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천리

 

성명
차천리(車千里)
이명
차재흡(車載洽)
생몰
1897년 ~ 1928년 9월
출생지
평안남도 안주시
사망지
중국 봉천성 집안현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차천리는 1897년생이며 평안남도 안주시 출신이다. 그는 한일병합 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 백서농장(白西農莊)에서 독립군 양성에 진력했다. 1919년 11월에 중국 봉천성 집안현 추피구에서 신광재 등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암살대를 조직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지원하는 한편, 중흥단(中興團) 및 한족회(韓族會) 검무관(檢務官)을 맡아 군자금을 모집했다.
1921년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의용대 소대장으로 국내진공작전을 시도했고, 1923년 6월엔 임강주둔대장(臨江駐屯隊長)으로 대원들과 함께 평북 후창(厚昌)에서 적의 우편물을 탈취했고 칠평에서 적경주재소를 습격했다. 그해 11월에는 대원들을 이끌고 평북 강계군 어뢰면 판막참 산중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하기도 했다. 이후 참의부(參議府)가 조직되자 이에 참여했고, 1927년 3월 참의부 중앙호위대장으로 임명되어 참의장 김승학 등과 함께 참의부를 이끌었다. 그러나 1928년 9월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의 통합을 추진하던 중 통합 방식에 불만을 품은 참의부 3중대 간부 심용준, 임병무(林炳武) 등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이들에게 살해당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차천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