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공(15대)

 


'''정(鄭)나라 15,18대 국군[1]
성공
成公
'''
''''''
희(姬)
''''''
정(鄭)
''''''
곤(睔)
'''아버지'''
정양공(鄭襄公) 희견(姬堅)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571년
'''재위 기간'''
음력
1차: 기원전 584년 ~ 기원전 582년
2차: 기원전 581년 ~ 기원전 571년
1. 개요
2. 재위 기간
2.1. 1차 재위
2.2. 2차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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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정나라의 제15,18대 군주. 정양공의 아들. 정도공의 아우. 정군수의 형. 정희공의 아버지. 정 성공은 군주가 되기 전 초나라에 구금되었다가 공자 발의 도움으로 정나라에 돌아오고 형이 죽자 그 뒤를 이은 것이다.

2. 재위 기간



2.1. 1차 재위


정 성공 원년(기원전 584년) 봄, 정 성공은 대신 자량을 진(晉)나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초장 자중이 정나라를 치자 진(晉)나라는 제(齊)나라, 송(宋)나라, 위(衛)나라 등과 함께 정나라를 구원했다. 그리고 정나라에서 공중, 후우를 보내 초군을 오히려 포위했다.
정 성공 3년(기원전 582년) 정월, 정 성공은 제나라, 송나라, 위나라와 도 땅에서 회맹했다. 2월에 초공왕은 사사로이 정나라에게 은혜를 베풀었다.[2] 가을에 정 성공이 진경공(晉景公)을 알현했다. 그때 진 경공이 난서를 시켜 그를 억류했다.[3]

2.2. 2차 재위


정성공 4년(기원전 581년), 정나라에서 공자 수를 군주로 추대해 혼란을 막았다. 그러자 진(晉)나라에서 정성공을 풀어주고 정군 수를 죽였다.
정성공 5년(기원전 580년) 6월 8일, 정성공은 공자 수를 군주로 추대한 자들을 죽이거나 옥에 가두었다.
정성공 7년(기원전 578년) 5월, 정성공은 노나라, 진(晉)나라, 제나라, 송나라, 위나라와 함께 진(秦)나라를 쳤다. 6월 15일 밤중에 정나라의 공자 반이 조상의 사당에 가려고 했으나 윤허되지 않자 공자 반은 자인, 자우를 죽였다. 6월 17일 자사는 공자 반을 죽였다.
정성공 8년(기원전 577년) 8월, 그는 공자 한을 보내 허나라를 쳤으나 패했다. 8월 23일 정성공이 허나라를 치고 8월 25일 성을 포위하니 허나라가 강화를 요청했다.
정성공 9년(기원전 576년) 3월, 정 성공은 진(晉)나라, 위나라, 송나라, 제나라와 척성에서 회맹했다. 6월 초나라가 정나라를 쳤다. 자한이 초나라를 쳐 신석을 점령했다.
정성공 10년(기원전 575년), 정나라 진(晉)나라를 배신하고 초나라와 회맹했다.[4] 이에 진여공(晉厲公)이 대노해 정나라를 쳤다. 이에 초 공왕이 정나라를 원조하니 이것이 바로 언릉 전투다. 이 전 투에서 초나라는 패하고 초공왕은 애꾸가 되는 참사를 당했다.
정성공 13년(기원전 572년), 진도공(晉悼公)이 정나라를 치는데 육수에 주둔했다. 정나라가 방비를 엄히 하니 진(晉)나라 군대가 물러났다.
정성공 14년(기원전 571년), 정 성공이 죽고 그 아들 희운(姬惲)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정희공이다.
[1] 폐위되었다가 복위되었다[2] 정나라를 초나라 편에 잡아두기 위함이다.[3] 초나라에게 사사로이 받은 은혜로 인해 의심하여 그를 가둔 것으로 보인다.[4] 바로 전에 초나라의 압박이 있었던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