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
1. 개요
趙諶
(1117년 ~ ???)
북송시대의 황족. 흠종의 아들이자, 인회황후의 아들이다.
2. 생애
조심은 정화 7년(1117년)에 흠종과 인회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로, 당시 황제였던 휘종의 적손이 되었다. 조심은 채경의 상주로 검교소보, 상덕군 절도사로 제수되고 숭국공(崇國公)이 되었다. 왕보가 정권을 잡았을 때 채경을 실각시키려는 음모가 있었는데, 이때 북송의 조심은 고주 방어사로 강등되었다.
휘종의 치세 후반, 북송 외부에서는 거란의 요나라가 점차 쇠퇴하고 완안아골타의 금나라가 점차 강성해지면서 요나라를 위협하고 있었다. 휘종은 금나라와 손을 잡아 1125년에 요나라를 멸망시켰고, 이후 천조제와 합작하여 금나라를 분열시키려는 공작을 펼쳤다. 결국 여기에 금나라가 분노하여 북송을 침공하자, 휘종은 아들인 흠종에게 황제 자리를 덜컥 양위해버렸다.
조심은 흠종이 즉위하면서 정강 원년(1126년)에 검교소보, 소경군 절도사로 임명되었고, 대녕군왕(大寧郡王)으로 책봉되었다가 이윽고 검교소부, 영국군 절도사로 승진하였으며, 같은 해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금나라의 태종은 송나라에 대한 분노가 상당했고 결국 북송의 수도 개봉이 함락된다.
다음 해에, 흠종은 태자 조심에게 감국(대리청정)을 명령했는데 얼마 안 있어 흠종에게 태자의 출성을 타일렀다. 조심은 결국 마차에 실려 금군에 압송되었으며, 이때 흠종과 휘종 등도 금나라에게 붙잡혔다. 흠종의 태자였던 조심은 금나라로 압송된 이후 언제 죽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한편 휘종과 흠종, 흠종의 태자였던 조심이 금나라로 압송되면서, 휘종의 서자이자 조심의 숙부였던 강왕 조구가 강남에서 간신히 송나라의 명맥을 이어나갔는데, 그가 바로 조송의 제10대 황제이자 남송의 초대 황제인 고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