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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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2. 상세
1895년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서 태어났다. 영암보통학교,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제6고등학교(오카야마),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법률학과(독법)를 졸업하였다. 1922년부터 1924년까지는 독일 베를린대에서 정치와 법학을 연구하였다.
1925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근무하다가 귀국하여, 1926년 조선공산당 선전부장을 맡았고 1927년 9월부터 11월까지는 안광천의 뒤를 이어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맡았다. 1928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할 때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세칭 ML당 사건)이 터지면서 7년 동안 복역하였다. 출감 후 1934년부터 동아일보에서 주필을 지내다 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사임한 뒤, 경기도 연천군 전곡면에서 김성수의 해동농장을 관리하면서 소일하였다.#
8.15 광복 후인 1946년 한국민주당 상무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영암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1949년 민주국민당 상임당무위원이 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국민당 류인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1952년 이긍종 국회의원의 별세로 치러진 연기군 재보궐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범승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영암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6년 민주당 최고위원과 유엔 한국대표를 역임하였다.
1957년 갑자기 이승만 지지를 선언하면서 민주당을 탈당하고, 통일당을 창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당 후보로 영암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에 출마하였다. 같은 해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당 후보로 영암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5.16 군사정변 후인 1963년 자유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영암군-강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기본조약 추진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발언을 하였다가 명예훼손죄로 고발되어, 김대중이 주목받게 된 1964년 국회 필리버스터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같은 해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중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윤재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고, 그 후 정계를 은퇴하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4. 수상경력
- 대통령 표창 (1963)
- 국민훈장 무궁화장 (1969)
- 건국훈장 애국장 (1991)
5. 대중매체에서
- 1981년작 MBC 드라마 <제1공화국>에선 배우 최명수가 연기했다.
- 1985년작 KBS1 대하드라마 <새벽>에선 배우 김진해가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