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재

 


1. 개요
2. 생애


1. 개요


趙平載(1909~1968). 일제강점기대한민국의 변호사. 서울특별시장을 지낸 경제학자 조순의 작은아버지다.

2. 생애


1909년 8월 8일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27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우등졸업[1]하고 1928년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해 1933년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는 호걸풍 쾌남으로 평가받았다.
졸업 후 조선총독부 철도국, 대전철도사무소에서 근무 중 1937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경성지방법원 검사, 평양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하고 1943년 경성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광복 후 홍순엽과 손잡고 좌익 법률가 단체인 조선법학자동맹(법맹)을 조직해 가담한 바 있다. 이후에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서울변호사회 부회장, 서울제일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상무위원장, 국제법률가협회 회장, 한국법학원 이사, 대한중석과 삼성물산 법률고문 등을 지냈다.
1968년 6월 19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일제강점기 판검사 경력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사법 부문에 수록되었다.
[1] 당시 함께 우등졸업한 김응윤은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나와 피부과 의사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