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독립운동가)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광은 1882년 4월 10일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이목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경제학전문과(經濟學專門科)를 졸업한 뒤 탁지부(度支部)에 들어가 1910년 3일까지 탁지부 주사를 역임했다. 1908년 영남 지방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박정동(朴晶東)[2] ·이하영(李夏榮) 등 경상도 인사들이 조직한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에 참여했다. 교남교육회는 이때 29명의 평의원(評議員)을 두었는데, 그는 박정동·이각종(李覺鍾) 등과 함께 평의원에 선출되었다.
1910년 3월 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러시아로 망명한 뒤 그해 8월 한일병합의 부당성을 규탄하고 이의 무효를 선언한 성명회(聲明會) 선언서(宣言書)가 발표될 때 서명하여 항일의지를 천명하였다. 1911년에는 이갑을 보좌하여 미주에 본부를 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시베리아지방총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국민회의 원동(遠東) 경영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성페테스부르크 지역의 경영 실무를 서초(徐超)와 함께 담임하는 한편, 미중서 발행하던 <신한민보(新韓民報)>를 원동(遠東) 일대에 배포하는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1913년 3월 26일 개최된 국민회 시베리아지아총회 제1회 대의회(代議會)에서 대표원(代表員)으로 선출되었다. 이때 이강·김탁(金鐸)과 함께 기초위원(起草委員)으로 선정되어 총회의 자치규정(自治規程)을 기초하여 총회의 승인을 받아 통과시키는 등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병에 걸린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요양하다가 1918년 11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4년 최광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