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식

 


1. 독립운동가, 최동식
2. 경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최동식
3. 남포특별시 출신 독립운동가, 최동식


1. 독립운동가, 최동식


성명
최동식(崔東植)
생몰
1850년~?
출생지
미상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최동식은 1850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는 알 수 없다. 그는 1904년 6월경 대한제국 감찰을 역임했으며, 10여 명의 인사들과 함께 일제의 황무지개척권 요구를 반대하기 위해 소청을 설치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황무지개척권 허가 반대 운동을 호소하고 궐문 밖에서 허가반대상소를 올리자는 통문을 돌렸다. 그 후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을사오적을 처형하라는 상소를 올리다 체포되어 몇 달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나철, 오기호 등이 을사오적 처단을 위해 당원을 모집하자 즉각 가담했으며, 1907년 음력 2월 초순 나철의 처단 계획에 따라 실행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 후 2월 12일 을사오적이 공무 차 출근하는 길목에 동지들과 함께 매복한 뒤 사동 노상에서 권중현을 저격했으나 적중하지 못했다. 이후 동지들이 차례로 잡히자 무고한 사람에게 화가 돌아갈 것을 우려해 자현장(自現狀)을 작성, 나철·오기호 등과 같이 자수했다.
1907년 7월 3일 평리원에서 열린 재판에 회부된 그는 나라를 팔아먹은 다섯 대신은 그냥 두고 이를 처단하려고 했던 사람에게 중죄를 가하는 것은 모순되었음을 역설하다가 유배형 10년을 선고받고 진도로 유배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최동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경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최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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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최동식(崔東植)
생몰
1926년 1월 27일 ~ 2005년 4월 29일
출생지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사망지
대구광역시
매장지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국립신암선열공원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최동식은 1926년 1월 27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4년 7월 15일 최덕종 외 28명의 동지들과 함께 일제의 징용·징병제도를 결사 반대하기로 결의하고 경북 경산군 대왕산에 입산하여 죽창과 투석전으로 일본 경찰에 맞서 싸웠다. 그러다 그해 8월 10일 식량 조달차 하산했다가 체포되었고, 10월 4일 보안법 및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8.15 광복 직후 출소한 그는 대구에서 조용히 지내다 2005년 4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최동식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대구 국립신암선열공원에 안장되었다.


3. 남포특별시 출신 독립운동가, 최동식


성명
최동식(崔東植)
성명
최웅성(崔雄星)
생몰
1908년 3월 10일 ~ 1933년 2월 15일
출생지
평안남도 진남포부 비석동
사망지
평안남도 진남포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최동식은 1908년 3월 10일 평안남도 진남포부 비석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진남포청년동맹원(鎭南浦靑年同盟員)으로, 1932년 8월 1일 반전기념일을 맞이해 진남포부청에서 직장신문(職場新聞)이라는 이름으로 격문을 등사해 배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박기윤(朴基潤),박남수(朴南洙),이병호(李炳浩),김태성(金泰成) 등과 함께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를 역설하며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내용의 격문을 배포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병고로 집행정지를 받아 1933년 2월 9일 출감했으나 2월 1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최동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