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좌완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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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前 LG 트윈스, 주니치 드래곤즈, 보스턴 레드삭스, SK 와이번스 소속의 투수이자 가수. 前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 現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별명은 '''야생마''''''"나갈 수 있겠냐고 묻지 마시고 나가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언제고 던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ㅡ 2002년 한국시리즈 당시 3경기 연속 등판으로 지쳐 있는 상황에서 박빙의 상황이 되자 '''자진해서 불펜으로 향하며 코치진에게 남긴 말'''.
대한민국 투수 중에서 구대성, 박찬호, 김병현, 임창용, 오승환과 함께 ''''한, 미, 일 프로 무대를 모두 경험한 선수'''이자, '''한미일 3개국 프로야구 1군 경기에 모두 등판했던 최초의 선수'''이다. 구대성은 2005년 미국에 진출하며 이 기록을 달성했고 박찬호는 2012년, 임창용은 2013년, 오승환은 2016년이었다. 김병현은 일본에서 1군 기록이 없다. 아울러 한미일 3개국 1군 무대에 모두 섰던 날 기준으로 유일하게 만으로 20대에 달성하였다.
등번호는 47번(LG 1993~1997, 2002~2003 & SK 2004) - 17번(주니치) - 40번(보스턴). 선수로 활동했던 11년 중 대한민국에서 뛰었던 기간은 6년 밖에 되지 않지만, 1990년대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를 상징하는 선수이자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했던 좌완 파이어볼러로 강렬한 임팩트로 인해 LG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3. 은퇴 후
은퇴 후에는 잠시 야구와 거리를 두었다. 록밴드 'What!'[3] 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으며, 뷰티샵을 운영하였다. 음악을 좋아해서 선수 시절에도 늘 기타를 가지고 다녔는데, 이순철 감독과의 갈등의 출발점은 여기서 온 듯 하다. 당시 이순철 감독은 이상훈이 라커룸에서 기타를 쳐 팀 분위기를 해친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이상훈은 2010년 4월 5일 LG 프런트의 만행을 폭로한 글에서 자신은 덕아웃, 라커룸에서 기타를 친 적이 없는데 누명을 쓰고 트레이드된 것이라 진술하였다.
그러나 사회인 야구에서 그를 봤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공 던지고 덕아웃에서 내려와서 계속 기타만 치고 있었다고(...) 고된 생활을 했던 자신에게 기타만이 유일한 낙이었다고 할 정도로 기타라는 악기는 이상훈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김태형 감독과도 친한 이유가 바로 기타 때문이라고.. 사실 이순철이 이걸 뭐라했던 이유는 기타를 치다가 손가락 부상이라도 당하면 큰 일이니, 기타를 치지 말라고 했던 것이었다.
2009년 7월에 친정 팀으로부터 코치 제의가 들어왔다가 퇴짜를 맞았고, 2010년에는 초상권 침해로 인해 친정 팀과 또 마찰이 있었다.
은퇴 후 마구마구, 슬러거#s-2 측의 은퇴 선수 이름 무단 사용에 문제를 제기하여 서명 운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마구마구와 슬러거 측의 안일한 태도로, 사태는 언제쯤 해결될지 모르는 상황으로 커졌다. 이는 다른 선수들의 경우 KBO 또는 선수협에 권한을 위임한 덕에 양측과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일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상훈은 개인 자격으로 권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인데, 정확히는 최초에 게임사에서 선수협[4] 에만 계약이 되어있었고 은퇴 선수들은 무단 사용을 해왔다. 이에 이상훈이 이를 처음 문제시하면서 몇몇 은퇴 선수들과 소송을 걸게 된 것. 이게 이슈화 된 후 많은 은퇴 선수들은 새로 만들어진 은퇴선수협의회를 비롯 일구회, 혹은 선수협에 초상권을 위임하고 게임사는 협회들과 단체협약을 맺었는데 이상훈만 협회에 가입을 안한 것이다. 자세한 것은 프로야구게임 초상권 침해 사태참고.
그러던 중 프로야구 매니저에 난데없이 '''서울고 출신 좌완투수''' 신철수 선수가 업데이트되었다. 누가 봐도 이건…[5] 트집잡힐 게 두려웠는지 등번호는 물론 기록마저 죄다 0으로 표기해 놨다. 심지어 2014년 1월 23일 업데이트에서는 그 신철수의 레전드 카드도 나왔다! 베이스 카드는 좌완 최후 20승을 올린 1995년도 카드. 물론 통산 스탯, 수상기록 등은 모두 삭제되어 비어 있지만... 유독 마지막 '기타' 문단에는 '''마운드의 영원한 불꽃, 트윈스의 심장'''이라고 이 카드를 소개해, 팬들을 아련하게 하고 있다. 영입을 위한 카드 1성구는, 1995년의 호적수였던 김상진. 그리고 2014년 2월 13일 업데이트로 드디어 퍼블리시티권 계약이 됨에 따라 폭풍 간지나는 이상훈 선수의 선수 사진과 실명이 적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문제가 되었던 마구마구에서도 2월 19일자로 다시 카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4. 지도자 경력
그래도 야구에 손을 놓지 않았는지, LG 시절에 함께한 투수 전승남과 함께 하남시에서 야구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다.
지도자로서의 평가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4.1. 고양 원더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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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원더스의 투수코치가 된 이후. 그의 상징과 같았던 장발과 수염들이 정돈되었다.[6][7]
2012년 시즌 후 스승인 김성근 감독의 권유로 고양 원더스의 투수코치로 계약하였다. 그리고 외모가 깔끔하게 정돈됐다.
2014년 9월 고양 원더스가 해체됨으로써 원더스의 수많은 선수, 코치진들이 무직 신세가 되어 버렸고, 이상훈 코치 역시 마찬가지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에 많은 LG 팬들이 2015 시즌 이상훈이 코치로 친정 팀에 복귀해 주기를 염원하고 있다.
하지만 팬들의 바람과 다르게 2014년 10월 30일, 결국 스승인 김성근 감독의 뒤를 따라 한화 이글스로 간다는 기사가 나왔다. 관련 기사 하지만 이상훈 코치 본인이 직접 아니라고 알려 왔고, 그 소식을 들은 LG 팬들은 다들 안심했지만....
'''이보다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이상훈의 거취는 김성근의 한화도, 친정 팀인 LG도 아니었다.
그 행선지는......
4.2. 두산 베어스 시절
바로 '''잠실 라이벌 팀인 두산 베어스였다.'''관련 기사
두산 프런트는 이상훈에 대해 "검증되지는 않았으나, 좌완 투수를 육성하는 데 최적의 인물로 판단되었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송일수 감독 관련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은 두산 프런트의 입지를 되살리고 무엇보다 두산의 고질병 오브 고질병인 '''"좌완투수 잔혹사"'''를 끝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전의 LG와의 악연이 끝내 걸린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으나, 어쨌든 영원한 LG맨이라고 생각되던 이가 하필 다른 곳도 아닌 잠실 라이벌 팀에 간 것 때문에 많은 LG 팬들이 멘붕했다.
하지만 기사 직후 인터뷰에서 아직 확정된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두산 베어스와의 논의는 현재진행형이고, 한화 이글스는 비공식적으로도 제의가 없었다고 한다. 알다시피 2010년의 일 때문인지, '''LG 트윈스에서도 이상훈에게 코치 제의를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일단 11월 30일까지 고양 원더스의 코치로서 활동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의 인터뷰를 보면, 두산행을 굳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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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스에서의 활동이 끝난 날인 2014년 11월 30일, 잠실에서 열린 '2014 곰들의 모임'에서 신임 코치 환영식 때 정식으로 인사했다. 이로서 두산행 확정.
김태형 감독은 이상훈을 2군 투수코치로 기용한다고 밝혔다.[8] 여담이지만 김태형 감독과는 사적으로 조금 친한 편이었다고 한다.[9] 그리고 김태형 감독이 갓 취임한 후, 이상훈에게 연락하여 코치 제의를 했다고 한다.
2015 시즌 2군에서 괜찮은 투수를 발굴해 내면서 두산 팬들에게 투수코치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1군에 올라와 깜짝 선발로 등판해 호투를 펼친 김수완과 허준혁이나, 2군에서 영점을 잡고 돌아와 괜찮은 모습을 보이는 오현택 등을 보면 확실히 선수를 길러내는 데 능력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두산 베어스는 2015년 전반기가 끝난 시점에서 좌완 투수들이 총 30승(유희관 12승+장원준 9승+진야곱 3승+허준혁 2승+함덕주 2승+이현승 1승+이현호 1승)을 합작, 좌완투수 잔혹사를 완전히 털어내고 선발 4명이 좌완 투수인 좌완 왕국으로 거듭났다. 덧붙여 비록 2군에 있어서 현장에 같이하지 않았지만, 본인은 21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4.3. LG 트윈스 시절
2015 시즌 후 LG로 복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LG 프런트가 직접 이상훈의 상징성을 들어 두산 프런트를 설득한 끝에, 두산에서 이상훈의 LG행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이에 각 커뮤니티의 LG 팬들은 일제히 감동의 눈물을 쏟고 있다.[10]
그러나 두산 팬들은 '이제 겨우 팜 구실이 갖춰지나 했는데, 유능한 투수코치를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냐'며 두산 프런트를 신랄하게 까고 있다.
정식으로 계약해 11년 만에 코치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게 된 이상훈 코치는 투수 육성을 위한 LG 구단 내부의 피칭 아카데미 초대 원장을 맡게 되었다. 이는 삼성 라이온즈의 BB 아크같은 기초 육성 시설을 벤치마크한 것이고, 2016년부터 류택현 2군 투수코치가 육성군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았을 때 아카데미는 육성군과 별도로 운영하는 듯하다. 두산에서 그의 2군 투수 유망주 지도가 괜찮게 검증받은 것도 LG 프런트의 마음을 이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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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2009년과 2010년에 구단과 불쾌한 일이 있었지만, 이상훈은 LG에서 코치로 다시 불러 주어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포수 조윤준이 이상훈 코치를 위하여 자신이 쓰고 있었던 '''47번'''을 양보하기로 하여 이상훈은 코치로도 '''47번'''을 달게 됐다.
2016년 10월 8일 마지막 홈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서게 되었다. 무려 13년만에 LG 소속으로 잠실의 그라운드에 등판한다. 이미 팀은 4위로 포스트시즌을 확정지은 상태. 이날 경기는 클래식 유니폼 데이로 검정색 원정 유니폼이 오랫만에 다시 부활하는 경기이기도 하다. 시타는 노찬엽 코치가 맡았으며, 이날 이상훈 코치는 현역 시절 때처럼 마운드로 뛰어나와 현역 시절 못지 않은 1루 견제와 시구를 보여주었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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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그의 어퍼컷 세리머니.
2017년 들어 LG 투수진에 김대현, 고우석 등 20대 초반의 젊은 투수들이 1군에 올라와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자 피칭 아카데미 원장으로써 좋은 평가를 받는 중이다.
시즌이 끝난 뒤 11월 17일 스포티비 객원해설위원으로 2017 APBC 대회 한국:대만전 해설을 하였다. 처음이고 옆에 선배인 김경기가 있어서 그런지 중간에 말하는 타이밍을 잘 잡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중저음의 목소리가 여성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2018년 들어 LG가 Again 2011을 시전하면서 이상훈 코치에 대한 평가도 하락하고 있다. 전년도와는 다르게 투수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 다만 투수라는 게 키우기 쉬운 것도 아니여서 섣부른 비판만 할 수도 없다.
그리고 "피칭 아카데미가 사라진 게 이유"라며 LG 코치직에서 사퇴하며 친청팀과는 3년만에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LG 이상훈 코치 자진 사퇴 피칭 아카데미 해체는 양상문이 LG를 나가기 전에 한 일로 차명석과는 무관계. 이후 인터뷰에서는 구단에서 다른 보직을 제안했지만 봉급만 받고 있을 거면 있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사퇴했다고 한다.
항간에는 차명석 단장과 선수 시절부터 서로 성향이 안 맞아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소문이[11] 있었지만 불투명한 게 사실. 다르게 보면 한편으로는 팀 투수진의 성적 부진에 대해 나름의 책임을 진 거라는 평도 있다. 선수시절부터 책임감이 투철한 성격이기도 했고, 투수 분야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면서 팀이 추락한 것이 더해졌다는 해석.. 향후 2019년 2월 10일 이영미 기자 인터뷰를 통해 지난 시즌 1군 성적이 안 좋으니깐 피칭도 소문이 안 좋았던 게 사실이었다고 한다. 물론 기사를 통해 알았다고 했으며 팀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맞다며 팀에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고.. 다만 그냥 팀에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나왔다고 한다.
차명석 단장이 '''47번을 비워놓고 이상훈 원장을 다시 기다리겠다'''고 말하면서 LG의 47번은 비공식적이나마 영구결번이 되었다.작년 시즌 후반기부터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요. 1군 성적이 좋지 않으니 아카데미까지 여파가 올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기사를 통해 피칭 아카데미를 없애겠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가 학원 원장인데 학원이 폐지되는 걸 기사로 알게 된 것이죠. 팀을 이끄는 수장이 바뀌면 정책에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인 것이죠. 그래도 직접 얘기해주기를 바랐습니다. - 이영미 기자 인터뷰 중-
2019년 초반 그의 지도를 받은 김대현이 빠른 배팅볼과 직구와 다름없는 슬라이더를 던지고 고우석마저 최일언 코치와 함께 바꾼 슬라이더 그립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상훈의 코칭 능력에 대한 평가가 급하락했고, 지난 3년간 대체 한 게 무엇이냐는 소리가 쥐갤에서 나오고 있다.
5. 해설자 시절
2019년 2월 1일 고려대학교와 LG 시절 후배였던 심재학과 함께 MBC SPORTS+의 해설위원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그리고 2019년 4월 2일 ~ 4월 3일 행복드림구장 롯데 자이언츠 : SK 와이번스에서 본격 해설자로 현장 데뷔를 시작하였다. '마운드 위 야생마' 이제는 공 대신 마이크를 쥔 이상훈 해설 위원
그리고 2019년 4월 16일 ~ 4월 17일 창원 NC 파크에서 벌어진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에서 친정팀 중계로 사실상 첫 중계를 시작하였다.
또한 개그도 가끔씩 하는 편이다. '특별 도우미 등장' 김희주 아나운서가 전하는 어제 경기 리포팅
베이스볼 투나잇에서는 고양 원더스에서 같이 한솥밥을 먹은 이원재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019년 10월 17일 베이스볼 투나잇에서 해설위원 아니랄까봐 장정석 감독을 장영석 감독으로 부르는 실수를 했다.[12]
해설로서 평가는 좋은 편이다. 최근 선수 출신 해설들이 발성과 언변부터 안 좋아서 일단 듣기가 불편하거나 발성이나 언변은 괜찮은데 경기 해설과 분석보다는 현역 시절 일화나 얘기하면서 농담 따먹기 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상훈은 일단 발성이 좋아서 듣기 편하고, 언변도 좋아서 멘트가 비지 않을 뿐더러 선수 시절과 코치 경험을 살린 상황 분석도 듣기 좋게 잘 해주는 편인데다가 무엇보다 야구와 야구선수들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나와서 좋다는 야구팬들이 많다. 단점이 하나 꼽힌다면 목소리가 상당한 저음인 탓에 잘못 들으면 매우 졸린 목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점 정도다.
2020년 6월 23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였다. 영상 이후 7월 7일에 다시 출연하였다. 영상
2020년 들어서면서 다시 서서히 뒷머리를 기르는 것 같다. 해설위원 시작 때보다는 확실히 뒷머리가 길어졌다.
6. 기타
- 유명한 별명으로는 '야생마', 그리고 머리가 야구선수 치고는 꽤 길어서 붙여진 '삼손'이 있다. 덕분에 주니치 시절의 등록명이 삼손 리 였다. 먼저 자리잡고 있던 이종범과「LEE」가 겹쳐서 즉흥적으로 결정한게 별명이었던 삼손 리. 데뷔 초창기에는 머리를 기르지 않았었다.
- 구원 등판을 할 때 항상 불펜에서 마운드로 전력질주를 하며 올라가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 열정적인 모습에 팬들은 환호하고 상대 선수들은 기가 죽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기가 그때 미쳤었다며 다른 투수들은 절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강조한다(...)[13]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뛰어간 것인데 팬들의 호응이 너무 좋아서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계속 뛰어서 올라갔다고.
- 위에 써 있듯이 일본 활동 당시 등록명이 삼손이었는데, 하필이면 일본 내에서는 삼손이 유명한 게이 잡지의 이름인지라.. 물론 이상훈 본인이야 그걸 알지는 못했겠지만(...) 여튼 그런 이유로 당시에도 좀 도큥네임 취급을 받았고 아직도 일본 인터넷에서 이름이 특이한 야구선수 하면 꼭 등판하는 추억의 선수이기도 하다. 참고로 삼손은 2017년에도 발행 중이다.
-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군 면제를 받았던 사실이 있다고 한다. 아마 생계 곤란 사유인 것으로 보인다.
- 나이 들어 상남자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데뷔 초에는 꽤 순박하고 앳된 얼굴이었다. 이상훈이 95년도에 20승 도전 당시 인터뷰를 보면 그 야생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밝고 명랑하다.
- 국내에서 뛸 때 달았던 등번호 47번은 같은 왼손투수 톰 글래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 미군 방송에서 톰 글래빈의 투구를 보고 자신도 그렇게 던져야겠다고 마음먹어서 47번을 달았다고 한다. 마해영은 같은 이유로 외야수 조 카터의 49번을 달았다. 관련 칼럼
- 47번 이외에 이상훈이 프로 선수로 활동하며 달았던 번호로는 17번(주니치), 40번(보스턴)이 있다. 선호하는 등번호인 47번을 달 수 없어서 비슷한 숫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 SK의 좌완투수 김광현이 어릴 때는 LG팬이어서 이상훈을 가장 존경하고 좋아했다고 한다.
- 전 롯데 자이언츠 선수였던 임수혁과는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온 선후배 사이로,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방황하던 이상훈을 임수혁이 도와 주고 삐뚤어지지 않게 바로잡아 줬다고 한다.# 그리고 임수혁은 이상훈이 프로에 입문하기 직전 해인 1992 신인드래프트에서 LG의 지명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상무에 입대했다. 임수혁이 자신을 지명한 LG에 그대로 입단했다면 이상훈과 영혼의 배터리를 이룰 수도 있었다. 훗날 2000 시즌에 임수혁이 경기 도중 쓰러진 후 꾸준히 그를 도와 왔으며 2010년 2월 7일 임수혁이 끝내 눈을 감자 조용히 그의 옆을 지켰다.
- 2010년 10월 3일 서울종합운동장에서 열린《서울 국제 자전거 디자인 페스티벌》중 자전거 락 페스티벌에서 공연 중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 대해 "XXX, 2년이나 남았네"라는 발언을 하였다. # 평소 엄청난 보수 성향인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도 이상훈을 까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사이트 성격이 성격이니만큼 그날부로 별명이 하나 추가되어 좌생마(…)란 별명이 전 야갤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 2009년 SkyEN에서 편성된 <이상훈의 MLB the city>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찍은 적이 있다.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편의 4부작이며 MLB시절 고생했던 이야기 등의 사담이 많이 나오니 팬이라면 꼭 챙겨보자. 음악과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많이하는데 슬래시의 굉장한 팬인 듯하다. 당시 뉴욕 양키스에서 뛰던 마쓰이 히데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있던 박찬호가 잠시 출연하기도 했다.
- 마구마구 갤러리에서는 '품절쥐'라는 별명이 있다. 본인이 성명권 사용을 거절하면서 더 이상 본인은 야구 게임에서 볼수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다른 게임은 가명을 이용하여 선수를 공개했지만 유독 마구마구는 가명을 쓰지않고 선수 카드 발매를 중단시켰다. 덕분에 지금은 이상훈의 카드를 소유한 유저만이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 특이폼이 뛰어나게 구현되어 있으며 본의 아니게 희소성이 가장 뛰어난 카드가 되어서, 거래를 할 때는 평범한 스페셜에도 현금 10만원이 왔다갔다 하고 있다. 본인이 게임에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라이선스 계약을 모두 거절했다고 하는데 2014년 1월 말, 컴투스 프로야구 매니저의 이삼민이 이상훈으로 변경돼 업데이트 되어 엘지팬들을 설레게 하였다. 모든 야구 게임 사상 최초. 이어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도 초상권 협의가 드디어 이뤄졌다. 따라서 다른 게임에서도 이상훈이 등장할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2월 19일자로 마구마구에서도 이상훈 카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유독 사진의 퀄리티가 출중하다. 역대 프야매 레전드 카드 중 가장 간지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 다만 이 사진 선정에는 웃지못할 일화가 있는데, 처음 업데이트 예고에는 지금 사용되는 이상훈의 클래식 카드 이미지와 레전드 카드 이미지가 각각 레전드와 클래식 카드에 적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유저들이 레전드 카드가 클래식 카드보다 사진 퀄리티가 더 떨어지냐는 항의댓글을 달았고 결국 클래식, 레전드 이미지가 지금의 사진으로 변경되었다.
프야매에서의 성능은 발군으로 명실공히 프야매 최강 덱인 94'LG 덱의 1선발로 군림하고 있다. 좌완에 최고급 구종과 등급을 가지고 있으며 유학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팀 혹은 자팀의 레전드 선발보다도 성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 2016년 4월 16일, LG vs 한화전이 우천 취소되어 KBS N 스포츠에서 대체 프로그램으로 레전드 스토리 이상훈편을 방영했다. LG에서의 영광의 시절부터 비극적인 이별, 그리고 LG로 돌아온 이상훈 코치의 야구 인생이 방영되었다. 양상문, 김동수, 서용빈, 최동수 등 많은 은퇴한 선수들이 출연했고, LG팬으로 알려진 최훈과 현역 이동현과 김광현[14] 도 출연했다. LG 트윈스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큐멘터리 초반 눈물을 보인 야생마는 다큐멘터리 마지막에도 조용히 눈물을 흘려 이를 지켜보던 많은 LG팬들도 함께 울었다. LG열혈팬 민혜경 작가가 집필했다.
사람이 애인을 만나면 헤어질 수 있잖아요,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또다른 사람하고 좋은 사랑을 하게 되면
옛 사랑은 어떻게 보면 추억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로 비유하자면...
아직 LG트윈스 팬들은 더 좋은 사람을 못 만난거 같아요. 그렇게 옛날에 좋아했던 사람을 추억으로 간직해야 하는데,
자꾸... 그 때를 그리워하니까,
그게 마음이 아파요... (무슨 얘긴지 아시겠죠?)[15]
그래서, 빨리 옛 사람은 추억이 될 수 있게끔 만들어 드릴거에요.[16]
- 다큐멘터리 마지막에 이상훈 코치가 남긴 말 -
- 1990년대 라이벌인 김상진과는 친했다고한다. 둘의 선발 맞대결 후에는 항상 사석에서 만났는데, 김상진은 항상 기달렸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이유인 즉, 이상훈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긴 머리를 정리정돈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라고...[17]
- LG와의 가슴 아픈 이별 이후 다시 돌아온 이래, 야생마의 영구결번을 원하는 팬들도 많다. 실제로 그의 번호 47번은 LG팬들에게는 준영구결번급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번호이기도 하다.[18]
- 이상훈은 LG에 다시 소속되었을 때도 스프링 캠프는 따라가지 않아서 스프링 캠프용 모자(하얀색)는 써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2019년에 LG 스프링캠프를 해설위원 자격으로 방문해서 처음 모자를 써보게 되었다.
- 카리스마 넘치는 상남자스러운 이미지에 걸맞게(...) 이분도 옆동네의 김태형감독과 같이 구타에 대한 구설수가 좀 있다. LG시절 신윤호가 연습을 설렁설렁한다고, 투수조를 전부 집합 시켜서 머리를 박게 하고[19][20] 신윤호를 불러 '개XX가 야구를 설렁설렁하냐.' 면서 안경낀 신윤호를 귀싸대기를 후려 쳤다고 한다.[21] 저때 너무 열받은 신윤호는 구단 버스도 안타고 짐 챙겨서 나가 혼자 술을 마시다 너무 열받아서 시장에서 무기(!)를 사고 들어왔다고.[22] 이후 이상훈이 방으로 불러 맥주를 따라주며 본보기로 잡은거라면서 타일러서 넘어갔다고 한다. 두산 김태형이 감독시절에도 수시로 비판받는게 저런 식으로 집합을 시켜서 유망주 후배 하나를 본보기로 때리고 쪽줘서 선수단 기강을 잡는다는 이야기인데, 이상훈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당시 아구계에서 만연했던 더러운 똥군기 문화의 하나인 것 같다.[25]
- 상당한 애주가라고 한다. 은퇴 이후에 밴드 활동을 하면서 맥주 5병을 혼자서 마셨다는 모양.
7. LG 트윈스와의 악연
한 줄로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김재현과 함께 대표적인 LG 프런트가 저지른 사건의 희생자.''' 이 둘은 누구보다도 트윈스를 사랑했고, 트윈스 팬들에게 사랑받던 선수들이다. [26]
2004년 LG감독으로 이순철이 임명되면서, 당시 LG의 주축 고참이었던 유지현-서용빈이 순서대로 은퇴 수순을 밟고, 김재현은 부상 재발 시 책임 소재에 대한 각서를 구단에서 강요받아 이에 반발하여 SK로 이적한다. 고참들을 정리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팬들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웠으나 매우 계획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가장 결정판은 이상훈의 트레이드였다. 계획적이면서 단기간에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진행되었다는 것은, 이순철 감독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당시 젊은 신임 감독이었던 이순철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구단 프런트의 운영 방향성과 맞아 떨어지는 맞장구가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베테랑 소중한 줄 모르고 무시하던 LG의 이런 운영은 10년 암흑의 시발점이 된다.
감독이 된 이순철은 자기가 원하는 영입 위시리스트를[27] 은연 중에 언론에 흘리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기존 멤버들이 부족하여 교체해야 한다는 식의 밑밥 깔기를 하였다. 언론에 진필중을 데려오고 싶다고 선언한 이상, 이상훈을 이미 팀 전력외로 분류한 것이다.
여기에 기존 멤버들을 제대로 기용해주지 않고 2군에서 뜬금 멤버들을 계속 불러올려 실험하고, 이미 폐급의 먹튀 FA들을 떼돈을 주고 데려와서 무작정 띄워주는 식으로 기존 멤버들을 도태시키는 식의 운영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이라도 가능했던 김재현, 이상훈은 구단에서 내보내는 상황이 되어도 전혀 중재하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부진으로 입지가 좁아진 유지현은 철저하리만치 무능한 노장으로 짓밟히도록 방관하였다. 특히 이순철이 이상훈과 기타 관련하여 신경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제대로 대화를 시도하지 않고 외면하였다는 것이 후일 이상훈의 인터뷰에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선수가 감독에 항명한다는 이상한 이미지로 왜곡되며 방출성 트레이드로 결말이 나고 말았는데, 계속 대화를 시도하던 애꿎은 이상훈은 해명, 화해의 기회 한번 없이 고향팀과 인연이 끊기고 말았다. 이상훈은 박동희와의 후일 인터뷰에서 당시 단순히 이순철과의 불화도 있었지만 이순철은 그 사태의 주연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한 만큼(상술했겠지만 나중에 이순철과 만나 서로 오해를 풀었다), 당시 구단의 방향성이 이미 이상훈, 그리고 다른 베테랑들의 편이 아니었다.
그것도 모자라 2009년 7월에 LG 프런트가 그에게 복귀를 종용하다가 뒤통수를 날린 행각을 폭로하는 내용의 글을 2010년 4월 5일 LG 팬 게시판인 쌍둥이 마당에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나중에 밝히길 선수들은 구단을 상대로 항상 을의 입장인데, 운동을 그만둔 후에도 을이 돼야 하고, 있었던 일도 관점의 차이라며 없는 일로 만드는 처사를 두고 볼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다음은 그가 쌍둥이 마당에 올렸던 글의 전문이다.
이에 구단과 단장의 변명은 "이상훈이 오해한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인사하려고 점심 한 끼 하면서 구단 실무자를 두 명이나 대동하고 2시간이나 점심을 먹었을까?
이 사건이 알려진 뒤 올드 팬들이 잠실 야구장에《성적은 못 내도 상관없으나 추억은 건드리지 마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가 두산 직원들에 의해 철거당하는 사건이 생겼다. 이상훈은 안 그래도 LG 구단이 봉중근 2군 강등 사건 등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플래카드는 걸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플래카드 사건 며칠 뒤에는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팔이 더러워지는 것 같다"고 하며 더 이상 LG 구단에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글을 올렸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 이 시절의 막장 프런트가 갈리고 LG와 이상훈의 관계가 많이 풀려졌는지 LG에서 이상훈에게 코치직을 제안했고, 두산의 양보로 LG는 다시 야생마를 안게 되었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1] 본래 1970년생이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유아 사망률이 높아서 1년, 혹은 그 이상 유예 후, 출생 신고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2] 이 사진이 정말 애틋한 사진인 것이 이상훈은 저 글씨체의 유니폼을 입기 직전에 팀에서 강제 트레이드되었고, 이상훈이 돌아온 1년 뒤에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구홍로고 유니폼으로 교체되었기 때문. 2016년에 팀에 돌아온 덕분에 이상훈은 LG의 3가지 유니폼(1990~2005, 2006~2016, 2017~)을 전부 입고 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3] 앨범 3장을 낸 프로 뮤지션이다. 지금도 What!의 CD를 구할 수 있다.[4] 마구마구의 경우엔 여기에 MLBPA까지[5] 사실 이런 형식의 가명으로 된 선수는 실제 선수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스포츠 게임에서는 꽤 흔한 일이다. 물론 사태의 99%는 초상권료가 원인이다. 마이클 조던, 배리 본즈가 그 예.[6] 김성근 감독이 최향남의 SK 와이번스 입단을 거절했던 이유가 최향남의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실제로 이상훈이 고양 원더스로 올 때 김성근이 첫 미팅에서 수염을 보고 그게 뭐냐고 지적하자 수염을 자르고 왔다고 한다. 이상훈과 김성근이 LG 트윈스 선수와 감독으로 만났을 때에도 이게 문제가 되었었는데, 이 때도 김성근이 이상훈에게 머리를 자를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이상훈은 머리는 자를 수 없다고 했고, 김성근은 "너만 예외를 인정할 수는 없다. 너뿐 아니라 어느 선수도 머리를 자르게 하지 않겠다."라고 넘어갔다. 그러나 김성근의 성격상 지도자 수업 중에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상훈 본인도 후배들을 가르치기에는 긴 머리가 적절치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하는 중이고. 최향남도 고양에 합류하면서 이런 것도 생각했을 것이다.[7] 다만 머리카락은 원더스 합류 이전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정리했다고 한다. 기사[8]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선택한 이유는, 1군 투수코치로 올리면 특히 잠실 야구장에서 일부 LG 팬들로부터 야유받을 우려가 있어서였다.[9] 김태형 감독이 전자기타 연주를 좋아해서 이상훈과 같이 술마시고 기타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기사[10] 실제로 이동현은 이상훈의 복귀 소식이 수면위로 오르자 바로 이상훈에게 전화했다고 한다.[11] 엠팍에서는 또 다른 글이 있었다. 이상훈 코치 아내의 글이 "구단에서 쫓아냈다" 등 안 좋은 글이 돌기도 했지만 자세한 건 불투명[12] 사실 장정석과 장영석을 헷갈려 이름을 잘못 부르는 해설위원들이 적지 않다. 과거에는 장성호와 정상호를 헷갈려서 잘못 부르던 사례도 있다. [13] 리듬을 갖고 한구한구에 집중해야 할 투수가 숨이 차서 헉헉거리거나 심장이 쿵쾅거리면 투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으니 당연한 말이다.[14] 이동현과 김광현은 나란히 어린 시절부터 이상훈을 동경하던 영웅이자 롤 모델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이들의 인터뷰가 들어간 것. 여담으로 어린 시절 김광현은 LG 트윈스의 팬이기도 했는데 그 바탕 역시 이상훈의 존재 때문이었다.[15] 이상훈 코치의 평소 말버릇으로 보인다. 현역시절 언론 인터뷰에서도 자주 나왔던 표현이다.[16] LG트윈스 투수 육성군 코치로 취임할 때의 다짐이라고 여겨지는 대목이다.[17] KBS N 스포츠 레전드 스토리 이상훈편 김상진 코치의 인터뷰[18] 2020년 5월 30일 기준으로 LG 트윈스 기준으로 아무도 47번을 달지 않았다.[19] 장문석, 류택현, 최원호(당시 투수조장), 이동현 등[20] 심지어 1살밖에 차이 안 나는 류택현이 '자기도 고참인데 이거 머리를 박아야하나 말아야하나' 하면서 우물쭈물 거리니까 이상훈이 "류택현 씨X놈아 너도 박아!"라고 호통쳐서 결국 같이 머리를 박았다고 한다.[21] 박명환야구TV에서 신윤호가 밝히기로는 안경을 낀 신윤호를 쳐서 눈가가 찢어졌다고 한다.[22] 가슴에 품고서 이상훈이 불렀을때 거기서 뭐라고 했으면 선배고 뭐고 그냥 뒤짚어 엎을 생각이었다고 한다.[23] 김태형이 1-2군 합동 훈련 때 집합을 걸고 '정수근 너 x발새x 앞으로 나와하면서 때렸고 정수근은 그날 밤 숙소에서 혼자 슬퍼하고 있는데 김태형이 불러서 달래줬다고 한다. 달래주는 게 더 슬펐다고...이 역시 박명환야구TV에서 풀어낸 이야기다.[24] 박명환야구TV에서 밝힌 일화로 SK 와이번스 해외전훈 때 이호준과 이진영이 말싸움을 벌이자 프로팀 후배 + 군산상고 후배라서 이진영을 후드려 팼다고 한다. 당시 주장이었던 최태원이 오상민을 군기반장으로 임명했다.[25] 박명환야구TV에 나오는 은퇴선수들은 대개 1990-2000년대 활동했던 선수들인데 당시 저런식으로 선배들이 후배 하나 잡고 본보기 구타썰이 꼭 나왔다. 저기에 당한 썰을 푼 선수들은 정수근[23] , 신윤호, 이인구, 구자운이고 오상민은 오히려 그렇게 한 명[24] 잡고 때리는 역할이었다고...[26] 김재현과 유지현은 원래도 그랬지만 선수협 관련 등으로 인해 사이가 썩 좋지는 않다. 지금은 그냥저냥한 사이지만... 자세한 건 유지현 문서 참조. 아이러니하게도 김재현-서용빈 사이와 유지현-서용빈 사이는 또 괜찮은 편.[27] 다 알다시피 그 위시리스트는 결과적으로 하나같이 역대급 먹튀 아이디어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각종 먹튀 FA을 양산하였다. 진필중, 마해영, 최상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