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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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Jenner
에드워드 제너
'''
'''본명'''
'''에드워드 제너'''
'''출생'''
1749년 5월 17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글로스터셔 주 버클리
'''사망'''
1823년 1월 26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글로스터셔 주 버클리
'''국적'''
잉글랜드
'''직업'''
의학자,동물학자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


영국의 의학자이자 동물학자. 백신을 최초로 만들고 예방 의학의 기초를 만든 의학자다.
제너의 가장 큰 업적은 우두 접종으로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의 과학적 실험을 통해 입증했고 그를 통해 학회의 인정을 받아 인류를 천연두로부터 구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백신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 입증했으며 Vaccine(백신)이라는 단어 자체를 새롭게 직접 만들었다. 백신은 라틴어에서 를 뜻하는 vacca에서 따왔는데, 이 천연두 백신이 우두를 이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우두 접종에 대한 천연두 예방법 자체는 당시 민간 요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이전 농가 부부인 Benjamin Jesty라는 사람도 있었고 고대 중국에도 인두 접종(virolization 점막, 이 경우는 코로 균을 침입시키는 방법)이 그림으로 기록되어있다. 이를 제너가 과학적인 실험으로 입증해내 학회의 인정을 받고 정부 차원에서 백신의 의무화를 가져왔다는 점이 중요한 업적이다.
또한 동물학자이기도 했으며 새에 대하여 흥미가 많아 새를 해부하고 자세한 생태를 조사하며 뻐꾸기 생태 연구에도 제법 공을 남긴 학자다.

2. 생애


글로스터셔 주 버클리 출생. 13세 때부터 의학을 공부했으며, 1770년에 존 헌터(1728년 ~ 1793년)로부터 2년간 외과학을 배우고, 그들의 우정은 헌터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세인트조지 병원에 근무하다 1773년에 고향 마을에서 개업의가 되었는데, 이 지방에서는 우유 짜는 부인이 의 우두를 경험한 뒤에는 사람이 앓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우두란 소나 사람이 걸리는 천연두와 비슷한 질병인데, 천연두에 비해 특별한 치료가 없어도 대부분 자연 치유가 되고 증상 및 후유증도 심하지 않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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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는 이러한 사실을 의학에 응용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한 인체 실험이 필요했는데 존 필립이라는 당시 62세의 노인이 9세 때 우두를 앓았다고 실험에 자청하였다. 제너는 천연두의 병균을 노인에게 접종한다. 결과는 접종 부위에 약간의 발진이 발생했지만 5일 후 회복되었다. 한 번 우두에 걸리고 나면 50년이 지나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 후 1796년 우두농을 8세 소년 제임스 핍스(James Phipps, 1788년 ~ 1853년)의 팔에 접종하고 6주 후 천연두농을 소년에게 접종하였으나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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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의 진가가 인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는데, 제너의 실험 결과가 인정받기까지는 종두법에 대해 편견이 상당했다. 우두법 개발 초기에는 "소 고름을 맞으면 사람이 소로 변한다"는 헛소문이 돌기도 했다.일례로 당시 신문 삽화에는 우두법을 처방받은 사람의 몸에서 소가 튀어나온다거나 소처럼 변하고 소를 숭배하는 모습으로 그린 경우도 있었다.[1]
지금이야 저런 것을 무지하다고 보지만 당시에는 그럴 만도 한 것이, 저 때는 종두법 자체가 검증되기 전이었는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같은 의사들이나 과학계 사람들도 "제너가 검증되지도 않은 방법을 사람을 상대로 쓴다!"라고 비판하며 한 마음으로 깠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우두법이 조선에 들어왔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일본놈들이 소 고름을 사람에게 놔서 순하고 반항하지 못하게 만들려 한다더라"라는 유언비어가 돈 적이 있다.
그는 1798년까지 23번의 실험을 실시하여 그 결과를 왕립학회에 보고했다. 실험 대상자 중에는 11개월 된 자신의 아들도 포함돼 있다. 영국 왕립 학회는 이를 특허로 낼 것을 강요하며 온갖 비난을 했으나 제너는 무시하고 우두법을 사람들이 무료로 쓸 수 있게 내버려뒀다.
이로 인하여 왕립 학회에게 무시당했지만 대신 세계 곳곳의 학회로부터 명예 회원으로 존경받으며 우대받았다. 그가 천연두 백신을 무료로 풀었음에도 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개인 병원 운영과 세계 각국의 연구비와 기부금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과학 의료 아카데미 회원, 스웨덴 왕립 학회 회원, 독일 의학 협회 회원 등등... 그리고 제너의 무상 봉사는 그만큼 대우를 받아 세계 곳곳에서 거액의 기부금을 받았으며 여러 유럽 나라에서 깍듯이 우대를 받고 위대한 의학자로도 존중받았다. 결국 이러다보니 영국 왕립 학회도 백기를 들고 제너를 받아주면서 영국의 자랑이라고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천수를 누리던 그는 1823년 74세 때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제너는 종두법이 의학계에서 검증된 후에 부자가 되자 이전에 살던 집을 맨 먼저 접종을 받았던 소년인 핍스에게 주었다. 정확히는 핍스의 가족에게 무료 임대를 준 것. 그 후 그의 후손이 영국 국교회에 매각하여 현재는 제너를 기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여담


  •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에는 그러한 법률이 없었으나 제너의 행위는 현대의 관점으로는 뉘른베르크 강령을 어기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반쯤은 맞지만 의도나 목적을 생각해 보면 반은 이해해야 한다. 우선 뉘른베르크 강령은 인권을 무시한 생체실험이나 인간 상대 실험들을 금지하는 것이다. 제너는 우선 사람들을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시도한 것이기에 의도와 목적 자체는 뉘른베르크 강령에 위배되지는 않지만, 방법 자체는 뉘른베르크 강령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것이다.[2]
  • 허현회가 쓴 불쏘시개 동물병원이 알려주지 않는 30가지 비밀에서는 터무니없는 엉터리로 비난당하고 있다. 제임스 핍스가 우두 주사를 맞고 20살로 죽었다느니 여러 모로 조사도 하지 않고 쓰면서 제너까지 악덕 의사로 엉터리로 매도하고 있다. 물론 위 생몰년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핍스 역시 당시에는 천수에 가까운 나이인 6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제너가 묻힌 교회에 함께 묻힌다. 아이러니하게도 허현회는 핍스보다 10년, 제너보다 19년 더 짧은 55세로 사망했다.
  • 정약용이 쓴 「마과회통」에도 제너의 우두법이 소개되어 있다.
[1] 저 그림을 그린 작자는 의외로 영국의 사회비평가이자 화가인 제임스 길레이(James Gillray,1756~1815)다. 이 작가의 그림은 통풍 문서에도 개재되어 있으며 이 사람은 사회 풍자화나 만평을 많이 그렸던 화가로 유명하다. 일례로 나폴레옹 정부를 비판하는 만평을 그리기도 했다.[2] 사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의도와 관계 없이 이러한 행위 자체는 무조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사람을 살리는 의도라고 해서 옹호한다면 가령 전시에 포로들을 상대로 인체 실험을 했는데 그게 자국의 병사들이 전염병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옹호할 수 있는 명분이 되버리기 때문이다.(이건 단순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2차 대전 시기의 인체 실험 중 이런 목적인 것도 있었다) 즉 사실 제너의 행위도 의도가 어떻든 비판받아야 하지만, 시대가 뉘른베르크 강령이 나오기도 한참 전의 시대였고 대부분 자청한 사람들에게만 실험을 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조금 옹호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자기 결정권이 없는 아들에게 실험한 것은 옹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