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니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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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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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고 몽키스 시절.
라미고 몽키스 No.38
케니스 앨런 레이
(Kenneth Alan Ray)

'''생년월일'''
1974년 11월 27일 (50세)
'''국적'''
미국
'''출신지'''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신체'''
188cm, 92kg
'''포지션'''
투수
''' 투타'''
우투우타
''' 프로입단'''
1993년 MLB 드래프트 18라운드 (캔자스시티 로얄스)
'''소속팀'''
캔자스시티 로열스 (1999)
롱 아일랜드 덕스[1] (2002, 200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6)
티후아나 불스[2] (2008)
SK 와이번스 (2008)
라뉴 베어스/라미고 몽키스 (2010 ~ 2012)
유카탄 라이온스[3] (201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3, 2015 ~ 2016)
라미고 몽키스 (2014, 2017 ~)
'''지도자 경력'''
라미고 몽키스 2군 코치 (2017 ~)[4]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관련 문서


1. 개요


'''가늘고 긴 선수생활의 대표'''
라미고 몽키스 소속의 미국인 2군 플레잉코치. 2008년 SK 와이번스 용병이었으나, 대체 용병으로 와서 5경기만에 도로 방출당한 안습의 용병이기도 하다. 또한 2017년 7월 14일 현재 KBO+CPBL에서 뛰는 모든 야구선수 중 최고령 선수. '''1974년생으로, 2017년 6월에 은퇴한 최영필과 동갑'''이다.

2. 선수 경력



2.1.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3년에 바로 프로에 진출한 그는 1997년에 AAA로 올라오게 되었고 2년간 AAA와 AA를 왔다갔다한 끝에 1999년 7월 10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두번째 투수로 등판하며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게 되었다. 그러나 별 활약 없이 이 해의 성적은 13경기에서 1승 0패 ERA 8.74.
그러나 그 후로 방출당해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동안 독립리그와 마이너리그를 계속 옮겨가면서 어려운 삶을 보냈다. 그리고 2005년도 시즌 초반의 3경기는 독립 리그에서 보냈다.

2.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


그러던 2005년. 시즌 도중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AAA로 복귀. 17경기에서 2승 4패 ERA 3.90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6 년에도 정규 리그 개막은 AAA에서 맞이했다. 그러나 시즌 개막 직후인 4월 6일. 호라시오 라미레즈[5]의 부상 덕분에 7년만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되는데 성공하였다.
이 시즌의 기록은 69경기에서 1승 1패 5세이브 7홀드 ERA 4.52로 정말 미들맨으로 열심히 구르면서 거의 풀타임으로 메이저에서 보낸 사실상 커리어하이 시즌이 되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직후 어째서인지 웨이버 공시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시즌이 그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시즌이 되었다. 그는 2007년은 AAA에서 보냈으나 콜업되지 못하였고, 2008년에는 멕시코로 가서 멕시칸 리그 소속인 티후아나 불스 팀에서 뛰었다. 멕시코 리그 성적은 13경기에서 6승 3패 ERA 3.65로 준수했다.

2.3. SK 와이번스 시절


'''광속퇴출'''
'''항목이 9년동안 만들어지지 않았을 정도의 흑역사 용병'''
2008년 초 티후아나 불스에서 뛰던 그를 SK가 중도 퇴출당한 쿠비얀의 대체 용병으로 영입하였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거의 풀타임으로 뛴 시즌이 있었고, AAA와 멕시칸리그 성적도 준수해서 꽤 많은 기대감을 갖고 들어온 용병이었으나, 첫 두 경기까지는 괜찮은 모습을 보이다가 그 뒤로는 무진장 난타당하고 말았다. 결국 5경기에서 1승 2패 ERA 6.64를 찍고 광속으로 퇴출당하고 말았다. 그 당시 SK는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순위권 싸움에 대한 부담 때문에 빠르게 퇴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SK의 또 다른 외국인은 풀네임에 '번'이라는 글자를 하나 더붙인 케니 레이번이었다. 때문에 그 둘을 헷갈려한 사람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둘은 1974년생으로 동갑인 데다 생일도 5일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2.4. 라미고 몽키스 1기 시절


그 후 독립리그와 AAA를 전전하며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2010년 결국 라뉴 베어스[6]에 입단하게 된다.
2010년에는 25경기에 등판해 24선발 7승 8패 1홀드 ERA 2.32를 기록하였다. 전체 3위를 기록한 ERA에 비해 승운이 너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듬해인 2011년엔 29경기에서 13승 10패 ERA 2.85를 기록하였다. 이 해에 ERA 1위, 다승 2위, 탈삼진 2위를 기록하면서 명실상부한 라미고의 1선발로 자리잡는데 성공하였다.[7]
그러나 2012년에는 18경기에서 7승 7패 ERA 3.90으로 출장 경기수도, 먹은 이닝도, 승리도, ERA도, 탈삼진도 모두 작년에 비해 떨어지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팀에서 방출당했다.

2.5.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기 시절


2013년 시즌 초. 그는 멕시코로 돌아가서 유카탄 라이온스에서 뛰었는데, 여기서 12경기에서 7승 3패 ERA 2.74로 호투하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오퍼를 받고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그의 NPB 1군 데뷔전은 7월 17일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경기. 이 경기에 2 번째 투수로서 첫 등판하면서 이후의 경기에서는 주로 선발 투수로 기용되었다. 그러나 9 월 10 일의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경기에서 2회 말에 스즈키 다이치의 타구를 얼굴에 맞고 오른쪽 광대뼈가 골절되어 시즌아웃되고 말았다. 그러나 팀의 퍼시픽 리그 첫 우승으로 맞이한 롯데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1군에 복귀했다. 복귀 후에는 구원 투수로 등판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통과하여 만나게 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구원 투수로 등판하며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 NPB 우승반지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시즌 종료 이후 방출. 결국 다시 대만의 라미고 몽키스로 가게 된다.

2.6. 라미고 몽키스 2기 시절


17경기에서 9승 5패 ERA 2.17로 리그를 폭격하고 있었으나, 후기리그 도중인 8월 말 퇴단하고 얼마 후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입단 테스트를 보게 되었다. 이때 옛 동료였던 짐 하우저와 같이 입단테스트를 봤다.

2.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기 시절



2.7.1. 2015 시즌


2015년 1월. 짐 하우저와 같이 동반 합격하였다. 2015년에 NPB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 중 40대의 나이로 NPB에 복귀한 사례는 케니 레이가 유일했다고 한다. 등번호는 42번이었으나 시범경기 도중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이적해 온 윌리 모 페냐가 42번을 요구해서 12번으로 바꿨다.
개막 초기에는 선발 투수로 시즌 첫 등판에서 4월 25일의 롯데전까지 4경기 모두 승리. 40대 이상의 투수가 NPB 1군 경기에서 개막 4 연승을 달성한 것은 일본인 투수를 포함해도 1990년의 무라타 조지를 웃도는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6월 중순부터 중간 계투로 전향했지만 1군 외국인 쿼터 4명 때문에 이달 하순부터는 1군과 2군을 여러 번 왕복. 8월 7일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전에서 선발로 5연패를 당했지만, 시즌 종료 후 11월 27일에 1년 재계약을 맺기로 하였다. 이 해에는 자신보다 연상의 동료 사이토 다카시가 현역을 은퇴했기 때문에 (일본인 투수 포함)퍼시픽 리그 현역 최고령 투수가 됐다.
이 해의 성적은 22경기 19선발 5승 7패 2홀드 ERA 3.79로 40대의 나이에[8] 나름 만족스러운 성적을 냈다.

2.7.2. 2016 시즌


시즌 개막 직후에는 2군에 있었던데다 4월 21일의 첫 등판이 강우취소가 되면서 5월 14일이 되고 나서야 1군 첫 경기를 치를 수 있었고, 뒤늦게 콜업된 1군에서도 4경기 0승 2패 ERA 7.27로 폭망해버렸다.
결국 구단에서는 1년 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7월 29일 웨이버 공시하였다. 이렇게 은퇴하는 줄 알았으나...

2.8. 라미고 몽키스 3기 시절


라미고 몽키스에서 2군 플레잉코치로 그를 영입하였다. 그는 '''1974년생'''으로, 최영필과 동갑인데도 2017년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간다! 사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도 프런트/코치 쪽 자리를 제안하였다고 하는데, 현역 연장 의지 때문에 선수 자리를 보장해주는 대만으로 간 듯.
물론 2군 플레잉코치였기 때문에 1군 쿼터 3명에 들어갈 날은 없지만, 꾸준히 2군에서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서 뛰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싱글A 수준도 못 되는 CPBL 2군에서 7월 14일 현재 13경기에서 1승 5패 ERA 5.13으로 좋지 못하다. 애초에 1974년생이 은퇴 안하는 것부터 대단한거지만...
17시즌 대만 2군 최종성적은 14경기 2승 5패 ERA 5.15.

3. 플레이 스타일


스리 쿼터 스타일의 투구를 하며, 최고구속 148km의 한 정통 우완투수. 변화구로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진다.

4. 관련 문서


[1] 미국 독립 리그.[2] 멕시칸 리그[3] 멕시칸 리그[4] 2017년부터는 플레잉코치로 있다.[5] KIA 타이거즈에서 2012년에 뛰었던 그 선수 맞다.[6] 현재의 라미고 몽키스[7] 그 해 다승과 탈삼진 1위는 바로 올랜도 로만. 그는 이 해에 ERA 2위도 기록하였다. [8] 이 선수. 1974년생으로 최영필과 동갑이다. 한국 나이로는 42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