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레스티노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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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대 클레멘스 3세

'''제175대 첼레스티노 3세'''

제176대 인노첸시오 3세
  • 생몰년: 1106년 ~ 1198년 1월 8일
  • 재위기간: 1191년 3월 30일 ~ 1198년 1월 8일
그는 로마에서 오르시니 가문의 일족으로 태어났으며,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부제급 추기경이었다. 스페인 전문가여서 2차례나[1] 교황 특사로 파견되었다.
첼레스티노 3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85살'''이었다. 첼레스티노 3세는 교황좌에 착좌한 바로 다음날 로마와 사이가 안 좋았던 하인리히 6세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대관하였고, 투스쿨룸의 요새를 파괴하도록 하는 등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였다. 하지만 하인리히 6세교황령의 일부 영토를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면서 대립하였고, 시칠리아를 정복하여 첼레스티노 3세를 압박했다.
이제 겨우 30살인 패기넘치는 황제는 90살이 다 된 교황을 압박하고, 십자군 운동까지 주도해 나갔다. 하지만 1197년 9월 28일 불과 31세의 나이로 하인리히 6세가 사망해 버렸고, 십자군 운동도 흐지부지된다. 오히려 첼레스티노 3세는 이듬해까지 버텨 1198년 1월 8일 92살로 선종한다. 이러한 상황은 후임자에게 큰 도움이 되어 교황권이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여담으로 풍차 돌리는 바람을 교회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바람세를 내게 하기도 하였다.

[1] 1154~1155, 1172~1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