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목왕

 


'''조(趙)씨 가문 19대 종주
조(趙)나라 10대 국군
5대 왕
유목왕
幽穆王
'''
''''''
영(嬴)
''''''
조(趙)
''''''
천(遷)
'''아버지'''
조도양왕(趙悼襄王) 조언(趙偃)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228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235년 ~ 기원전 228년
1. 소개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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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제10대 군주이자, 제5대 왕. 조씨종주(趙氏宗主)로서는 제19대 종주. 이름은 조천(趙遷). 도양왕의 서자. 대왕가(代王嘉)의 이복 아우. 조나라의 마지막 왕.[1] 간신 곽개(郭開)를 중용해 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달리 조왕천(趙王遷)이라고 불린다. 사기에서는 시호를 붙여 조유목왕이라고 부른다.[2][3]

2. 생애


조유목왕 원년(기원전 235년), 박인에 성을 쌓았다.
조유목왕 2년(기원전 234년), 진(秦)나라의 장수 환의(桓齮)가 조나라의 평양(平陽)과 무성(武城)을 침략하자, 조의 장수 호첩(扈輒)이 구원을 나섰으나 패해 죽었다. 진군은 조군 10만을 죽였다. 10월에 진나라 장수 환의가 다시 조나라를 쳤다.
조유목왕 3년(기원전 233년), 진군이 조나라의 직려와 의안(宜安)을 쳤다. 조유목왕은 이목(李牧)을 대장군으로 임명해 진군을 막게 했다. 이목이 진군과 교전하여 환의를 이겨 달아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목은 무안군(武安君)이 되었다. 그런데 진군이 다시 조나라를 쳐서 조군은 패해 장수를 잃고 평양 또한 잃었다.
조유목왕 4년(기원전 232년), 진나라가 대군을 거느리고 조나라를 쳤다. 한 부대는 업, 한 부대는 태원, 낭맹, 번오를 쳤다. 이목이 진군을 격퇴하였다.
조유목왕 5년(기원전 231년), 대 땅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악서, 평음까지 누대와 가옥이 무너지고 땅이 130보나 갈라졌다.
조유목왕 6년(기원전 230년), 조나라에 대기근이 들어 진나라는 웃고, 조나라가 운다는 노래가 유행했다.
조유목왕 7년(기원전 229년), 진나라가 대군을 거느리고 조나라를 쳤다. 이번에는 왕전이 정형구를 쳤다. 이에 이목과 사마상이 맞섰다. 이에 진나라에서는 조유목왕의 총신인 곽개를 매수해서 이목과 사마상이 모반을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하니 조유목왕은 곽개의 말만 듣고 이목과 사마상 대신 조총(趙蔥)과 제나라 장수 안취(顏聚)를 세웠다. 그리고는 이목을 제거했다.
조유목왕 8년(기원전 228년), 왕전(王翦)이 조나라를 사나운 기세로 몰아치니 조군은 패배해 조총은 죽고 안취는 달아났다. 그리고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을 쳐서 함락시키니 조유목왕은 투항해 포로가 되었다. 그리하여 조나라는 멸망했다. 조나라에 나쁜 추억이 있었던 진시황은 조나라 멸망 후 볼모 시절 자신에게 무례했던 조나라 왕족과 귀족을 모두 처벌하였고, 조유목왕은 일부러 온기가 없는 냉방에 감금시켰다. 조유목왕은 냉방에서 병을 얻고 제대로 된 치료도 없이 고통스럽게 죽었다.
[1] 단, 대나라의 왕인 조가를 포함하면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군주는 아니다.[2] 출처는 사기 조세가.[3] 보통 망국의 군주는 시호가 없기 마련인데 시호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붙였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사마천이 없는 시호를 지어낼 리가 없고 그걸 해야 할 이유도 없기에 어쩌면 조가가 준 시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