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공

 


'''정(鄭)나라 27대 국군
수공
繻公
'''
''''''
희(姬)
''''''
정(鄭)
''''''
태(駘)
'''아버지'''
정공공(鄭共公) 희축(姬丑)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396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422년 ~ 기원전 396년
1. 개요
2. 당대 중국의 상황
3. 생애

[clearfix]

1. 개요


중국 전국시대 정나라의 제27대 군주. 정공공의 아들. 정유공의 동생. 일설에는 정 유공의 아들이라고 한다.

2. 당대 중국의 상황


이 당시에 본격적으로 전국시대가 시작되어 주나라에서 진(晉)나라의 신하인 위씨(魏氏), 한씨(韓氏), 조씨(趙氏)가 각기 위(魏)나라, 한(韓)나라, 조(趙)나라를 세워 진(晉)나라가 3개로 갈라지니 이것을 삼진(三晉)이라 한다. 제(齊)나라에서는 전화(田和)가 제강공을 몰아내고 제나라를 차지해버렸다. 정나라는 3진의 압박, 특히 한나라의 압박을 심하게 받았다.

3. 생애


정 수공 15년(기원전 408년), 한경후가 옹구(雍丘)를 쳐서 차지해 위협을 느낀 정 수공은 도읍인 신정(新鄭)의 수비를 강화시켰다.
정 수공 16년(기원전 407년), 정나라에서 한나라를 쳐서 부서(負黍) 땅을 차지했다.
정 수공 23년(기원전 400년), 정나라는 전력을 몰아 한의 수도인 양책(陽翟)을 포위했다. 그러나 그 틈을 노린 초(楚)나라가 정나라를 쳐서 결국 일을 그르쳤다.
정 수공 25년(기원전 398년), 정 수공이 상국 자양(子陽)을 베어 죽였다. 그 역풍은 곧 불어 닥쳤다.[1]
정 수공 27년(기원전 396년), 자양의 무리가 정 수공을 죽이고, 그 동생 을을 세우니 그가 바로 정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정 강공이다.
[1] 아마 공실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죽인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