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기(1851)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재기'''
'''鄭在蘷'''

<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청주 정씨[1]
<color=#fff> '''출생'''
1851년 9월 11일
경상도 성주목 대리방 수성동
(현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2]
<color=#fff> '''사망'''
1919년 4월 9일
경상북도 성주군
<color=#fff>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재기는 1851년 9월 11일 경상도 성주목 대리방 수성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곽종석, 김창숙, 장석영 등이 주도한 파리장서에 서명하여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청원을 하게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탄로나면서 성주경찰서로부터 호출장을 받자, 그는 이에 불응하고 자결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정재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28세 '''재(在)''' 재(載) 원(元) 항렬.[2] 청주 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정순영·정종호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