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2009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2009년 KBO 신인 드래프트(공식 명칭: '''200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2008년 6월 5일까지 각 팀에서 팀별 연고지 내 고등학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한편 2010 신인 지명부터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되기로 결정되면서 2009 신인 지명을 끝으로 잠시 1차 지명은 폐지되었다.[1]
3. 2차 지명
2008년 8월 18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3층 거문고홀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와 경찰청 소속 선수들 등 총 750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3]
3.1. 지명방식
1라운드부터 9라운드까지 진행되며 각 팀은 최대 9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지명방식은 홀수 라운드는 전년도 순위의 역순, 짝수 라운드는 전년도 순위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나 대학 진학으로 인한 지명권 소멸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볼드'''표시는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이 2 이상 되는 선수한테 부탁드립니다.
4. 드래프트 평가
- 삼성 라이온즈 - 1차 지명한 김상수는 대성공.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병역 문제까지 해결한 덕에 2009년 기준으로 향후 10년간 2할 후반대 타율과 상위권에 드는 도루 개수를 가진 주전 유격수 및 차기 리드오프감 선수를 뽑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016~8년 부상과 부진으로 고생하다 2019년 2루수 전환 후 부활하였다.여기에 2순위부터 지명된 , 정인욱, 배영섭, 오정복 등이 삼성에서 나름 쏠쏠하게 활약을 해줘서 결과적으로 삼성의 2009년 신인 지명은 성공작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허나 2차 1라운더 박민규를 삼성이 중간계투로 활용하려고 지명했기에 팬들이 뒷목을 잡게했고, 그나마 활약이라도 잘해줬으면 모르겠는데 별다른 커리어도 남기지 못하고 결국 1군 대신 군대에 갔고 제대 후에도 별다른 활약이 없는 상태이다. 그 외의 아쉬운 점이라면 오정복. 2010년에 본격적인 1군 커리어를 시작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군대 간 사이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NC에게 지명돼 팀을 옮기게 된 점이 삼성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후 오정복은 트레이드로 kt의 주전 외야수가 되었다. 그런데 정형식이 음주운전 사고로 인해 임의탈퇴 공시되고, 김상수는 대체 유격수를 찾지 못하던 팀 사정상 수비 이닝이 늘어나다 부상을 당하는 등 악재가 겹쳐 부진에 빠졌고, 정인욱은 꾸준히 퇴보하며 삼성 팬들의 욕받이가 되어버리며 드래프트가 안좋은 쪽으로 재평가되었다.
- 서울 히어로즈 - 재창단 전[6] 까지 합치면 2002년 드래프트 이후 무려 7년만에 1차 지명을 하였다.[7] 그래서 좌완투수 강윤구를 골랐는데, 2차 1라운더인 내야수 장영석보다 1,000만 원이 적은 계약금 1억 2,000만 원에 입단하였다. 그 이유는 강윤구가 보여준 게 거의 없어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강윤구를 가능성만 보고 1차 지명을 한 것이다.[8] 강윤구는 데뷔 첫 해 예상 외로 구속이 올라 150km/h까지 찍는 모습을 보였고, 2010년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11년에 복귀한 후에도 계속 가능성만 보여주다 입대했고 2016 시즌에 제대한 후 실력이 오히려 퇴화했고 결국 NC로 트레이드 되었다. 2차지명 1라운드 장영석의 경우 우수한 자원이지만, 1라운드는 다소 빠른 것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다. 특히 우수한 고교 내야수들이 쏟아져 나온 해였는데, 그 중에서도 수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허경민을 걸렀다는 것이 옥의 티. 실제로 장영석은 기대에 비해 못미치는 활약을 하며 투수 전향까지 시도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등 방황하다가 2017년이 되어서야 자리를 잡았다. 2019 시즌 초반 맹활약했으나 용두사미로 끝나고 이듬해 KIA로 트레이드 되었다. 2차 2라운더 고원준은 데뷔시즌 활약으로 큰 기대를 받았으나 의심스러운 트레이드로 롯데로 넘어갔으며, 잠깐 5선발-롱리리프로 잘하나 싶었으나 자기 관리 등의 문제로 두산으로 트레이드되었고 제대로 폭망했다. 결국 17시즌 종료후 방출행. 그래도 박동원이 상무에서 복무를 마친 후 주전 포수로 성장했고, 김지수도 괜찮은 백업으로 활약 중이며 박헌도도 롯데 이적 전까지 준수한 장타력으로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다.
- KIA 타이거즈 - 2009년에 뽑은 신인들이 내야수 1명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KIA에 길게 잔류하면서 들이 사실상 없어서 망한것 같기도 하지만 그 안치홍이 역대 타이거즈 최고의 2루수가 되었고, 역대 야수 중에서도 10위권에 들어갔기 때문에 망한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안치홍은 2020년 FA로 롯데로 이적했다. 1픽 정성철은 2차 드래프트로 NC 다이노스로 간 뒤 방출되었다.
- 두산 베어스 - 2006년 드래프트 못지않은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9] 1차지명으로 뽑은, 역대급 포텐이라고 평가받던 성영훈은 팔꿈치 문제로 민간 신앙이 되어버렸고, 2차 3라운더 조승수도 기회를 살리지 못하며 망했으나, 다른 선수들의 포텐이 연이어 터져줬다. 2차 1라운더 허경민은 군복무 이후 1군에서 백업으로 뛰다가 2015년 잭 루츠와 데이빈슨 로메로가 연속으로 삽질하는 가운데 3루 자리를 꿰차며 정규시즌 규정타석 3할을 찍고, 가을에는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하고, 2015 WBSC 프리미어 12 국가대표에 뽑히는 등 역대급 시즌을 보냈다. 이후에도 약간 아쉬운 타격[10] 을 커버치는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3루에 자리잡은 상태. 2라운더 박건우는 퓨처스에서 맹활약하고 2014년부터 1군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 2015년부터 대타와 백업 외야수로 나오며 어느정도 포텐을 터뜨릴 기미를 보이더니 포스트시즌에서는 정수빈이 손가락 부상으로 지명타자로 자리를 옮기자 주전 외야수로 나섰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부터는 리그 정상급 외야수로 자리잡으며 김현수의 공백을 생각도 안나게 해주는 중.
2017시즌엔 두산 베어스 역대 최초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고 2017시즌엔 타율 0.370으로 2위 war리그2위 wrc+리그2위[11] 역대 단일시즌 중견수 war 2위로 제대로 터졌다.
5라운더 정수빈은 입단하자마자 외야 백업을 수행했고, 2014년과 2015년에는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2015년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6라운더 유희관은 상무에서 제대하여 복귀한 후 2015시즌에는 18승을 포함해 2019년까지 7년 연속 10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두산 프랜차이즈 역대 통산 승수 2위인 통산 95승을 달성하였다.[12] 더구나 그동안 두산이 고질적인 좌완 문제에 시달려왔기에 이닝이터로서 유희관의 활약은 더더욱 귀중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 그리고 2017년 5월 19일, 성영훈이 2,536일만에 1군 마운드에 올라왔다. 또한 2009년 드래프트에서 뽑은 1990년생들은 현재 두산의 주축 선수들이며, 롯데에서 2차 드래프트로 데려온 허준혁도 2015년 좌완 선발로 활약해 줬다.
5라운더 정수빈은 입단하자마자 외야 백업을 수행했고, 2014년과 2015년에는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2015년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6라운더 유희관은 상무에서 제대하여 복귀한 후 2015시즌에는 18승을 포함해 2019년까지 7년 연속 10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두산 프랜차이즈 역대 통산 승수 2위인 통산 95승을 달성하였다.[12] 더구나 그동안 두산이 고질적인 좌완 문제에 시달려왔기에 이닝이터로서 유희관의 활약은 더더욱 귀중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 그리고 2017년 5월 19일, 성영훈이 2,536일만에 1군 마운드에 올라왔다. 또한 2009년 드래프트에서 뽑은 1990년생들은 현재 두산의 주축 선수들이며, 롯데에서 2차 드래프트로 데려온 허준혁도 2015년 좌완 선발로 활약해 줬다.
- 한화 이글스 - 이 해에도 가장 적은 6명의 선수를 드래프트를 통해 뽑았다. 김회성은 공갈포 기질을 보이다 2015년 3루 주전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2018 시즌을 앞두고 야수들 중 유일하게 허벅지 부상으로 하차하는등 고질적인 유리몸 기질이 지적받는다. 허유강, 장민재, 황재규가 간간히 활약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지만 이들 중에서는 장민재만 남았다. 2차 1라운드에서 지명했던 구본범은 고의폭투 등으로 안좋은 모습만 보여 주다가 2017년부터 육성선수로 신분이 격하된 끝에 시즌 중 육성선수 신분조차 말소되면서 팀을 떠나게 됐다. 그리고 2020 시즌이 끝나고 터지지 못하고 간신히 생존만 하던 김회성이 끝내 방출되면서 남아 있는 2009년 지명자는 장민재 단 한명밖에 없다.
- LG 트윈스 - 기나긴 지명 삽질을 끝내고 드디어 쓸 만한 선수들을 뽑기 시작한 시기. 1차지명한 오지환은 대성공. 2010년 이후로 LG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맡아 활약중이다. 한희의 경우도 2011시즌 필승 불펜으로 쏠쏠하게 사용했다. 최동환도 2016시즌부터 1군에서 활약하다 2020년에 필승조까지 올라섰다. 문선재 역시 2013년에 맹타를 휘둘렀다. 정주현도 1군에서 대주자, 대수비용으로 쏠쏠하게 기용 중. 하지만 한희는 입단 이후에도 여전히 키가 크면서 밸런스가 망가졌고, 2013시즌 이후부터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 2017시즌에 방출당했다.[13] 정주현은 타격, 호수비에서 가능성을 보이며 2루수로 출장하고 있으나 더 이상의 성장은 없이 백업 수준의 타격으로 정체되고 있다. 이 외에 신고선수로 들어 온 윤진호는 질기게 버텨오다 2018년에 내야 백업으로 자리잡았고 2019년까지 활약했다. 또 명단에 없는 채은성이 신고선수로 입단해 우익수로 자리잡았다.
- SK 와이번스 - 1차지명 김태훈이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17 시즌 데뷔 첫 승을 기록하는등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2018 시즌에는 핵심 좌완 불펜으로 나와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는 트레이드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하지만 승부조작에 휘말리며 완전히 흑역사화되었고 그나마 여건욱이 1군에 모습을 가장 많이 보여주고 있었지만 2015시즌 트레이드를 통해 LG 트윈스로 떠났다.
- 롯데 자이언츠 - 진명호, 양종민, 허준혁 말고는 없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양종민과 허준혁마저 팀을 금세 떠났다. 1픽 오병일도 2차 드래프트로 팀을 떠나면서 2009 드래프트 지명선수 중 진명호 1명만 남았다.진명호는 2018년도 전반기 불펜의 핵심으로 떠오르지만 너무 혹사를 당한 탓인지 후반기 들어 부진했다. 2019년에는 무너진 롯데 불펜진에서 혼자 고군분투 했고 커리어 하이를 찍었으며 현재 롯데 불펜의 기둥이다. 하지만 2019년에 혼자 혹사당한 탓인지 2020년 1이닝 3볼넷등 심각한 제구 난조를 보이고 있다.
5. 이모저모
- 200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들 다수가 드래프트에 나왔다. 성영훈, 안치홍, 박건우, 정수빈, 허준혁, 오지환, 김상수, 허경민 등.
- 삼성에 지명된 외야수 정형식은 당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소속 마이너리거 정영일의 동생이다.
- 삼성에 지명된 투수 임익현은 당시 같은 팀에서 활동하던 임익준의 동생이다.
- SK에서 3라운드에 지명된 윤석주는 KIA 윤석민의 사촌동생이다.
- 역대 손꼽히는 내야수 드래프트 해였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학주를 제외하고, 유격수 4대천왕이라고 불렸던 김상수, 안치홍, 오지환, 허경민은 각각 상위에 드래프트되었고 모두 각 팀의 중심 선수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유격수 4대천왕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해가 이전에도 있었지만,[14] 이 정도로 상위 드래프티 내야수가 활약한 해는 드물었다. 이외에도 김회성, 양종민, 정주현, 문선재 등의 내야수도 다수 배출된 해였다. 다른 포지션도 내야수에 미치지 못할 뿐 좋은 선수들이 다수 배출되어 2010년대 중반 한국프로야구의 기둥이 되는 드래프트였었다.
- LG 트윈스 9라운드에 지명된 임경모는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진학 후 부상으로 야구를 접었다. 이후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여 해외어학연수를 갔다 온 후[15] 경영학과 이중전공을 하여 회계사 준비를 하고 있다. 2015년에 CPA 1차에 붙었다고 하고 2016년에 한 인터뷰에서 올해 졸업반이며 졸업 직후 입대를 준비한다고 했으니 아마 지금은 군대에 있을 듯.
[1] 이후 논란 끝에 201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5년 만에 1차 지명이 부활하였다.[2] 나중에 오수호로 개명했다.[3]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4] 2013년 장민재로 개명[5] 퍽치기하다 조폭까지 된 위대한과는 동명이인이다. 대학 재학 중 군대도 갔다왔는데 지명되었으며 대학 안배차원이란 말도 나온 픽이었다. 1년만에 방출되면서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실제로 선수단 명단에는 이름도 못 올렸다. 테스트 과정에서 탈락한 듯.[6] 삼미-청보-태평양-현대.[7] 이것은 2014년 히어로즈의 선수층이 매우 얇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8] 허준혁과 고민하다 강윤구를 골랐다.[9] 2015 시즌을 기준으로 2006-2009 드래프트로 엔트리에 주전 좌익수 - 중견수 - 우익수, 토종 에이스, 주전 포수, 주전 3루수, 백업 외야수, 백업 내야수를 채웠다. 2015년 한국시리즈 5차전의 선발 라인업을 보면 10명 중 7명이 2006-2009 드래프트 출신이다.[10] 2018 3루부문 골글, 2020 월간 mvp, 2020시즌 7월에 역대 월간 최고타율을 기록한 만큼 타격에서도 평균이상은 해주고 있다. [11] 당해년도 리그war과 wrc+1위는 김재환 이었지만 이쪽은 약물 복용 전과 때문에 야구팬들 사이에선 박건우가 실질적 1위로 평가 된다. [12] 기존2위는 94승의 니퍼트와 유희관 이었다. [13] 참고로 한희는 병역 면제라서 군대도 갈 수 없다.[14] 대표적으로 2003년에는 나주환, 박경수, 서동욱, 지석훈이 4대천왕으로 꼽혔었다. [15] 왜 갔냐면 경영학과 이중전공 면접에서 영어를 못 한다고 떨어져서(...) 아시다시피 야구선수들의 영어실력은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따로 공부하지 않은 이상 알파벳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