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패

 

1. 후한, 위나라의 장군 장패
2. 오나라의 장군 장패


1. 후한, 위나라의 장군 장패



1.1. 개요





'''노구(奴寇)
臧覇
장패
'''
'''시호'''
위후(威侯)
'''작위'''
열후(列侯)→도정후(都亭侯)→무안향후(武安鄕侯)→개양후(開陽侯)→양성후(良成侯)
'''최종직위'''
집금오(執金吾) 겸 위특진(位特進) 겸 행태위사(行 太尉事)
'''성씨'''
(臧)
''''''
(覇)
''''''
선고(宣高)
'''아버지'''
장계(臧戒)
'''생몰기간'''
?년 ~ ?년
'''고향'''
연주(兖州) 태산군(泰山郡) 화현(華縣)
'''태위대리 재임기간'''
230년 8월 ~ ?년
역임한 관직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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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도겸)
기도위(騎都尉)
후한(조조)
낭야상(瑯邪相)→ 위로장군(威虜將軍)
서주자사(徐州刺史) 겸 위로장군(威虜將軍)
서주자사(徐州刺史) 겸 양위장군(揚威將軍) 겸 가절(假節)[9]

<bgcolor=#00008b> {{{#FEDC21 조위(조비→[[조예#s-2|{{{#FEDC21 조예
]])}}}
가절(假節) 행 도독청주제군사(行 都督青州諸軍事) 겸 서주자사(徐州刺史) 겸 진동장군(鎭東將軍)
집금오(執金吾) 겸 위특진(位特進)
집금오(執金吾) 겸 위특진(位特進) 겸 행태위사(行 太尉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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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는 선고(宣高). 태산군 화현 출신. 위략에 따르면 별명은 노구(奴寇).
본디 여포와 연합 관계였던 독자적인 세력의 수장이었고, 여포 패망 이후에도 조조와 제휴하며 한동안 세력을 유지하다 조조가 화북을 장악하고 위세를 떨치자 세력권을 포기하고 조조에게 편입되었다.
항장 출신 중에서 도독을 수여받은 몇 안되는 인물이지만 얼마 안 가서 박탈당했다.

1.2. 정사


18살 때 태산군 화연의 옥리로 있었던 장패의 아버지 장계(臧戒)가 태수의 죄수들을 사사로이 처형하라는 명을 거역하자 태수는 그를 체포해 호송하였는데 장패가 동료들과 함께 산길에서 습격하여 부친을 구해낸 것으로 무용담이 널리 퍼진다.
그렇게 한 뒤 서주의 동해국으로 망명했는데,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그 용맹함을 높게 산 서주목 도겸에게 초빙되어 황건적을 격파하는 공적을 세우고 기도위에 임명된다. 이후 동료인 손관, 오돈, 윤례, 창희 등과 군사를 모아 개양에 주둔했으며 태산의 산맥지대에 근거해 독자 세력화한다.
이후 여포가 서주를 점거하자 장패는 여포의 휘하로 들어간 동해상 소건을 격파하고 물자를 노략질한 일로 여포의 공격을 받는 등 여포와 잠시 대립했지만 곧 화해했고, 조조가 쳐들어왔을 때 여포를 지원했다가 여포가 조조에게 패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잠적했지만, 조조는 장패의 행방을 수색하는 한편 장패를 부르기도 하면서 기어이 장패를 찾아낸다.
애초에 조조는 장패를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장패를 직접 만나게 되자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우두머리 격이었던 장패가 손관, 오돈, 윤례, 창희 등을 모두 불러들이게 했으며, 장패를 낭야국상으로 임명하는 한편 청주와 서주를 감독하게 했고, 나머지도 제각기 태수로 임명하며 장패의 지휘를 받도록 한다.
물론 별도로 자사를 임명해 장패를 감독하는 형태를 취하긴 했지만, 이는 독자적인 군벌을 형성하고 있던 장패의 세력권을 중앙 정부의 권위를 통해 합법적인 형식으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비슷한 경우로 예주 남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이통이 있었는데, 조조는 이런 형태의 아웃소싱을 통해 현지의 반발을 줄이고, 이들로 청주의 원담, 형주의 유표 등 인접한 경쟁 세력을 견제토록 하며 군비 지출을 절감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패전에서는 당시 장패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과거 조조의 부장이었던 서흡, 모위는 장막과 여포에게 호응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조조가 연주를 회복하자 달아나 장패에게 보호를 받고 있었다. 조조는 장패에게 유비를 보내 이들을 넘길 것을 요구했지만, 장패는 유비에게 "조공에게 거역할 생각은 없지만 자신의 보호를 받는 자들도 내버릴 수 없으니 그 점을 중재해달라."고 했고 유비가 이를 조조에게 말하자 조조는 장패를 칭찬하며 서흡, 모위를 사면하고 태수로 삼았다고 한다. 이는 동맹국의 군주에게 사신을 보내 외교를 하는 모양새에 가깝고, 조조는 결국 장패의 뜻을 받아들임은 물론 입장을 완전히 바꿔 서흡, 모위를 2천석의 고관으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조조로서도 최대한 장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게 노력했던 샘.
조조가 이토록 장패의 회유에 힘쓴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원소와 관도에서 대치하면서 드러났는데, 장패가 별동대를 이끌고 청주로 여러차례 침입해 조조는 동쪽에 대한 방위에 신경쓰지 않고 원소와의 대결에 전념할 수 있었다.
조조가 남피에서 원담을 격파해 참수하고 기주와 청주를 평정하자 장패는 대세가 결정났다고 봤는지 조조에게 와서 축하하며 자신의 가족을 에 이주시키겠다고 했고 조조는 그의 충성심을 칭찬한다.[1] 원담 사후 청주의 혼란을 틈타 청주 제남군 일대에서 서화, 사마구 등의 황건적 잔당들이 난리를 피우자 하후연과 함께 이를 토벌했으며 창희가 모반했을때도 우금과 함께 이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운다.
적벽에서 참패하자 진란, 매성이 남양 일대[2]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손권이 한당을 파견하여 이에 호응하였다. 장패는 한당과 싸워 격파하고 서둘러 서구로 이동하였는데 손권은 자신의 수군을 이끌고 서구를 점령해 이곳으로 계속 진란을 지원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손권의 수군은 장패가 이미 지키고 있는 것을 보자 철수한다. 손권이 철수하자 장패는 자신의 군으로 하루만에 백리를 행군하여 장료군과 합류, 진란을 격파한다.
그 뒤 조조가 유수구에서 손권과 싸울 때[3] 장패는 장료와 함께 선봉을 맡았으나 불리하였다. 장료가 군을 철수하려 하자 장패는 조조의 철수 명령이 내려올테니 기다리자고 하였고 과연 다음날 조조가 철수 명령을 내린다. 조조는 이에 감탄하여 장패의 벼슬을 높인다.
조조가 한중에서 패배한 뒤 관우가 북상하고 손권이 비밀리에 조조와 손잡자 조조가 동쪽의 부대를 중앙에 집결시킨 일이 있었다. 장료도 부대를 이끌고 이동하였고 장패 역시 별군을 보내 조조가 있는 곳으로 집결하게 하였다. 조조가 죽자 장패가 인솔하는 부대는 장차 천하가 어지러워 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멋대로 청주로 되돌아갔지만, 태자 조비가 안정적으로 후사 계승에 성공했기에 결과적으로 이는 실책이 된다. 장패가 사실상 반란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조조의 후계자인 조비의 승인없이 멋대로 휘하 군대를 움직였는지 의문이 들지만 다만 이점은 확실해 보이는데 조비가 '도독청주제군사 장패'를 100% 신뢰할 만한 장수로는 보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훗날 조비조휴로 하여금 청주, 서주의 도독으로 삼자 장패는 그의 지휘를 받아 조휴와 함께 여범을 격퇴시켰다.[4] 그 뒤 조비는 동쪽으로 순행하여 장패를 만났는데 장패가 과거 멋대로 청주로 되돌아 갔던 일을 의심하였므로 장패의 병력을 빼앗고 집금오의 벼슬을 주어 수도로 소환했다. 장패는 조예 시절까지 살았는데 그의 식읍은 3500호에 이르렀다. 230년에는 조예가 번창으로 행차하는 도중 장패에게 태위의 일을 대신하게 해 제사를 지내게 했다. 웬만한 무장으로서의 행적을 보이다가 의외로 말년에는 태위 대리까지 오른 인물.

1.3. 가족 관계


  • 아버지 장계(臧戒)
  • 아들 장애(臧艾)
  • 아들 장순(臧舜)
이외에도 열후로 임명된 아들 한 명이 더 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1.4.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스토리 중심축에서 떨어진 곁가지라 여겼기 때문인지 처음부터 여포의 부하로 나와 조조와 싸우는데 연주에서 처음 맞붙었을때 악진과 싸워 승부를 겨루지 못했다. 여포가 패망하자 장료의 설득으로 항복한다.[5] 나중에 적벽 전투 전에 방통의 계략으로 서량의 마등한수가 후방을 친다는 소문이 돌자 서서와 함께 산관으로 군대를 이끌고 떠나면서 적벽의 불사태도 운 좋게 피해갔는데 이후의 행적은 없다.

1.5. 미디어 믹스



1.5.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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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진궁과 함께 성을 수비하던 장수로 등장한다. 진등의 이간질에 넘어간 여포는 한때 이 둘을 의심한다. 나중에 조조에게 투항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1.5.2. 반삼국지


반삼국지에서도 짤막하게 등장한다. 마초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출병할 때, 조조가 이끄는 대군에 속해서 등장한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마초의 칼에 의해 쓰러진다.

1.5.3. 삼국전투기


장패(삼국전투기) 문서 참조.

1.5.4.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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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 10
삼국지 11
100만인의 삼국지
[image]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여포군의 부하로 등장한다. 별도로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도겸의 부하로 설정되며 정사대로 독립세력으로 나온 적은 없다. 능력치 자체는 평범하다. 여포군 투탑인 장료, 고순에 비하면 많이 처지는 편이고 시리즈에 따라서 실적이 비교도 안되는 송헌, 위속, 후성보다도 능력치가 나쁠 때도 있다. 삼국지 3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연의에서 산적 비슷하게 나온 탓. 비슷한 케이스인 이통, 문빙, 만총은 최근작에서 능력치 상승이 이뤄진 반면 장패는 아직 소식이 없다. 삼국지 시리즈에서 저평가된 인물 중 하나. 하지만 이래 봬도 도겸군 에이스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5/72/46/52. 분전, 돌파를 가지고 있다. 도겸군 아니면 안 썼을 그저 그런 장수.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3/72/49/56/69에 특기는 징병, 돌격, 기습, 기염 4개. 매력69가 미묘한 수치긴 해도 아쉬운대로 징병 특기가 효과를 발휘할 수는 있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74/75/52/56/71에 특기는 위압. 없는 것보다는 좋은 특기이기는 하나 영웅집결 기준으로는 같은 도겸군 장수인 손관도 특기가 위압이라서....
삼국지 12에서의 전법은 대타격. 장패의 무력이 어중간하고, 여포군에서는 여포의 인중여포 때문에 말할 것도 없으며, 도겸군에서도 진등의 매복의 독이 더 무섭기 때문에 쓸 일은 많지 않다. 일러스트는 말을 타고 고삐를 쥔 채 돌격하는 모습인데 그 뒤로 검을 들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78/75/53/56이고 중신특성은 없다. 전법은 소침공작이고 병과적성은 창A/기A/궁C이며 특기는 훈련 4, 순찰 1, 신속 6으로 전수특기는 신속이다. 이번 작에서 주군이 상당히 자주 바뀌는 장수로도 유명하다. 반동탁연합에서는 도겸의 수하로 등장하며, 군웅할거에서는 여포, 조조 어느쪽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여포토벌전에서는 여포, 관도대전부터는 조조군에 소속된다.
삼국지 14에서는 통솔 76, 무력 75, 지력 53, 정치 56, 매력 70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산전, 숲전, 위무, 주의는 패도, 정책은 군제개혁 Lv 4, 진형은 봉시, 장사, 추행, 전법은 분전, 대갈, 교란, 도발, 친애무장은 손관, 오돈, 윤례, 창희, 혐오무장은 없다. 게임 특성상 전투요원으로도 그럭저럭 쓸만하고, 지역담당관으로도 어느정도 굴릴 수 있는 나름 올라운더 타입이다. 특이한 점으로, 주요 이벤트가 많이 빠진 게임 특성상 초반 시나리오에서 유비 세력이 평원과 소패에서 벗어나기 힘든지라[6] 관우와 장비를 제외하면 쓸만한 무장을 재야에서 얻기 힘든데[7] 그나마 군웅할거 시나리오에선 이벤트로 서주를 얻으며 도겸 휘하이던 장패도 함께 얻기 때문에 초기 유비군에 있어선 반동탁연합 시나리오의 전예와 함께 귀중한 전투요원 중 한명이 되어준다.[8]

1.5.5. 영걸전 시리즈


영걸전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조조전에서만 등장한다. 영걸전에서 등장할 만한데 등장하지 않은 것이 조금은 의외. 조조전에서는 여포군에 소속된 적으로만 나오는데 병과는 적병계, 능력치는 별로이지만 몰우전을 장착하고 있어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군이 불리한 복양 전투 1, 2에서 꽤나 귀찮은 적. 그런데 하는 말마다 허세뿐인데다, 강한 적을 만나거나, 패하거나 죽을 때 하는 대사가 하나같이 늘 핑계만 대는 것들 뿐이다. 아니면 정신승리를 시전하거나... 이래저래 비호감. 서주 구원전에서 퇴각시키면 사망하며 허저 전용템인 몰우전을 남긴다.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조조전 분 아니라 여포전과 장료전에서도 등장한다. 장료전에서는 도적 출신이었으나 여포 일행에게 토벌당한 후 죽을 뻔 했으나 여포가 부하로 삼으면서 살아남는다. 견희를 보고 첫눈에 반해 적극적으로 대시하지만 견희는 그런 장패를 매우 싫어한다. 이후 조비가 견희를 취하자 조비를 미워하며 이후 조비가 견희를 내치고 견희가 자결하자 더욱 증오하게 된다. 다만 딱히 조비에게 무슨 짓을 하지는 않는다. 조비를 증오하지 말라는 장료의 유언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5.6. 진삼국무쌍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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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주로 여포군과 위군 클론 무장으로 나오는데 어째 여포군으로 나오는 비중이 더 많다. 그것때문일까... 진삼국무쌍 블라스트에서 '''여포군''' 무장으로 참전. 하지만 넘버링 작품에서는 장료처럼 처음에 여포군이었다가 나중에 조조군이 될 수 있다. 일단 무쌍 내에서의 입지는 여포군 취급이며 2016년 초 드디어 무쌍무장만 나온다는 슈퍼레어 승급을 하면서 차기작 참전 확률이 상당히 높아졌다. 성우는 요시다 켄지. 일단 SR판도 여포군 소속이다. 일단 이미지에서 들고 있는 무기는 4편까지 장료가 들던 구겸도(?!?!)이다. 일단 구겸도는 7편엔 없는 무기종인 만큼 노멀카드판과 SR판 둘다 무기는 장도계열인 언월도를 사용한다. 그 점은 미안한지 무쌍난무는 차별화시켜줬다. 차기작에서 구겸도 모션 복귀를 시사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 무장은 7명으로 끝으로 결국 클론 무장 탈출을 실패 하고 말았다. 심지어 DLC 추가도 본인이나 고순이 아닌 화웅이 꿰차는 바람에 차기작 등장은 아직도 요원하다.

1.5.7. 토탈 워: 삼국


군웅할거 캠페인에서 도겸 휘하에 등장하는 클론 무장으로 구현되었다. 타입은 용장.
배신당한 천하 캠페인에서는 동군 지역을 점거한 상태로 등장하며, 유비 및 정강과 전쟁 상태이다. 또한 1.5.0 패치로 추가된 도적 세력으로 분류된다.


2. 오나라의 장군 장패


張霸
(? ~ 226)
226년에 손권의 명령으로 장패는 제갈근의 부장으로 종군해 제갈근과 함께 위나라의 양양을 공격했는데, 사마의가 군사를 지휘해 공격하자 제갈근과 함께 격파되어 천여 명이 죽었고 장패도 참수되었다.
이 당시 위나라에서 조비가 병이 깊어져 사마의, 조진, 조휴, 진군 등을 보정대신으로 삼아 조예를 보좌하게 했으며, 조예가 즉위하고 손권이 상을 틈타 강하를 공격하자 위나라 조정에서 문빙을 구원하려다가 조예가 공격하는 쪽은 지키는 쪽보다 병력이 더 많이 필요하기에 오래 공격할 수 없다고 하자 그 말대로 얼마 가지 못해서 오나라의 군사는 물러났다.
이 뿐만 아니라 조진이 환에 주둔한 심덕을 격파해 죽이고 한종, 적단 등을 항복시켜 공격한 오나라의 군사들은 모두 위군에게 패배했다.
역사와 일화가 있는 고사성어라는 책에서는 고사성어 논공행상에서는 이 이야기를 설명하고 조예가 장수들의 공적을 조사해 상을 주어 그 공에 따라 행했다고 설명했다.

[1] 표면상으론 장패가 조조에게 복종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자신의 독립적인 세력을 자주적으로 굴리고 이해타산에 따라 협력하는 관계였으며,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장패가 조조가 수도로 삼은 업에 가족을 두겠다는 것은 조조에게 자신의 가족을 사실상 볼모를 두는 것이자 신하로써 섬기겠다는 복종의 뜻을 비춘 것이었다. 그래서 조조에게 충성심이 있다고 칭찬받은 것이다.[2] 원술이 과거 세력을 잡은 곳.[3] 조조는 세 번 유수구에서 손권과 싸웠는데 213년, 214년, 그리고 217년에 싸웠다. 이때는 217년의 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제기에 철수하면서 하후돈, 조인, 장료를 거소에 남겼다고 하고 장패전에선 하후돈과 장패를 거소에 남겼다고 하므로 하후돈이 거소에 남긴 시기였던 217년의 일로 추정이 가능하다. 또한 장패전에서는 손권이 항복했다고 했는데 손권이 이렇게 저 자세를 보였던 적은 213년과 217년의 일이었는데 213년에는 하후돈을 거소에 주둔시켰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4] 손권이 이릉대전에서 유비를 격파하고 조비가 대규모로 손권을 공격했을 때의 일이었다.[5] 연의에서 주요 군웅의 부하로 소개되는 인물들 중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관서의 군벌들은 모조리 한수의 부하로 묘사되었다.[6] 이벤트를 통해 서주에서 여남으로 쫗겨난 후 신야로 간다거나 하는 전개가 없다. 그냥 소패와 하비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상황.[7] 평원과 소패, 심지어는 하비에도 쓸만한 재야무장이 없다. 정확히는 지력이나 정치력 좀 되는 인물들은 있는데 무력 되는 인물이 거의 없는 수준[8] 삼고초려 시나리오 전까진 유비군 주요 전투요원인 요화, 주창, 진도등에 더해 유벽, 공도같은 아쉬운대로 쓸 수 있는 무장들, 이통, 여몽같은 다른 세력의 미사관 무장들이 모두 여남에 모여있기 때문에(관도대전 시나리오 같으면 아예 조운까지 여남에 있다) 조조, 원소, 여포, 원술, 손책 같은 세력들 틈바구니에서 관우, 장비를 빼면 이들만 가지고 버텨야 한다. 그나마 관도대전 시나리오에선 비어있는 수춘을 어떻게든 선점하면 장훈, 진란, 뇌박같은 구 원술세력 무장들이나마 얻을 수 있어서 좀 낫지만 이러면 역시 수춘을 노리는 손책과 정면충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