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란 미국 대사관
전경
남아있는 미국 국가문양 돌조각.
'''Embass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eheran'''
'''سفارت ایالات متحده آمریکا، تهران'''
가상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사이트.
미국이 이란에 설치해 운영했던 외교공관.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미국, 이란 두 국가의 우방관계를 바탕으로 상호 대사관을 설치해 운영했으나 이란 혁명 발발 이후 이란에 호메이니 반미 정부가 세워지면서 국교가 끊기며 1980년 4월 7일 대사관도 문을 닫았다. 이란 내 미국 시민권자에 대한 영사 업무는 스위스 대사관에서 맡고 있다.
팔레비 왕조 시절 미국은 석유 장악을 위한 중동 교두보로 이스라엘과 이란을 이용했고 팔레비 왕조에 우호적이었다. 팔레비 왕조 역시 미국과의 협력을 중요시하며 급진적인 서구화 정책을 펼쳤고 이 때문에 미국과 제1세계 국가들과 관계가 매우 좋았다.
1948년 팔레비 왕조와 미국은 국교를 맺었으며 대사관도 3년 후인 1951년 건축되었다. 당시 대사급 외교관계를 바탕으로 테헤란과 워싱턴 D.C에 상호 대사관을 설치하여 운영했었다. 단 여권, 비자 발급 등을 하는 영사과 건물은 메인 빌딩이 아닌 옆 부속 건물에서 운영했다.
그러나 팔레비 왕조는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서방우호주의와 부패 등으로 인해 민심을 잃어갔고 급진적인 세속화 정책 때문에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지지받지 못하다가 결국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붕괴되었다. 팔레비 왕족들은 영국, 파키스탄, 미국으로 도피하였으며 호메이니가 중심이 된 이슬람 신정 공화국이 세워지게 된다.
팔레비 왕조 붕괴 이후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가 국가 기둥의 뿌리가 되어 순식간에 제1세계 친미국가에서 제3세계 반미국가로 스텐스를 바꾸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과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자연스레 교류도 줄어들 게 되었지만 미국과 이란 모두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는데...
지미 카터 행정부가 팔레비 왕의 미국 망명을 허가함으로써 이란 혁명 강경파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 때문에 미국에 대한 국가적인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호메이니는 팔레비를 이란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건강 문제를 이유로 송환을 거절하였다. 여담이지만 이미 호메이니는 본인이 참석하지 않는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상태라 돌아오면 바로 처형대 직행이었다. 당시 호메이니는 왕당파와 민주파등을 전부 처형한 상태였기에 팔레비 왕의 미국 망명은 매우 거슬리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1979년 11월 4일, 테헤란에서 팔레비의 송환을 요구하던 학생 시위대가 시위 중 과격해져 미국 대사관으로 난입해 점거했고, 70명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잡으며 이란-미국 관계는 사실상 파탄을 맞이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문서 참조.
인질 사태가 종결되고 잠깐 온건파의 중재로 합의안이 나오는 듯 했으나 호메이니가 온건파를 탄압하면서 합의안도 흐지부지 되었고, 결국 미국은 1980년 4월 7일 이란과 국교를 단절하고 미국 내 이란 외교관들을 추방, 주미 이란대사관을 폐쇄시켰다. 이에 이란도 인질로 잡아두었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미국으로 추방하고 주 이란 미국 대사관을 폐쇄시켰다.
현재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옛 건물은 반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거리 벽면에 반미 프로파간다 페인팅이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란 내 반미 시위도 옛 미 대사관 건물 앞에서 자주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국교가 단절됨에 따라 미국 대사관도 업무를 중단하였고, 미국은 공식 대사관 대신 영사부 사무소와 주 이란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미국 시민권자들의 영사 업무 및 비자 발급 업무를 하고 있다. 만약 본인이 이란에 체류중인 미국 시민권자라면 위급 상황시에는 이 두 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단 국교관계가 없어 직접적인 도움을 받기가 어렵기에 다른 국가에서 영사업무를 받을 때보다 몇 배 더 시간이 걸린다는 건 알아두어야 한다. 긴급여권 발급 역시 다른 국가에서는 하루만에 발급이 가능한 걸 이란에서 스위스 대사관이나 미 영사부를 통해 신청할 경우 운 없으면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또한 이란에서 체포되거나 위급상황에 휘말릴 경우 영사 접견이 힘들수도 있다.
남아있는 미국 국가문양 돌조각.
'''Embass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eheran'''
'''سفارت ایالات متحده آمریکا، تهران'''
가상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사이트.
1. 개요
미국이 이란에 설치해 운영했던 외교공관.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미국, 이란 두 국가의 우방관계를 바탕으로 상호 대사관을 설치해 운영했으나 이란 혁명 발발 이후 이란에 호메이니 반미 정부가 세워지면서 국교가 끊기며 1980년 4월 7일 대사관도 문을 닫았다. 이란 내 미국 시민권자에 대한 영사 업무는 스위스 대사관에서 맡고 있다.
2. 역사
팔레비 왕조 시절 미국은 석유 장악을 위한 중동 교두보로 이스라엘과 이란을 이용했고 팔레비 왕조에 우호적이었다. 팔레비 왕조 역시 미국과의 협력을 중요시하며 급진적인 서구화 정책을 펼쳤고 이 때문에 미국과 제1세계 국가들과 관계가 매우 좋았다.
1948년 팔레비 왕조와 미국은 국교를 맺었으며 대사관도 3년 후인 1951년 건축되었다. 당시 대사급 외교관계를 바탕으로 테헤란과 워싱턴 D.C에 상호 대사관을 설치하여 운영했었다. 단 여권, 비자 발급 등을 하는 영사과 건물은 메인 빌딩이 아닌 옆 부속 건물에서 운영했다.
그러나 팔레비 왕조는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서방우호주의와 부패 등으로 인해 민심을 잃어갔고 급진적인 세속화 정책 때문에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지지받지 못하다가 결국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붕괴되었다. 팔레비 왕족들은 영국, 파키스탄, 미국으로 도피하였으며 호메이니가 중심이 된 이슬람 신정 공화국이 세워지게 된다.
팔레비 왕조 붕괴 이후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가 국가 기둥의 뿌리가 되어 순식간에 제1세계 친미국가에서 제3세계 반미국가로 스텐스를 바꾸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과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자연스레 교류도 줄어들 게 되었지만 미국과 이란 모두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는데...
지미 카터 행정부가 팔레비 왕의 미국 망명을 허가함으로써 이란 혁명 강경파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 때문에 미국에 대한 국가적인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호메이니는 팔레비를 이란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건강 문제를 이유로 송환을 거절하였다. 여담이지만 이미 호메이니는 본인이 참석하지 않는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상태라 돌아오면 바로 처형대 직행이었다. 당시 호메이니는 왕당파와 민주파등을 전부 처형한 상태였기에 팔레비 왕의 미국 망명은 매우 거슬리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1979년 11월 4일, 테헤란에서 팔레비의 송환을 요구하던 학생 시위대가 시위 중 과격해져 미국 대사관으로 난입해 점거했고, 70명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잡으며 이란-미국 관계는 사실상 파탄을 맞이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문서 참조.
인질 사태가 종결되고 잠깐 온건파의 중재로 합의안이 나오는 듯 했으나 호메이니가 온건파를 탄압하면서 합의안도 흐지부지 되었고, 결국 미국은 1980년 4월 7일 이란과 국교를 단절하고 미국 내 이란 외교관들을 추방, 주미 이란대사관을 폐쇄시켰다. 이에 이란도 인질로 잡아두었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미국으로 추방하고 주 이란 미국 대사관을 폐쇄시켰다.
현재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옛 건물은 반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거리 벽면에 반미 프로파간다 페인팅이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란 내 반미 시위도 옛 미 대사관 건물 앞에서 자주 진행되고 있다.
3. 영사 업무
미국과 이란의 국교가 단절됨에 따라 미국 대사관도 업무를 중단하였고, 미국은 공식 대사관 대신 영사부 사무소와 주 이란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미국 시민권자들의 영사 업무 및 비자 발급 업무를 하고 있다. 만약 본인이 이란에 체류중인 미국 시민권자라면 위급 상황시에는 이 두 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단 국교관계가 없어 직접적인 도움을 받기가 어렵기에 다른 국가에서 영사업무를 받을 때보다 몇 배 더 시간이 걸린다는 건 알아두어야 한다. 긴급여권 발급 역시 다른 국가에서는 하루만에 발급이 가능한 걸 이란에서 스위스 대사관이나 미 영사부를 통해 신청할 경우 운 없으면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또한 이란에서 체포되거나 위급상황에 휘말릴 경우 영사 접견이 힘들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