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처제 살인사건
1. 개요
1994년 1월 13일 충청북도 청주시 복대동[1] 에서 이춘재(31)가 처제 이 씨(19)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성폭행한 후 살해한 사건.
이후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지면서, 2019년 9월 18일 이후 뒤늦게 재조명되었다.
2. 상세
이춘재는 평소에는 소심하지만 한 번 터지면 매우 난폭한 성격으로, 부모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폭력적이 되었으며, 아내는 물론 아들까지 상습 폭행했다고 한다. 당시 겨우 2살이던 아들을 방 안에 가둬놓고 멍이 들 정도로 폭행했으며, 동서가 있는 자리에서 아내를 마구 구타하기도 했고, 사건 몇 달 전에도 아내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얼굴, 목, 아랫배 등을 무차별 구타해 하혈까지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 또한 경찰 조사 당시 부인이 울며 호소한 바에 의하면, 성 도착증이 있어 부인을 '''강간'''하기도 했다. #
결국 아내는 가출했으며, 이후 이춘재는 가출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아둬라"고 했다고 한다. 또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인 1월 초 동서에게 "아내가 다시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 못하도록 문신을 새기겠다"고 이야기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이춘재가 아내의 가출에 대한 보복으로 동생인 처제를 성폭행한 것으로 보았다.
사건 당일인 1월 13일 이춘재는 오후 2시 40분경 대학교 직원이던 처제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에 들러 토스터기를 가져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방문한 처제에게 수면제가 섞인 음료수를 먹였는데, 수면제 약효가 나타나기 전 처제가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가려 했고, 당황한 이춘재는 이를 막고 오후 6시 30분경 처제를 성폭행했다.[2] 이후 이춘재는 둔기로 처제의 머리를 가격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고, 오후 11시 40분경 집에서 약 880m 떨어진 철물점 야적장에 사체를 유기한 후 다음 날 장인과 함께 실종 신고를 했다.
사체가 발견된 것은 이틀 후인 1월 15일, 철물점 주인의 아내가 눈이 쌓인 차고를 청소하다가 발견했다. 당시 사체는 파란색 덮개로 덮여 있었으며, 머리에는 비닐봉지와 청바지가 씌워져 있었고 양손은 찢어진 속옷으로 묶여 있었다. 또한 전신이 스타킹과 가방끈 등의 물품으로 감겨 있었다.
3. 체포와 재판
이후 이춘재는 장인을 찾아가 뭐 도와드릴 거 없냐고 물어보거나 처제가 납치된 것 같다며 장인과 함께 파출소를 찾아가 실종 신고를 하는 등 태연하게 행동했다. 이후 처제의 시체가 발견되자 경찰은 처제 가족들을 찾아갔는데, 경찰에게 항의하거나 슬퍼하는 가족들 가운데 유독 무덤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이춘재를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처제가 살해되기 하루 전 처제와 통화했다는 점을 수상하게 여겨 이춘재를 심문했으나 발뺌했다. #
그러던 중 옆집 주민의 증언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는데, 사건 다음 날 이춘재의 집에서 아침 6시경 욕실에서 물을 바가지로 떠서 뿌리는 소리가 났으며, 그 다음날 오후 4시쯤 수많은 빨래가 방바닥에 널려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에 경찰은 욕실을 정밀 감식했고, 세탁기 받침대에서 이춘재가 미처 씻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미량의 혈액에서 피해자의 DNA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또 집에 있던 테이프 뭉치에서는 피해자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고, 사체를 묶은 스타킹은 아내의 스타킹과 같은 제품이었다.
처음에 이춘재는 우발적인 범행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조사로 이춘재가 처제에게 먹이기 위해 수면제를 수십 알 준비했으며[3] , 살인 이후에 시체를 유기하기까지 겨우 4시간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4] 또한 사건 진술에도 처제가 저항한 내용은 "왜 이러냐" 딱 한 마디 뿐이고, 그 외에는 저항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고 한다. 즉 이미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결국 계획범행이 인정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성폭행에 대한 계획범죄만 인정되었다.
이후 이춘재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가출해 혼자 지내는데, 처제가 찾아와 자신을 마구 비난해 싸우다가 홧김에 저지른 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범인들의 살인 동기에 대한 주장은 자기 보호적 기만과 감형을 받으려는 의도로 왜곡되므로 그대로 신뢰할 것이 못 된다. 반박할 피해자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떤 거짓말이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해자를 탓하며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방어적 주장을 펼치게 된다. 그 이전에도 아내가 가출한 후 처제가 종종 찾아가 조카를 돌보고 청소를 해줬다는 주변인의 증언이 있으며, 처제가 예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감옥 동기의 증언도 존재한다. #
이춘재는 1, 2심에서 모두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대법원에서 계획범행은 인정되나, 계획 살인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판단하여 파기환송했다. 결국 3심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이때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모든 사람에게 잘못했습니다"'''라고 했다는데, 표창원 의원은 이를 자신이 저지른 모든 범죄에 대한 처벌이 이것으로 끝난다는 마음이 우러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춘재는 현재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무기징역을 받은 경우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며, 이춘재는 모범수로 지냈으므로 가족의 증언에 의하면, 가석방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년이 되기 전에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그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비록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가석방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어졌으므로 영원히 교도소에서 사회와 격리돼 있다가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당시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김시근 형사는 당시 이춘재가 명백한 증거를 내밀고 추궁해도 혐의를 부인했으며,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으려고 애썼다고 회상했다. 당시 청주서부경찰서 형사계 감식 담당 이 경위 역시 범인이 범행을 치밀하게 은폐해서 증거를 찾는 데 며칠 밤을 새워야 했으며, 만일 DNA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춘재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 #
4. 기타
-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의 시그니처가 바로 피해자들을 전부 스타킹으로 묶었다는 것인데, 이 사건 역시 피해자를 스타킹으로 묶어 이춘재가 동일범이라는 증거 중 하나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따르면 이춘재는 처제가 죽은 것을 확인한 후에 목에 스타킹을 감았는데, 피해자를 제압하려는 것도 아니고 유기를 결심하기도 전에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습관화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 이 사건은 충북에서 DNA가 처음으로 증거물로 채택된 사례라고 한다. 이 사건의 범인이 저질렀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인해 DNA 조사 등의 과학수사 기법이 크게 발달했고, 이로 인해 결국 범인이 다른 사건에서 체포되었다는 점을 볼 때 간접적으로나마 경찰의 노력이 실효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물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히지 않아 이 사건의 희생자를 비롯한 다른 피해자들이 발생한 사실은 비극적인 일이다.
-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는 가장 숙제로 남아있는 게 바로 이 처제 살인 사건이라고 한다. 이유는 수법도 허술하고, 시신을 유기하는 거리나 방법, 신고부터 체포까지의 과정이 너무 허술하다는 것.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라고 한다. 다만 이전 화성 사건이 정교할 정도로 완벽한 범죄는 아니었긴 하다. CCTV가 없던 시절에 인적이 드문 외딴 시골에서 피해자와 연고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졌기에 용의자를 특정하기 힘들다는 점이 컸다. 이춘재가 용의주도했다기보다는 수사 자체가 허술했다는 것. 반면, 처제 살인 사건은 용의자가 대번에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지인이었고, 과학 수사가 발전했기에 잡힌 면이 크다. 즉, 이춘재의 살인 수법이 달라졌다기보다, 비슷한 수법이었는데 단지 가해자가 주변인이라 대번에 용의자가 특정되어 덜미가 잡혔던 것. 만약 처제가 지인이 아니었다면 일단 용의자 특정 자체가 어렵기에 쉽게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대표적인 미제 사건이었던 지라 이춘재가 지능범처럼 오인되기도 했으나, 지능범과는 거리가 먼 단순 변태 살인마였다. 실제 시체 유기도 잠깐 덮어놓은 수준으로 금방 발견되는 수준이었으며, 무엇보다 7차 사건 당시 범행을 저질러 온 몸이 흙으로 묻은 상태에서 텅텅 빈 버스를 홀로 타고 올 정도로 용의주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어쩔 수 없이 탔다면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데, 버스 기사와 다퉜다고 한다(...) 버스 엔진구에 남자가 흙발을 올리면서 다툼이 벌어졌다는데 욕을 거칠게 했다고 한다. 차 바닥에 침을 탁탁 뱉고, 심지어 라이터까지 빌렸다고 한다. 범행 직후 홀로 탄 버스에서 버스 기사에게 마치 자신을 알아달라는 듯이 확실하게 각인시킨 것만 봐도 전혀 조심성이 없는 인물이었다. 결국 이 버스 기사에 의해 현재까지 알려진 몽타주가 작성된 건데, 보다시피 이춘재가 용의주도했다기보다, 목격자가 없었기에 못 잡았던 것이다. 당시엔 과학 수사라기보다는 전적으로 목격자에 의존하는 수사였다. 피해자나 목격자의 증언으로 용의자가 특정되면 속칭 '공사'라는 고문 수사로 그냥 냅다 폭행해서 자백시키는 수사 기법이었다. 그런데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피해자도 살해당했고, 워낙 외딴 시골에서 벌어진 사건이다보니 목격자도 없고, 또 피해자의 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춘재에게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게다가 보통 범인들은 한 번 범행을 저지른 곳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특히 언론에까지 보도되면 일반 범죄자들은 잡힐까봐 자제하게 되는데, 버스 기사에 보여준 행동처럼 조심성 없이 그냥 배째라 범죄로 계속 저질렀고, 또한 워낙 수법이 엽기적이라 유독 눈에 띄는 범죄였다. 결국 아내를 만나 결혼하며 잠시 수그러들었으나, 아내와의 갈등이 엉뚱하게도 처제에게 불똥이 튀어 악마의 본성이 다시 나타나고 말았다. 다만 청주 사건은 피해자가 처제였던지라 금방 용의자가 특정되어 손쉽게 체포되었다. 또 단순히 성욕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 아내에 대한 복수심도 작용한 복합적인 범행이었기에, 이전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연장선이라기보다는, 번외로 저지른 범죄에 가까웠다.
- 여담으로 이춘재는 이 사건으로 붙잡힌 이후 면회를 온 어머니에게 "집 살림살이 중 태울 수 있는 것은 장판까지 모두 태워버리라"고 했다고 하는데, 단순히 처제 살인의 증거를 은멸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도 있지만 혹시나 있을 연쇄살인의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그런 부탁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 실제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교수는 연쇄살인마들은 본인의 범죄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심지어 은연 중 자랑거리인 냥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