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크스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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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Wilkes Booth
1838년 5월 10일 ~ 1865년 4월 26일(26세)
1. 소개
2. 생애
3. 가족
4. 암살 공범


1. 소개


미국의 배우이자 '''에이브러햄 링컨의 암살자'''.

2. 생애


존 윌크스 부스는 미국 메릴랜드 주 벨에어에서 에드윈 부스 시니어와 그 아내의 셋째 아들로 출생했다. 부스의 아버지와 두 형, 누나와 자형 모두 유명한 연극인이었고 따라서 그도 이런 집안의 영향을 받아 배우로 성장했다.
1855년, 부스는 마침내 첫 연기를 선보이게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리처드 3세>라는 연극에 나서게 되면서 배우로써 활동하기 시작한다. 텔레비전도 없고, 녹음기도 없는 1850년대에는 사람들(물론 상류층들 기준에서)은 연극을 보며 즐겼다. 그 외에 <햄릿>, <Carte de Visite> 등을 연기하여 큰 인기에 올랐다. 1864년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시저> 등을 연기하여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부스는 항상 아버지와 두 형의 그늘에 사로잡혀 있었다. 부스의 아버지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1796년 ~ 1852년)는 당대 미국 최고의 연극배우였다. 두 형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 주니어(1821년 ~ 1883년)와 에드윈 부스(1833년 ~ 1893년) 또한 부스와 함께 연기를 했으나 부스는 무대 앞에서 말을 더듬고 소심해서 아버지나 형들에 비해 연기실력이 떨어졌다는 평을 받았고, 그 결과 열등감이 쌓였다. 그러던 중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노예제의 폐지를 강력하게 반대했으며 남부의 탈퇴를 영웅적 행동이라며 칭송했다. 그러나 전세는 막바지에 들어 북부의 우세로 기울었고, 결국 1865년 북부의 승전으로 끝이 났다. 결국 부스는 6명의 남부 지지자들과 링컨 대통령의 암살을 논의하였고, 드디어 1865년 4월 14일이 왔다. 그 날 저녁, 링컨 대통령은 포드 극장에서 <우리 미국인 사촌>이라는 연극을 영부인과 함께 관람했다. 오후 10시 15분, 부스는 조용히 링컨이 관람중인 장으로 걸어갔다.
그 자리에서 부스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머리에 총을 쏘고 무대로 뛰어들어 라틴어로 된 연설을 하고 도망쳤다.'''[1]

'''폭군은 언제나 이렇게 될 것이다. (Sic semper tyrannis)'''[2]

그 직후 부스는 미리 준비해 둔 말을 타고 도망쳤다.
링컨 대통령은 총을 맞고 상태가 악화되어 이튿날 세상을 떠났다. 1865년 4월 14일부터 1865년 4월 24일까지 도망쳤던 부스는 리처드 갸렛이라는 농부의 집에 머물렀다. 부스의 정체를 몰랐던 농부는 1865년 4월 24일부터 4월 26일까지 부스를 손님 대접해 주었으나, 결국 수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신고했다. 출동한 연방군에게 포위된 부스는 항복을 거부하고 총격전을 벌이다가 사살되었다.

3. 가족


  • 아버지: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
  • 어머니: 매리 앤 홈즈
  • 첫째 형: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 주니어
  • 둘째 형: 에드윈 부스
  • 누나: 아리아 부스

4. 암살 공범



[1] 무장한 권총은 퍼커션 캡 방식의 소형 권총이다. #[2] 버지니아 주의 표어로 부스도 암살 직후 버지니아 주로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