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 왕조

 



'''촐라 왕조'''
'''சோழப் பேரரசு'''

[image]
B.C. 3세기 ~ 기원후 3세기
수도
우라이우르→카베리파타남
언어
타밀어
종교
드라비다교
성립 이전
드라비다인
멸망 이후
칼라브라 왕조
1. 개요
2. 역사


1. 개요


남인도에서 타밀족이 세운 고대 해양국가. 보통 초기와 중후기가 따로 존재 하는데 이문서에는 초기 촐라 왕조를 다룬다.

2. 역사


인도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의 일족인 타밀족이 기원전 2세기경에 남인도의 타밀 지역 동쪽의 코로만델(Coromandel) 해안[1]면화 무역지 우라이유르(Uraiyur)를 수도로 해 촐라 왕국을 세웠다. 기원전 2세기경 촐라 왕조의 엘라 왕은 실론을 점령한 후 약 50년 가량 지배한다. 그러나 촐라 왕조의 확실한 역사는 기원후 2세기에 왕국을 다스렸던 카리칼라 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카베리파타남으로 수도를 옮긴 후 실론에서 잡아온 포로 1만 2천명을 동원하여 카베리 강에 160km에 이르는 거대한 제방을 쌓아 관개농사를 짓도록 하였다. 왕국의 수도인 카베리파타남에서는 거대한 부두의 유적이 발굴되어 이곳이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 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웃의 체라 왕조판디아 왕국과는 사이가 매우 나빴으며 서로 치고박고 싸우기를 반복했다. 한때 체라 왕조의 공격으로 카리칼라 왕의 아버지 리암체체니가 사망하기도 했었다.
촐라 왕조도 다른 남인도 국가들과 같이 로마 제국과 같은 서방과 무역도 이루어졌었다. 그들은 주로 면화를 수출했다. 해상 무역의 안전을 위하여 상당히 잘 짜여진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리칼라 왕의 사후 급속히 쇠락하기 시작했으며 판디아 왕국체라 왕국의 압박이 심해져 더더욱 약화 되기 시작한다. 이후 이 지역의 패권을 얻는 칼라브라 왕조와 북쪽의 팔라바 왕조등의 영향으로 왕국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기원후 4세기에서 9세기가량은 그저 남인도 어느 구석탱이에 쳐 박히게 되는 쩌리 국가로 전락한다.
이후 9세기경 촐라 왕조가 다시 그 세력을 펼치는데 해당 부분은 촐라 제국 문서를 참조.

[1] 사실 유럽인들이 인도 남동해안을 부르는 역사적 명칭인 "코로만델" 자체가 촐라 왕국이라는 뜻의 "촐라만달람"(Colamaṇḍalam) 또는 이 축약형 "초로만달"(Coromaṇḍal)에서 유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