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생
趙小生
(? ~ 1362)
원나라와 고려의 인물. 쌍성총관부의 제4대 쌍성총관.
쌍성 사람으로 증조부 고려인 조휘가 원나라에 투항하면서 쌍성총관부가 설치되고, 이후 총관 자리를 조소생까지 4대째 세습했다. 이 글에 조소생이 조휘의 종증손이라 나와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지금 한양조씨 족보에는 조소생이 조림의 아들로 나와있지만, 과거 족보 제작 때는 쌍성총관직을 세습한 조상의 행적을 부끄러워하여 용성부원군(조돈) 이상은 간략히 기재한다는 원칙이 있었기에 조돈의 직계 자손이 아니었던 조소생은 조림의 아들로 쌍성총관직을 세습했음에도 족보에서 빠졌었다. 그래서 해당 글에서는 조휘의 종증손으로 추정한 것.
1356년에 공민왕이 추밀원부사 유인우를 동북병마사로 임명하고 쌍성총관부의 탈환을 명령하자, 유인우는 이인임 등과 함께 쌍성을 공격하였다. 조소생은 숙부 조돈이 고려와 내응할 것을 우려하여 연금시켰지만, 조돈은 탈출에 성공해 쌍성 사람들을 고려와 내응하게 하였다. 쌍성이 함락되자 조소생은 여진 지역으로 도망쳤고, 1358년 5월에 탁도경과 함께 해양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1359년 가을인 음력 7월에는 탁도경과 함께 고려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362년 2월에 나하추를 끌어들여 고려의 삼살, 홀면 지역을 공격했으며, 고려에서는 동북면도지휘사를 보내서 대응하게 했지만 여러 차례 고려군을 격파했다. 7월에 나하추, 탁도경과 함께 홍원의 달단동에 진지를 구축하면서 군사를 보냈다가 이성계에게 처절하게 대패한 뒤 여진 쪽으로 다시 달아났으나, 여진의 다루가치인 부카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 ~ 1362)
원나라와 고려의 인물. 쌍성총관부의 제4대 쌍성총관.
쌍성 사람으로 증조부 고려인 조휘가 원나라에 투항하면서 쌍성총관부가 설치되고, 이후 총관 자리를 조소생까지 4대째 세습했다. 이 글에 조소생이 조휘의 종증손이라 나와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지금 한양조씨 족보에는 조소생이 조림의 아들로 나와있지만, 과거 족보 제작 때는 쌍성총관직을 세습한 조상의 행적을 부끄러워하여 용성부원군(조돈) 이상은 간략히 기재한다는 원칙이 있었기에 조돈의 직계 자손이 아니었던 조소생은 조림의 아들로 쌍성총관직을 세습했음에도 족보에서 빠졌었다. 그래서 해당 글에서는 조휘의 종증손으로 추정한 것.
1356년에 공민왕이 추밀원부사 유인우를 동북병마사로 임명하고 쌍성총관부의 탈환을 명령하자, 유인우는 이인임 등과 함께 쌍성을 공격하였다. 조소생은 숙부 조돈이 고려와 내응할 것을 우려하여 연금시켰지만, 조돈은 탈출에 성공해 쌍성 사람들을 고려와 내응하게 하였다. 쌍성이 함락되자 조소생은 여진 지역으로 도망쳤고, 1358년 5월에 탁도경과 함께 해양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1359년 가을인 음력 7월에는 탁도경과 함께 고려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362년 2월에 나하추를 끌어들여 고려의 삼살, 홀면 지역을 공격했으며, 고려에서는 동북면도지휘사를 보내서 대응하게 했지만 여러 차례 고려군을 격파했다. 7월에 나하추, 탁도경과 함께 홍원의 달단동에 진지를 구축하면서 군사를 보냈다가 이성계에게 처절하게 대패한 뒤 여진 쪽으로 다시 달아났으나, 여진의 다루가치인 부카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