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제

 


성명
조강제(趙崗濟)
일본식 성명
巴山高芳
본관
함안 조씨[1]
생몰
1923년 3월 30일[2] ~ 1950년 12월[3]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4]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조강제는 1923년 3월 30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서 아버지 조용섭(趙鏞燮)과 어머니 홍복순(洪福順)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30일, 그는 교내 항일결사 '문예부(文藝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문예부는 민족문화존중과 항일의식의 고양을 목적한 결사로서, 부원의 비밀엄수 및 매주 토요일 작품 감상하고 비평할 것 등의 운동방침을 정하고 1940년 11월 말부터 1941년 3월까지 약 9회의 모임을 가지며 독립의식을 길러갔다.
그후 그는 1941년 3월에 대구사범학교를 자퇴하고 고향인 함안군에 내려가 사설 강습소를 열고 농촌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러다가 그해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불」이 일본 경찰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같은 해 9월 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그후 2년여 동안 미결수의 상태로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1943년 11월 30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형을 언도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5년 2월 만기출옥하였으며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1948년 국군에 입대하였으며, 6.25 전쟁이 발발하자 참전하였다가 1950년 12월경 전사하였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77년에는 건국포장,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29세손 제(濟) 항렬.[2] 음력 2월 14일.[3] 1952년 11월 26일 별세했다는 기록도 있다.#[4] 독립유공자 이규석·이수정·이태길·이희석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