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환(독립운동가)
[clearfix]
1. 개요
한국의 공산주의자. 한국의 항일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조문환은 1907년 11월 24일 전라남도 영암군 군시면 교리(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조선일보사 목포지국 기자로 근무하던 중 1926년 목포무산청년회와 목포청년동맹 상무서기로 활동하면서 청년운동에 앞장 섰다.
또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장래의 주역이 될 청소년의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소년운동에도 힘을 기울여 갔다. 소년운동의 통일을 목적으로 1927년 7월 30일 경성부 시천교당에서 열린 조선소년연합회(朝鮮少年聯合會) 발기대회 때 방정환 등과 함께 창립준비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그해 10월 16일 천도교 기념관에서 열린 조선소년연합회 창립대회에서 마찬가지로 방정환 등과 함께 중앙집행위원 및 조사연구부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민족통일전선체인 신간회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목포지회 설립에도 힘을 쏟아 그해 12월 목포지회 정기대회에서 간사로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그러다가 1928년 8월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개최된 전남소년연맹(全南少年聯盟) 간담회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그 직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광주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다가 23일 불기소처분으로 석방되었다.#
그해 12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목포야체이카[3] 소속으로 활동하였는데, 곧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이 일어나 이에 연루,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30년 12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2 2년 7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1935년 5월 20일 동아일보사 영암지국장에 임명되었다.#
그후 조용히 지내다가 1949년 10월 21일 별세하였다.
3. 기타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