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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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주진욱은 그의 9촌 조카, 즉 삼종질(三從姪)이다.
2. 생애
주병책은 1900년 3월 14일 강원도 울진군 근북면 매정동(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매정마을)에서 아버지 주신조(朱紳朝)와 어머니 담양 전씨 전여기(田汝基)의 딸 사이의 세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5] 출생 이후 자식 없이 요절한 숙부 주문조(朱紋朝)[6] 에 입양되었으며,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면 금호리(현 강구면 금호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그는 개신교 남감리파 신도로서 1919년 3월 18일 오후 2시경 영덕군 영덕면 남석동의 시장에서 강우근 등 시장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행진했다.
그 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형 90도를 선고받았다.#
석방된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47년 2월 4일 별세하였다.
200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웅천파-교수공파 11대손 병(秉) 항렬. 신안 주씨 30세.[2] 신안주씨대동보 2권 439쪽에는 2월 24일생으로 기재되어 있다.[3] 독립유공자 주병웅·주진수·주진욱도 이 마을 출신이다.[4] 음력 1월 14일.[5] 어머니 담양 전씨는 아버지 주신조의 첫째 부인으로, 슬하에 세 아들을 둔 뒤 1907년 6월 28일 별세하였다. 주신조는 이후 둘째 부인인 광산 노씨 노병련(盧炳漣)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6] 주병책의 생부 주신조와 주문조는 각각 주경직(朱景稷)의 차남 및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주신조가 이후 숙부인 주경우(朱景禹)에 입양되면서 사촌형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주병책에게는 주문조는 족보상으로 5촌 당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