번, 힐러리 클린턴, 코라손 아키노, 그리고 이희호 여사가 이 상의 수상자다. [11] 남편인 제이미 모이어도 메이저리거의 영광 중 하나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2003년에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