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가와 부모 살인사건

 


神奈川金属バット両親殺害事件[1]
1. 개요
2. 사건 경위
3. 범행에 이르기까지
4. 사건 이후
5. 쟁점
6. 기타


1. 개요


1980년 일본에서 발생한 존속살인 사건.

2. 사건 경위


1980년 11월 29일 새벽 2시경 카나가와현 가와사키시 타카츠구의 주택에서 40대의 부부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둔기에 머리를 맞아 숨졌고, 특히 부인의 시신은 뇌수까지 사건 현장 일대에 튀어 있는 끔찍한 상태였다. 당초 경찰에는 강도 사건으로 신고가 접수되었으나, 사건 발생 다음날인 11월 30일 범인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이 범인의 정체는 피해자 부부의 차남인 재수생 이치류 노부야(一柳展也, 당시 20세)였다.
이치류는 범행 직후 흉기로 사용한 금속 배트와 피가 묻은 옷을 숨기는 등 증거를 은닉한 뒤, 날이 밝은 후 경찰에 신고하면서 집에 강도가 들어와 부모를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범행 다음 날 이치류의 행실을 수상하게 여긴 친척의 추궁 끝에 자신이 진범이라고 시인, 친척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치류는 범행 일체를 인정하고 범행 동기를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3. 범행에 이르기까지


이치류 노부야의 부친은 도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 후 아사히 글래스[2] 도쿄지점에 근무했으며, 모친은 야마구치현의 유명 주가(酒家)의 딸이었다. 형도 와세다대학 공학부를 졸업하고 상장기업에 입사한 엘리트 집안이었다. 모친의 증언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야구에 재능이 있었고, 이른바 '손이 안 가는 아이'였다고 한다.
이치류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성적을 유지했으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성적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이치류가 자신이 진학한 사립 카이죠 고등학교[3]에 대해 '수준 낮은 학교'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도 한 원인으로 추측되고 있다.[4] 이치류는 1979년 교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을 비롯해 조치대학, 주오대학, 세이조대학, 메이지가쿠인대학[5] 등의 사립대학 수험에 응시했으나 모두 실패한 이후 예비교[6]에 다녔지만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이듬해인 1980년 와세다, 릿쿄대학, 니혼대학, 호세이대학에 응시했으나 이마저도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엄격한 성격이었던 부친은 그에게 대학 입시를 포기하라며 질책했으나 형과 모친이 부친을 겨우 설득해서 재수를 허락받았다. 이 무렵부터 이치류의 심리적 부담은 점점 심해져 갔고, 여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술에 절어 지내거나, 부친의 현금카드를 훔쳐 돈을 인출해서 영화관이나 파칭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7]
사건 발생 전날인 11월 28일 밤 11시경, 술에 취해 귀가한 부친은 이치류가 자신의 현금카드를 훔쳐 돈을 인출한 사실을 알고 격분하여 2층 방에서 술을 마시던 이치류에게 "대학 한 군데도 제대로 붙지 못하는 주제에 이게 무슨 꼬라지냐. 너 같은 도둑놈은 집에 둘 수 없으니 나가라."며 그를 심하게 꾸짖고 걷어 차기까지 했으며, 그 동안 이치류의 편을 들어주던 모친도 실망하여 냉담한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약 3시간 후, 이치류는 잠을 자고 있던 부모를 금속 배트로 내려쳐 잔인하게 살해했다.

4. 사건 이후


1984년 4월 25일, 요코하마 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검찰 측은 징역 18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부모의 꾸지람이 범행 동기가 된 것은 기본적으로 피고인의 잘못임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에게 전과나 비행 이력이 없고 선천적으로 정신적인 발달장애[8]가 있음에 더해 사건 당시 음주로 사리판단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벌어진 우발적 범행이라는 점, 체포된 이후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했다는 점에서 갱생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피고 측은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유죄가 확정되었고, 치바 형무소에서 복역 후 1997년에 만기출소했다.

5. 쟁점


이 사건은 당시 사회문제로도 비화되었던 입시 전쟁에서 촉발되었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또한 이치류의 학력 컴플렉스, 즉 명문대학 출신의 부친과 형에 대한 열등감과 가족 간의 소통 부재가 원인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대입 수험에 따르는 열등감과 정신적인 한계에서 오는 무력감을 범행 동기로 보는 해석도 있다.
한편으로는 위에 언급된 사항들은 사건과 전혀 무관하며, 그 외의 심각한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는 설도 있었다. 일부 언론인은 이 사건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모자간의 근친상간이 얽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으나 너무 극단적인 분석이었던 만큼 이 설은 큰 설득력을 얻지 못했고, 현재로서는 학력 컴플렉스와 입시에 대한 중압감을 사건의 근본 원인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6. 기타


  • 1980년대에 활동했던 일본의 록 밴드 BOØWY의 MORAL 앨범에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노래 《WATCH YOUR BOY》가 수록되어 있다.
  • 1985년 4월 8일 TV 아사히 계열의 2시간 드라마 '월요 와이드 극장'에서 이 사건이 드라마화되었다.
[1] 카나가와 금속 배트 부모 살해사건[2] 現 AGC 주식회사. 아사히 글래스는 2018년까지 사용된 사명이다.[3] 2011년부로 완전히 중고일관제로 전환했다.[4] 중학교 시절에는 도쿄대학 합격률 톱을 자랑하는 도립 히비야 고등학교 진학의 등용문으로 알려진 명문 중학교에 다녔고, 고등학교 입시에서 형이 다녔던 와세다대학 부속고등학교와 게이오기주쿠대학 부속고등학교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사립 카이죠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이다. 하지만 이치류의 인식과는 달리 카이죠 고등학교도 도쿄 도내에서 손꼽히는 명문 고등학교로 경쟁률이 결코 낮지는 않은 곳이었다.[5] 1863년 창립된 기독교 대학으로 메이지대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별개의 학교다.[6] 한국의 입시학원에 해당.[7] 이 시기 이치류는 예비교에는 한 달에 약 7일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8] 정신감정 결과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