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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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프로야구 선수였으며 포지션은 투수였다. 고교시절 3년동안 수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도 4실점에 불과하였고, 150km대의 빠른 공과 제구력 까지 갖추면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투수라는 소리를 들었다. 확실히 재능만은 탈KBO급 투수였다. KIA 입단후에는 타이거즈의 살림꾼이자 애증의 존재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과 선수 본인의 엄청난 의지로 재기 성공. 1987년 광주광역시 출신. 최고 구속은 무려 '''158km/h'''[5]
아래 항목에서 자세히 서술되겠지만, 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승우승으로 말미암아 야구팬이 급작스럽게 많아지면서 팬들이 베이징때 보인 부진, 그리고 그 이후의 부상으로 고생한 한기주의 모습만 보면서 별 볼 일 없는 투수로 무시하거나 조롱하는데 2006년 데뷔 시즌에 바로 10승을 기록하면서 서정환 시절 암울하던 '''꼴찌팀 기아 타이거즈의 수호신이자 타이거즈 팬들의 몇 안 되는 자부심''' 같은 선수였다. 당시를 기억하는 올드 타이거즈 팬들로서는 속꽉남이니 99.9니 하고 조롱받으며 불같은 강속구를 잃어버리고 변화구로 타자와 악전고투하는 최근의 한기주를 보면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릴 뿐.
2016년에는 불같은 강속구를 뿌리는 파이어볼러에서, 기교파 투수로 변신에 성공했다.
2017년 11월 29일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이영욱을 상대로 1: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이후 다시 부활하지 못하고 2019년 11월 은퇴하였다.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소재한 우신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투수코치로 활동하다가 5개월만에 나오고 야구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2020년 우신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부임하였다. 기아 타이거즈 시절 같이 마운드를 지켰던 선배인 조태수 감독을 보좌하게 된다.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팀원들의 부상 방지에 초점을 두고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엠스플 인터뷰] 한기주 “딸이 5살 때까지 뛰고 싶었는데…남은 야구 인생은 좀더 행복했으면”
이후 우신고 코치생활을 접고 KIA 타이거즈 입단 동기였던 김준무와[6] 함께 '87 베이스볼 클라쓰'라는 야구 아카데미를 열었다. # 아직 프로 코치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4. 선발 도전기
한기주의 선발은 KIA팬들과 야구관계자들 사이에 오랜 떡밥으로 작용했다. 확실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선발투수로도 좋은 면모가 있었고 프로데뷔 첫 해에도 선발로 뛰면서 3점대 방어율에 10승을 기록했다.[7]
한기주 본인도 선발투수에 대한 의지가 강해서 2009년 4월 28일, 국내 언론에다가 '''선발로 뛰고싶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어떤 팬들은 자기 욕심만 차리냐고 발끈했고, 한기주를 동정하는 팬들은 한기주도 나름대로 고생했는데 알아주지 못한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보면 선발을 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는 당장 하고 싶다는 소리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수술을 시켜달라는 소리가 아니냐는 분석도 있기는 했었다.
결국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면서 본인은 선발에 대한 욕심이 있음을 숨기지는 않았고 조범현 감독도 의사를 존중해서 선발로 등판 시켜보았지만 역시 긴 이닝을 소화하기는 당장은 무리라는 판단에 따라서 다시 마무리로 전향시켰다.
또한 조범현 감독이 뜬금없이 심동섭의 선발 전향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한기주를 마무리로 고정시키려는게 아닌가라는 분석도 나왔다.
사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기주가 신용운 이후로 가장 성적이 좋았던 클로져였던건 사실이고, 보통 강속구를 가진 우완 정통파 투수가 이상적인 클로져 투수감이기도 한 탓에 조범현 감독이 한기주 마무리에 여전히 미련을 두고있었을 수도 있다. 또한 심동섭이 마인드면이나 본인의 의사로 보면 클로져감이긴 하나 경험이 부족하고 좌완 투수라는 점에서 안정적인 성향의 조범현 감독이 클로져보다는 선발이 낫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란 가능성도 있다.
다만 심동섭이 척추분리증을 앓았다는 점에서 긴 이닝을 소화할지의 능력에 의문부호가 달렸고, 한기주는 마인드상 클로져로서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기 때문에 2011 시즌이 끝나고 KIA의 성적에 따라서 조 감독의 구상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일단 한기주가 선발로 정착하려면 긴 이닝을 소화할 능력과 결정구의 장착이 절실하다. 윤석민의 경우처럼 빠른 직구+고속 슬라이더 위주의 파이어볼러식의 선발투수가 되려고 한다고 해도 결국 문제는 이전의 빠른 직구의 회복 여부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범현 감독은 9월 29일 잠실 두산전에 한기주를 선발로 예고하면서 '''포스트 시즌에 한기주를 선발로 쓰겠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믿을 만한 선발투수가 윤석민-서재응밖에 없는 상황에서 적어도 3명의 선발투수는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 한기주를 선발로 내세울 복안이었던 듯하다. 한기주는 남은 두산전 및 SK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최소 4이닝 정도를 던지면서 선발로 적응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선발투수로 뛰더라도 5이닝 정도는 막아줘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잘 될지는 미지수.
일단 9월 29일 등판에서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해 전망을 밝게 했다. 포스트시즌에서 선발로 호투할 경우 2012 시즌에 본격적으로 선발로 풀시즌을 뛸수도 있기 때문에 한기주로서나 팀으로서나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조범현 감독이 사퇴하고 후임으로 선동열 감독이 부임하면서 한기주의 2012년 보직에도 관심이 쏠렸다. 한기주 자신은 선발로 뛰는 걸로 거의 확정하다시피하고 있다지만 불펜 강화에 초점을 맞출 선동열 감독의 관점에서는 한기주를 마무리로 쓸 수도 있기 때문. 물론 선동열 감독이 조련한다고 해서 한기주가 '''오승환 급이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마무리 훈련 등을 거친 뒤에 주목해야 할 듯.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시즌 개막 후 마무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기주 입장에서는 원하던 선발을 못 하게 되었으니 아쉬울 것이다.
재활하던 시기에도 지속적으로 불펜보다는 선발에 중점을 둔 기사들이 올라오면서 팀에서도 본인의사를 존중하는 듯 하고, 2015시즌 퓨처스리그에서 본인이 원해온 선발로 3경기 연속 출전하면서 앞으로 불펜 기용은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과연 많은 투구수를 소화할 수 있을지가 의문인데다가, 2016시즌 헥터 - 지크 - 양현종 - 윤석민 - 임준혁으로 기아의 선발 로테이션이 꽤 단단한 편이라 한기주가 비집고 들어가기는 당장은 힘들어 보인다. 물론 2015년에 재활이 끝난 투수를 16년에 바로 고정선발로 투입하는 짓은 선수를 위해서도 안 하는 것이 맞고. 2016년에 땜빵 선발로 몇 번 올라오기도 했고, 감격의 선발승도 거두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선발로서는 실패하였다. 결국 2017년은 거의 2군 붙박이로 지냈고, 이후로는 본인도 선발에 대한 미련을 버려서, 한기주의 선발 도전기는 이로서 일단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18년 삼성으로 이적한 후에도 불펜으로 출장하는 중. 과거 선발을 뛰었던 경험이 있어 가끔 로테이션이 꼬였을때 땜빵으로 한두경기 정도를 뛰어줄 수는 있지만, 선발 로테이션 진입은 이제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것을 팀도, 본인도 납득한 상태.
5. 혹사의 피해자
한기주는 프로에 데뷔하기 전부터 혹사로 인해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었으나 번번히 수술할 기회를 놓치면서 다시는 이전과 같은 강력한 속구를 던지지 못하게 되었다.
한기주가 처음 본인의 팔꿈치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05년 KIA에 입단이 확정된 후 미국에서의 정밀검사를 통해서인데 당시에 팔꿈치 인대 3개중 2개가 90%정도 손상이 되었으며 수술을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재활을 통해서도 치료할 수는 있다고 했다. '''단 적정 투구수는 40개이며 50개 이상은 던지지 않도록 관리해 준다는 전제 하에.'''
그러나 당시 기아의 감독은 혹사를 통해 임창용, 신용운의 팔을 망가뜨린 서정환이었고 투구수 관리를 받아야 할 한기주는 2006년 데뷔 시즌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140이닝이나 투구를 했다.
2006년 선발로 나올 때 투구수가 50개 이상이 되면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 두고 체력 부족 등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지만 한기주의 팔꿈치상태에서 적정 투구수를 넘었기 때문에 급격하게 구위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2007시즌에는 선발로 전향한 윤석민을 대신해서 마무리 투수로 전향해서 70이닝 평균자책점 2.43의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마무리투수가 55경기 70이닝을 던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서정환 감독은 한기주의 투구수를 관리하지 않으면서 한기주의 팔꿈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2007시즌 후 본인도 수술을 원했고 당시 단장도 한기주를 수술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조범현 감독을 비롯한 현장에서는 '''갑자기 마무리 투수가 빠지면 안 된다면서 한기주의 수술을 반대했고''' 한기주는 원래는 수술을 원했었지만 조범현 감독의 요청에 따라 1년 더 뛰기로 결정했다.[8]
2008시즌 한기주는 팔꿈치는 투구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면서 팔꿈치를 사용한 투구가 어려워지자 옆구리 근육을 키워서 팔꿈치가 아닌 옆구리 근육을 이용해서 투구를 했었다.
하지만 30개 이상의 공을 던지면 급격히 페이스가 떨어지고 통증이 증가했었고 2008시즌 중반부터는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2008시즌 후 한기주는 또 다시 수술을 받을 것을 요청했으나 조범현 감독은 또 거절했고, 2009시즌에도 수술받지 못한 채로 투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최고의 재능을 가진 한기주일지라도 이미 망가진 팔으로 4년을 버티는 것은 무리였던 것 같다. 2009시즌 이전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마무리 자리를 유동훈에게 내주었고 아이러니하게도 한기주가 가장 부진했던 2009시즌 KIA 타이거즈는 우승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9시즌이 끝난 후 그제서야 조범현감독은 한기주의 수술을 허락해줬다. 당시 2009시즌 유동훈, 손영민, 곽정철 등 수준급의 불펜진이 나오자 이전처럼 한기주가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조범현 감독도 수술을 허락해준 듯. 그러나 한기주의 팔꿈치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망가지게 되었고 미국행을 꿈꾸던 최고의 유망주는 그저 평범한 투수로 은퇴하게되었다.
즉 서정환, 조범현 이 두 감독의 성적 욕심이 한국 최고의 유망주였던 한기주의 팔을 망쳤다.
6. 여담
양현종과 더불어 소녀시대 마니아인듯 하다. 서현에게 싸인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 밝히길 당시 소녀시대가 시구하러 왔었는데 어쩌다가 같이 싸인받으러 가게 된 것이라고 한다.
2013년 10월 4일에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이유는 박동희가 한기주와 일본 고시엔의 영웅 스지우치의 부상을 예로 들며, 선수를 망가트리는 고교야구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박동희의 야구탐사 - 누가 한·일 ‘괴물’을 사라지게 했나 그런데 박동희가 "퇴물"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쓰면서 정작 기사 내용과는 관계없이 퇴물이다 아니다 혹은 한기주 퇴출시켜라 라는 식으로 댓글에서 키배가 벌어졌다. 웃긴 것은 퇴물이라 불렀다면서 빡친 것도 기아팬이고 한기주 제발 팔라면서 한기주 욕하고 있는 것도 기아팬들(...).
역대 최대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으나 선수 생활 내내 부상에 시달린 탓에 계약금보다 누적 연봉이 적은 선수이다.
팀 동료 최지광의 안경을 쓴 모습과 상당히 닮았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1] 정 못믿겠다면, 링크로 참조하면 된다. 사실 병역연기를 위해 대학교에 학적만 올려놓는 건 흔한 일이다. [2] 기아의 한기주~ 기~아~의 한~기주~ 승~리를 위~하여~ 워~어어 워~어어[3] 과거 이재주의 응원가였다.[4]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 '''금메달''' 획득.[5] 2008년 5월 8일 광주 삼성전에서 전광판에 160km/h가 찍힌 적은 있는데, 비공인에 그쳤다.[6] 서울고 출신의 내야수. 2008년까지 기아에서 활동하다 금방 은퇴하고 아마추어 야구쪽에서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7] 사실 후반기에는 불펜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온전히 선발로만 뛰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8] 참고로 비슷한 상황이었고 역시 수술이 필요했었던 신용운에게도 조범현 감독은 1년 더 뛸 것을 요구했지만 신용운은 이를 거절하고 경찰청으로 입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