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조씨

 



[image]
'''昌寧 曺氏
창녕 조씨
'''
}}}
'''관향'''
경상남도 창녕군
'''시조'''
조계룡(曺繼龍)
'''중시조'''
조겸(曺謙)
'''집성촌'''
서울특별시 서초구·중구
대구광역시 달성군·중구
강원도 강릉시
경기도 여주시·파주시
충청북도 옥천군·진천군
충청남도 금산군·보령시
전라남도 담양군·영암군
전라남도 보성군·진도군·화순군
경상북도 고령군·김천시·상주시
경상북도 성주군·영천시·울릉군
경상남도 밀양시·산청군·의령군
경상남도 창녕군·창원시·합천군
황해도 봉산군·옹진군
평안남도 강서군·대동군
평안북도 박천군
함경남도 고원군·홍원군
'''인구'''
366,798명(2015년)
'''링크'''
[1]
1. 개요
2. 역사
3. 과거합격자
4. 인구 변화
5. 분파
6. 항렬
7. 집성촌
7.1. 서울·경기·강원
7.2. 경상
7.3. 충청
7.4. 전라
7.5. 북한
8. 주요 인물


1. 개요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경상남도 창녕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조계룡(曺繼龍).

2. 역사


창녕 조씨의 시조 조계룡은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사위라 전해진다. 조씨 득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한림학사 이광옥(李光玉)의 딸 예향은 창녕현 고암촌(鼓岩村) 태생으로 그녀가 자라서 혼기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복중에 병이 생겨 화왕산 용지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올리니 신기하게 병이 완쾌되었고 몸에는 태기가 있었다. 어느날 밤 꿈에 한 남자가 나타나 "이 아이의 아버지는 용의 아들 옥결이다. 잘 기르면 자라서 경상이 될 것이며 자손만대 번영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 후 달이 차서 진평왕 48년(626)에 아들이 태어나니 용모가 준수하고 겨드랑이 밑에 조(曺) 자가 붉게 씌여져 있었다. 이것을 본 학사는 이상히 여겨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자 왕도 신기하게 여기며 성은 조(曺), 이름은 계룡(繼龍), 자는 인경(鱗卿)이라 하사하였다고 한다. 뒤에 진평왕이 그를 부마로 삼음으로써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해지고 벼슬이 보국대장군 상주국대도독 총지휘제군사(輔國大將軍 上柱國大都督 總指揮諸軍事) 금자광록대부 태자태사(金紫光祿大夫 太子太師)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曺)씨 성을 가진 인물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심지어 필사본 화랑세기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진평왕의 부마라고 하지만 실제 어떤 공주와 결혼하였는지는 도무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잘 알다시피 진평왕의 딸은 천명공주, 선덕여왕, 선화공주 세 사람이 알려져 있으며, 천명공주김용수에게, 선화공주백제 무왕에게 시집 갔다. 선덕여왕은 삼국사기에는 남편에 관한 기록이 없지만 삼국유사와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남편이 여럿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실제 신라에는 부원군이라는 작호가 없었으며[2], 조계룡이 받았다는 여러 벼슬 중 하나인 보국대장군 작호는 진평왕 대에도 존재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그가 받은 작위와 벼슬은 모두 그보다 후대인 고려의 관직명에 가깝다. 또한 그의 외조부 이광옥이 한림학사를 지냈다고 하여 한림대(翰林臺)[3]의 직위를 역임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림대의 본래 명칭인 통문박사(通文博士)가 한림대로 개칭된 것이 이광옥이 살던 시대보다 후대인 경덕왕 대이기 때문에, 아마도 기록을 모으는 과정에서 관직명에 혼선이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계룡 이후의 세계(世繼)는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고 신라 말 아간시중[4]을 지낸 조흠의 아들 조겸이 고려 태조신덕왕후의 딸 덕공공주와 혼인하였으며 태악서승[5]이란 벼슬을 지낸 기록이 있어 조겸을 중시조로 받들고 있다고 한다. 단, 조겸과 혼인했다는 왕건의 딸 중 덕공공주라는 인물은 고려사 등 정사는 물론 야사에서도 보이지 않는 인물로 그가 정말로 태조의 부마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한 고려사고려사절요에서는 조겸 등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그 후손들에 대한 기록도 족보에만 전해질 뿐 다른 사료에는 전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렵다.[6]
한편, 창녕 조씨 인물들이 정사에서 뚜렷하게 행적이 남겨진 것은 고려 후기부터이다. 특히 이 중에서 위화도 회군으로 유명한 조민수를 꼽을 수 있는데, 조민수(曺敏修)는 창성부원군이라는 작위를 받은 바 있으며, 이것은 조계룡이 받았다는 작위의 이름과 동일하다. 그리고 공민왕 때 찬성사에 오른 조익청(曺益淸)과 고려 말 태학사를 지내고 여말선초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조의생(曺義生)[7]과 역시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으로 제학을 지낸 조희직(曺希直) 등이 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삼강행실도언해에는 고려 고종 40년(1250)에 지금의 춘천 지역에서 몽골군에 항전하다 아내와 같이 불속에 뛰어들어 죽은 조효립(曺孝立)의 기록이 실려있다.
창녕 조씨는 조선시대에 들어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 세종 시대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조상치(曺尙治),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고 영의정을 지낸 조석문(曺錫文), 성종 때 성리학의 대가로 두시언해와 만분가를 지은 대문장가인 조위(曺偉), 조위의 동생으로 시에 뛰어났으며 중종의 명으로 2륜행실도를 편찬한 조신(曺伸),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이자 북인의 거두로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등의 의병장들을 배출한 조식(曺植) 등의 활동이 그것이다.

3. 과거합격자


'''조선시대'''
'''종류 '''
'''합격자 수(명)'''
문과
113
무과
202
상신[8]
1
왕비
-

4. 인구 변화


  • 1985년 72,213가구 299,669명
  • 2000년 105,282가구 338,222명
  • 2015년 366,798명

5. 분파


조씨(曺氏)는 창녕 조씨가 단일본이며, 분파는 약 49여 개에 이른다. 같은 조(曺)씨이면서 본관을 달리하는 집안이 있는데, 그 수가 많지 않을 뿐더러 모두 한 집안에서 나왔으므로 단일본으로 본다.
  • 감사공파(監司公派)
  • 낭장공파(郎將公派)
  •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
  •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 문익공파(文翊公派)
  • 문장공파(文莊公派)[9]
  • 문정공파(文貞公派)
  • 문간공파(文簡公派)
  • 밀직사공파(密直使公派)
  • 병조참의공파(兵曹參議公派)
  • 부사직공파(副司直公派)
  • 부위공파(副尉公派)
  • 부제학공파(副提學公派)
  • 병사공파(兵使公派)
  • 부사공파(府使公派)
  • 상호군공파(上護軍公派)
  • 시직공파(侍直公派)
  • 승지공파(承旨公派)
  • 사의공파(司議公派)
  • 사성공파(司成公派)
  • 사정공파(司正公派)
  • 사직공파(司直公派)
  • 송학공파(松鶴公派)
  • 수찬공파(修撰公派)
  • 시랑공파(侍郞公派)
  • 시중공파(侍中公派)
  • 양평공파(襄平公派)
  • 지평공파(持平公派)
  • 직장공파(直長公派)
  • 장양공파(壯襄公派)
  • 좌시중공파(左侍中公派)
  • 중추공파(中樞公派)
  • 지중추공파(知中樞公派)
  • 진사공파(進士公派)
  • 찬성공파(贊成公派)[10]
  • 청구당공파(靑邱堂公派)
  • 창산군파(昌山君派)
  • 참의공파(參議公派)[11]
  • 참판공파(參判公派)
  • 충간공파(忠簡公派)
  • 충순위공파(忠順衛公派)
  • 참의공파(參議公派)
  • 충정공파(忠貞公派)
  • 충익공파(忠翼公派)
  • 태복경공파(太僕卿公派)[12]
  • 태학사공파(太學士公派)
  • 판윤공파(判尹公派)
  • 헌납공파(獻納公派)
  • 현감공파(縣監公派)
  • 희천공파(熙川公派)
  • 효강공파(孝康公派) [13]

6. 항렬


오늘날의 창녕 조씨의 항렬은 비교적 근래에 재정립한 것이다. 창녕 조씨는 조선 중기 이후 각 파에서 항렬자를 엄격히 제정하여 사용하다가, 갑술대동보(1880)를 발간할 때 전국의 종친들이 모여 각 파에서 사용하는 항렬자를 통일하였다. 고려 중기의 인물로 추정[14]되는 삼송 형제(송무松茂, 송학松鶴, 송군松君)[15]을 1세로 하여 세대수를 초기화하고 그 22세손을 승(承) 자로, 23세손을 병(秉) 자로 정한 후 그 이후 세대부터 각 항렬별로 세 자 씩의 돌림자를 정했다. 돌림자의 원칙은 오행(五行)인 목화토금수를 부수로 하는 글자로 정했다. 각 세대당 세 자씩 돌림자를 정한 이유는 같은 이름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분파마다 상이하지만 오늘날 활동하는 창녕 조씨의 항렬은 대략 24세에서 26세인데, 오랜 역사에 비해 대수가 짧아 보이는 것은 고려 중기를 기준으로 세대수를 한 번 재정립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2세
◯承(승), ◯興(흥)
23세
秉(병)◯, 柄(병)◯, 相(상)◯
24세
◯煥(환), ◯燮(섭), ◯烈(열)
25세
圭(규)◯, 喜(희)◯, 在(재)◯
26세
◯鎬(호), ◯鉉(현), ◯鐘(종)
27세
永(영)◯, 海(해)◯, 洙(수)◯
28세
◯根(근), ◯植(식), ◯穆(목)
29세
容(용)◯, 炯(형)◯, 然(연)◯
30세
◯載(재), ◯坤(곤), ◯塤(훈)
31세
鎰(일)◯, 鍵(건)◯, 鏞(용)◯
32세
◯泰(태), ◯淳(순), ◯淵(연)
33세
東(동)◯, 相(상)◯, 英(영)◯
34세
◯燮(섭), ◯烈(열), ◯杰(걸)
35세
均(균)◯, 重(중)◯, 垣(원)◯
36세
◯鎔(용), ◯鎭(진), ◯錫(석)
37세
潤(윤)◯, 準(준)◯, 汶(문)◯
38세
◯稷(직), ◯栢(백), ◯杓(표)
39세
熙(희)◯, 煐(영)◯, 螢(형)◯
40세
◯堉(육), ◯墩(돈), ◯培(배)

7. 집성촌



7.1. 서울·경기·강원


  •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 서울특별시 서초구 염곡동 : 부제학공파
  •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산리
  •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

7.2. 경상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수리리
  • 대구광역시 중구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16]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17]·신리·예지리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매호리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흥산리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오계리[18]·원기리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병암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금호리·삼창리[19]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20]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대하리
  •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사리[21]
  • 경상남도 의령군 화정면 상정리[22]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도야리
  •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간상리·대암리·원촌리
  •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 이방리
  •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감계리[23]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도옥리·봉곡리·안성리
  •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김봉리·압곡리
  •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덕봉리

7.3. 충청


  •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신동리
  •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봉당리

7.4. 전라


  •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
  •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대곡리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24]·남풍리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
  •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앵무리[25]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감도리[26]·수만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대포리·백용리·복암리·서성리·운농리·장동리·청궁리
  •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남치리·수리·옥리·용곡리
  •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대비리[27]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한계리

7.5. 북한


  • 황해도 봉산군 영천면 가산리
  • 황해도 옹진군 부민면 광평리·부암리
  •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반일리[28]
  •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원로리
  • 평안북도 박천군 남면 남송리
  • 함경남도 고원군 하발면 대수곡리
  • 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 도룡리

8. 주요 인물


나무위키에 등재되어 있거나 등재기준을 만족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 조익청 : 고려 말의 명신. 충숙왕 때 처음 중랑장으로 벼슬을 시작하였고, 충혜왕 즉위 후 충숙왕이 복위하자, 충혜왕 시기의 간신을 제거하였으나 얼마 안 되어 충숙왕이 승하하고 충혜왕이 다시 왕위에 오르자 좌천되었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다시 중용되어 찬성사가 되고, 1352년에는 공민왕원나라에 있을 때 호종한 공으로 연저수종공신(燕邸隨從功臣) 1등에 올랐으며, 이어 좌정승에 올라 하성부원군(夏城府院君)에 봉해지고 순성직절동덕찬화공신(純城直節同德贊化功臣)의 칭호를 받았다. 1376년(우왕 2) 공민왕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 조민수 : 고려 말의 권문세족장군. 위화도 회군 당시 좌군도통사로서 이성계와 함께 회군하였고 이후 좌정승에 올라 창왕을 옹립하였으나, 이성계파의 탄핵을 받고 유배에 오름. 문하시중을 지냄.
  • 조상치 : 고려 말 명신인 조익청의 손자. 세종 대에 좌정언('정언'은 승지의 옛 이름)과 집현전 학사 등을 지냈으며, 단종 대에 집현전 부제학이 되었다.[29]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후 예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사직하고 낙향하여 후학을 길렀다. 많은 글을 남겼으나 사망 후 모두 소각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자신의 묘비에는 ‘노산조 부제학 포인 조상치의 묘[魯山朝副提學逋人曺尙治之墓]’라고 쓰라는 유언 또한 남겼다. '노산조'라고 함은 수양대군의 신하가 아님을 밝힌 것이고, '부제학'은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기재한 것이며, '포인'이라 함은 망명하여 도망간 신하를 뜻하는 것이다.
  • 조석문 : 조민수의 막내 동생으로 공신이자 서성군(瑞誠君)에 봉해진 조경수(曺敬修)의 손자로 세조영의정을 지냈으며,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움.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 조위 : 조선, 성종대. 조민수의 막내 동생 서성군(瑞誠君) 조경수(曺敬修)의 증손자이며,성리학의 대가로 두시언해와 만분가를 지었으며 대문장가이다. 도승지,성균관대사성,관찰사,호조참판 등을 역임했으며 호는 매계(梅溪),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 조식 : 호 남명.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로, 영남학파의 거두. 주로 실천적 입장에서의 유학을 주장하였으며, 인(仁)을 중시한 퇴계 학파와 달리 의(義)를 중시하여 실제로 그의 제자 중 상당수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웠다. 대표적인 인물이 곽재우. 붕당 중 북인의 뿌리로 알려져 있다.
  • 조만식 : 호 고당. 일제강점기물산장려운동을 주도했으며, 비폭력 계몽주의 노선을 택해 '조선의 간디'라 불린다. 해방 후 고향인 평양 지역에 남아 공산화 되어 가는 북한의 현실과 맞서 싸우다 결국 공산당에 의해 처형.[30]
  • 조봉암 : 호 죽산.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이끌었다. 이후 자유당의 독주와 이승만의 독재에 맞서 진보당을 결성하여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나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처형 되었다. 이후 2009년 복권 되었다.[31]
  • 조성환 : 호 청사. 독립유공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북로군정서 군사부장, 신민부 외교부장 및 집행위원, 한국독립당 대표[32]
  • 조국 : 前 법무부장관, 前 청와대 민정수석, 교수
  • 조규일 : 前 경상남도 부지사, 現 진주시장[33]
  • 조대환 : 변호사, 前 청와대 민정수석
  • 조해녕 : 前 창원시장, 前 대구광역시장
  • 조희연 : 사회학자, 現 서울특별시교육감
  • 조정환 : 前 38대 제2작전사령관, 前 43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 조규갑 : 제헌 국회의원
  • 조영규 : 호 관해. 의사, 제헌 국회의원, 前 3대, 4대, 5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조일환 : 호 일송. 前 4대, 5대, 7대, 8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조기상 : 前 정무제1장관, 前 11대, 12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조일현 : 前 14대, 17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조해진 : 前 18대, 19대, 現 21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조명희 : 現 21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조오섭 : 現 21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조훈현 : 프로 바둑기사, 前 20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조보아 : 배우
  • 조수향 : 배우
  • 조승우 : 배우
  • 조여정 : 배우
  • 조정석 : 배우
  • 조수미 : 성악가
  • 조방헌 : 가수[34]
  • 조성모 : 가수
  • 조성현 : 가수[35]
  • 조은심 : 가수[36]
  • 조규현 : 보이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 조미연 :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멤버이자 K/DA의 리드보컬 겸 센터.
  • 조승연 : 보이그룹 유니크의 멤버이자 솔로가수 WOODZ로 활동중
  • 조세림 : 걸그룹 에버글로우의 멤버
  • 조유리 : 걸그룹 IZ*ONE의 멤버
  • 조하슬 : 걸그룹 이달의 소녀의 멤버
  • 조세호 : 개그맨, MC
  • 조상우 : 야구선수
  • 조웅천 : 야구선수
  • 조경규 : 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37]
  • 조광현 : 치과의사, 인터넷 유명인.

[1] 유효기간 만료로 현재 접속 불가.[2] 무열왕때까지 갈문왕이라는 칭호를 썼다.[3] 통일신라시대 왕명을 문서로 작성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던 곳으로 신라의 한림대는 당나라의 한림원(翰林院)을 모방하여 경덕왕대에 종래의 통문박사(通文博士)를 개칭한 것으로, 거기에는 한림랑·한림대조(翰林待詔)·한림서생(翰林書生) 등의 관원이 있었다.이들은 이른바 한림대의 학사직(學士職)으로, 이 관직에는 문장과 학문에 능한 사람들이 주로 임명되었다. 특히 한림대의 최고 관직인 한림랑은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당대의 문사(文士)들로써 충당하였고, 6두품 출신이 이 관직에 많이 진출하였다. 한림랑에는 관등이 사찬(沙飡) 정도인 사람이 임명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아간(阿干) 또는 아찬(阿飡)은 신라 17관등 중 여섯 번째 등급으로,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상위 관등이었다. 아찬으로서 시중에 임명된 사람은 898년(효공왕 2)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시중에 임명된 계강(繼康) 등이 있다.[5] 태악서(太樂署)는 고려 시대에 음률의 교열(校閱)을 맡아보던 관아로, 충렬왕 34년(1308)에 전악서로 고치고 뒤에 여러 차례 전악서라는 이름과 번갈아 가면서 바뀌었다.[6] 창녕 조씨 족보에 따르면 조계룡으로부터 조겸까지는 기록이 실전되어 조계룡-조응신-조수형-조돈-조흠-조겸 겨우 6대만 있다. 진평왕의 재위기(579~632)에서 신라 말까지의 시간적 간격은 약 300년 정도인데, 한 세대를 30년으로 계산하면 겨우 180년밖에 안 되고 교차검증이 어려우므로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다. 다만 족보 항목에도 나와 있듯 다른 많은 집안들 또한 시조와 그로부터 몇 세대까지는 전설이나 설화의 영역에 가깝게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전승은 오늘날에만 벌어지는 일이 아닌 것이, 조선 중기의 사람인 김종직마저도 자신의 선조에 대한 고찰에서 이렇게 전승된 자신의 시조를 확인할 길이 없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비단 족보가 아니어도 행장록 등에서도 김억추와 같이 실제 역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으니, 조상에 대한 기록을 무조건 역사적 사실로 믿기보다는 양반가에서 조상을 존숭하려는 의도로 기술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다.[7] 자는 원촌(遠村)[8]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9] 문장공 매계 조위공 파[10] 조민수의 동생으로 단성좌명공신 좌찬성 조경수(曺敬修)공 파[11] 조민수의 동생 찬성공 조경수의 막내 아들로 김천입향조인 참의공 조심(曺深)공파[12] 고려시절 말과 목장일을 관장하는 기관인 종3품 태복시(太僕寺)의 경(卿)을 역임한 조흥(曺興)공파, 과거합격자 수십명을 배출한 명문가였지만 이인좌의 난에 가담해 일부 지역 문중이 몰락함[13] 매계 조위의 동생 효강공 적암 조신(曺伸)공파[14] 1세대를 30년으로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2020년 현재 창녕 조씨는 24~28세까지 생존해 있다. 24*30=720이므로, 2020-720=1300, 즉 고려 중기가 된다. 중시조 조겸으로부터 계산해도 같은 결과를 얻는다.[15] 중시조 조겸으로부터 이들 3형제까지의 계보는 태복경공파보(1990) 등에 나와 있다.[16] 조일환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17] 작사·작곡가인 고려성·나화랑 형제의 출신 지역이자 형제그룹 조트리오의 본적지다.[18] 사기꾼 조희팔이 이 마을 출신이다.[19] 독립유공자 조병화·조재만, 조규설·조규창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20] 독립유공자 조병진·조재복이 이 마을 출신이다.[21] 남명 조식의 묘소가 이 마을에 있다.[22] 독립유공자 조재학이 이 마을 출신이다.[23] 독립유공자 조윤호조희순이 이 마을 출신이다.[24] 독립유공자 조문환이 이 마을 출신이다.[25] 트로트가수 송가인이 이 마을 출신이다.[26] 조국현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27] 독립유공자 조병의가 이 마을 출신이다.[28] 독립운동가 조만식이 이 마을 출신이다.[29] 집현전의 수장은 대제학이지만, 대제학은 겸직이라 부제학이 실질적인 수장이었다.[30]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31] 매계 조위의 15대손이다.[32]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33] 남명 조식의 13대손이다.[34] 태진아의 본명[35] 태진아의 아들인 이루의 본명[36] 송가인의 본명[37] 조만식의 손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