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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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ancan. 1830년대 7월 혁명 이후 프랑스 파리의 무도회장에서 시초가 된 단체 무용. 경쾌하고 신나는 빠른 템포로 무희들이 하이힐을 신고 여러 겹의 긴 스커트를 꽃처럼 흔들어서 다리를 치켜들어 점프를 하는 외설적인 춤이다. 샤위(chahut)라고도 한다.
2. 유래
1828년 발 타바랭이 재개되어 춤의 새바람이 일고부터 프렌치 캉캉이라는 이름으로 서민들 사이에서 유행을 하게 되고 1845년 카지노나 뮤직홀의 쇼로 진화되어 물랭루즈를 중심으로 프랑스 캬바레나 사교계의 명물이 된다.
3.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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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캉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치마가 핵심이다. 입지 않고 다리만 위로 치켜올리는 특유의 동작만으로도 충분히 캉캉이라고 하지만 정통적인 스타일은 캉캉치마가 있어야 한다. 발목을 감싸고 주름이 많으며 여러 겹을 층층이 쌓아서 안에 공기층이 쌓여 풍성하게 만든 치마를 일명 캉캉치마라고 한다. 속도 마찬가지로 보였을 때 아름답게 보여야 하기 때문에 속치마에 프릴을 화려하게 집어넣는다. 한복의 무지기 치마가 이 캉캉치마를 닯았다. 다리를 활짝 벌려야 되기 때문에 플레어 스타일로 치마의 각도는 360도로 이루어져 있어 한계까지 다리를 찢어도 턱이 걸리지 않는다. 현대사회로 들어서면서 캉캉댄스는 쇠퇴했어도 치마의 스타일은 남아 아직까지도 미니스커트나 미디움 스커트로도 캉캉스타일은 명맥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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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이 목적인만큼 단순히 미적인 의미뿐 아니라 다리를 벌릴 때 안이 훤히 드러나는게 핵심. 이 춤이 유행한 물랑루즈는 유흥업소였는데, 동물의 사육제 오페라 초연 때 블루머를 입고 검은 양말을 신은 채 캉캉 춤을 춘 것이 그 당시 보수적인 풍조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대목이 있지만 스타킹과 가터벨트를 입고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캉캉춤을 선보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4. 시대의 편법
보수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여자가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였다. 아무리 술집이라도 경찰의 단속이라도 들어오면 가게 망하는 건 시간 문제니 남자 손님들의 관심은 끌어야 되고 단속은 피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대놓고 보여주는 것이 아닌 치마를 흔들고 다리를 치켜 들어서 슬쩍슬쩍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었다. 설령 단속이 들어온다 해도 엄청나게 두꺼운 치마를 입고 멀뚱히 서 있으면 위법을 증명해내기 힘드니 캉캉은 이를 이용한 가장 안성맞춤인 퇴폐문화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러한 프랑스에서 시작된 독특한 춤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같은 열정적인 남유럽 백인들의 사랑을 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근대화로 접어들면서 페미니즘이 시작되자 샤넬 스타일을 필두로 무릎을 드러내면서 일반 여성들이 너도나도 노출에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캉캉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현재는 하나의 고전 무용 장르로서 행사 퍼레이드나 물랭루즈 관광의 명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5. 대표곡
캉캉 주제곡 하면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이 가장 유명하다.
이외에도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나 카르멘의 서곡 등이 캉캉에 사용된다.
트로트 아이돌 그룹인 LPG는 이 댄스를 모티브로 한 캉캉을 발표했다. 실제로 캉캉치마를 입고 캉캉춤을 췄다. 이후 슈가맨 3에서도 슈가송으로 사용하였다.
6. 관련 인물
- 라 굴뤼 :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에 의해 선전용 석판화 포스터에 묘사되기도 한 물랭루즈의 메인 댄서. 캉캉춤은 그녀의 특기 중 하나였다.
라 굴뤼라는 이름은 먹보라는 뜻의 별명이다. 큰 인기를 모아 번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하고 알콜중독에 빠진 후 몽마르트로 돌아와 담배나 땅콩을 팔다가 생애를 마친다.
[image]- 제인 아브릴 : 라 굴뤼가 떠난 후 물랭루즈의 메인 댄서가 된 무희. 이후 결혼을 했으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아 요양원에서 생애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