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브록스턴

 

생년월일
조나단 로이 브록스턴
(Jonathan Roy Broxton)
생년월일
1984년 6월 16일
국적
미국
출신지
조지아 주 오거스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신체조건
193cm 135kg[1]
프로입단
2002년 드래프트 2라운드 LAD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5~2011)
캔자스시티 로열스 (2012)
신시내티 레즈 (2012~2014)
밀워키 브루어스 (2014~2015)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15~2017)
[image]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image]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절.
[image]
신시내티 레즈 시절.
[image]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
[image]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불펜 투수.
2002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드래프트 되어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였다. 본래 선발 투수로 드래프트 되었고, 마이너리그에서도 첫 몇 년간은 선발 투수로 경험을 쌓았지만 2005년 다저스의 마무리 투수였던 에릭 가니에의 부상 이후 다저스는 그를 불펜 투수로 전향시키게 되었다. 이후 착실하게 실력을 쌓으면서 05년 7월 2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 구원등판하여 1이닝을 던지며 강타자인 '''알버트 푸홀스'''를 상대로 생애 첫 메이저리그 탈삼진을 기록한다. 06년 부터는 본격적인 불펜의 핵으로 자리잡으면서 셋업맨과 당시 마무리 투수인 사이토 타카시의 백업 마무리 투수로 활동하였다.
브록스턴의 주무기는 전성기 시절 100마일 이상을 우습게 기록하는 패스트볼과 완연하게 휘는 고속 슬라이더이며 195cm의 키와 130kg의 우직한 체구와 공격적인 마인드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슬하에 자녀는 1남이 있다.
사이토가 팀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면서 2009년부터 본격적인 전업 마무리로 활동하여 다저스의 강력한 불펜진의 기둥이 되었다. 또한 생애 첫 올스타전 참가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 직전 부상을 당해 밀워키 브루어스의 마무리인 트레버 호프만이 대신 참가하게 되었다.
2010년 전반기까지는 그럭저럭 잘 활약했지만 2010년 중후반기부터[2] 하락세를 보이면서 마지막에는 마무리 자리까지 박탈당했다. 주무기였던 패스트볼의 구속이 하락하며 문제가 생긴듯. 전년도에 비해 2마일이 떨어졌다.
결정적으로 이 투수의 문제는 전성기 시절엔 구속은 100마일이 나왔지만 패스트볼 로케이션이 좋지 않고 공끝이 지저분하지 않아서 전력투구를 하더라도 패스트볼이 한가운데 몰리는 실투가 잦아서 난타를 당하는 경우가 족족 있다. 한마디로 한기주스타일. 종종 큰 점수차의 여유있는 상황에서도 경기를 뒤집히는 대형불쇼를 저지르는가 하면 위기상황에 몰리면 덩치에 안 어울리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진땀을 흘리는 모습을 자주 연출한다. 겉으로 보기엔 덩치도 있고 한성깔 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새가슴 투수의 전형으로 위기에 몰리면 구속에만 의지해서 막던지다가 패배를 자초하는 타입이다.
이런 새가슴의 백미는 2008, 2009년 2년 연속으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에서 다 잡은 경기를 내주면서 플레이오프의 흐름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 장면. 게다가 2010년 최후의 마무리경기를 보면 3점차에서 등장해 4실점하고 패전투수를 기록하고 결국 시즌 중에 쫒겨난다. 또다른 문제는 위에 언급한 체중. 간단히 말해 '''이대호가 투수를 하는 모양새'''인데, 타자 이대호도 무릎과 발목에 문제가 있는데 이 선수가 멀쩡할 리가 없다. 이후 역시 무릎부상에 시달리면서 평가를 까먹게 되었다.
2011년엔 다시 마무리로 복귀했지만 14경기 12.2이닝 10삼진 9볼넷 평균자책점 5.68이라는 막장성적을 찍고 있던 중에 팔꿈치에 부상을 당해 부상자 명단에 오르더니 그대로 시즌아웃당했다.
결국 팔꿈치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았지만 시즌 종료 후 FA시장에 나와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1년 400만 달러의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로열스에선 호아킴 소리아 앞에 나오는 셋업맨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였지만 3월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소리아가 토미 존 서저리를 받게 된 후 마무리 후보로 꼽혔다.
2012년 시즌엔 결국 어부지리로 마무리 자리를 따낸 후 기대치에 비하면 비교적 선전했다. 2.27의 평균자책점에 23세이브를 따낸 것. 그러나 FIPWHIP이 너무 높았다는 게 흠이었다. 한마디로 '''꾸역꾸역''' 막아냈던 것. 한편으로는 그라운드볼 비율이 2009년 리즈시절만큼 올라왔지만 탈삼진 비율은 9이닝당 6개대로 좋지 못했다.
2012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7월 31일에 맞춰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다. 레즈에선 아롤디스 채프먼의 앞에 나오는 8회 셋업맨을 맡게 되었다. 시즌 종료 후 3년 $21M 계약에 합의하였다. 채프먼이 선발로 전향한다는 전제 하에 레즈의 마무리로 활약할 것으로 보였지만 채프먼의 선발 전향이 없던 일로 되면서 다시 불펜 투수로 나오게 되었다.
이후 신시내티 레즈에선 셋업맨으로 무난한 활약을 하다가 2014년 8월 31일 (현지시각), 밀워키 브루어스로의 웨이버 트레이드가 결정되었다.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의 앞에서 활약하였다. 밀워키에서 약 1년간 뛰면서 낸 성적은 51경기 1승 3패 13홀드 5.55. 입단 당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1년 뒤 7월 31일에 브루어스에 외야 자원 말릭 콜리모어를 남겨 주고 다시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015 시즌 이후 2년 7.5M에 계약을 맺었다.
2017 시즌에 크게 부진하면서 결국 5월 31일자로 방출당했다. 방출당한 직후 단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불펜 안정을 위해서 그랬다고 언급. 2년간 총 750만불에 계약했고 팀이 가난한 축에 속하는 카디널스인걸 감안하면 상당히 과감한 결정이다. 이후 브록스턴은 그대로 은퇴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하였다.

[1] 믿기 힘들지만 '''공식적인 프로필'''이다.[2] 특히 2010년 6월 27일 뉴욕 양키스와의 인터리그 홈경기가 컸다. 당시 브록스턴은 4점차로 앞서던 9회초에 등판하는데 무려 48구를 던지며 동점을 허용했고(...) 그 뒤로 멘붕이 와서 7월부터 9월까지 6.59 ERA와 3할 이상의 피안타율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