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기업인)

 

1. 개요
2. 생애
3. 직장생활에 대한 태도
4. 기타


1. 개요


LG전자CEO.

2. 생애


1956년 4월 충남 보령시에서 태어나 1976년 용산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했다. 이후 전자제품을 만들고 싶어서 금성사(LG전자)에 수습 과정으로 지원했고 1976년 9월 26일 전기설계실에 우수 장학생으로 입사했다. 첫 월급은 11만 300원이었다[1].
당시 가전 시장은 선풍기와 밥솥이 주력이어서 직원들이 앞다투어 그쪽 부서로 몰려갔다. 하지만 조성진은 세탁기 부서로 갔다. 우리나라 세탁기 보급률이 1%도 안 되던 시기였지만[2], 그는 세탁기가 사람을 대신해서 빨래를 하는 동안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다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에 세탁기가 대중화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입사 후 하루 18시간 공부해서 남들 대학 4년 배울 걸 1년만에 배웠다고 자평할 정도로 열심히 기술을 배웠다. 그런 원대한 꿈과 개인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LG전자의 기술은 형편없었다.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만 제품을 제대로 만들 수 있었다. 그는 10여년동안 150번 넘게 일본 출장을 갔다.[3]
1985년 금성사 전기회전기설계실로 배치 되었다. 1989년경 LG전자의 노사분규가 심해졌고 LG전자는 1등이었던 사업들을 놓치기 시작했다. 조성진은 '1등 탈환 TF'의 리더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그에게 제품개발과 의사결정권을 모두 넘겼다. 그러자 그는 고객 관점에서 전혀 다른 세탁기를 개발하겠다며 세탁용량, 기술방식, 디자인, 프로그램까지 모두 바꿨다. 그는 당시 인공지능 세탁기를 개발해 대박을 냈다.
1990년대 중반 조성진은 LG도 세탁기를 100% 국산화 하자고 회사를 설득했다. 그 전에는 일본산 세탁기의 부품 조립만 수행했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투자비도 컸고, 다들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관두라고 해서 계속 갈등을 일으켰다. 조성진은 책상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혼자 연구를 했고, 사표까지 고민했다. 경영진을 설득하겠다고 일주일간 무단결근도 했다. 하지만 끝내 사내 설득에 성공하면서 그는 1995년 LG전자 세탁기설계실 (부장)으로 발령난 뒤 1996년 '통돌이' 세탁기를 탄생시켰다. 창원공장 2층에 간이 침대와 주방시설을 만들고 먹고 자면서 일을 했다. 밑바닥부터 일본 기술을 배웠다. 오사카에는 전자업체들이 주로 몰려 있는데 기술자들에게 술을 사주며 귀동냥을 했다. 그의 일본어를 들은 일본인들이 오사카 출신 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일본어를 열심히 배웠다.
1998년에는 Direct Drive 모터를 적용한 세탁기를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DD모터는 모터의 힘을 세탁통에 직접 전달시켜 제품의 고장을 줄이고 세탁 때 나오는 소음이나 진동은 확 줄여주는 기술이다. 2001년에는 세탁기연구실장으로 발령받으면서 임원으로 승진했다(연구위원/상무). 거기서 2005년 세계 최초 스팀세탁기를 개발했다. 2006년에는 부산대 경영대학원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2006년 연말에는 세탁기사업부장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LG전자에서 고졸 부사장은 처음이었다.
2009년에는 손빨래 구현 6모션 세탁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2012년에는 터보 워시 적용 세탁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때까지 그는 36년간 세탁기만 했다. 이 때문에 고졸임에도 불구하고 '세탁기 박사', 'Mr. 세탁기'라고 불렸다. 36년간 세탁기만 판 세탁기 전문가였기 때문에 당시 부하 팀장들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보고는 쉽게 하지 못 했다고 한다.
2001년경 그는 세탁기연구실장 (상무)으로서 중남미 출장을 다니곤 했다. 당시 그가 출장을 나가면 여행가방에 넣은 옷이 잘 구겨져 애를 먹었다. 이 때 아내가 '욕실에 뜨거운 물을 틀어 수증기로 채운 다음 옷을 걸어두면 주름제거에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는 그 말에서 의류관리기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제품 개발을 제안했다. LG전자는 2011년 의류관리기 '스타일러'를 최초로 출시했다.
2012년말 HA사업본부장(사장)으로 발령나면서 세탁기를 넘어서 모든 가전을 맡게 되었다. 2015년에는 '트윈워시' 세탁기를 세계 최초로 만들면서 다시 대박을 쳤다. 상단 드럼세탁기와 하단 미니 워시를 결합한 제품인데 8년동안 연구원 150명과 예산 200억원이 들어간 제품이다. 2016년에는 H&A사업본부장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 2017년에는 마침내 LG전자 대표이사 CEO (부회장)을 맡게 되면서 가전제품 외에도 모든 LG전자 제품을 원톱 수장으로서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9년 11월 28일, LG그룹의 인사 이동(규모는 41명으로 알려져 있다)에 따라 본부장 이자 사장으로 있는 권봉석 LG전자 사장을 CEO로 추천하고 입사한 지 약 43년 만에 용퇴(은퇴)를 하게 되었다. LG전자의 레전드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기에 네티즌들도 아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3. 직장생활에 대한 태도


그는 자사 시제품을 여러 대 집에 갖다놓는다. 틈날 때마다 고객 관점에서 직접 사용해보고 바로 개선하기 위해서다. 세탁기, 냉장고 등을 여러 대 갖다놨다. 어느 날 아내가 '무선청소기 7대는 너무 심하니 그만 가져오라'고 했더라고 한다. 사장이 된 후 2016년 4월에는 집무실 카펫을 걷어내고 마룻바닥으로 고쳤다. 물걸레 키트에 보조걸레를 달아 바닥의 찌든 때를 닦아내는 아이디어를 제품에 구현해 보겠다는 아이디어를 실험하기 위해서였고, 실제 제품에 반영되었다.
그는 모든 가전제품을 직접 분해하고 조립해 보면서 설계 이유 등을 직원들에게 묻고 배운다. CEO가 된 뒤 LG전자의 모든 사업부를 맡게 되자 스마트폰을 30여대 갖고 와 10여대 분해하면서 검토했다. 그 과정에서 'LG는 프리미엄 스마트폰과 보급형 스마트폰에 다른 부품을 썼는데 경쟁사는 같은 부품을 써서 규모의 경제로 원가를 절감했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그는 양복보다는 작업복이 더 어울린다고 말할 만큼 제품 생각으로 가득하다. 아이디어를 메모하기 위해 항상 작은 수첩과 샤프를 들고 다닌다. 등에 메고 다니면서 청소하는 전기청소기의 아이디어도 그가 냈다.
한편, 그는 2014년 독일 베를린에서 경쟁사인 삼성전자 세탁기를 파손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전시회에 갔다가 삼성 홍보를 보고 '눌러도 문이 부서지지 않는다니 그 원리가 궁금하다'면서 문을 세게 눌렀더니 파손되었던 것이다. 2016년 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4. 기타


그는 LG전자 입사 후에 '고졸'이라고 해서 차별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


[1]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80만원 가량. 참고로 1978년경 전문대졸 대우중공업 기능공의 월급은 7만원(2010년대의 50만원)이었다. 이런 식. 그러니 금성사의 월급 11만 300원이 적은 돈은 아니었다.[2] 금성사가 세탁기를 처음으로 출시했던 게 1969년이었다.[3] 2006년 당시 일본 출장 마일리지가 30만 마일이 쌓였다. 인천-오사카 마일리지가 525마일이다. 30년간 600번 가야 채울 수 있는 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