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공왕

 


'''초(楚)나라 24대 국군
8대 왕
공왕
共王
'''
''''''
미(羋)
''''''
웅(熊)
''''''
심(審)
'''아버지'''
초장왕(楚莊王) 웅려(熊侶), 웅여(熊旅)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560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590년 ~ 기원전 560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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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나라의 제24대 군주. 제8대 . 춘추오패로 이름이 높은 초장왕의 아들이다. 초강왕의 아버지. 시호는 달리 공(恭)이라고도 하며, 공(龔)이라고도 한다.[1] 본명은 웅심. 초 공왕 대에 언릉 전투가 일어났다.

2. 생애


초장왕 23년(기원전 591년), 초장왕이 승하하고, 웅심이 초나라 왕이 되었는데, 그는 아직 어렸으므로 영윤 자중이 섭정했다.
초공왕 6년(기원전 585년), 자의의 난이 일어났다. 그 일로 대부 석공이 진나라(晉)로 달아났고 초재진용이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그리고 당시에 진나라의 군주 진경공이 초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무신(巫臣)이라는 자를 오나라에 보내 오나라의 국력을 키워 초나라를 견제하려 한 때도 바로 이 때다.[2]
초공왕 14년(기원전 577년), 정나라와 허나라를 쳐서 그곳을 복속시켰다.
초공왕 16년(기원전 575년), 언릉에서 진나라와 전투를 벌였는데, 초 공왕은 이 전투에서 화살에 맞아 애꾸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공자 무는 포로가 되었으며, 군사인 자반은 초 공왕과의 작전 회의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책임을 물을까 두려워 자결하였다.
초공왕 31년(기원전 560년), 초공왕이 죽었는데, 죽기 전에 초공왕은 언릉 전투에서 패한 것을 자기 책임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악시를 쓰라고 명했다.[3] 그러나 대부들끼리 의논한 끝에 영윤 자양은 공이라는 시호를 올렸다. 그래서 초공왕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뒤는 아들인 웅소가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초강왕이다.
[1] 그런데 恭(공손할 공)이나 龔(공손할 공)이나 두 글자 모두 음도 같고 뜻도 같은 공손하다는 의미다.[2] 그리하여 오나라는 합려부차 대에 국력이 절정에 이른다. [3] 악시의 예를 들자면, 암군에게나 주는 시호인 영(靈), 폭군에게 주는 시호인 여(厲), 개노답 폭군에게 주는 시호인 양(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