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1. 개요
'''종교'''(宗敎, religion)는 일반적으로 절대자나 초자연적인 힘, 절대적인 진리, 즉 신적 존재를 숭배하고 추종하거나 불교처럼 절대자가 아닌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깨달음 등을 추구하는 등의 문화 체계이다.
2. 상세
종교는 그 대상·교리·예식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 등의 초기적 신앙 형태로 부터 천주교, 개신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의 세계 종교에 이르기까지 비제도적인 것과 제도적인 것이 있다.
종교가 반드시 무언가를 믿거나 집단을 이뤄야만 하는 건 아니다. 동양의 종교(宗敎)라는 용어는 불교에서 왔으며 '으뜸되는 가르침'으로 해석된다. 반면, 서양 문명의 'religion'은 라틴어의 'religare' 혹은 'relegere' 에서 나온 말로 '다시 묶다' 혹은 '다시 읽다(생각하다)'를 뜻한다. 종교라는 명칭이 현재의 모든 종교 개념을 가리키게 된 것은 일본이 religion의 번역어로 '종교'라는 단어를 채택하면서부터다.
고전 종교의 경우 도그마의 설정, 즉 중심이 되고 기본이 되는 명제를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가르침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강한 믿음이 따르며 신도들간의 유기적인 집단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현재에 와서는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는' 믿음과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유기적인 집합체를 종교, 종교집단으로 보고 있다.
비록 일부 철학자들은 여전히 종교를 정의할 때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빼먹지 않지만 이제 많은 학자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종교의 정의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많은 신흥 종교가 초자연적인 존재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종교의 정의가 너무 막연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중국에서 발생한 도 계열의 사상(유교, 도교 등)은 종교가 아니라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동양은 서양과 달리 모든 학문에 세세한 구분이 없었다는 걸 감안하고 보면 유교에서도 충분히 종교적 색채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역시 종교로 구분하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다만 종교의 의미는 신을 섬기고 삶의 목표를 찾아가는 행위를 하여야 하는데 유교는 신이 없고 학문만이 존재한다. 조선시대 유교를 유학이라 칭하고 대표적인 유교사상을 가진 정도전 역시 “불씨잡변” 이라는 책을 써내 신을 섬기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종교가 아닌 학문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 유'교'가 아닌 유'학'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이 점을 보았을때 종교에 포함되지 못한다. 대한민국에서도 종교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배울 때는 문화일 뿐 종교는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宗敎"는 불교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높이기 위해 만든 말이고[1] 유교, 도교도 이것을 받아들여서 자신들을 종교로 칭했다. 이렇다 보니 "불교/유교/도교는 宗敎가 아니다." 하면 '''어원을 따져보면 매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된다.''' 宗敎라는 용어의 원조들을 놓고 宗敎가 아니라고 하는 꼴이다. Religion을 宗敎로 번역하다 보니 생긴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2] 그리고 사실 서양식의 종교 개념은 동양에서는 도(道)라고 불렀다. 삼국시대의 오두미도,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전봉준을 현상수배하면서 내건 명분인 혹세무민의 도 같은 것이 해당된다.
종교심리학자들은 종교에 대해서 "영성을 증진하도록 설계된, 잘 확립된 제도의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 유의미성에 대한 탐색"(the search for significance that occurs within the context of established institutions that are designed to facilitate spirituality)이라고 정의하고 있다.[3] 즉 이에 따르면 소위 영성에 관련하여 확립된 제도와 규율, 교리가 존재할 때 그것을 종교라고 부를 수 있다.
반면 영성(spirituality)의 경우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것의 추구로 이해될 수 있는데, 흔한 생각처럼 꼭 "영성은 좋고 종교는 나쁘다" 같은 극단적인 주장은 학술적 근거가 미약하지만, 아무래도 영성은 외적인 고정점이 없다 보니 종교보다 더욱 유연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종교는 대인관계적, 영성은 개인적 같은 대조방식도 있으나 영성의 경우도 카페나 동호회, 수련기관 등을 많이 찾아볼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항상 들어맞는 설명이 아니다.
종교는 문학에 항상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서양의 유명 문학 중에는 기독교와 조금도 연관이 없는 작품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환상(판타지) 문학을 예로 들자면,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톨킨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루이스는 독실한 성공회 신자로, 이 두 작품은 환상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작품 안 곳곳에서 기독교적인 메타포를 찾을 수 있다. 문학 뿐 아니라 건축, 조각,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방면에서 종교가 끼친 영향을 보면 '문화' 자체와 연관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종교의 3대요소는 교조, 교리, 교단이다. 교조는 종교를 만든 사람, 교리는 종교의 가르침 및 행동규범, 그리고 교단은 종교를 믿는 사람을 가리킨다. 교단을 집회장소와 헷갈려서는 안될 것이다.
3. 종교의 기원
종교의 기원은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종교라는 분류 자체가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있는 명확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선사 시대부터 매장의식 등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굉장히 오래 전부터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뿐이다.[4] 물론 초기의 이러한 흔적들이 현대적 의미의 종교와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종교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 만들어지고 발전되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신앙이나 믿음은 인류가 모르는 것을 설명하고 도덕규범을 정하기 위해 존재해 왔다. 자연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경험을 문자의 형태로 보관할 수 없었던 시절엔 번개나 화산 폭발 같은 자연 활동은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범주에 있었다. 또한 짐승들의 습격이나 외적의 침략도 한정된 정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으며, 이는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화물 신앙에서 보이듯 신기하고 새로운 문명을 만나게 되면 그것이 신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류는 최초의 종교 형태라 여겨지는 토테미즘, 샤머니즘, 애니미즘 등의 형태로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여기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유용한 경험 등을 접목시키고 도덕 규범을 만들어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전승시키는 방법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종교의 본격적인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게 없으며, 사람만 종교를 가진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대체로 오늘날의 추세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1) 종교를 가진 집단이 없는 집단보다 유리해서, 2)집단의 생존에 유리한 특성이 종교를 만들게 해서, 3)바이러스가 퍼지듯이 그 개념이 부모-자식으로 연결돼서. 물론 3가지 중 어느 것도 아직 결정적이지는 못하다.
한편 동물들도 무리지어 생활하는 종들은 유행가 같은 그들만의 문화가 있는 경우가 있고, 일례로 벌허스 프레더릭 스키너의 비둘기 실험에서 원시적인 형태의 미신이라고 생각 할 수 있을만한 일이 발견된 적도 있다. 다만 기억할 것은, 그런 상관관계의 착각이 원시적인 미신과 동일한 메커니즘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복잡한 종교로 발전되는 과정은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내용이며 미지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대략적인 실험내용은 이곳에서 확인가능하다. 영문으로 된 원문.
4. 종교의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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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종교의 발원과 분포를 나타낸 영상
세계 주요 종교 인구 변화 및 추세를 나타낸 영상
대한민국은 유교, 도교, 불교 등 동양에서 유래된 종교를 근간으로 하지만, 지금은 기독교(천주교+개신교)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 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 전체의 절반은 무종교다. 이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세속주의적 국가로 보는 견해가 많다. 다만 제사를 종교 제의로 해석할 경우, 인구 상당수가 유교 신자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5]
통계적으로 세계 인구의 84%가 종교를 믿고 있다. 북, 동유럽, 미국의 동서부, 동아시아 같은 극히 일부의 지역을 제외하면 절대 다수. 의외로 아직도 지구는 '종교인의 행성'인 셈이다. 세계를 양분했던 냉전시대의 공산권의 공식적인 정책이 반종교 내지는 무종교주의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6]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에는 종교는 인정하지 않으나 종교나 다름없는 강력한 공산주의 사상의 교조주의[7] 가 있었으며 그런 점에서 상당히 종교와 비슷한 면이 강했다. 중국의 경우 당국의 종교규제에도 불구하고 종교인(특히 기독교인)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며,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중동, 남아시아, 아프리카 같은 곳은 현재도 워낙 종교가 위세가 강하다보니 위와 같은 수치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종교인이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이러한 추세를 타고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 전망된다. 소속된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일코를 하는 무종교인/무신론자들도 있다.[8] 많은 사회에서 무종교인/무신론자들은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충 해당 사회에서 가장 융성한 종교를 믿지만 상세는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굳이 연구조사에서까지 일반인 코스프레를 할 필요는 없겠으나, 사회를 살면서 한국같은 지역과 달리 한 종교가 사회문화에 독점적인 이데올로기를 차지하는 문화권이나 국가에서는 제법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동아시아 문화권은 세속적 성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일각에서는 흔히 말하는 '종교' 외에 역사 및 민족적 요소가 종교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불확정적이고 불안한 상태의 사회를 규합하고 안정화하고자 서로가 공통으로 믿고 따를 무언가가 필요한데, 서양 및 중동에서는 종교가 이 역할을 해 왔고, 동아시아에서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민족 감정이 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동아시아에서는 역사가 종교 수준으로 신성시되어, 역사를 모독하는 것은 매국노를 자처하는 것이 되며 큰 비판을 받게 된다고. 이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종교로 분쟁이 일어날 때 동아시아에서는 역사 문제로 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본인의 저서 제 3의 침팬지에서 무신론자들은 심신을 영적인 절대자가 아닌 국가적 권위에 기대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통계적 결과를 가장 잘 대표하는 지역이 동아시아 지역이다.
5. 사회와 종교
그동안 학계의 인식은 인구와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게 되고, 농경시대로 변환되면서 종교가 생겼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터키에서 12,000년전의 종교시설물이 발견되면서 가설이 깨지게 되었다. 수렵시대에 생존에 직결되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돈과 인력이 필요한 것임에도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종교라는 것이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종교의 영향력은 다른 건축물로도 알 수가 있는데, 고대의 스톤헨지부터 모아이, 피라미드, 하기아 소피아, 성 베드로 대성당, 불국사 등등 종교 건물들은 항상 당대의 최고의 기술력이 총집합된 결과물이였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종교는 사회체제의 보호장치로서, 혹은 사회체제의 강제장치로서 어느 정도의 권능과 사회적인 책임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문자의 발명으로 지식이 쌓이게 되자 종교는 한층 체계를 잡아나가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권위를 가지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대 그리스를 중심으로 과학지식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자연현상을 설명할 만한 충분한 기반 지식이 부족하고, 이를 연구할 인재를 기를 교육적 기반이 부족하여 과학에 대한 개념이 본격적으로 성립하는 근대까지는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서 종교는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종교는 인류 문명이 발달할수록 문화 및 행동 양식에 끼치는 영향이 점점 커졌는데, 집단 내에서 종교는 사회적인 불만을 해소하고 체제를 안정시키며 도덕, 양심, 박애, 사랑 같은 장치를 통해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는 복지 기능을 겸하기도 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빈민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빈민구제가 빈민을 더욱 타락시킨다고 보았다. 로마인들은 부양해야 할 사람들을 특별히 자신들이 베푼 서비스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사람들만을 돌보았다. 정부에 의해 실시된 무료급식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것이었고, 개인적으로 실시한 구제도 과시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다. 하지만 로마에 기독교가 들어서며 국가가 빈민구제를 목적으로 장기간 복지 정책을 행하기 시작했고,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천년 가까이 종교 활동은 봉사에 상당히 기여하며, 20세기에 와서야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등의 형태로 다시 국가가 복지 정책을 행하는 주체로 돌아오게 되었다. 비록, 봉사 자체는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인 교세 확장에는 효과가 별로 없기는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 종교의 이미지를 좋게 포장할 수 있으므로 도움을 받는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반대로 보람이나 자기만족등이 이유인 경우도 많다. 이는 일본의 종교 선교, 봉사의 예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한편, 사회 체제의 일부로서 자리 잡게 된 종교는 여타 사회제도가 그렇듯 순기능만이 아니라 악기능도 많이 가지고 있다.[9] 종교 간의 분쟁과 그로 인한 피비린내나는 전쟁, 학살, 테러리즘은 유럽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정도이며, 현대에 와서도 1990년 냉전이 끝난 이후부터 본격적인 분쟁의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2001년에 터진 9.11 테러는 종교분쟁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특이점으로서 매우 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종교가 민중의 편에서 지배계급의 탄압에 맞서 싸울 때도 있었으나,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는 순간부터는 종교가 지배자의 편을 들어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했고, 혹은 직접 지배권을 행사할 때도 있었기에 과거보다는 종교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실제로 선진국일수록 종교에 대한 열망이 줄어들고 '''후진국일수록 종교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이 강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선진국 사람들은 비교적 오랜 기간동안 먹고사는 데 큰 걱정이 없으며 교육수준이 높으니 종교의 가르침에 의존할 필요도 사회의 안정을 위하여 종교를 사용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단, 이것이 선진국이라고 해서 무조건 비종교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래된 기성종교들이 수직적인 명령구조로 인해 종교가 현대사회에 맞춰 변하는 것을 방해받는 사이, 신흥종교가 이 틈을 타 현대 문명에 더 밀접한 신앙과 규범을 내세우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고, 그 중엔 사이비 종교도 급속히 퍼져서 사회 불안의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종교가 비록 자연에 대한 설명은 과학에게 그 권위를 넘겨주었지만 윤리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아직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현대 도덕 역시도 거슬러 올라가면 종교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10] 선진국이라고 무조건 비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사실 국가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하더라도, 무신론자마저도 부모님의 산소는 정성스럽게 돌보는 등 어느 정도는 종교적인 행동이 관찰된다. 현대 한국의 기독교나 불교 같은 메이저 종교는 단순히 신앙생활 뿐 아니라 친목과 모임 공유 그리고 여러 방면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역할의 기능을 하고 있고, 아직 이 두 종교가 한국의 정치와 사회 등에 미치는 영향력이 꽤 크다.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와 사찰들이 괜히 SKY Church 혹은 SKY Temple이라고 불리는게 아니다.
종교학자 찰스 킴볼(Charles Kimball)은 종교의 타락을 경고하는 다섯 가지 징후로 '''1) 절대적인 진리 주장, 2) 맹목적인 복종, 3) 이상적인 시대 확립, 4) 목적을 위한 수단의 정당화, 5) 성전(聖戰) 선포'''를 각각 꼽았다. 전근대의 상당수 기독교, 이슬람교 종파들, 또 현대의 맹목적 과격신자들이나 사이비 종교 신자들 상당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알 카에다, 무슬림 형제단 등의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또 현대에 세력을 확장 중인 힌두교 근본주의 집단[11] 이나 미얀마의 아신 위라투, 969운동 같은 불교의 급진과격파들도 다섯 가지 전부는 아니라도 상당수 요소를 겸한다.
종교와 지능 간 관계에 대해 메타분석을 한 연구에 의하면, 지능과 종교는 부적(負的) 상관관계(Negative Correlation)[12] 를 가진다. <The Relation Between Intelligence and Religiosity: A Meta-Analysis and Some Proposed Explanations> 해당 문헌에 따르면, 지능이 높은 사람은 종교 도그마에 대해 저항적(Resistive)이며, 분석적인(Analytic) 사고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종교가 가지는 기능(자기조절 등)을 지능이 담당하여 종교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또 다른 문헌인 <Average intelligence predicts atheism rates across 137 nations>에 의하면 지능과 종교는 부적 상관관계(Negative Correlation)를 가진다.
6. 개인의 심리와 종교
나무위키의 종교 관련 내용들은 전문신학자들의 서술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이단들도 여기저기 섞여 있고 앞뒤가 충돌하는 내용들도 많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 중립적인 입장이라면[13] 사실상 종교관련 문서들은 웬만하면 진지하게 믿지 말고 그냥 참고만 하자.
6.1. 행복과 종교
실제로 종교성은 행복 문제를 다루는 분야인 긍정심리학에서 매우 강조하고 있는 개념이다. 심지어 어떤 연구자[14] 들은 "성공적 노화의 필연적인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종교성이다" 라고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흐름에 있어서 비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인터넷의 일부 반종교주의자들이 이런 트렌드에 당혹스러워하듯이 "어딜 감히 종교 따위가 인간의 행복을 논해?!"(…) 같은 유치한 공격은 하지 않는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은 논문 한두 편 쓴다고 쉽사리 반박될 수 있는 주장이 "이미" 아니다.[15][16] 가장 주된 비판은 역시 용어의 정의 문제. 종교성(religiosity)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협소한 개념이고, 그보다는 영성(spirituality)이나 초월성(transcendence) 같은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17]
그리고 외현적 종교성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종교는 또한 그 신자들을 사회적으로 결속시키고 자조집단을 형성하게 함으로써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이를 통해 신자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에 근거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 혹은 강화하고, 자신이 외톨이가 아니라 어딘가에 소속되어 서로 돕고 도움 받는 관계임을 실감할 수 있다. 개인의 행복이나 인격의 도야, 수양등도 중요한 순기능이지만, 사회의 일부로서 소속되어 관계성(relatedness)을 유지하며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측면의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도 분명 간과하기 어렵다. 특히나 이는 사회적 연결망이 붕괴하기 시작하는 중장년~노년기 개인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이렇게 종교는 행복에 있어 여러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위에서 나온것처럼 종교가 행복의 필수조건이진 않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편안함을 제외하면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에서 행복감에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고[18] 편안함에서도 차이는 단지 0.6%밖에 되지 않았다. 국제적으로 30년간의 연구를 종합한 메타연구에서도 종교의 영향력은 작았다.[19][20] 즉 종교가 행복에 좋은 영향을 주긴 하지만 그 영향은 다른 사회적 요인들처럼 작다.
또한 인간은 그들에게 행복감을 준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지는 않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종교가 행복감을 주는 데에 있어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 종교가 앞으로도 무조건 쇠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유럽사회에서는 그러한 종교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쇠락하거나 세속화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21]
6.2. 이타성과 종교
대부분의 종교는 공통적으로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면서 다른 사람을 위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교리부터가 개판 5분 전인 종교도 역사상에 존재하지만 그런 종교들은 대개 공동체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회의 배척을 받았다.
그렇다면 종교는 과연 인류의 모든 갈등과 분쟁의 궁극적 원인일까? 유사 이래 종교는 넓게는 세계구급 전쟁부터 시작해서 좁게는 키배를 유발하는 떡밥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종교가 갈등의 선동자로 여겨지는 경우도 많지만 인류학자 스캇 에트란의 연구에 따르면# 3,500년 동안의 주요한 충돌 중 60%가 종교적인 동기 없이 이루어졌으며, 종교적인 동기에 의해 야기된 전쟁은 7%에 불과한 소수라고 한다. 종교적 동기와 전쟁 사이의 연관 관계를 0~5 단계로 나누어서, 그 중 3단계 이상의 것이 7%이다.[22]
종교적인 것과 이타적이거나 많이 베푸는 행동 사이의 관계(Religiosity and Generosity)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아직까진 단일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연구들[23] 은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과 같은 다양한 가상적 상황에서 종교인들이 비종교인들보다 더 이기적인 선택을 보임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들은 실제 사회적 상황에서의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자기 자신이 굉장히 이타적이며 활수한 사람이라면서 스스로의 친사회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24] 을 보인다고 한다. 한편 진화심리학자 아라 노렌자얀(A.Norenzayan)[25] 은 종교의 친사회적 가치를 역설했는데, 한 논문에서[26] 그는 십자가 등의 신적인 심상으로 점화(priming)된 개인은 자원배분 게임에서 유의미하게 후하게 베풀어주는 모습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이유인즉슨, "은연중에 신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어서" 더욱 친사회적으로 나누어주고 베푸는 행동으로 유도하기 때문이라고.[27] 그 외에도 다른 진화심리학 논문에서도[28] 종교의 친사회성을 강조했는데, 여기서의 설명은 "초자연적 실재의 처벌에 대한 공포가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 이익만을 무절제하게 추구하지 못하도록 붙잡아 줄 수 있다" 는 것이다.
이렇듯 종교와 도덕성의 상관관계는 아직 미궁 속에 있으며 다른 주제들이 그렇듯 단순한 관계가 아닐 확률이 높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에서는 내집단/외집단 변인[29] 이나 사회경제적 지위(SES) 및 참가자 교육년수 변인[30] 의 통제 문제, 내적 종교성과 외적 종교성 여부[31] 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연구자(들)의 종교적 배경이 무엇인지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한편 종교인들은 유의하게 더 불의(injustice)에 대한 민감성이 높고, 타인의 잘못에 대해 관용보다는 엄정한 처벌을 원하며, 때때로 이것은 엄벌주의로 연결되곤 한다는 연구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꼭 사적 제재와 같은 수단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진 않는다. 어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심지어 "하느님에게 처벌을 아웃소싱한다" 고까지 했을 정도.[32] 그러나 이런 지각된 정의(perceived justice)의 측면에 대해서는 무조건 나쁘다기보다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적응적이고 친사회적인 측면도 있으니만큼, 이를 근거로 "그러니까 종교는 좋다/나쁘다" 같은 식의 초보적인 이분법적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록 현대 법학의 흐름이 회복적 정의에 초점을 두고 있긴 하지만, 개인이 종교가 있든 없든 우리 사회에서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33] 의 가치는 분명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은 도덕과 종교의 관계 문서도 같이 볼 것.
6.3. 통제감과 종교: 공정하고 질서 잡힌 세상?
동기(motive)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에게 통제감이라는 주제는 20세기 중엽부터 종종 종교성과 함께 엮여서 논의되어 왔다. 초창기의 통제감에 대한 연구는 통제의 소재(LOC; Locus of Control)라는 개념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자기 자신에게 통제의 능력이 있다고 믿는 내적 통제소재(I-LOC), 자기 외부의 다른 무언가에게 통제의 능력이 있다고 믿는 외적 통제소재(E-LOC)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외적 통제소재가 문제가 되었는데, 초기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은 매사에 무기력하고 숙명론적(fatalistic)이며 운과 우연 및 기회에 의존하는, 한 마디로 의지박약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이 통제소재 이야기는 굉장히 가치 개입적인 것이었다.[34] 여기서 문제는 '''종교는 외적 통제소재의 일부'''이고, 따라서 '''종교인들은 전부 나약하고 한심한 의지박약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통제소재 이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공격받았는데, 비서구권의 문화나 아프리카계 및 아시아계들이 주로 높은 외적 통제소재를 보이기 때문에 자칫 자문화 중심주의나 인종차별에 악용될 수 있음이 인식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프레드 로스바움(F.Rothbaum) 등의 연구자들에 의해 제시된 1차-2차 통제 이론이 통제소재 이론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롭게 제기된 이 이론은 멜빈 러너(M.J.Lerner)의 공정한 세상 가설(Just World Hypothesis)에 기초하고 있는데, "세상은 공정하고 균형잡혀 있다(The world is fair and balanced)" 는 언명으로 요약될 수 있는 세계관의 하나이다. 해당 문서 참고. 아무튼 새 이론에 따르면 '''종교는 2차 통제인 대리 통제[35] 의 일부로서, 전지전능한 신을 상정함으로써 개인이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인식하도록 돕는 적응적 기능을 담당한다'''. 또한 어째서 종교인들이 악의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든 세상이 결과론적으로는 공정하다고 강변하려 하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36]
이후 유명한 종교 연구자 아론 케이(A.Kay)는 보상적 통제 이론(CCT; Compensatory Control Theory)을 제안하면서, 내적이든 외적이든, 1차든 2차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든 종류의 통제감은 결과적으로는 "질서 잡히고 예측 가능한 세상" 즉 지각된 질서(perceived order)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근원적인 동기에 봉사하며, 어느 하나가 사용불능이 되면 다른 하나로 재빨리 옮겨갈 수 있다고 보았다. 쉽게 말해서 "내가 통제하고 있다" 는 그 자체로 본질이 아니고, "상황이 잘 통제되고 있다" 의 한 하위 분류일 뿐이라는 것. 이러한 심리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세상은 이 이유 때문에 질서 잡히고 잘 통제되어 있다. 뭐, 아니라고? ...그렇다면 저 이유 때문에!"[37] 로 요약할 수 있겠다.(…)
케이는 이에 따라 인간의 종교성에 대해 특이하면서도 흥미로운 발견들을 다수 보고하였다. 우선, '''사람은 불안할수록 신을 찾게 된다.'''[38] 실험 상황에서 참가자에게 내적 통제감을 낮추었을 때, 불안해하는 참가자들에게서 종교성이 높아졌던 것. 이 때문에 미국 중부, 남부, 남동부가 "바이블 벨트" 라고 불리며 극성 종교인들로 들끓는 것은 특유의 대가족 문화에 더하여 토네이도, 허리케인 등 천재지변이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39] 당장 직관적으로 세속적이고 신무신론적인 사회들을 떠올려 보아도, 그 국가들이 자연재해에 취약하지 않거나 경제위기에 잘 흔들리지 않는 사회구조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40]
다음으로, '''신에 대한 개인의 신앙심은 정부(?!!)에 대한 신앙심으로 자유롭게 대체될 수 있다.''' 실제로 중요한 선거 이전에나 레임덕으로 정부가 고생하고 있을 때에는 사회 전반의 신앙심이 증가하며, 반대로 신임 정부수반이 당선되거나 강력한 공권력을 발휘할 때에는 신앙심이 역으로 감소한다는 보고가 있다.[41] 따라서 정부가 부패가 심각하거나 합법적이지 못한 내각이 구성되어 있거나, 혹은 여러 이유로 정치적 안정성이 낮다고 느껴질 때 개인은 그만큼 신에게 "질서 있는 예측 가능한 세상" 을 요청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대로 캐나다에서 이루어진 한 실험에서는, 참가자들 절반에게는 "현대과학이 발견한 각종 물리학적 법칙과 이론들에 따르면, 모든 자연현상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신은 필요하지 않다" 를 보여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비록 현대과학이 발견한 지식과 이해가 신의 존재를 확증하지는 않으나, 그것들은 신의 통치와 능력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를 보여주자, 전자의 집단이 후자의 집단보다 자국 정부의 역량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42] 요약하자면, 정치가 불안하면 신을 찾게 되고, 신의 존재에 회의감이 들면 정치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된다는 것.
연구자들은 더 나아가서 종교뿐만 아니라 '''각종 음모론이나 망상, 착각적 상관, 징크스 등등이 개인적 통제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더 잘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43] 일부 다국적 기업들이 모든 환경 문제와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만악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것, 일부 군산복합체가 전세계의 분쟁과 전쟁을 사주하고 있다고 믿는 것, 일부 유대계 자본과 소수의 가문이 전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한다고 믿는 것 등이 전부 세계에 대한 통제감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44] 심지어 사이언스 지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TV의 백색 노이즈 화면에서조차 "뭔가 패턴이 보인다, 이미지가 보인다" 고 보고하기도 한다![45]
7. 종교의 현재와 미래
현대 사회에도 종교가 사라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종교는 여전히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단 종교는 논리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은 확실하게 이성적으로 증명된 것만 믿는 존재가 아니다.[46]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일부 깐깐한 영미권 고학력자들의 편견 및 고정관념이며, 이런 비이성적인 '마술적 사고' 는 사실 비 종교인에게서 조차 나타난다고 한다. 연구자 매슈 허트슨에 의하면 사람은 이런 마법적, 마술적, 혹은 종교적인 사고를 갖고 있으며, 이것 없이 이성만 강조하다보면 건강한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47] 게다가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제임스 K. A. 스미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어떤 형태로든)신앙하고 있으며, 믿음에 기반하지 않은 채로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수능날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서 떨어진다, 수능날 엿을 먹으면 시험에 붙는다는 것이[48] 이런 종교적(비과학적) 믿음의 대표적인 예시다.
- 위에서 다루었던 내용과 반대되는 주장으로 종교가 사람의 본능적인 욕구를 채워주기에 티모시 윌슨과 쉬나 아이엔가는 복지, (특정 수준 이상의) 자본, 성생활 등 그 어떤 조건보다 종교를 믿느냐 안 믿느냐가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끼치며, 종교가 없는 것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쉬울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종교가 삶에 이유와 관계를 주기 때문이다. 연구결과들을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사람은 이성 만으로 사는 것이 아닌, 관계, 감성, 삶의 이유 같은 것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욕구들을 가장 잘 채운 것 중 하나가 종교였다. 유럽같은 안정적인 복지를 건설한 나라들은 종교가 쇠락하거나 세속화되었으나 경제 공황이 찾아오자 교회가 다시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다.[49][50]
선진국 중심의 이론적으로는 이렇긴 하지만 실상 종교학자들과 전문가들은 현재와 근미래에 세계 평균적[51] 으로 '종교인의 인구와 종교의 영향력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52]
- 우선 비종교인이 많은 지역/국가의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다. 전 세계의 비종교인의 대다수(95%)가 몰려 있는 서구권(16.3%)과 동아시아(78.7%)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 지역은 세계적인 저출산 고령화 지역이며, 매우 종교적인 개발도상국 지역의 이민자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 서구권 현지인들과 동아시아인들은 비종교적이며 아이를 많이 낳지 않으나, 종교적인 이민자 이슬람 가정은 아이를 매우 많이 낳고 있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서구권 국가에서는 종교적인 이민자들이 비율을 점점 늘리다 굉장한 숫자를 차지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물론, 생활 수준이 낮을수록 종교를 가지는 비율이 높고 종교와는 별개로 역시 생활 수준이 낮을수록 출산율이 높으므로 종교와 출산율의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지는 않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현재 출산율이 세계 최정상급인 문화권의 사람들은(대표적으로 이슬람권 및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권) 다수는 종교성이 매우 짙은 인구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들이 서구로 이민오는 사람들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 장기적으로 볼때도 서구에서나 세계적으로나 인구증가율이 가장 높기도 하다.
- 반면 매우 종교성이 높은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출산율은 익히 알고 있듯이 매우 높은 편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나 이슬람 국가들이나 남아시아 지역의 출산율도 꾸준히 높은 지역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종교인들이 매우 많으며, 종교의 힘이 현대화된 선진국 지역보다 훨씬 막강하다. 또한 이들 지역에서도 종교인이 비종교인들보다 훨씬 많은 자녀를 낳고 있다. 또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성장과 사회 변화에 따른 탈종교화, 비종교인 증가도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이런 현상을 찾을 수 없으며, 종교성이 매우 높은 아프리카, 인도나 남아시아에선 급속한 경제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 대부분의 종교성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 또한, 상당수의 국민들이 기존의 기득권 종파를 떠나기는 하되, 유럽처럼 세속화되지는 않고 개신교 같은 타 종파로 개종하는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나, 공산권 붕괴 이후 종파를 가리지 않고 종교인구 및 종교성이 대폭 증가한 카자흐스탄등의 중앙아시아권, 친종교적인 국가정권의 지원 및 국민 정서나 종교의 국가정체성화 때문에 종교인의 비율이 늘거나 여전히 압도적인 러시아, 발칸반도 및 캅카스, 폴란드, 미얀마, 이슬람권 국가들 같은 경우도 있다. 종교인의 숫자가 줄거나, 또는 정교분리, 세속화 정도가 심한 서구 및 동아시아의 프레임으로 전 세계의 모든 종교권을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 또, 출산율은 종교보다는 소득과 더 상관이 있다. 동아시아와 유럽은 잘 사는 선진국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경제적 여건이 풍족한 경우가 많고, 따라 피임약을 먹거나 콘돔을 살 돈이 충분히 있고 이는 출산율의 저하를 불러온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만큼 풍족하지 않다. 즉, 아무리 종교성이 강하더라도 경제적으로 풍족해 진다면 출산율도 낮아질 것이다. 물론 종교가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나라가 갑자기 선진국이 될리도 없으므로 종교인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종교의 영향과 종교인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종교 생활의 패턴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선진국들의 예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의 인간 계발 지수가 높은 나라들에서는 전통적 종교 기관에 속해 있는 수는 줄어들지만, 자신을 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사람으로 정의하는 인구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하여 일각에서는 종교의 미래가 도그마와 교리에 따른 중앙집권적 체제에서 영성에 따른 개인 중심주의로 옮겨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러한 예측은 서구 선진국 종교권 한정이다. 제3세계 및 개발도상국 대다수 지역에서는 여전히 개인 영성보다 기성 제도권 종교의 힘이 압도적으로 막대하며,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미래에는 세계의 주요 종교 지형도 크게 바뀔 것으로 예측된다. 먼저 서구 선진국에서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힘이 약해지고 무종교, 이슬람 및 타종교의 세력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서구 등에서 세력을 잃은 기독교는 대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중남미, 중국 및 남아시아와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거나 꾸준히 성장할 것이며, 이러한 개발도상국에서의 교세 성장에 힘입어 선진국의 신자수 이탈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54] 제3세계의 기독교 성장은 주로 개신교, 그중에서도 복음주의 종파, 은사주의 및 오순절교회가 주도하고 있다.[55] 또한 과거 1960~80년대 대한민국에서 그랬듯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개신교=미래지향적이며 첨단적인 종교'로 인식하고 산업화, 경제발전과 맞물려 교세도 성장하는 추세이다. 반면 서구권의 기독교, 특히 백인 기독교 신자는 아미시등 소규모 공동체, 민속촌 정도에서나 명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톨릭 역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제3세계의 신자 증가 현상은 동일하며[56] , 이를 통해 서구권의 신자 손실을 상쇄하고 소폭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래에도 세계 기독교의 인구비율(32~34%)과 성장율은 세계의 인구 성장율에 약간 웃돌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이슬람은 아랍, 북아프리카, 남아시아의 인구폭발에 힘입어 세계 인구성장율보다도 빠르게 증가하여, 21세기 중후반에는 기독교와 세계 1,2위를 다투는 거대종교가 될 것이며, 특히 유럽에서의 인구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 21세기 말에는 기독교를 소폭 추월해 세계 1위의 종교가 될 전망이다. 단, 이슬람교 항목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슬람교의 출산율 자체도 매우 서서히 감소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21세기 끝 무렵에는 기독교와 세계 인구비율이 비등비등(35%)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기 말에는 세계 인구의 '''70퍼센트''' 가까이가 아브라함 계통의 유일신교(그중 절대 다수가 기독교와 이슬람)를 믿게 될 것으로 보인다.
힌두교 역시 남아시아 지역의 계속되는 인구성장에 힘입어 여전히 인도 아대륙 한정으로 21세기에도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측된다. 단, 인도 내에서는 힌두교가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에 있긴 하나, 무슬림 및 타종교인구 성장에 장기적으로는 살짝 밀릴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평균 증가 비율은 기독교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불교의 경우는 전통적 지역인 동아시아와 태국, 미얀마 등의 장기적인 저출산 여파 + 기독교처럼 세계적인 선교 및 타지역의 교세확장으로 전환하기 힘든 점[57] 때문에 정체 내지는 소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20세기 중반부터 서구권에서 불교를 믿거나 불교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라 서구권한정으로 불교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유대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유대인 인구비율은 소폭 줄어들고, 내부적으로도 이스라엘에서는 하레디 같은 정통파-극정통파 근본주의 성향 유대교인들이 늘어나고, 세계적으로는 세속적인 유대교인들이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거기다 유대인들의 제 2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무슬림 인구에게 추월당해 제 2의 종교 타이틀을 잃어버릴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토착 신앙과 전통 종교는 메이저한 종교들에 밀려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발달로 AI가 교주가 되는 기상천외한 종교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세계 종교의 미래에 대한 허핑턴포스트 분석과 미국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결과(영어)도 같이 참조하자.
8. 각종 오해와 통념들
- 모든 종교의 본질은 사랑이다
- 종교와 종교인이 '변질'되었다며 비판 하거나, 자신의 종교를 비판으로부터 옹호하려는 측에서 내세우는 명제이다. 그러나 세계 4대 종교라고 일컫는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의 핵심 교리를 보면 그 본질을 사랑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58] 기독교나 이슬람의 핵심 교리는 죄로부터의 구원 또는 단죄이며, 불교의 핵심 교리는 공(空) 사상과 윤회설이다. 힌두교 역시 불교와 유사하게 윤회설과 카르마, 즉 업(業)에 따른 신분 결정을 핵심 교리로 한다. 종교의 본질은 차라리 사랑보다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믿을 수 있는 관념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넓은 의미의 사랑이나 베품을 중요시 여기는것은 어느 종교던 기본적으로 강조하는 것 또한 맞다. 기독교를 예시로 들면 성경에서 예수는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며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강조하였고, 불교 역시 자비, 그리고 자비의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 보시를 중시하는데 이는 사랑이라는 개념과도 교집합이 있다.
- 종교는 한낱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한바탕의 뻘짓일 뿐이므로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연구할 만한 하등의 가치가 없다.
- 이와 관련해서는 종교학자 파스칼 보이어(Boyer, 2004)가 《Skeptics Inquiry》 저널에 기고한 글을 볼 것. Boyer(2003)나 레슬리 프란시스(L.J.Francis)의 다른 저작들도 함께 참고.
- 종교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종교는 대부분 사후세계등 증명 불가능 한게 많지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완벽한 주장은 아니다.
- 위와는 전제가 정반대지만 동일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주장. 이것도 마찬가지다. 종교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것이라고 일단 가정하자. 하지만 세상에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으면서 거의 아무도 그것에 자기 삶을 투신하지 않는 것들도 있는데, 종교는 21세기가 되도록 국제정세의 최대 핫 이슈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이는 분명히 설명이 요청되는 것이며, 따라서 종교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개인의 신념" 에 더하여 그 이상의 사회현상이 되어 버린 무언가인 것이다.
- 예를 하나 들자면 예전에 비가오는걸 신이 내려준거라 했다면 지금은 과학적으로 증명가능하다. 이외에도 사후세계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증명되고 있다. 물론 이는 종교에 사실관계를 따진거긴 하지만 애초에 주장이 옳으려면 근거도 옳아야만 하다.
- 종교는 믿으면 믿을수록 좋지 않은 것이다.
- 실제로는 종교를 믿어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사람도 많다. 참고로, 이런 식의 신앙심을 가리켜 종교 연구자들은 "credo quia consolans" 라고 부른다. 즉 "그것이 내게 위안이 되기 때문에 믿는다" 라는 뜻.[59] 신앙주의 항목도 함께 참고. 물론 종교에 지나치게 심취해서 자기 혼자 마음은 편하지만 자신의 생활과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결국 적당히 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렇다고 종교를 과하게 믿으면 안 좋다고 해서 종교자체를 믿으면 안 좋다는건 아니다. 물론 맥락이 종교를 과하게 믿으면 좋지않은 것이다라고도 볼 수 있는데 어떠한 것도 과하면 좋지않다.
- 모든 종교인들은 무식하며 아는 것이 별로 없다.
- 과학혁명 이후의 역사만 논한다고 쳐도, 멀게는 마이클 패러데이에서부터 가깝게는 프랜시스 콜린스[60] 까지 박식한 종교인들도 적지 않았으며, 이들은 무슨 맥스웰이나 에이브러햄 링컨의 사례처럼 반박할 여지조차 없는, 진짜배기 독실한 신앙심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 미국 센서스 조사결과 대학원이상 고등교육 진학률이 가장 높은 집단은 무신론이나 종교 없음이 아니라 유대교인들이다.[61] 게다가 1901년부터 2000년 까지 노벨상 비율을 조사해 보았더니 # 종교인이 89.5% 무신론자 10.5%로 나온것으로 보아 종교인들을 비과학 무식으로 몰아가는것은 최근 공격적 반종교 성향 인터넷 출처의 근거없는 추측이다.[62]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모든 과학자 집단으로 치환하는건 상당히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노벨상 수상자의 상당수가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던 20세기 초중반에는 무신론 자체가 인기있거나 널리 다뤄지던 사상도 아니었고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밝히는게 개인적인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크고 작은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반면에 무신론 주제가 대중적으로 화두되기 시작하는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전세계의 무신론자 비율은 늘어나고 있으며 당연히 이 시기부터 업적을 내기 시작한 과학자들은 압도적으로 무신론 비율이 높다.
- 이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종교에 종사하는 사람"과 "종교를 가진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종교인이 목사, 신부, 승려, 라비, 선지자, 기타 종교적 지위를 가진 사람인지, 해당 종교의 신도인지는 문맥을 볼 필요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 쪽을 의미하든 근거 없는 망상일 뿐이다.
- 종교적 몰입은 일부 무지하고 피암시성이 높은 저학력 하류층에서만 나타나며, 교육을 통해 계몽되어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게 된 지성인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 가난한 사람일수록 종교에 많이 의지하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종교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 현사회는 옛날의 강박적 종교와 다르게 반대양상을 보인다.. 오히려 서유럽보다 동유럽의 무종교 비율이 높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경우 구동독지역 무종교비율은 75~80%에 달하지만 서독의 경우 25% 내외이고 독일 평균은 33% 정도이다. 종교인 비율은 영국의 경우 51% 호주는 62% 미국은 77%이다. 반면 구 동구권의 경우 그 반대이다. 대표적으로 구 소련 국가 에스토니아가 무종교 비율이 세계 1위이며[64] 1위부터 10위중에 일본과 북유럽국가를 제외하면 6개가 구공산권 과 중국 이다.
- 위 편견에 대한 근거로 자주 미국의 바이블벨트가 가난하다는 것, 그리고 북유럽과 네덜란드[65] 의 무종교인 비율이 높다는 것이 언급되나 되려 이 세 지역이 특이한 편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또한 북유럽과 네덜란드에서도 국지적으로 종교 인구가 전국 평균을 웃도는 지방들이 존재하는데, 결코 가난한 동네들이 아니다.
- 한국에서도 2015년 수행된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서울사회학》 에 실린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적어도 서울시 기준으로는 정반대의 추이가 관찰되었다. 가장 갑부 동네로 알려진 강남구와 서초구 등 동남권은 종교인의 그것도 기독교인 비율이 전국평균(개신교+가톨릭=28%) 보다 한참비율도 가장 높고(개신교 27%+가톨릭 16%= 43%), 개신교인 역시 가장 많았지만, 서울시의 대표적인 서민층의 베드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은평구 및 도봉구, 그리고 저소득층의 비율이 높은 관악구의 경우 오히려 무종교인의 비율이 시내에서 가장 높았다.[66] 특히 종교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던 은평구를 비롯하여, 마포&서대문 등의 서울 서북권은 개신교인의 비율이 강남&서초 지역에 비해서 10% 가량 낮게 나타났다. 이지역의 기독교 인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는 해외거주경력이 있는 인구가 다수 거주하는 점과 연관이 있다.
- 이와 관련하여 변미리 서울연구원 글로벌미래연구센터장은 중앙일보 기사에서 "우리나라의 종교는 갈수록 중산층을 위한 종교가 되어 가고 있다" 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빈곤층은 경제적이고 시간적인 빈곤 역시 경험하게 되고, 제도화된 종교에서도 겉돌게 되며, 종교생활이 자신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
- 정확히 말하면 돈이나 교육은 정확히 말하자면 부수적 요소이고 사회 환경의 안정성이나 심리 상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핀란드에서 노키아가 무너져 실업률이 올라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교회출석률이 갑자기 올라가는 상황을 보였다. 종교가 개인의 불안이나 사회의 불안에서 피난처 역할을 하니 사회가 안정적일수록 주는 것은 당연한 현상. 그리고 유럽과 미국 같은 경우는 종교를 접하기 좋고 호의적이며 구 소련 국가들은 국가의 영향탓에 종교를 접하기 안 좋은 환경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낮을 수 밖에 없다.
- 다만 이 항목에 서술된 반론들은 선진국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선진국 반열에 들기 어려운 나라들과 기독교 이외의 종교까지 포함한다면, 종교의 지배가 강한 나라일수록 부유하지 못하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는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 액수의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중동 산유국들이 과연 종교에 무관심한가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니다.
- 하지만 전세계 적으로 산유경제 의존비율이 낮은 선진국들의 무종교인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것은 명백한 사실이다.전통적 기 독교 문화권이자 선진국이 다수 포진한 유럽의 경우 비종교인이 늘어가고 있고 되려 전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아프리카가 전세계 에서 기독교인 인구가 가장 많은 대륙이 되었다.
- 종교에 의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를 가졌는가/아닌가보다 그 종교에 얼마나 필사적으로 매달리는가, 즉 광신의 정도도 매우 중요한데 잘사는 나라일수록 종교적 광신도가 다수파를 차지하기 어렵다는 의미에서는 맞을 수도 있다.
- 물론 위의 말은 이제 편견으로 보일수밖에 없는게 왠만한 선진국들은 종교색이 얕아졌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중 종교적이라는 미국은 2017년을 기준으로 무종교인이 30%로 많이 늘었으며 G7에 소속된 나라들을 보면 적어도 각 국가의 20%의 인구는 무종교인이다.
- 모든 종교인들은 정신적으로, 지적으로 뒤떨어지는 나약한 사람들이다.
- 예를 들어 사람은 의미를 두고 증명할 수 없는 것(사후세계 등)에 의미를 둬야 마음이 편해지므로 어느 부분은 나약하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런데 그건 거의 모든 인간이 그렇고 꼭 종교인이라고 할 수가 없다.
- 도리어 종교생활에 충실한 노인들이 그만큼 연령에 결부된 인지적 감퇴(age-related cognitive decline)가 느려진다는 연구결과는 많이 있다.[67] 그러다 보니 영성(spirituality) 내지는 종교성(religiosity)을 성공적 노화의 조건(!)으로 포함시킨 연구자들도 나타났다.[68] 또한 종교를 가진 개인들은 회복탄력성(resilience) 역시 더 크며,[69] HIV 환자들 중에서도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비난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 적게 보고했으며 더 의연하고 성숙하게 죽음을 수용했다.[70]
- 모든 종교인들이 사후세계를 동경하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즉, 내가 지금 어떻게 살든지 간에 나는 무조건 사후에 좋은 곳에 가게 될 것이므로, 이승에서의 자기 삶에 별 의미(meaning)를 두지 않으며, 밀도 있는 건강한 삶을 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실제로는 종교적 헌신이 높은 사람들은 항상 "삶의 의미가 충만하다" 고 보고했으며, 대조적으로 낮은 종교적 헌신 또는 비종교인 집단은 자기 기분이 좋을 때에만 높은 삶의 의미를 보고했다.[71] 참고로 삶의 의미는 현대 긍정심리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이를 바탕으로 한 심리치료 기법도 있다.
- 어린 자녀를 부모가 교회 등에 데려가서 주일학교(sunday school)와 같은 공동체에 소속시키거나, 가정에서 종교 교육을 시키는 것은 자라나는 어린이를 테러리스트 광신도 꿈나무로 만드는 세뇌 과정이다.
- 이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이슬람 근본주의 문화권에서는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선진 서구사회라면 사춘기의 역할을 너무 간과한 주장이다. 즉 자녀는 사춘기에 부모의 기대대로 철두철미한 종교인이 되는 정체감 폐쇄(foreclosure)를 경험할 수도 있지만, 제도권 종교행사에 참여하기를 저항하면서 자신이 자신답기 위한 종교적 탐색을 하는 정체감 유예(moratorium)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리고 부모의 가정교육이 세뇌 효과를 보일 거라는 생각 자체가 잘 쳐 봐야 30~50년대 서구 지식인들의 추측일 뿐이다.[72] 당연히 현대의 학계는 그 사회의 지배적 가치, 부모의 종교적 헌신의 정도, 신학적 보수성,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 양육환경 등을 모두 고려한다.
- 국내 한정으로, 현실적으로 자녀의 종교적 양육이 그렇게 쉬웠으면 한국 개신교계가 소위 "다음세대"(next generation) 담론으로 비상이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해당 문서에서도 나오지만 모태신앙이 실은 "못 해 신앙"(...)이라는 자학개그도 돌고 있는 형편이다.
- 만약 종교적 양육을 세뇌라고 불러야 한다면 각종 전래동화와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의 이야기, 다양한 사회화 과정 모두를 세뇌라는 메커니즘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아동의 인지적 발달 외에도, 여러 분야에 걸쳐서 세뇌의 중요성은 오히려 많이 감소했다. 도리어 사이비 종교처럼 누가 봐도 저건 세뇌가 아닌가 싶은 현상조차도 수많은 (그리고 더 정교한) 대안적 설명들이 제시되어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세뇌 문서에 서술된 것처럼, 세뇌는 독특한 환경 속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영향의 과정이며, 아무데나 무작정 세뇌라며 갖다붙이는 건 개념의 오용 가능성이 클 수 있다.[73] 더욱이 현실에서는 다양한 정보매체를 통해 아이들이 계속된 정보를 얻으며 당장 교회 내에서도 아이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하고 접촉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 부모의 종교적 양육은 "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너는 지옥불에 떨어져 영원히 불탈 거야!" 라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 모든 악습은 종교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악인이다.
- 반종교 및 도덕과 종교의 관계 참고.
- 종교는 문명을 쇠퇴하게 한다. 또는, 종교는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백해무익한 현상이다.
- 기독교와 이슬람을 믿는 학자들 중에서는 종교적인 사상에서 영감을 받는 이들도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따르면 인류가 가상의 것을 실제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사피엔스 들이 타 인종들 보다 우월하게 됐다고 설명했고 그 중에 하나로 종교를 들었다. 실제 종교 사원이 생기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종교가 멀리 있는 사람이라도 같은 종교내에 존재한다면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당장 이집트의 피라미드 역시 파라오가 신의 화신이라는 종교적 믿음을 통해 사람들이 뭉쳐서 만들어 낸 산물이다. 더욱이 종교가 인류 태동부터 같이 있었으며 한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문명을 쇠퇴하게 하고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을 마치 사실인 냥 떠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주장이 성립하려면 다른 조건은 모두 같은 전제 하에 종교가 있는 지역은 문명이 쇠퇴하고 사회발전이 저해되고 없는 지역은 발전을 거듭해야 하는 비교실험을 통한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류에게는 종교가 없었던 적은 거의 없었으며, 게다가 종교의 형태 역시 굉장히 다양했으며, 더욱이 현재의 사상의 밑바탕에는 종교적 사상이 깔려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에서 저 논리는 검증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더욱이 종교가 사회발전을 저해했다면 여기까지 쌓아올 수도 없었을 것이며, 사회발전에 기여한 사람들 중에서도 종교인은 존재하면 안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대표적으로 뉴턴은 신이 창조한 세계는 질서정련하다고 생각하여 기계론적인 세계관을 생각해내었고 서양철학의 기초중 한분인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은 신을 중심으로 전개 되었고, 그에게서 배운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그의 사상에 종교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의 발전에 불교와 유교의 영향을 제외할 수 없으며,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사상이 합리적인 자본주의 출현에 기여했다고 보았으며, 인도는 힌두교의 영향을 제외할 수 없다. 그리고 각 국가의 신화들과 이 신화들이 문학에 미친 영향(능력, 등장인물의 이름 ,클리셰 등등)들을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 종교라는 존재가 빠진 적이 없었다. 이런 착오가 생기는 이유는 현대 기준으로 과거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발전속도는 굉장히 느렸다. 따지고 보면 과거의 발전 하나하나가 기적 수준이다. 당장 철기 사용만 보더라도 인간이 어떤 돌이 불에 녹고 이 돌이 굳으면 단단해진다는 사실에서 착안하여 철광석을 불에 집어넣고 두들기고 온도를 높일 수록 더욱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제련소를 만들어 철기를 보급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발견과 발명 하나하나가 엄청난 것이다. 현재야 지식이 많이 쌓여 지식을 기반으로 빠른 발전을 할 수 있었지만 과거에는 그런 거 없었다. 또한 종교 때문에 쇠퇴한 것 보다 정치, 경제 때문에 나라가 쇠퇴한 경우가 더 많다.
- 모든 종교인들은 폭력적이게 될 수밖에 없다.
- 과학기술과 종교는 공존할 수 없으며, 어느 한쪽이 필연적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다.
-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이다. 과학vs종교 항목 참고.
- 모든 전쟁의 원인은 종교다.
- 반종교주의자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탈레반, IS처럼 현대사회에 합당한 논리 없이 일어난 세계인들의 뇌리에 박힌 커다란 사건들과 전쟁의 원인중에 종교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 전쟁들도 순수 100% 종교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고, 멀리 갈것도 없이 임진왜란과 6.25 전쟁같이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의 대부분은 종교와 관련이 없다. 또 1, 2차 세계대전이라든가 걸프전, 미국-멕시코 전쟁, 베트남 전쟁 등 원인이 종교와는 한참 먼 전쟁도 많다. 한마디로 모든 전쟁의 원인이 종교란 건 섣부른 결론이다. 참고자료
- 사회심리학자들은 대규모 집단 사이의 갈등과 공격성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연구들을 수행해 왔다. 셰리프(M.Sherif)의 저 유명한 로버스 케이브(Robbers Cave experiment) 실험과 같은 현실적 집단갈등 이론도 있고, 이외에도 T.Wildschut의 불연속 효과 연구, Hovland와 Sears의 희생양(scapegoat) 연구 등등 매우 많다. 이 분야도 의외로 수많은 연구자들이 갈아넣어지고 있는 주제다! 물론 종교도 (용어의 엄밀함은 차치하고라도) 하나의 변인으로 간주할 수는 있겠지만, 이걸로 백 퍼센트 모든 걸 설명한다는 건 결국 스스로의 지적 게으름을 보여주는 것밖에는 안 된다.(…)
- 조금 극단적인 반례지만, 인류학자 섀그넌(N.Chagnon)은 브라질의 야노마미(Yanomami) 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일견 흉포하고 공격적이며 전쟁을 밥 먹듯이 하는 이들의 호전적 성향은 단지 여자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심각한 성비 격차로 인해 마을의 생존이 위협을 받자 이웃 마을로부터 여성을 납치해오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전쟁으로 인해 남아 선호 사상이 촉발되어서 곧 다시 성비가 악화된다는 것. 여기서 종교 문제는 내지는 "종교적인[76] 동기" 는 단 1g 도 관여하지 않았음에 주목해 보라.
- 사회주의 국가들은 종교의 자유가 없다.
- 반정도는 사실이지만 완전히 사실은 아니다. 국가 무신론 항목 참조.
- 종교인들이 베푸는 선행은 모두 그들이 믿는 신에게 잘보이기 위한 행위다.
- 이는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베푸는 선행은 다 그들의 이미지를 더 좋게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만큼이나 잘못된 편견으로, 단순히 선행을 베푸는게 좋아서인 경우도 꽤 있다. 이런 문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런 자선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이런활동외에 대부분의 종교가와 연예인들은 직접 찾아가 봉사를 하기도 한다. 기독교 계통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를 막론하고 개인의 선행으로 내세에 구원받는다는 주장은 초기교부시절부터 이단선언 되었다.
- 일부 종교, 특히나 기독교 계통은 오히려 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행을 하는 것을 외식이자 위선이라며 극도로 혐오하는 경향을 보인다.
-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은 인맥을 형성하고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위함일 뿐이다.
- 일부 진실. 특히 재외교포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사실인데. 해외에 나가면 제일 먼저 한인교회(혹은 성당)부터 찾아가서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도 있을 정도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부유층들 역시 몇몇 대형교회 내에서의 네트워크를 통해 기득권을 다지려는 경향 역시 없지 않다.
- 그러나 명심할 것은, 전체 종교인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상당히 실례다. 종교성을 간혹 I&E 종교성이라는 개념으로 분류하는 학자들이 있는데,[77] 위의 편견은 어디까지나 E 종교성, 즉 ‘외현적 종교성’일 뿐이다. 실제로 I 종교성, 즉 '정말로 그 교리를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고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평생을 헌신하고자 하는' 진지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참고삼아 연구 하나를 인용하자면,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G.Allport)는 I 종교성을 가진 사람들이 E 종교성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편견 및 고정관념이 현저히 낮고 타 인종에게도 더 많은 환영과 호의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반대로 사회생활과 인맥관리를 위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편견과 아집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고. 해당 연구는 Allport & Ross(1967).
- 종교인들은 노력도 하지않고 기도만으로 이루려 한다.
- 제대로 된 종교인들은 그들이 믿는 신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돕지 않는걸 잘 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이 왜 존재하는지 생각해보자
- 종교는 지배층이 하층민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도구다.
- 결론부터 말하면 종교가 제도적으로 말하는 정치보다 더 빠르게 나왔다. 물론 이것도 정치를 좁은 의미의 정치(한마디로 의회나 지배방식)으로 본다 면이다. 넓은 의미로 보면 일상생활에서 분배과정이 정치니 정치가 좀 더 빠르다 할 수 있어도 둘 다 인류 최초의 산물들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아마 토마스 f. 오데아의 이론처럼 종교가 권위적 가르침을 통해 사회의 규범과 제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측면을 집중해서 보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배층이 규범 유지를 위해 종교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종교가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것은 백퍼센트 거짓이다.[78] 오히려 종교가 대중을 모아서 정치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인류 초기의 신전인 괴베클리 테페 통해 보았을 때 먼저 종교가 있었고, 종교적 제단을 만들기 위해 사람이 모일 수밖에 없었고 그 인력을 먹여살리기 위해 농업이 발달한 게 아니냐는 가설도 제기된다.
8.1. 소수종교 관련
- 몰몬교도들은 일부다처제를 선호한다.
- 1890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사실 과거 몰몬교의 일부다처제라는 것은 모진 박해로 인하여 가장을 잃은 가족들을 위한 대안가족의 성격이 더 강했다..고 주장한다[79] . 하지만 아직도 억지로 일부다처제를 주장하는 극단주의자들도 있는데 주류교회 사람들은 당연히 싫어한다.
- 몰몬교는 흑인과 성소수자를 싫어한다.
- 흑인의 경우 2대 교주가 인종차별적이었기 때문에 생긴 편견. 지금은 딱히 다른 교파에 비해 차별하지 않는다.
- 조로아스터교도들은 불을 숭배한다.
- 유교는 무조건 여성을 억압하는 구절밖에는 없다.
- 실제로는 소학 제2장 명륜편에 "오불취" 나 "삼불거" 같은 구절들이 최소한의 보호를 담당했다. 물론 무시당하면 별 수 없겠지만(...)
9. 종교의 계통/목록
10. 관련 문서
[1] 으뜸 종에 가르칠 교. "종갓집"이란 말이 저 종 자를 쓴다.[2] 원래 종교로 부르던 것들 외에 다른 것을 추가하더니 원래 있던 것을 빼버리는 격[3] Hill et al., 2002; Pargament, 1997.[4] 실제로 70만년전에 지구에 있었던 네안데르탈인들에게서도 이따금 매장의식이 나타나곤 했다. # [5] 당연한 것이 한국의 유교식 제사는 유교 경전인 주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달리 해석하기는 어렵다. 정교회와 가톨릭 등의 보편교회 신자 중 7성사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없듯이 말이다.[6] 공산권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가 주도로 종교를 차별하고 공산당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등의 종교탄압 정책이 시행되었다. 2차대전 시기의 소련같이 일시적으로 종교탄압의 고삐를 풀어준 케이스도 있고 일단 헌법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소극적으로든 교묘하게든 적극적으로든 대중을 종교와 차단하고, 일괄적으로 종교단체를 탄압하는 경우가 많았다. 절대 다수의 공산권 국가에서 무종교를 권장하는건 허용되지만 종교 포교는 막거나, 종교인들을 강제수용소나 감옥에 가두고 심하면 처형하는 일도 다반사였으며(종교가 아니라도 공산권에서 흔한일이기는 하지만), 종교 시설이나 종교 학교는 폐교 및 축소되고, 종교를 가지면 기득권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등 철저한 차별이 만연해 있었다. 결국 이러한 배경 속에 공산권 통계에서는 종교가 사실 있으면서도 겉으론 없다고 답한 사람도 상당히 많았을 것이라고 본다.[7] 공산주의자들은 "전세계적 공산혁명(세계혁명), 즉 최후의 심판이 머지 않았으니 이 혁명이 완수되면 모든 왕정, 자본가, 지주들을 심판하고 모든 사람들이 풍요롭고 평등한 이상적 공산주의사회, 곧 지상락원이 도래할 것"이라는 등 자신들의 혁명이론에 기독교적 종말론 세계관을 차용했고 이 때문에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쉽게 먹혀들어갈 수 있었다.[8]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은 해당되지 않는다.[9] 특히 비교적 역사가 짧은 종교일수록, 교리가 엄격하여 유연성이 부족할수록 그런 경향이 강한 편이다.[10] 물론 이 말은 "무신론자는 비도덕적이다"라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11] RSS, 시브 세나 등의 힌두교 극단주의 단체들[12] 수학적 내삽(Mathematical Interpolation)을 거치면 반비례 곡선이 된다.[13] 아무것도 모르는 호기심에 들어왔다면[14] Crowther, Parker, Achenbaum, Larimore, & Koenig(2002)[15] 자립심이 결여된 행복이 제대로 된 행복이냐고 비판할 수 있을 텐데, 의미추구적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 "신으로부터의 이성의 자립" 을 강조한 행복심리학자가 혹시 있는지 확인 바란다. SWB 계통 연구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16] Glass, de Leon, Marottoli, & Berkman, 1999; Ell, Nishimoto, Morvay, Mantell, & Hamovitch, 1989; Vahia et al., 2011; Koenig et al., 1998; Hill, Burdette, Angel, & Angel, 2006. 노인심리학 관련된 주요 연구성과만 모아봐도 벌써 이만큼 나온다.(…)[17] 여담이지만, 종교를 싫어한다고 알려진 유명 무신론자 중 하나인 샘 해리스(S.Harris)의 경우에도 영성이나 명상 같은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18] 구재선, & 서은국. (2011). 한국인, 누가 언제 행복한가?.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25(2), 143-166.[19] 종교의 영향은 주관적 건강이나 돈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했다. 참고로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개인간 행복의 차이의 50%를 설명하는 유전...[20] Diener, E., Suh, E. M., Lucas, R. E., & Smith, H. L. (1999). Subjective well-being: Three decades of progress. Psychological bulletin, 125(2), 276.[21] 유럽사회의 경우는 근대의 합리주의와 자발적 사고, 선진적인 사회, 비종교적 가치관의 보편화를 통해 종교를 통한 행복보다는 종교를 벗어나서도 안정된 사회제도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종교 자체의 여러 문제점을 수용하면서까지 종교가 주는 행복감을 굳이 추구할 필요가 사라졌다는 점이 크다. 또한 유럽 현지의 기독교 전통은 반사회적이거나 역기능적인 측면이 상대적으로 덜하며, 그래서인지 반종교적 레퍼토리도 그만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애초에 유럽권 지식인들이 영미권 반종교주의자들을 까는 주된 소재 중 하나가 "너네들은 아직도 계몽주의 시대에 살고 있냐" 하는 거다.[22] 다만 이것으로 성급히 종교는 전쟁과 관련한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 7%로 인한 희생자도 어마어마한 숫자이며 애초에 종교가 없었다면 희생자가 그만큼 줄었을 테니까. 종교가 인류에게 준 손익을 따지려면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분야에 대한 복잡한 연구가 필요한데 그마저도 정확히 따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종교로 인한 갈등이 더 많은지 종교로 인해 억제된 갈등이 많은지'''는 매우 큰 화제지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은 알 수 없을 것이다. [23] 관련 논문을 찾고 싶다면 다음을 참고. Applegate, Cullen, Fisher, & Ven, 2000; Galen, 2012; McKay & Whitehouse, 2014; Sablosky, 2014; Shariff, Piazza, & Kramer, 2014; Decety, Cowell, Lee, Mahasneh, Malcolm-Smith, Selcuk, & Zhou, 2015.[24] 학문적으로는 moral self-enhancement라고 하며,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의 한 종류로 보고 있다.[25] 얼핏 생소한 이름처럼 보이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진화심리학계의 잘 나가는 중진 학자 중 하나다. 2008년에는 《사이언스》 지에 종교적 친사회성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논문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고, 연구방법론 상으로도 학계에 처음으로 WEIRD 문제로 통칭되는 표본편향(sampling bias) 문제를 제기한 인물이기도 하다.[26] Sheriff & Norenzayan, 2007.[27] 이는 실제로 그리스도교 계통에서 말하는 "코람 데오"(Coram Deo) 정신과도 통한다. 이 라틴어의 뜻은 대략 "신 앞에서" 로, 종교개혁가들의 슬로건이기도 했다.[28] Johnson & Bering, 2006.[29] 즉 위에서 화이트가 말한 "자기 종교 구성원에게 한정된 선행과 이타성" 을 말한다.[30] 보통 종교인들의 문제점이라고 거론되는 것들은 저소득층+ 저학력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즉, 종교인의 어떤 특성에 대해 연구할 때에는 부유한 종교인 대 부유한 비종교인, 가난한 종교인 대 가난한 비종교인 식으로 비교해야 하지, 그냥 싸잡아서 종교인 대 비종교인 식으로 연구하면 안 된다는 것.[31] 예컨대 한 고전적인 연구에서는(Allport & Ross, 1967) 독실하게 종교적 교리를 따르고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사람들은 이타적이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단지 외적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더라는 보고도 있었다.[32] 예를 들어 큰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은 사람을 보고 종교인이 '저거 나중에 지옥갈거다.', '다음 생에 편히 못 살거다.' 라고 하며 체념 아닌 체념을 하는 것이 이런 측면을 보여준다. 사실상 신분제가 존재하는 인도에서 전생에 대한 믿음이 특히 강한 것도 관련이 있어보인다. '내가 지금 핍박 받고 살지만 다음 생에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겠지', 내가 못사는건 전생에 죄를 지어서겠지.'라는 생각. 이를 통해 종교가 개인이 저항할 수 없는 불의에 대한 심리적 도피처를 제공한다는 의견도 있다. 비겁한 합리화, 현실도피라는 말도 있다. 괜히 '''민중의 아편'''이라고 불리는게 아니다. [33] 위키러 여러분이 "솜방망이 처벌" 관련 뉴스기사를 읽고 분개한 적이 있다면, 여러분도 응보적 정의를 인지적으로 경험한 것이다.[34] 물론 영향력 자체는 막대했으므로 교과서에는 종종 실린다. 그러나 오늘날의 심리학자들 중에 이것을 "고스란히" 긍정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35] 대리 통제(vicarious control)는 비단 전능한 유일신뿐만 아니라 강력한 중앙정부, 권위주의적 가부장, 카리스마 있는 리더 등에 대하여 그들의 강력한 통제권에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통제력을 발휘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런 대상들에게 극성 종교인들이 광적으로 찬동하는 것도 심리학적으로 보면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닌 것.[36]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고. Anderson, Kay, & Fitzsimons, 2010; Jost & Kay, 2005; Kay & Jost, 2003.[37] 세상을 보는 이러한 태도는 기존의 "세상은 공정하다" 에서 벗어나서, 심지어는 현실의 부조리와 문제점에 순응하게 만드는 "세상은 원래 불공정하다, 그래도 질서는 잡혀 있으니 괜찮다" 에까지 개인이 수긍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정치심리학자 존 조스트(J.T.Jost)는 자신의 체제 정당화 이론(System Justification Theory)에서 잘 정리하였다.[38] Kay, Gaucher, Napier, Callan, & Laurin, 2008; Kay, Moscovitch, & Laurin, 2010; Laurin, Kay, & Moscovitch, 2008.[39] Sims & Baumann, 1972; Vandello & Cohen, 1999.[40] Sales, 1972; Norris & Inglehart, 2004.[41] Kay, Shepherd, Blatz, & Chua, 2010.[42] Kay, Shepherd et al., 2010.[43] Whitson & Galinsky, 2008.[44] 이처럼 가히 세기말적으로 공포스러운 메시지라고 할지라도, 개인은 자신이 예측할 수 있고 확실한 선악의 구도를 그려낼 수 있다면 그것을 망설임 없이 환영하고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 본성에 대해 굉장히 의미심장한 함의를 갖고 있다. Heine, Proulx, & Vohs, 2006; Rothschild, Landau, Sullivan, & Keefer, 2012.[45] Whitson & Galinsky, 2006.[46]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저서 《신을 위한 변론》에 더욱 자세하게 나와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참조를 권한다.[47] 매슈 허트슨의 《왜 우리는 미신에 빠져드는가》 참조.[48] 다만 당분을 섭취할 경우 일시적으로 집중력이 높아지기는 한다.[49] 티모시 윌슨, 《Story》, 강유리 역, 웅진지식하우스, 2012; 쉬나 아이엔가, 《선택의 심리학》, 오혜경 역, 21세기북스, 2012[50] 종교와 행복 간의 관계를 고찰한 논문으로는 Diener, Suh, Lucas, & Smith(1999) 참고. (여기서 Suh란 다름아닌 연세대의 서은국 교수다) 세속화된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을 고찰한 종교심리학자들의 저서로는 《Sacred and Secular》 도 함께 찾아볼 것. 위에도 인용된 Norris & Inglehart, 2004 가 이 책.[51] '보편적'이 아니라 '평균적'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미래에도 비종교인과 종교인의 분포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많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52] 미래의 종교 예측 통계는 종교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반드시 해당 종교를 유지할 경우를 가정해서 일반적으로 예측한 것이다. 현재 종교인/비종교인이 많은 지역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며 꾸준히 바뀌어 온 것으므로, 현재 종교인이 많거나 적더라도 해당 국가/문명권의 추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비종교인이 늘어날 수도, 종교인들의 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53] 특히 불가지론자의 증가세가 크다.[54] 현대 기독교는 인구증가세나 선교율이 높은 비서구 지역들을 중심으로 선진국에서의 영향력 및 신자수 감소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다. 그리고 종교학자들은 개발도상국 지역 기독교 성장의 대부분이 20세기 식민지 시대 종식 직후부터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도 주목한다.[55] 국민일보 2013-08-11 《“기독인 2020년엔 세계 종교인구 1/3 오순절·은사주의 교단 성장 가장 빨라”》[56] 단 전통적인 가톨릭 강세 지역인 중남미에서는 개신교로 이탈하는 신자들이 많아 교세가 움츠러드는 중이다.[57] 비아시아 지역에서 아프리카 등 대표적인 종교적 지역에선 이미 이슬람/기독교가 뿌리깊게 선점하고 있어 불교 인구가 미미하고, 서구에서는 20세기 중후반부터 불교에 대한 호의적인 관점이 크게 늘었으나, 그것이 비종교적인 분위기를 누르고 불교로의 광범위한 개종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이 크다.[58] 하지만 기독교의 경우 사랑이 없이는 예언이나 기적이나 믿음이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내용이 있으므로 사랑이 기독교계 교리에 있어서는 본질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맞다.[59] 종교가 마약과 같은 업/다운 효과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종교를 믿어서 마음의 위안을 얻은 사람들의 사회적 생산성은 마약 중독자들의 사회적 생산성과 같지 않다.[60] 현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이자 진화론자, 생화학자이며 인간게놈 프로젝트 총책임자.[61] 유대교인의 미국 인구 비율은 겨우 1.5~2% 이지만, 과학자중 자신이 유대교인이라 응답한 비율은 8%나 된다.[62] 물론 미국의 종교비율이 높은게 원인을 차지한다. 이와 별개로, 과학자 자체는 무신론자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인구비중으로 보아 적음에도 말이다.[63] 한 연구에서는 fMRI와 같은 측정장비 속에 누워있는 애플 社 팬들에게 새로 나온 애플 전자기기 광고를 보여주자, 그들의 뇌의 특정 영역이 강렬하게 활성화됨을 발견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활성화된 영역은 독실한 종교인들이 신(神)적인 심상이나 종교적 상징을 접했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슈퍼 브랜드의 비밀》 에서도 방영된 바 있는 내용.[64] 다만 에스토니아는 IT강국이며 발트 3국의 국가들중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다.[65] 1970년대부터 무종교율이 30%을 기록했다. 이게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알려지면서 부유한 국가나 지역은 종교에 무관심하다는 편견도 같이 소개되었다.[66] 그러나 실제로는 무속신앙이거나, 불교도인데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당장 저런 동네로 가면 卍자가 붙은 점집, 무당집, 포교원들이 꽤 많이 보인다.[67] van Ness & Kasl, 2003; Hill, Burdette, Angel, & Angel, 2006.[68] Crowther, Parker, Achenbaum, Larimore, & Koenig, 2002.[69] Vahia et al., 2011.[70] Siegel & Schrimshaw, 2002.[71] King et al., 2006. 이는 사회적 연결과 관계성이 개인의 삶의 의미에 미치는 영향과도 유사한 상관관계이다. 이에 대해서는 Hicks, Schlegel, & King(2010)을 참고.[72] 이 시기에는 심리전, 이념 갈등 등으로 인해 타인에 의해 주입된 세뇌가 개인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할 거라는 불안이 지식인들 사이에 퍼져 있었으며 (명확치는 않으나 인지부조화 같은 개념도 이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이 시기의 사회과학 자체가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여명에 가까웠던지라 어느 한쪽의 일방적 영향력을 강조하는 선에서 머물러 있었다.[73] 세뇌를 넓게 본다면 맞는 말 일수도 있다. 근데 넓게 보는 순간 학교 교육이나 사회화과정 도덕교육 영상매체 마케팅 역시 세뇌라고 봐야 한다. 근데 우리들이 세뇌라고 보는 것은 사람 잡아다가 특정사상을 주입시키는 과정을 생각하기 때문에 세뇌라고 하기 힘들다.[74] Gershoff, Miller, & Hoden, 1999; Bartkowski & Xu, 2000; Murrat-Swank, Mahoney, & Pargament, 2006; Volling, Mahoney, & Rauner, 2009; Dumas & Nissley-Tsiopinis, 2006.[75] 그런데 이것은 이들의 가치관이나 도덕관이 과거에서 멈춰버린 통에 그런 것도 있다.[76] 일부 극단적인 인본주의자들이 떠들듯이 "반계몽적" 이고 "반지성적" 이며 "비합리적" 인 모든 인간 행태들을 전부 "종교적" 이라는 표현으로 싸잡아 포괄한다 치더라도[77] 출처는 『성숙한 성격과 신앙』, 한신대학교 출판부.[78] 단, 같은 종교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회에선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토착화하는 경우가 잦다는 점, 고대 시대부터 정치인들이 종교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사용해왔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종교의 기원은 정치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종교의 발전 과정엔 정치와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79]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게, 처음 등장했을 시부터 연방 정부로부터 합법적인 종교 단체로 공인받을 때까지, 몰몬교 신자들은 툭하면 연방군에게 토벌당해서 대대적으로 학살당하거나, 인근의 원주민 부족들과 층돌을 빚어서 신도들이 죽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신자들 머릿수를 늘리기 위해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거나, 묵인하는 경향이 컸다. 세계사적으로 이런 사례는 꽤 있는데, 여몽전쟁으로 많은 인구를 잃은 고려에서 고위층들 한정으로 향처와 경처를 따로 두는 것을 허용하거나, 삼국동맹전쟁의 패전으로 인해 성비가 붕괴되어버린 파라과이에서 일시적으로 일부다처제를 허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80] 물론 고학력자들의 적지않은 수가 중산층 이상의 경제 수준을 지녔음을 간과한 것일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부유할수록 종교에 의지하는 경향이 큰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