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한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차병한은 1885년 11월 22일 경기도 남양도호부 장안면 이동(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당시 장안면 석포리 이장이었는데,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석포리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차희식, 차병혁, 장제덕, 장소진, 이영쇠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기획했고, 4월 3일 조암장터에 모인 2천 명의 시위 군중을 지휘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앞세워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 사무소로 행진했다.
이때 그는 차병혁과 함게 면장 김현묵(金賢默)을 만나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했으며, 다시 김현묵을 선두에 세워 인근의 쌍봉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우정면 사무소를 급습해 서류를 끄집어내어 불태우고 투석으로 면사무소를 파괴했다. 오후 5시경 시위군중과 함께 몽둥이를 들고 화수리 경찰 주재소를 습격했고, 일본 경찰이 공포를 쏘며 해산시키려 하자 투석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카와바타 토요타로우(川端豊太郞)가 도주하면서 권총을 발사해 시위군중 1명이 맞아 죽자, 차희식 등이 그를 추격해 죽였다.
차병한은 이일로 체포되어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 방화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33년 2월 2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차병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