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희

 

昌希
(? ~ 206)
1. 개요
2. 창작물에서


1. 개요


후한 말의 무장. 정사 삼국지 선주전에는 창패(昌霸)라고 나온다.
동해 사람으로 태산에서 장패, 손관, 오돈, 윤례 등과 함께 세력을 거느리면서 여포를 도왔다가 여포가 조조에게 패하고 하후연, 장료 등의 공격을 받자 조조에게 항복했는데, 199년에 유비가 서주로 귀환하자 유비에게 호응해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200년, 유비가 조조의 공격을 받고 원소에게 도주한 후에 장료의 설득으로 조조에게 다시 항복했다.
그러나 기주가 평정되자 다시 반란을 일으키면서 우금, 장패 등의 공격을 받았지만 이를 막았고 하후연이 와서 우금과 힘을 합쳐 공격하자 10여 둔영이 항복했으며, 창희는 우금과 교분이 있어 그에게 항복했다. 그러나 법에 따르면 포위당한 후에 항복한 자는 사면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우금이 눈물을 흘리며 직접 형을 집행하면서 창희는 참수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태산의 도적으로 나와 조조와 유비가 여포를 공격하기 위해 서로 밀서를 보낼 때 그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포에게서 연락을 받아 손관, 오돈, 윤례 등과 함께 산동 연주의 여러 군을 공격하도록 요청받았다.
장패가 데려와서 태산의 산적들이 조조에게 항복했으며, 창희만은 유일하게 항복하지 않았다.

2.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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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4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 71, 무력 70, 지력 44, 정치 35, 매력 53이며 일러스트는 갈색 두건을 쓰고 산적같은 얼굴을 한 채 도검을 들고 소리치면서 돌진하고 있다. 개성은 산전, 주의는 아도, 정책은 장사강화 Lv 3, 진형은 봉시, 장사, 전법은 연노, 철벽, 친애무장은 손관, 오돈, 우금,[1] 윤례, 장패, 혐오무장은 없다. 생년은 162년, 몰년은 206년까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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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여포에게 호응한 산적들 중 하나로 이름만 언급된다. 이 장면 지나고 얼마 안 되어 이 산적들은 조조군에게 당한다.
삼국전투기에서는 마음의 소리조석으로 등장한다.[2] 태산의 산적 중에서는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것으로 묘사된다. 소패2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소패2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태산의 산적으로 서주를 점거한 유비와 연합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소패를 시작으로 조조군의 대군에 의해 유비군이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나름대로 저항을 했음에도 우금에게 박살이 나게 되고 결국 항복하게 된다. 우금과 창희는 과거 죽마고우였으나 사사로운 정에 휩쓸리지 않는 우금은 창희가 친구였기에 오히려 즉각 형을 집행하였고, 이에 사망하게 된다.[3][4]
화봉요원에서는 손관, 오돈, 윤례 등과 함께 연계해서 서황을 고전시켰으며, 허저와 싸울 때도 고전시켰다. 그러나 가후가 허저를 분발하게 만드는 말을 해서 싸우면서 손관, 오돈, 윤례와 함께 허저에게 죽었다.

[1] 후장군에 오른 부장 우금이 아닌 오자양장 우금이다.[2] 정확히는 거기에 인도영화 춤추는 무뚜의 무뚜가 섞였다. 단행본에서 작가가 직접 언급한 사실.[3] 창희 또한 매사에 칼같은 우금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는지 우금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자 너답다고 하면서 체념하는 모습을 보인다. [4] 유비를 도와 줬던 것까지는 실제 역사와 일치하지만, 유비가 199~200년경 서주를 잃었을 때 바로 우금에게 죽는 것으로 묘사되면서 206년에 죽는 사실과 다르게 사망 시점이 199년으로 좀 앞당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