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이종범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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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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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3'''
'''1996'''
'''1997'''
'''2009'''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2'''

'''아시안게임 금메달(코치)'''
'''2018'''

[image] '''1988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s-2 MVP'''






'''1994 KBO 리그 MVP'''

'''KBO 한국시리즈'''
'''1993, 1997 한국시리즈 MVP'''


'''1994 KBO 리그 타격왕'''


'''1994 KBO 리그 최다 안타왕'''


'''2004 KBO 리그 득점왕'''[61][62]


'''1994, 1996, 1997, 2003 KBO 리그 도루왕'''


'''1994 KBO 리그 출루율왕'''


'''2003 KBO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



보유 기록(KBO)
한 시즌 최다 도루
84개[63]
최다 연속 도루
29회[64]
한 경기 최다 도루
6개[65]
한 시즌 최다 고의사구
30개[66]


'''이종범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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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7번'''
김종모
(1982~1992)

'''이종범
(1993~1997)
'''

장일현
(1998~2000)
''''''주니치 드래곤즈''' 등번호 8번'''


'''이종범
(1998~1999.7.24.)
'''


''''''주니치 드래곤즈''' 등번호 7번'''


'''이종범
(1999.7.25.~2001)
'''


''''''KIA 타이거즈''' 등번호 7번'''
장일현
(1998~2000)

'''이종범
(2001~2012)
'''

'''영구결번'''
''''''한화 이글스''' 등번호 73번'''
정영기
(2010~2012)

'''이종범
(2013~2014)
'''

아베 오사무
(2015)
''''''LG 트윈스''' 등번호 77번'''
강상수
(2014~2018)

'''이종범
(2019)
'''

윤진호
(2020)
''''''주니치 드래곤즈''' 등번호 79번'''


'''이종범
(2020)
'''


''''''LG 트윈스''' 등번호 77번'''
윤진호
(2020)

'''이종범
(2021~)
'''

현역


<color=#373a3c> '''성구회'''
<rowcolor=#373a3c>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4'''
'''2,083 안타'''[60]
'''2010년'''
-




'''KIA 타이거즈 No. 7'''
<colbgcolor=#c30452><colcolor=#fff> '''LG 트윈스 No. 77'''
'''이종범
李鍾範 / Lee Jong-Beom'''
'''생년월일'''
1970년 8월 15일 (53세)
'''출신지'''
광주광역시 북구
'''신체'''
178cm, 73kg
'''국적'''
[image] 대한민국
'''본관'''
함평 이씨[1]
'''가족'''
아버지 이계준(1928년생), 어머니 김귀남(1929년생), 7남매 중 막내
생질[2] 윤형준(1994년생)[3][4]
'''배우자'''
정연희(1971년생)[5](1997년 결혼~현재)[6]
'''자녀'''
아들 이정후(1998년생)[7]
딸 이가현(1999년생)[8]
'''학력'''
서림초 - 충장중 - [image] 광주일고 - [image] 건국대[9]
'''포지션'''
'''우익수'''[10](2002~2003[11], 2007~2011)[12]
'''유격수'''[13](1993~1997, 1998[14])[15]
중견수[16](2003~2006)[17]
좌익수[18](1999~2000)[19][20]
3루수[21](2001)[22]
1루수[23][24]
2루수[25][26]
포수[27][28][29]
'''투타'''
우투우타[30]
'''프로입단'''
1993년 1차 지명 (해태)
'''소속팀'''
'''[image] [image] 해태 타이거즈 (1993~1997)'''
[image] 주니치 드래곤즈 (1998~2001)
'''[image] [image] KIA 타이거즈 (2001~2012)[31]'''
'''지도자'''
[image] 한화 이글스 1군 주루코치 (2013~2014)
[image]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주루코치 (2017~2018)
[image] LG 트윈스 2군 총괄코치 (2019)
[image] 주니치 드래곤즈 2군 연수코치 (2020)
[image] LG 트윈스 1군 작전코치 (2021~)
'''해설위원'''
[image]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5~2018)
'''응원가'''
안토닌 드보르자크 - '교향곡 9번 제4악장'[32][33]
YG 패밀리 '멋쟁이 신사'[34]
펩시맨 CM송[35]
응원단 자작곡[36]
'''병역'''
제31보병사단 방위병(1995)[37]
'''종교'''
불교천주교[38]
'''에이전트'''
[39][40]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4회 (1993, 1996, 1997, 2009)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4회 (1993, 1994, 1996, 1997)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회 (2002, 2003)
MVP (1994)
한국시리즈 MVP 2회 (1993, 1997)
타율 1위 (1994)
안타 1위 (1994)
득점 1위 (2004)
도루 1위 4회 (1994, 1996, 1997, 2003)
출루율 1위 (1994)
1. 개요
4. 해설자 경력
5.1. 방송 및 광고 출연
6. 가족관계
9. 응원가
10. 연도별 성적

[clearfix]

1. 개요


'''타자는 이승엽이 제일 잘하고, 투수는 선동열이 제일 잘하고, 야구는 이종범이 제일 잘한다. 이종범은 10승 투수 2명과도 바꾸지 않는다.'''

김응용, 前 해태 타이거즈 감독[41]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의 야구 선수로 현재는 LG 트윈스의 코치이다. KIA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레전드이자 KBO 리그의 레전드이며 성구회의 제4호 회원이다. 90년대 중반 '''야구천재'''로 불리며 한국프로야구 한 시대를 주름잡았고 리그를 대표했던 선수로 설명된다. 해태 왕조로 불렸던 9번의 우승 중 93년, 96년, 97년 3차례 우승에 기여하였고[42], 09년엔 12년만의 우승이자 KIA 인수 후 첫 우승을 함께하며 4차례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표적인 수상기록으로는 통산 정규시즌 MVP 1회, 한국시리즈 MVP 2회, 골든글러브 6회, 올스타전 13회. 2002 부산 아시안 게임과 2006 제 1회 WBC에 국가대표 주장으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종범의 플레이를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5툴 플레이어이지만 그냥 5툴이 아니라 각 툴 하나하나가 당시 KBO에서 역대급으로 잘했기에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선수였다. 타자로서 그냥 타격을 잘하는게 아니라 '''야구를 정말 잘한다'''라는 평판을 들었던 선수.[43] 말하면 입이 아플정도의 KBO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주루 능력과 유격수라는 포지션[44], 전설로 남은 5년간 같은 기간동안 그보다 홈런을 많이 친 선수는 양준혁뿐일 정도로 뛰어난 펀치력과, 통산 타율이 .332를 기록할 정도로 양준혁을 능가하는 컨택능력을 자랑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였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면서도 그 말 조차 아쉬울 지경이다.
주요 시즌의 기록으로는 94년에 기록했던 타율 3할9푼3리, 도루 84개, 안타 196개, 득점 113점 (모두 시즌 1위), 97년에 기록했던 타율 3할2푼4리, 30홈런, 64도루 등의 기록이 있다.[45] 94년의 타율은 프로 원년 백인천 4할1푼2리 이후 한국프로야구 최고 타율이었으며, 196안타는 14년 128경기 체제가 되어서야 서건창에 의해 갱신되었다. 97년은 96년 만개한 장타력을 바탕으로 64도루를 하면서도 30홈런으로 2위를 기록했는데, 당시 32홈런으로 홈런왕에 올랐던 이승엽과 유격수라는 수비부담이 심한 포지션에서 경쟁하던 기록이라 더욱 대단한 기록이다. 단 일본에서 부상과 부진, 국내 복귀 이후 급격한 노쇠화에 의해 04년부터 점점 하락세가 시작되어 말년의 기록은 전성기때 지표를 상당히 많이 까먹었고 전성기때 칭송받았던 이름값에 비하면 통산기록이 많이 아쉬운 수준에서 그쳤다. [46] 자세한 사항은 선수 경력을 참고.
고향 광주에서 현역 은퇴식을 화려하게 치르고 KIA 타이거즈의 영구결번으로 헌액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은퇴하는 과정에서 KIA 구단과는 꽤 좋지 않은 감정으로 헤어졌다.[47] 사실상 이종범을 몰아낸 선동열 전 감독과도 사이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정리하면 타이거즈의 레전드로 해태 왕조 후기와 KIA의 4차례 우승을 함께했고, 90년대 중반을 지배한 야구천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한국프로야구의 레전드. 한국프로야구 사상 손꼽는 위대한 전성기와 훌륭한 기록을 남긴 탑클래스의 플레이어였다.[48]
별명으로는 '''바람의 아들''', '''야구천재''', '''종범신'''이 있다.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해설자 경력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중국과의 야구 준결승전 당시 KBS에서 특별 해설위원으로 초빙되어 처음으로 해설을 맡았다. 대체적으로 야구를 읽는 눈이 아직 녹슬지는 않았고 의외로 방방 뛰지 않고 차분하게 해설을 했다는 평. 다만 아직 남아있는 사투리와 너무 긴장해서인지 차분하다 못해 가라앉아 있어서 본격적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려면 좀 더 다듬어져야 한다는 평을 받았다.[49]
한화 이글스 주루코치 사퇴 이후 KIA 타이거즈 측으로부터 감독직 및 코치직[50]을 제안받았으나 좀 더 야구를 공부하기 위해 야구해설자로 진로를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MBC SPORTS+와 해설위원 계약을 맺으면서 2015년부터는 MBC 중계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1993년 등장했던 양신과 종범신이 이젠 해설위원으로써 한솥밥을 먹게 된 것. 그리고 2015년 6월 12일 '''드디어''' 양신과 같이 해설했다! 시청한 사람들의 소감은 하나같이 '하라는 해설은 안하고' 한명재 캐스터랑 3명 모두 만담만 했지만, 경기 자체가 원사이드하게 흐른데다가 양 팀팬들간 서로 추억도 다시 되살려보고 대체적으로 만족했다고 한다.
엠스플 해설자 위촉 기념으로 촬영된 '종범神, 엠스플을 만나다'에 따르면 선수 시절 말기 때부터 야구를 보는 눈이 있고 입담이 화려한 이종범의 영입을 위해 엠스플이 굉장히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사석에서 형동생하는 사이인 한명재 캐스터도 끈질기게 붙으면서 엠스플로 오라고 했다는 설. 은퇴 이후에는 가족과의 시간을 가지면서 은퇴 이후의 행보를 설계하느라, 2013~2014년에는 은사 김응용의 러브콜로 성사시키지 못했다가, 2014 시즌이 끝나고 그 때의 정을 생각하여 해설자 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2015 시즌전 투입된 프로그램에서는 이종범 위원의 예능감(...)이 유난히 드러났다.
그러나 해설자로서의 평은 다소 좋지 못하다. 억지로 표준말을 하려고 하니 발음이 새는 경우가 많고, 발음이 새는데 상황 설명도 자세히 말하려다 말이 꼬이고 자기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거의 매경기 연출되기 때문. 기아 경기 중계시 편파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고 단어와 단어를 잘 연결짓지 못해 올바른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비문이 많으며 가끔가다 따까리, 쪽팔리다와 같은 비속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보였다. KIA 팬들마저 이종범 해설은 못 듣겠다 할 정도. 그리고 유독 눈빛좋은 선수를 아끼는 모습을 보여서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눈빛충이라고 불린다.
2016년 4월 17일에 벌어진 메이저리그에서 메이저리그 포수보다 한국리그의 포수 리드가 더 좋다라는 경솔한 말과 김현수와 주전자리를 두고 경쟁중인 조이 리카드를 무작정 까고 감정적인 해설을 하는 소위 국뽕(?) 해설을 하여 많은 사람에게 비판을 받았다.
친정사랑이 각별하다 어느정도냐면 "'''우리''' 기아 타이거... 죄송합니다. 기아 타이거즈가"라고 '해설' 발언했다. 역시 친정사랑.
2017시즌부터는 아들 경기를 중계 할 가능성이 생겼다.
2017년 5월 5일 넥센-SK 경기에서 한명재, 허구연과 해설을 했는데 이정후의 수비에 대해 냉정한 지적을 했다. 또한 이정후가 1타점 3루타를 쳐내자 "흐흐흐"하며 웃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MBC SPORTS+에서 이정후가 팀의 큰 견해를 해주었다는 칭찬을 하자, 때론 아버지로써 선배로써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7년 5월 19일 SK-NC 경기에서는 이정후와 상관 없는 경기의 해설임에도 불구하고 넥센을 거론하며 "'''저희''' 넥센같은 경우에는-" 이라는 발언을 하였다.[51]
주로 양신과 많이 엮어주는데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이 2% 부족하다는 점 양쪽 지역 사투리를 못 고친다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 결국 해설실력이 넘사벽급인 같은 방송사 다른 해설진과의 차별화를 위해 두 신의 만담해설이 주 컨텐츠로 자리잡았다.
동료 해설위원이자 1년 선배인 차명석 LG 트윈스 단장의 부름을 받고 LG 트윈스 코치로 가게 됨에 따라 2018년 10월 31일 베이스볼 투나잇 출연을 끝으로 해설위원으로서의 생활은 일단 마치게 되었다.

5. 플레이 스타일




5.1. 방송 및 광고 출연


현역 선수때에도 토크쇼 등의 방송 출연을 종종 했었긴 했지만 예능에서 보기 힘든 스타 선수였는데 은퇴 시기를 앞둔 2009년쯤부터 방송 출연이 다소 잦아졌다.
  • 정준하와의 친분으로 2008년 11월 말 식신원정대 '광주광역시 특집'에 두 자녀 정후 군, 가현 양과 함께 특별출연했다.#
  • 2009년 MBC 무릎팍도사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마흔이라는 나이지만 선수생활을 더 하고 싶다는 바람과 2009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펑펑 운 사연도 공개하며 자신의 야구인생 이야기를 털어놨다. 특히 동갑내기 친구 강호동과 팽팽한 기싸움으로 거침없는 입담대결을 펼치기도. 16.4%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 2011년 세바퀴 '야구선수 특집'에 출연해서 입담을 뽐냈다. 무한도전 '타인의 삶 편'에도 깜짝 출연했다.#
  • 2012년은 방송 출연이 가장 많았다. 1박 2일 '6대 광역시 특집' 광주광역시 편에 특별출연해서 전국 최고라는 육전을 소개했다.
  • 6월 21일 배우 정보석이 진행하는 토크쇼 주얼리 하우스 '이종범과 친구들 편'에 출연했다.#
  • 6월 23일 이야기쇼 두드림에 출연해 자신의 34년 야구 인생을 되돌아보며 은퇴 후 최초 심경을 고백했다. 특히 지금도 두고두고 까이는 흑역사(...) 장나라 시구사건을 언급하기도.[52]
  • 2012~2013년 (주)컴투스 프로야구 매니저 (광고) [53]
[image]
  • 2014년 나는 남자다 '프로야구 마니아 남녀 편'에 출연했다. 이날 이종범은 '금종범' 사진에 대해 "합성이 아니다"고 설명하며, "그 해 골든글러브를 휩쓸었다. 그래서 한 사진기자분이 다섯시간동안 몸에 금 칠을 해서 신년특집으로 찍은 것"이라고 밝히기도.#
  • 2016년 2월 우리동네 예체능 '2016 리우 올림픽 선전 기원 프로젝트 제 탁구 편'에 게스트 출연했다.

  • 2016년 3월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날아라 병아리'라는 가면을 쓰고 출연, 노래솜씨를 뽐냈다. 이후 광주 기아전 해설을 하러 똑같은 가면을 쓰고 와서 폭풍웃음을 선사했다.영상 보기
  • 2016~2017년 클라우드게이트 레전드야구존 (광고)[54]
  • 2017년 3월 비디오스타 'MBC 스포츠플러스 x 비디오스타 콜라보레이션 특집 편'에 양준혁과 함께 출연했다.#
  • 2018년 2월 토크몬에 게스트 출연했다.#
  • 2018년 (주)엔씨소프트 프로야구 H2 (광고)[55]
[image]
  • 2019년 1월 2017 KBO 신인왕에 빛나는 아들 이정후와 유사나 홍보대사 겸 모델로 발탁됐다.#
  • 2019년 화이텐 (광고)[56]

  • 12월 22일 방송 된 뭉쳐야 찬다 어쩌다FC에 새로운 용병으로 등장했다.# 그간 스케줄이 맞지 않아 늦게 합류하게 됐다고 출연소감을 전하며, 처음 시작한 운동이 축구였다는 명성에 걸맞게 쉰이라는 나이에도 온몸을 날리는 헌신적인 수비로 풀타임을 소화했다.#
  • 2020년 11월 10일 방송된 불타는 청춘박재홍깨복쟁이 친구로 출연했고 녹슬지 않은 입담을 과시했다.[57] 17일 2회차 춣연분이 방송예정이 였으나 축구중계로 결방되고 24일 방송예정

6. 가족관계


  • 이종범은 7남매 중 막내로, 그의 부모님은 광주서림초등학교 3학년때 야구를 시작한 막내아들에게 최대의 후원자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이상 막내아들에게 야구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작은 체구로 운동을 하는 것도 안쓰러운데 매까지 맞는다고 하니(...) 야구를 하도록 허락한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해서 속상한 마음에 훈련중이던 이종범을 강제로 야구부에서 빼내려했었다고. 그러나 이종범이 막무가내로 버티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한다. 대신 귀가한 아들을 호되게 꾸짖은뒤 '야구를 그만둔다'는 각서를 쓰도록 했지만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린 이종범이 쓴 각서의 내용은 '야구는 내 인생이니 절대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었고,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반발이 어이없기도 했지만 꿋꿋한 집념이 한없이 기특하게 여겨져 노여움이 눈녹듯 사라졌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가 일본전문서적을 번역해 이종범에게 읽어주었다고 한다. 어머니 김귀남 씨 또한 저녁마다 이종범의 훈련을 도왔으며, 하루저녁 3백개에서 5백개의 스윙목표를 정해놓고 50번을 휘두를 때마다 돌멩이를 옮겨놓으며 아들의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이외에도 당시 서림초등학교 감독을 집에서 기거케해 훈련이 끝난뒤에도 마당에서 개인지도를 받도록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
  • 아버지 이계준 씨는 2012년 5월 26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막내아들 이종범의 은퇴식에 참석했다. 주니치 나고야돔의 흙은 아버지가 직접 이종범 은퇴 기념탑에 담았는데 “일본 갔을 때도 기뻤고, MVP가 됐을 때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을 때도 정말 기특했다. 그래도 양준혁처럼 은퇴경기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언급했다. #
[image]
  • 아내는 1살 연하이다.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숭의여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에 패션유학을 다녀왔다. 이종범과는 1994년 말 잠실구장에서 팬과 선수로서 첫 만남을 가진 후 3년간 열애했다. 1996년 시즌이 끝난 뒤 결혼을 결심했고, 12월 예비 신부가 있는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고 파리, 런던 등지에서 12박 13일 동안 둘만의 시간을 보낸 후 1997년 1월 5일에 약혼식을 올렸다. 그해 11월 16일 광주무등파크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
  • 자녀로는 연년생인 아들 이정후, 딸 이가현이 있다. 두 자녀 모두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에 태어난 일본 나고야 태생이다. 아들 이정후는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넥센 히어로즈 1차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했다. 이종범과 함께 역대 최초로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성한 부자선수가 됐다. 이정후는 데뷔 시즌부터 맹활약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프로 데뷔 3년차만에 국가대표 탑타자로 크게 성장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별명을 물려받아 '바람의 손자'로 불리우고 있다. 2017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24세 이하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최종 엔트리에 승선해 맹활약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 대표팀 코치와 함께 '한국 최초 부자(父子) 국가대표'가 됐다. 이후 2018년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발탁 되며 아버지 이종범과 국가대표에서 다시 호흡을 맞췄다. # 딸 이가현은 연세대 음대에 재학 중이다.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다고. 여담으로 서울 예원학교에 진학을 앞둔 딸의 음악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현역 은퇴와 함께 서울로 이사갔고 이로인해 이정후 역시 광주 무등중학교에서 서울 휘문중학교에 전학을 갔다. 당시 이정후는 한창 예민할 시기인 중2때라 정든 교정과 친구들을 떠나 낯선 곳에서 다시 야구를 시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고 한다. 이를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이종범은 아들 이정후에 너무나도 미안했다고.
[image]
  • 이종범은 2017년 9월 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vs삼성 라이온즈 경기의 해설을 맡았는데, 경기에 앞서 아들을 언급하며, "정후는 잡초처럼 자란 것도 아니고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랐다"며 "힘든 프로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야구를 하는 내내 아빠의 수식어가 따라다닐 텐데, 어린아이가 이를 감내할 수 있을지 몰라서 야구를 반대했다. 야구보다는 축구나 골프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에도 자질이 있었는데, 자기가 야구를 제일 좋아하더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프로 지명이 되고, 운 좋게 주전 기회를 잡아 좋은 성적까지 내주니 너무 감사하다"고 돌아봤다. 여담으로 피는 못 속이고 운명은 악착같다고 아들 이정후는 외사촌형인 윤형준이 야구를 시작하자, 3학년을 앞둔 2007년 2월에 이종범이 스프링캠프를 떠난 사이 어머니 정연희 씨와 몰래 야구부 테스트를 보러 갔다. 이를 알게 된 이종범은 "그럼, 왼손으로 쳐라."라는 조건을 내밀었고, 오른손잡이 이정후는 우투좌타가 됐다. # #
  • 외삼촌 중에 광주의 유명한 축구 선수였던 전 광주축구협회 부회장 김화식 씨가 있다. 김화식의 권유로 원래 축구를 하려 했으나 입부했던 초등학교 축구부가 사라지면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기사 중간에 나온다.

7. 사건사고 및 구설수




8. 이야깃거리




9. 응원가


신세계 교향곡을 사용한 KIA시절의 응원가.

'''기아팬들이 종범신을 부릅니다..'''

2011년 6월 2일 잠실 LG전, 한명재 MBC 스포츠플러스 캐스터


다음은 주니치에서 뛰던 시절의 응원가. KBO 시절보다 흥겨운 느낌이 든다. 가사는 상단 프로필 참조.

[youtube][58]

10. 연도별 성적


  • 굵은 글씨는 리그 5위권 안의 성적,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성적, 파란 글씨는 리그 역대 최다 기록.
역대 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3
해태
126
475
.280
'''133'''
(2위)
16
4
'''16'''
(4위)
53
'''85'''
(1위)
'''73'''
(2위)
38
.432
.331
1994
124
499
'''.393'''
(1위)
'''196'''
(1위)
'''27'''
(3위)
'''5'''
(3위)
'''19'''
(4위)
'''77'''
(5위)
'''113'''
(1위)
'''84'''
(1위)
57
'''.581'''
(2위)
'''.452'''
(1위)
1995
63
239
.326
78
10
2
16
35
51
32
30
.586
.397
1996
113
449
'''.332'''
(2위)
'''149'''
(2위)
28
1
'''25'''
(3위)
'''76'''
(3위)
'''94'''
(1위)
'''57'''
(1위)
'''74'''
(5위)
'''.566'''
(2위)
'''.425'''
(3위)
1997
125
484
.324
'''157'''
(2위)
28
3
'''30'''
(2위)
74
'''112'''
(1위)
'''64'''
(1위)
'''90'''
(3위)
.581
'''.428'''
(4위)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8
주니치
67
244
.283
69
11
3
10
29
38
18
42
.475
.387
1999
123
424
.238
101
20
5
9
33
76
24
45
.373
.310
2000
113
414
.275
114
26
2
8
37
58
11
36
.406
.332
2001
8
13
.154
2
1
0
0
0
2
0
0
.231
.154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KIA
45
188
.340
64
14
1
11
37
45
7
21
.601
.401
2001 시즌 합계[59]
53
201
.328
66
15
1
11
37
47
7
21
.577
.387
2002
123
485
.293
142
25
2
18
59
'''93'''
(5위)
'''35'''
(3위)
56
.464
.365
2003
132
524
.315
'''165'''
(2위)
'''43'''
(1위)
1
20
61
'''110'''
(3위)
'''50'''
(1위)
66
.515
.389
2004
133
493
.260
128
'''29'''
(5위)
0
17
52
'''100'''
(1위)
'''42'''
(3위)
70
.422
.350
2005
118
430
'''.312'''
(5위)
134
'''25'''
(4위)
2
6
36
69
28
58
.421
.393
2006
93
339
.242
82
18
1
1
21
41
10
29
.310
.302
2007
84
253
.174
44
6
0
1
18
23
3
15
.209
.217
2008
110
317
.284
90
19
4
1
38
38
9
33
.379
.348
2009
123
385
.273
105
21
1
6
40
63
11
46
.379
.346
2010
97
265
.245
65
16
1
4
29
36
2
18
.358
.293
2011
97
235
.277
65
15
1
3
24
27
3
23
.387
.337
<color=#373a3c> '''KBO 통산
(16시즌)'''
<color=#373a3c> 1706
<color=#373a3c> 6060
<color=#373a3c> .297
<color=#373a3c> 1797
<color=#373a3c> '''340'''
(5위)
<color=#373a3c> 29
<color=#373a3c> 194
<color=#373a3c> 730
<color=#373a3c> '''1100'''
(5위)
<color=#373a3c> '''510'''
(2위)
<color=#373a3c> 724
<color=#373a3c> .458
<color=#373a3c> .370
<color=#373a3c> '''NPB 통산
(4시즌)'''
<color=#373a3c> 311
<color=#373a3c> 1095
<color=#373a3c> .261
<color=#373a3c> 286
<color=#373a3c> 58
<color=#373a3c> 10
<color=#373a3c> 27
<color=#373a3c> 99
<color=#373a3c> 174
<color=#373a3c> 53
<color=#373a3c> 123
<color=#373a3c> .406
<color=#373a3c> .334
<color=#373a3c> '''개인 통산
(20시즌)'''
<color=#373a3c> 2017
<color=#373a3c> 7155
<color=#373a3c> .291
<color=#373a3c> 2083
<color=#373a3c> 398
<color=#373a3c> 39
<color=#373a3c> 221
<color=#373a3c> 829
<color=#373a3c> 1274
<color=#373a3c> 563
<color=#373a3c> 847
<color=#373a3c> .450
<color=#373a3c> .364
[1] 28세손 "範" 자 항렬[2] 甥姪, 누이의 아들을 이르는 말.[3] 윤형준의 어머니가 이종범의 누나다.[4] 윤대영에서 개명.[5] 원래 이름은 정정민이였으나 개명했다. 수원 출신으로 숭의여자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디자인 유학을 했다. 파리유학 중 주고 받은 편지만 1,000여통에 달한다고 한다. #[6] 1994년 말부터 3년간 교제를 했다. 1997년 1월 약혼식을 올렸고, 그해 11월 16일 광주무등파크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항간에는 잠실구장에서 팬과 선수로서 처음 만났다고 알려졌었으나, 2021년 1월 6일 라떼부모라는 방송에서 이종범은 사실이 아니라고 정정했다.[7]키움 히어로즈, 지명 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2017년 1차 지명 선수. 아버지처럼 1차 지명을 받게 되었다.[8] 현재 연세대학교 음대 재학 중. 각종 콩쿠르, 연주회에 출전하는 것으로 보인다.[9] 경영학 / 학사[10] 커리어 통산 가장 많은 경기를 우익수로서 출전했다. (KBO 610경기)[11] 03시즌 주로 중견수로 나왔지만 우익수로도 못지 않게 출전했었다.[12] 1998, 1999, 2000, 2004[13] 이종범이 '''야구천재'''라는 별명을 얻었던 기간의 포지션이다. 리그 최상위권의 타격생산력과 독보적인 주루, 가장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 뛰어난 야구센스를 가지고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였었고 4년 반 동안의 주포지션이었지만 이 기간 동안 쌓은 WAR이 유격수 역대 1위를 아직까지 지키고 있다. 또한 이 기간 중 94시즌은 126경기 체제였음에도 역대 모든 야수를 통틀어 WAR이 가장 높다. 이는 역대 모든 경기 체제로 환산을 하더라도 마찬가지. 우익수 다음으로 가장 많이 출전한 포지션이다. (KBO 549경기)[14] 일본 진출 첫 해인 1998년에는 부상당하기 전까지 56게임을 유격수로 출전 했다. 일본 첫해의 활약도 부상 전까진 썩 나쁘진 않았다. 당시 출전한 67경기에서 10홈런과 18도루를 기록하며 풀타임 출전시 20-20의 가능성도 있었고, 볼삼비가 1이 넘는 적응력에 wRC+도 141로 리그 상위권이었다. WAR도 시즌 절반 뛰고 3.3이었으니 야만없이지만 아쉽긴 하다. 지적 받던 수비도 실책 수는 11개로 많았지만 넓은 수비 범위로 상쇄하며 +1.3의 수비 득점을 보였다.[15] 2004, 2005[16] (KBO 441경기)[1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7, 2008, 2009, 2010[18] (KBO 14경기)[19] 주니치 시절 주로 좌익수로 출전하며 중견수, 우익수를 간간히 번갈아 가면서 출전했다.[20] 1998, 2001, 2002, 2007[21] (KBO 77경기)[22] 2000, 2004, 2005, 2007, 2009[23] (KBO 32경기)[24] 2008, 2009, 2011[25] (KBO 3경기)[26] 2007, 2010[27] (KBO 2경기)[28] 1996[29] 링크. 1996년 8월 23일 대전 한화전. 당시 임창용의 공을 받았다. 그해 5월 22일 삼성전에서는 이대진의 공을 받았고 김재걸의 도루를 저지하기도 했다. 링크. 단 두 경기 였지만 당시 모습은 이종범의 야구센스를 말할 때 꼭 나오는 장면이며 임팩트 있던 장면으로 아직까지 회자된다. 아마시절을 통틀어 이전까지 포수로 출전했던 적이 전무했기에 더 큰 임팩트를 줬었다.[30] 원래는 왼손잡이라고 한다. 실제로 야구랑 필기빼고는 다 왼손을 쓰는데도 우투우타가 된 이유로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당시 자신이 존경하던 김재박을 보며 유격수가 되기 위해 오른손으로 야구를 시작했다는 설, 유격수가 되기 위해 좌투에서 우투로 바꿨다는 설, 왼손잡이 글러브가 없어 오른손으로 야구를 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종범 본인이 이야기쇼 두드림에서 밝힌 바로는 '''당시 오른손 글러브 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우투좌타로 프로에 입단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록을 써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로 인해 아들 이정후에게 야구에 대해 크게 조언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조언한 것이 우투좌타를 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31] 12시즌 계약 후 시범경기까지 마치고 은퇴[32] 이~ 종범 이~ 종범 안타 이~ 종범 (x2) 링크[33] 신세계 교향곡으로도 널리 알려져있고, 이종범 이전에 정경배가 사용하던 테마곡을 기아에서 가져다가 써서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2011년 6월 2일 '''목요일 잠실 LG전'''에서 대타로 나올 때의 챈트 떼창.[34] 2011 시즌에 사용. 안양 KGC인삼공사이정현 선수의 테마곡이기도 하다.[35] 펩시맨 CM송에 맞춰서 '이종범!'을 외치는 챈트였는데 음악은 신나지만 박자 맞추기가 어렵다고 2008년부터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36] 주니치 시절 응원가. 가사는 다음과 같다. '''狙いを定め リストを効かせ ジャストミートだ 李鍾範 おお勇ましく KOREAの鼓動 響けアジアに(목표를 정해서 손목을 써라 저스트 미트다 이종범 오오 용맹하게 KOREA의 고동 울려라 아시아에)'''[37] 홈경기엔 경기 출전이 가능하여 방위병 복무기간 중 시즌 절반인 63경기에 출전하였다. 그 절반의 출전만으로도 당해 야수 중 손꼽히는 활약을 했다는 점이 당시의 천재성을 보여준다.[38] 2021년 1월 25일 한 방송에서 십자 성호를 긋고 식사에 임하는 모습이 나왔다. 배우자 정연희와 아들 이정후는 가톨릭 신자였고, 자신도 아내를 따라 개종한 것으로 보인다. 이종범은 주니치에서 활동할 당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아내의 영향으로 김수환 추기경과 인연을 맺기도 했는데 이러한 일들을 계기로 천주교로 개종을 하였다. #[39] 팀 동료 고우석, 김대현, 김현수, 양석환, 이민호, 임찬규, 정우영, 진해수, 차우찬 등이 소속되어 있다.[40] 아들 이정후도 리코스포츠 소속이다.[41] 이종범의 대단함과 동시에 김응용 감독의 정확한 눈을 볼 수 있는 발언. 실제로 이종범의 일본 진출 전 5년간의 WAR 평균은 9 정도인데, 평범하게 승수를 쌓을 경우 10승 전후를 기록할 수준의 2~3선발급 투수는 일반적으로 2에서 많게는 4 정도를 기록한다. 진짜로 10승 투수 2명보다 가치가 뛰어났던 것. WAR은 존재도 하지 않았고 OPS조차 잘 모르던 그 시절, 김응용은 세이버 스탯도 없이 이종범의 실제 가치가 어느정도인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정확히 읽어낸 것이다. 괜히 명장이 아닌 것.[42] 93년, 97년은 한국시리즈 MVP[43] 그 유명한 김응룡감독의 명언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44] 이후 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 등장했으며, 96년에는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임창용이대진의 공을 받기도 했으며 2루로 도루를 시도하는 당시 준족으로 유명했던 김재걸을 도루사 시키기도 했다.[45] 이 외에도 93년에는 신인 최다도루인 73개, 96,03년의 20홈런 50도루 등 훌륭한 시즌이 상당히 많다.[46] 특히 양준혁은 꾸준함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KBO 역대 타자 중 최고인 관계로 통산기록에서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47] 다만 은퇴 과정에서의 불편한 감정을 인터넷을 통해 드러낸 사람은 이종범 본인이 아니라 은퇴 당시 중학생이었던 아들 이정후였다.[48] 또다른 최강급 5툴 플레이어인 박재홍은 장타력은 이종범보다 뛰어났지만 주루능력이 부족했다. 박재홍의 통산 도루 267개는 성공률이 64%에 불과한 만큼 주력에 가중치를 두기는 어렵기도 하고 컨택면에서도 이종범에게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아있다.[49] 그렇지만 지방 출신 해설위원 중에 사투리를 안쓰는 해설을 찾기가 더 힘들다. 평생을 써온 말인데 고작 몇년 사이에 고쳐지는게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50] 김기태 신임 감독이 직접 이종범에게 코치로 올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51] 자세한건 MBC SPORTS+의 야구 비판 참고.[52] 이종범은 당시를 회상하며 "올스타전이라 깜짝 이벤트로 시구를 살짝 치려고 했으나, 원래 공을 보내려고 생각했던 곳에 카메라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앞쪽으로 공을 민 것이 장나라가 있는 방향으로 가게 됐다"라고 해명하며, "아직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장나라 아버님께 따로 연락을 드려 사과했다"라고 말했다.#[53] 처음 출연한 게임 광고이다.[54] 양준혁과 스크린 야구 광고에 출연했다.[55]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 광고에 출연했다.[56] 기능성 스포츠용품 광고로 아들 이정후와 함께 출연했다.[57] 최성국이 이종범과 동갑이라며 놀란건 덤[58] 1분 10초부터 1분 20초까지[59] 2001년 시즌 중 주니치 퇴단 후 KIA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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