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특별시

 



'''남포특별시'''
南浦特別市
Nampho Special City

}}}

'''시청 소재지'''
항구구역
'''지역'''
관서
'''면적'''
829㎢
'''하위 행정구역'''
5구역 2군
'''시간대'''
UTC+9
'''인구'''
983,660명[1]
'''인구밀도'''
1,186.56명/㎢
'''당위원회 책임비서'''

리재남
'''인민위원장'''

송승철
'''ISO 3166'''
KP-14
'''남포특별시 지도'''
'''남포 내 거리'''

'''2013년경의 남포'''
1. 개요
2. 역사
3. 경제
4. 교통
5. 기후
6. 북한 기준 행정구역
7. 통일 이후 전망
8.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9. 시설
10. 출신인물


1. 개요


북한 서부에 있는 항구도시이자 행정구역 관내 인구 기준으로 북한 제2의 도시.[2] 인구는 2008년 기준 약 98만 명. 최근에는 '''114만 명'''이라는 통계도 눈에 띄는 편. 왜냐하면 2008년 당시에는 특급시로 격하된 이후라 강서구역, 대안구역, 천리마구역이 군으로 떨어져 나간 상태였지만 2010년 이후 특별시로 승격되면서 이들 군이 다시 구역으로 편입된 것은 물론 온천군까지 편입했기 때문이다.##

2. 역사


'''시기'''
'''당시 행정구역'''
고려시대 ~ 조선시대
삼화현
대한제국
평안남도 삼화부
평안남도 삼화군(1903~1906)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진남포부
1945년
평안남도 진남포시
1952년
평안남도 남포시
1978년
대안시 신설
1979년
남포직할시 (南浦直轄市)
2004년
평안남도 남포특급시 (南浦特級市)
2010년
'''남포특별시(南浦特別市)'''
고구려 초중기부터 중요한 도시였는지, 덕흥리 고분이나 강서삼묘 등 고구려 대형 고분이 많다. 고분 벽화 중 많은 수가 남포의 강서구역에 있는 고분들이 출처다. 하지만 정작 고구려가 이곳을 뭐라고 불렀는지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고려 때부터 '''삼화현'''(三和縣)이라 불렸다. 대한제국 시기 개항장으로 지정되면서 '''삼화부'''(三和府)로 승격되었고 1903년 삼화군으로 강등되었다가 1906년에 다시 삼화부로 승격되었고, 1910년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진남포부'''(鎭南浦府)로 개칭되었다. 1914년 개항장 외곽 지역(삼화면 등)을 용강군에 넘겨주었다.
8.15 광복 이후 북한 치하에서도 1951년까지는 진남포라고 불렸다. 대한민국의 명목상 행정구역인 이북 5도 체제 하에서는 여전히 '진남포시'이다.관련자료
본래 대동강 하구의 작은 어촌이었으나, 진남포의 개항 이후 철도가 깔리고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강점기 시절, 평양의 부속 항구로써 그 무역량은 부산인천에 이은 전국 3위의 거대 항구였다고 한다. 대동강 하구에 면한 지리적 조건은 유리하지만 조수간만(潮水干滿)의 차가 커서 선박의 출입은 불편하다.
현재도 북한 무역의 대부분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요 도시. 북쪽으로는 평양직할시와 인접하여 평양남포간 고속도로로 이어져 있다. 수도를 관통하는 강의 하구에 있어 수도의 외항 역할을 한다는 점이나 엄청난 조수간만의 차이 때문에 갑문식 독을 설치했다는 점, 무엇보다 변동이 있긴 하지만 광역행정구역으로 분리되기도 했다는 점 등이 남한의 인천광역시와 비슷하다.
1979년 12월에 남포시가 대안시, 룡강군과 함께 직할시(평양과 동급)가 되었으며 남포시는 남포구역으로 개편하였다. 1983년에는 남포구역이 항구 구역과 와우도구역으로 개편했으며 대안시는 대안구역, 천리마구역, 강서구역으로 개편하였다. 1988년 7월 서해갑문의 남단 지역이 은률군에서 편입되었다.
[image]
특급시 시절.
[image]
특별시 승격 후 주변 지역을 편입한 모습. (출처:두산백과)
2004년에 평안남도에 귀속되면서 남포특급시로 대안구역, 천리마구역, 강서구역은 군으로 떨어져 나갔고[3], 항구구역과 와우도구역은 폐지되었다. 하지만 2010년 라선과 함께 특별시로 승격된 이후 다시 기존 직할시 당시 영역이었던 강서군, 대안군, 룡강군, 천리마군은 물론 온천군까지 편입하였다. 다만 편입 과정에서 강서군, 대안군, 천리마군은 구역으로 조정되었다.
이런식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잦아서 대체 어디까지가 남포인지, 몇 명이 이 동네에 사는지 자료마다 다르다.(...) 두산백과에서는 98만 명, Wikipedia에서는 45만 5천 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86만 명, 통일부약 98만 명을 제시하고 있다. 통일부 통계는 남포에 편입된 강서구역, 대안구역, 룡강군, 천리마구역, 온천군의 인구가 포함 안 돼 있어 37만 명으로 적혀있지만, 해당 인구를 전부 더하면 98만 명이다. 함흥시보다도 많은 수치.

3. 경제


남북경협 합작기업 중 하나인 평화자동차 공장이 여기에 있고, 승용차 등을 생산하고 있다.
[image]
부동항으로 분류되었지만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결빙횟수가 늘고 있다. 1996년부터 2013년 초까지 17번의 겨울에서 남포항이 결빙되지 않은 것은 2번 뿐이고, 특히 2008년 말부터 2013년 초까지는 연속 5년째 결빙되고 있는 중인데다 평균 결빙일수도 50일에 달하고 있어 부동항 지위를 상실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위의 위성사진은 2012년 초의 모습.

4. 교통


평양남포간 고속도로가 여기에 연결되며, 철도로는 남포선이 여길 지난다. 참고로 남포선은 서해갑문과도 연결이 되어있다.

5. 기후


남포특별시는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냉대기후에 속한다. 최한월인 1월 평균기온은 -4.6°C이며 최난월인 8월의 평균기온은 23.9°C로 연교차는 28.5°C로 비교적 큰 대륙성 기후에 속한다. 겨울이 길고 혹독한 북한에서는 비교적 따뜻한 곳이라 할 수 있다. 허나 어디까지나 북한에서 겨울이 따뜻하다는 뜻이지 정말로 겨울이 따뜻하다는 뜻은 아니다.
남포의 위도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과 비슷한데[4] 리스본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11.6°C로 한반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겨울이 따뜻한 서귀포시보다도 훨씬 더 따뜻하다. 최난월인 8월의 평균기온은 23.5°C로 남포와 비슷하다. 즉, 여름은 두 곳의 기온이 비슷하지만 겨울은 남포가 리스본보다 훨씬 더 춥다는 뜻이다. 남포가 리스본보다 훨씬 더 추운 이유는 대륙 동안에 위치하여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직격탄으로 맞기 때문이다.
연강수량은 925mm로 한반도 내 대표적인 소우지이다. 옆동네인 평양직할시와 마찬가지로 대동강 일대는 비가 적게 오는 편이다. 개마고원이나 함경북도에 비하면 많이 오는 편이지만 남한과 비교하면 영남 내륙 지방보다도 비가 적게 온다.

6. 북한 기준 행정구역




7. 통일 이후 전망


통일 이후에는 한창 경제 붐이 일어날 '''평양'''과 (남포 자신을 포함한) 그 위성도시들의 외항으로서 상당한 주가를 달릴 것이다. 물론, 서해안 항구로서의 역할은 인천항, 평택항 등의 수도권 항구와 목포항 등의 서남권 항구들에게 밀리겠지만, 굳이 인천에다가 짐을 싣고 평양으로 옮길 일이 없는 이상 자체적인 경쟁력은 보유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다만, 남포항이 부동항의 지위를 상실했기 때문에 일정 이상의 성장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평양과의 접근성 때문에 평양에서 사업을 하거나 평양에 살고 싶기는 해도 당장 여건이 되지 않는 주민들에게는 이주희망지역 1순위가 될 수도 있고 평양순안국제공항의 지형적 제한성때문에 새로운 국제공항부지 선정지로도 입지가 탄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아니라 물류업으로 개성특별시사리원시와 더불어 유력한 후보지로 각광받을 가능성도 있다.
통일 이후에 이름이 남포시에서 진남포시가 될지는 미정이다. 1963년에 당시 문교부의 '북한을 포함한 공산권 지명 통일안'에서 겸이포를 송림, 혜산진을 혜산으로, 만포진을 만포로 하듯이 진남포는 남포로 하기로 했지만,# 이후로도 한동안 신문기사를 보면 '진남포' 명칭도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다. 일제 때 신문기사에서조차 남포와 진남포가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8.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image]
[image]
鎭南浦市 / Jinnampo City
국가
대한민국
면적
41.3㎢[5]
행정구역
7동 21리[6]
시간대
UTC+9:00
아래 행정동과 법정동은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 규정되어 있다.
행정동
법정동·리
'''대두동'''
대두리(大頭里)·문애리(文艾里)·어호리(魚湖里)·영곡리(靈谷里)·유사리(柳沙里)·천교리(泉橋里)
'''도학동'''
도학리(島鶴里)·지울리(智蔚里)·초유리(抄鍮里)·한학리(寒鶴里)
'''비석동'''
비석리(碑石里)·용정리(龍井里)·후포리(後浦里)
'''신흥동'''
마산리(馬山里)·신흥리(新興里)·지산리(芝山里)
'''억량기동'''
고정리(高井里)·마사리(麻沙里)·억량기리(億兩機里)·해산리(海山里)
'''원동'''
명협동(明峽洞)·욱동(旭洞)·원동(元洞)·월견동(月見洞)
'''항동'''
삼화동(三和洞)·한두리(漢頭里)·항동(港洞)

9. 시설



10. 출신인물



[1] 통계청 북한통계(2008년)[2] 실질적으로는 청진 또는 함흥이 북한 제2의 도시로 간주된다. 남포시는 오리지널 남포 시가지와는 떨어져 있는 강서, 용강, 천리마, 대안 등의 별개의 시가지들까지 한꺼번에 한 행정구역으로 묶은 것이기 때문.[3] 라선특별시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직할시에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다 2019년에 겨우 다시 승격한 개성특별시도 있고..[4] 남포 : 북위 38° 44', 리스본 : 북위 38° 42' 50"[5] 광복 당시 기준 면적. 광복 당시 면적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진남포시' 항목에는 413㎢로 나와있지만, 훨씬 넓었던 용강군이 744.8㎢였던 걸 보면 413㎢는 절대 아니다. 41.3km의 오기로 보인다.[6] 광복 당시 기준의 경우 6동 14리. 동의 경우 일제강점기 시기 명칭이었던 정(町, 마치)를 기준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