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두법
1. 개요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하여 백신을 인체의 피부에 접종하는 방법.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개안한 우두(牛痘:소의 두창) 고름을 이용하는 '''우두법'''이 대표적이다.
2. 역사
천연두는 관련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사망율이 높은 질병이다.
우두법 이전에는 인두법(variolation)이 인도, 중국 등에서 유래되어 사용되었다. 이것은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딱지를 말리는 등의 방법으로 약독화한 후에 사람에게 접종하는 방법으로 영국 등 유럽에까지 퍼져서 사용되었다. 1880년대 조선 후기 외국인 의사로 활동했던 알렌의 기록에 조선에서 시술되던 인두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1] 그러나 인두법을 시술받는다해도 아예 안 받는것보다야 낫지만 치사율이 대략 1~2%정도[2] 되었기 때문에 위험성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며 이 때문에 미국에서 인두법 시술을 금하기도 했다.
영국의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1773년에 고향 마을에서 개업의로 일하게 된다. 이때에 우유 짜는 부인들이 소의 천연두인 우두에 감염되는 일이 있는데 이 병을 가볍게 앓고 나으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한 인체 실험이 필요했는데 존 필립이라는 당시 62세의 노인이 9세 때 우두를 앓았다고 실험에 자청하였다. 제너는 천연두의 병균을 노인에게 접종하게 된다. 결과는 접종 부위에 약간의 발진이 발생했지만 5일 후 회복되었다. 한 번 우두에 걸리고 나면 50년이 지나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 후 1796년 우두농을 8세 소년 제임스 핍스(James Phipps, 1788년 ~1853년)의 팔에 접종하고 6주 후 천연두농을 그 소년에게 접종하였으나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그 후 여러 번의 확인을 거친 후 1798년 제너는 우두를 사용한 종두법(우두법)을 발표했다.
한국에는 다산 정약용이 박제가와 함께 연구하면서 『마과회통』에서 최초로 종두법을 소개했으나, 이는 사람의 천연두균을 이용하는 인두법이었다. 우두법은 구한말에 가서 지석영에 의해 일본에서 도입된다. 그는 일본에서 우두를 들여와 당시 2살이었던 처남에게 접종하였다. 1896년 을미개혁 당시 정부 주도로 종두법을 시행했다.
3. 방법
초기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소의 우두 고름을 채취하여 사람에 접종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곧 소나 말 등의 동물에 인위적으로 발병시킨 후 위생적으로 채취하여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열소독된 분지침을 백신 용액에 담근 후 팔의 어깨 부위나 발 등의 피부를 수차례 찔러 접종한다. 그러면 접종 부위가 3일 - 4일 내로 붉은 발진이 일어나게되며 1주차에 고름이 찬 농포를 형성한다. 2주차는 농포가 말라 딱지가 형성되며 3주차가 되면 딱지가 떨어지며 흉터가 남게 된다.
사용되는 균주는 처음에는 우두 바이러스( cowpox virus)가 사용되었지만 나중에 바키니아 바이러스(vaccinia virus)가 사용된다.[3]
현재는 천연두는 없어진 전염병이므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접종을 하지않고 있다.[4]
4. 효과
지금까지의 역사적 통계를 통해 95%의 천연두 예방 효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원숭이 두창(Monkeypox), 우두를 비롯해 다른 오르토두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질병에 대한 예방력도 갖는다. 물론 다른 백신과 마찬가지로 접종 후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과가 떨어지는데 유럽에서 행해진 연구에서는 접종 10년 내에는 치사율 1.3%, 접종 10년 ~ 20년 치사율 7%, 20년 이후는 치사율 11%로 증가한다.[5]
5. 관련 문서
[1] 알렌의 기록에 따르면 1880년대 당시 인두법을 시술받는 사람은 100명 중 60명 ~ 70명꼴이었다고 한다.[2] Smallpox, A Great and Terrible Scourge, U.S.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09 December 2011링크[3] 이 바이러스는 우두 바이러스나 천연두 바이러스와 유사한 종이지만 어떻게 접종에 사용되게 되었는지는 기록의 부족으로 명확하지 않다. 다만 현재 말에게서 유래된 바이러스라고 추정하고 있다.[4] 그 이유는 알레르기 반응 등 가벼운 부작용도 소수 보고되었지만 백만 명 중 두 명 정도(0.00198%)가 뇌염, 접종 부위의 괴사로 인해 죽은 것으로 과거의 기록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위험과 접종에 드는 비용을 굳이 감당할 필요가 없다.[5] Mack TM (1972년). “Smallpox in Europe, 1950년 – 1971년”. 《J. Infect. Dis.》 125 (2): 161–169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