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레이트

 


  • 한자: 객렬액(客烈亦), 겁렬(怯烈), 겁렬액(怯烈亦)
  • 페르시아어: 키라이트(كرايت)
  • 몽골어: ᠬᠡᠷᠡᠶᠢᠳ(몽골 문자) / Хэрэйд(키릴 문자)
1. 개요
2. 상세


1. 개요


몽골 제국 이전 몽골 고원 중북부 한가이 산맥 부근에 흩어져 살던 유목민 부족집단이다.

2. 상세


부족명은 여섯 씨족 중 지배층인 케레이트 씨족의 성씨를 따서 통칭하였다.
기원은 위구르 제국을 멸망시킨 키르기스족을 몰아낸 부족 중 가장 큰 집단으로 알려져있으며, 이후 위구르의 일파인 나이만과 지역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였다. 다만 경쟁의 와중에서도 옹구트, 나이만 등 서역의 유목 민족들과 함께 경교를 받아들였으며 위구르 문자를 사용하였는데, 여타 몽골 부족에 비해 문화적으로 앞서게 되었다. 의 복속을 요구 받고 거절해서 침략도 받았으나, 저항 끝에 지역정권으로 인정받았다.
마지막 칸인 토그릴 칸은 초창기 테무진의 힘들었던 시절 든든한 동맹으로 유명하다. 토그릴이 삼촌인 쿠르 칸과 경쟁할 때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에게서 도움을 받고 의형제를 맺었기 때문. 토그릴 칸과 테무진은 동맹을 맺고 타타르 정벌에 참여하여 승리하자 토그릴은 왕의 작위[1]를 받고 테무진은 백호장의 작위를 받는다.
나이만메르키트를 함께 상대하면서 동맹이 조금씩 틀어지다가, 자무카가 옹 칸에게 의탁하고 이를 비난하는 테무진이 암살당할뻔 하면서 완전히 갈라선다. 1203년 테무진의 역습으로 옹 칸과 그의 아들 이루카 샌군은 패해 쫓겨난다.[2] 옹 칸은 나이만 땅으로 도망가려 하지만 국경지대에서 살해당한다.
1206년 테무진이 칭기즈 칸으로 등극하고 몽골 제국이 성립되면서 케레이트는 몽골족에 완전히 흡수당한다.
그 후 옹 칸의 동생인 자하감보(Жаха Хамбу)의 딸 소르칵타니 베키(Сорхагтани Бэхи)는 툴루이의 아내가 되어 자녀로 훌레구 칸, 몽케 칸, 쿠빌라이 칸, 아리크부카를 낳았다.

[1] 이후 옹 칸(王汗)으로 불린다. [2] 물론 케레이트는 당시 몽골의 부족들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기에 칭기즈 칸이 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3일이나 포위하고 공격한 끝에 무너뜨릴 수 있었다.