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민(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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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소속의 투수였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좌완 속구파 투수로써 LG 트윈스의 레전드 이상훈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에 좌완 투수라는 공통점 때문에 LG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명순위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았으나 체격이 매우 좋고 고졸 좌완투수에 속구 능력도 있어서 차기 LG 마운드 리빌딩에 중추가 될 것으로 기대가 높다. 2010년에는 시즌 중후반에 선발로 꾸준히 마운드에 오르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어 LG 팬들이 오랜만에 나온 걸출한 좌완 선발 후보라고 크게 환호했다. 볼을 숨기는 듯한 독특한 폼을 가지고 있어 상대방이 치기 어려운 공을 던지는게 장점이 있고, 불안한 제구는 단점으로 지적된다.
2011년 스프링캠프 초반 훈련 중 어깨부상을 당해서 선발진 합류를 기대했던 코칭스텝과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후 5월초까지 재활훈련에 매진하고 2군경기에 등판해서 담금질을 한 후 복귀를 했다. 복귀 후 초반엔 제구가 잘 안되어 애를 먹었지만 그후 LG의 계투요원들이 페이스가 떨어지고 최성민은 갈수록 좋은 모습을 보며서 승리조에 편입되는 듯 싶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이탈하며 시즌을 마감하였다.
2011시즌 최종 성적은 18경기 21.1이닝 방어율 3.38 2승 1패. 특이할만한 점은 21이닝 소화를 하는 중에 기록한 볼넷이 23개로 소화한 이닝 수보다 많았다. 참고로 이종범의 이 응원 당시 투수였는데,기아팬들의 무시무시한 응원에 기가 눌린 듯 보인다 [1]
2011년 시즌이 끝난 후, 봉중근과 같은 핵심재활조로 분류되어 사이판까지 가는 등 팀의 기대를 모았으나 고질적인 어깨 부상으로 스캠 중 탈락. 이후 2012년 시즌을 부상으로 통째로 날려먹고 만다.
시즌 중 2군에서 강지광과 함께 타자(외야) 전향을 시도하였으나 포기하고 현역 입대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해병대로 갔다. 전역한 후 다시 투수에 도전한다는 뜻을 밝혔다.
전역하고 육성선수로 지정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된 듯하다. 12월 초에 열린 야구대제전에 투수로 등판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2]
차명석 전 LG 코치의 인스타그램에서, 현재는 은퇴 후 호주에서 항공운항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올라왔다.
독립야구단 성남 블루팬더스에서 뛰었다[3] 는 사실이 한 유튜브 영상에서 확인됐고, 다른 해외리그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는 주변의 이야기도 있었다.
2019년 일본 독립야구 BC리그 트라이아웃에 도전했으나 탈락한것으로 보인다.
금수저 집안인 듯하다. 어머니가 배구선수라는 말이 있다.
프로동네야구에 출연했는데 너클볼을 장착한 모습이었다.#
1. 소개
LG 트윈스 소속의 투수였다.
2. 선수 경력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좌완 속구파 투수로써 LG 트윈스의 레전드 이상훈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에 좌완 투수라는 공통점 때문에 LG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명순위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았으나 체격이 매우 좋고 고졸 좌완투수에 속구 능력도 있어서 차기 LG 마운드 리빌딩에 중추가 될 것으로 기대가 높다. 2010년에는 시즌 중후반에 선발로 꾸준히 마운드에 오르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어 LG 팬들이 오랜만에 나온 걸출한 좌완 선발 후보라고 크게 환호했다. 볼을 숨기는 듯한 독특한 폼을 가지고 있어 상대방이 치기 어려운 공을 던지는게 장점이 있고, 불안한 제구는 단점으로 지적된다.
2.1. 2011 시즌
2011년 스프링캠프 초반 훈련 중 어깨부상을 당해서 선발진 합류를 기대했던 코칭스텝과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후 5월초까지 재활훈련에 매진하고 2군경기에 등판해서 담금질을 한 후 복귀를 했다. 복귀 후 초반엔 제구가 잘 안되어 애를 먹었지만 그후 LG의 계투요원들이 페이스가 떨어지고 최성민은 갈수록 좋은 모습을 보며서 승리조에 편입되는 듯 싶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이탈하며 시즌을 마감하였다.
2011시즌 최종 성적은 18경기 21.1이닝 방어율 3.38 2승 1패. 특이할만한 점은 21이닝 소화를 하는 중에 기록한 볼넷이 23개로 소화한 이닝 수보다 많았다. 참고로 이종범의 이 응원 당시 투수였는데,기아팬들의 무시무시한 응원에 기가 눌린 듯 보인다 [1]
2.2. 2012 시즌
2011년 시즌이 끝난 후, 봉중근과 같은 핵심재활조로 분류되어 사이판까지 가는 등 팀의 기대를 모았으나 고질적인 어깨 부상으로 스캠 중 탈락. 이후 2012년 시즌을 부상으로 통째로 날려먹고 만다.
시즌 중 2군에서 강지광과 함께 타자(외야) 전향을 시도하였으나 포기하고 현역 입대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해병대로 갔다. 전역한 후 다시 투수에 도전한다는 뜻을 밝혔다.
3. 2015년, 그 이후
전역하고 육성선수로 지정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된 듯하다. 12월 초에 열린 야구대제전에 투수로 등판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2]
차명석 전 LG 코치의 인스타그램에서, 현재는 은퇴 후 호주에서 항공운항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올라왔다.
독립야구단 성남 블루팬더스에서 뛰었다[3] 는 사실이 한 유튜브 영상에서 확인됐고, 다른 해외리그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는 주변의 이야기도 있었다.
2019년 일본 독립야구 BC리그 트라이아웃에 도전했으나 탈락한것으로 보인다.
4. 여담
금수저 집안인 듯하다. 어머니가 배구선수라는 말이 있다.
프로동네야구에 출연했는데 너클볼을 장착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