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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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옛 한화그룹 계열 손해보험사로 정부수립 이래 처음 순수 민족자본으로 세워졌다.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firstfire.co.kr'이었다.
2. 역사
1949년 3월 22일 노영빈, 서정식, 손해용, 설도식 등이 설립했다. 설립 초기에 주주들 간 갈등으로 1951년 무역업체 미진상사로 인수된 뒤 1955년 해상보험을 처음 취급했다. 그러나 1956년 미진상사의 대일 중석수출이 중단되어 경영이 어려워져 2년간 제일은행 관리를 받고 당대 국내 2위 재벌이던 삼호방직에 인수되었으나, 1968년 삼호그룹이 어려워져 한국화약으로 회사가 넘어갔다.
한화 인수 뒤 1976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1983년 한국자동차보험 독점체제 해제 후 자동차보험업에 손을 뻗어 번영을 누려왔다. 1991년 이동훈[1] 회장 취임 후 1996년 한화그룹에서 분리한 뒤 중장기발전계획 '전진 21'을 선포하며 로고를 타원형에 '1'자가 뻗어가는 모양으로 바꿨다.
과거 한화그룹의 품을 떠났다가 다시 한화그룹으로 돌아온 역사가 있다. 1990년대 초 범 한화가에서 한화그룹을 이어받은 김승연과 빙그레를 이어받은 김호연 형제 간의 상속 문제가 불거질 당시 장남인 김승연이 한화를 이어받고 김호연이 빙그레 지분을 가지고 계열 분리를 했다. 이 과정에서 김승연-김호연 형제의 누나인 장녀 김영혜가 제일화재를 지분을 들고 분리하면서 한화-빙그레-제일화재로 각각 나뉜 바 있다. 관련 기사
이후 1997년 보험업계 최초로 핸드볼팀을 창단했고,[2] 1998년에 한보상호신용금고 자산을 인수한 후 '새누리상호신용금고'를 출범시켰다. 1999년 서소문 사옥을 새로 개축했고, 같은 해 세실극장 네이밍 스폰서도 맡았다. 2002년에 인터넷 보험 시장에 진출했으나, 2000년대 중후반 이후 경영이 어려워져 매각설이 대두되어 2007년 메리츠화재가 주식 11.47%를 사서 인수코자 했으나, 이듬해 한화그룹으로 복귀 후 2009년 12월 30일 한화손해보험과 합병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3. 역대 임원
- 회장
- 정재호 (1958~1961)
- 신원식 (1975~1977)
- 이동훈 (1991~2001)
- 이사회 의장
- 김영혜 (2002~2008)
- 대표이사 회장
- 정재호 (1962~1968)
- 김종희 (1971~1978)
- 대표이사 부회장
- 김기택 (1994~1998)
- 김우황 (2001~2009)
- 대표이사 사장
- 노영빈 (1949/1950~1951)
- 서정식 (1949)
- 설도식 (1949)
- 이연재 (1951~1956)
- 민영재 (1956~1958)
- 정상희 (1958~1961/1965~1966)
- 임석춘 (1961~1965)
- 김영휘 (1966~1968)
- 정재원 (1968)
- 최병일 (1968~1969)
- 이예철 (1969~1970)
- 권병호 (1970~1972)
- 진경득 (1972~1975)
- 신원식 (1975)
- 박승만 (1975~1979)
- 김영철 (1979~1982)
- 조충훈[3] (1982~1984)
- 최용은 (1984~1987)
- 김기택 (1987~1994)
- 이동훈 (1994)
- 권처신 (2009)
- 사장
- 김영혜 (2001~2002)
- 대표이사 부사장
- 곽병화 (1999~2001)
- 김태언 (2003~2007)
- 김형철 (2004~2009)
- 대표이사 전무
- 곽병화 (1998~1999)
- 곽영구 (1999~2001)
- 김태언 (2001~2003)
- 김형철 (2003~2004)
4. 자회사
- 새누리상호저축은행: 현 한화저축은행.
[1]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아들.[2] 2003년 해체 후 선수단이 부산시설공단 핸드볼팀으로 인수됨.[3] 전 재무부 차관. 퇴임 후 한국화약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으나 1985년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